스님의하루

2026.4.18. 농사 울력, 통영시민문화회관 즉문즉설 강연
“엄마가 가족들 때문에 슬프고 힘든데, 어떻게 할까요?”

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는 농사 울력을 하고 오후에는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장에 다녀왔습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두북수련원은 어제 오후부터 봄비가 내려서 땅이 질퍽했습니다. 오전 6시, 스님은 연장을 챙겨서 두북수련원 근처에 있는 속가 누님 댁으로 향했습니다.

누님 댁에 엄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웃자라고 있어서 가지치기가 필요했습니다. 허리가 굽은 누님이 엄나무 가지치기를 하기도 어렵고, 엄나무 순을 따기 위해서는 가지치기가 필요했습니다.

“아이고, 밭이 지니까 들어가지 마라. 신발도 버리고 밭도 버리고 안 된다. 다음에 하자.”

스님은 자동 전기 절단기로 엄나무 가지를 시원시원하게 치기 시작했습니다. 엄나무가 키가 커서 사다리가 필요했는데, 밭이 질어서 사다리를 놓고 할 수 없었습니다. 손에 닿는 위치의 엄나무 가지만 쳤습니다.

잘려 떨어진 엄나무 가지에 붙은 엄나무잎을 떼 내어 분류했습니다. 큰 잎은 따로 모아서 손님상에 올릴 것으로 준비하고, 작은 엄나무잎은 데쳐서 나물을 무쳐 먹는 데 사용할 예정입니다. 엄나무잎을 떼어내는 울력을 했습니다.

누님은 밭에 싱싱하게 자란 상추를 다 수확해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오늘 때마침 손님들이 두북수련원에 오게 되어서 상추가 필요했습니다. 상추도 한 자루 가득 수확했습니다. 1시간 정도 농사 울력을 했는데, 땀이 났습니다. 두북수련원으로 온 스님은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정비 후에 잠깐 휴식을 하고는 바로 통영 강연을 위해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오전 11시, 스님은 차를 타고 통영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오후 2시에 통영시민문화회관 강당에서 통영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020년 6월 종교인 모임에서 윤이상 기념관과 생가를 방문한 이래로 5년 만입니다. 통영시민문화회관은 이미 만차여서 주차를 할 수 없었습니다. 주차 안내 요원이 스님 차량인지 모르고 우회하라고 안내했습니다.

강연장 앞에 정차를 겨우 하고, 스님이 내리시자, 저 멀리서 유수스님과 통영불교사암연합회 스님들이 한달음에 뛰어왔습니다.

강연 시작 30분 전, 강연장은 스님의 강연을 들으러 온 통영시민들로 붐볐습니다.

스님은 사전 차담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통영 지역의 관광 사업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통영시장 권한 대행을 하고 있는 윤인국 부시장님이 차담 장소로 왔습니다. 통영시민들이 강연장을 꽉 메워서 1층이 다 찼고, 2층으로 착석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아름다운 도시 통영은 어디가 관광객이 많아요?”

“이순신 장군 거북선 있는 곳에 김밥 거리가 있습니다. 거기가 제일 많이 북적거립니다. 바로 옆에 동피랑에 사람 많고요, 미륵산 케이블카에 사람 많습니다. 미륵산의 용화사도 유명합니다. 통영 야간 명소인 디피랑도 유명합니다.”

“통영불교사암연합회 스님들이 통영 가이드가 다 되신 것 같습니다. 통영은 뭐가 딱 한 개가 좋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좋은 것 같아요.”

“통영의 진가를 알려면 배를 타고 주변 섬들을 한 바퀴 돌아봐야 합니다. 사량도, 욕지도 좋습니다.”

통영의 관광 사업에 관한 이야기부터, 밤새 유튜브를 보다가 법회 늦었다는 신도 이야기, 스님의 유튜브를 보면서 설교 소재를 삼는다는 종교인 이야기, 자영업자들이 노동자보다 더 어려운 이야기, 고령화 시대, 통영도 인구 소멸 지역의 관심 지역이라는 것에 대한 현안들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강연 시작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의 강연을 들으러 통영 시민들이 강연장을 꽉 채웠습니다. 통영시민문화회관 880석이 꽉 찼습니다. 사회는 금탑사의 정왜스님이 맡아 주었습니다. 통영불교사암연합회 회장인 묵원스님의 인사말과 통영시장 권한 대행인 윤인국 부시장님의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큰 박수 소리와 함께 스님이 무대 위로 등장했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라는 통영, 또한 많은 역사 유적이 있는 통영에서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통영시에서 주최하고 통영사암연합회에서 주관하여 마련된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통영시청 관계자분들과 통영사암연합회 스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또 오늘처럼 좋은 봄날, 이 자리를 찾아주신 시민 여러분께 반가운 마음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소개할 때마다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자주 붙이곤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모두 웃음) 왜냐하면 저부터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께 인생에 대해 특별히 뭔가 해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람은 저마다 모두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정답’ 같은 가르침은 불교에 원래 없었습니다. 각자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더라도 ‘사람이 적어도 이런 행위는 하지 말아야 바람직하다’라고 하는 5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남을 때리거나 죽이면 반드시 보복이 따릅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에게 한 대 맞으면 되갚아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한 대 맞으면 한 대만 때리는 것이 아니라 두 때 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복수심으로 항상 지나친 복수를 하게 됩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마 대부분 이 내용에 대해 부당한 일을 당하면 복수해도 된다는 내용으로 이해하고 계실 거예요. 그러나 이것은 오해입니다. 복수를 반복하면서 지나치게 과잉으로 복수를 하다 보니, 그것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법은 적어도 자기가 당한 것보다 더 크게 복수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한쪽 눈을 맞아서 다쳤으면, 보복할 때 두 눈을 때려서 더 심하게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일은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상대에게 피해를 당했을 때 당한 것보다 더 심한 보복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3800년 전에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이미 그런 규칙을 만들어서 지켰습니다.

지금 중동에서 미국과 이란이 벌이는 전쟁을 보면 그건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 싸움이 아니라, 마치 힘으로 상대가 안 되는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전쟁이다. 또는 싸운다’라는 표현은 보통 힘이 비슷한 상대가 서로 다툴 때 쓰는 표현입니다. 힘으로 상대도 되지 않는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은 학대나 학살이라고 말해야 올바른 표현이겠죠. 그래서 사실 이번 전쟁은 전 세계가 반대 성명을 발표할 만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힘이 세다 보니 모두 겁먹고 쉬쉬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서야 교황이 전쟁 반대 발언을 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나라들도 조금씩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런 학살이나 학대는 금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첫 번째 말씀입니다.

다섯 가지 계율, 보편타당한 기준

그래서 첫째, 사람은 각자 다 자기 좋을 대로 살되 남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둘째, 어떤 이익을 추구하면서 살아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는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지만 상대가 싫어하는데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삿된 행위를 하지말라’라는 이 계율은 다른 사람을 성추행 또는 성폭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넷째, 각자 어떤 발언을 해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욕하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무엇을 먹어도 괜찮지만, 술 먹고 취해서 추태는 부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다섯 가지 불교의 계율은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도 다 수긍할 최소한의 삶의 기준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사람이나, 다른 나라 사람이 들어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타당한 기준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 계율은 그 사람이 속한 종교나 민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기준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삶의 기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할 때 생깁니다. 사실을 알고 나면 괴로움은 바로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집에 늦게 들어왔습니다. ‘또 어디 가서 술 먹고 늦게 왔니?’ 이렇게 생각하면 바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런데 배우자와 대화하면서 늦은 이유를 알게 되면 오해였다는 것을 알고 화가 사라져 버립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오는 길에 어떤 쓰러진 사람이 있어서 그를 경찰서에 모셔드렸고, 그랬더니 진술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술 조사까지 받고 들어오느라 늦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나쁜 짓 하느라 늦은 것이 아니라 좋은 일 때문에 늦은 것입니다. 이렇게 사실을 알게 되면 남편을 보자마자 팍 치밀어 올랐던 화가 ‘아. 그랬구나!’ 하면서 누그러집니다.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은 뭔가를 새로 학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사실대로 제대로 아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절대 어려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원래 ‘종교’라는 말은 세상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대들보 같은 가르침, 가장 으뜸가는 가르침이라고 해서 그 뜻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이념 문제로 서로 갈등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중동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정말 으뜸가는 가르침으로서의 종교 활동을 한다면, 항상 그 행위의 결과가 내 마음의 평화, 세상의 평화로 이어져야 ‘진정한 종교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삶과 종교에 관해 여러분들이 이런 관점들을 가져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스님의 인사말이 끝나고 통영시민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질문자들이 각자의 사연을 질문지에 적어서 질문지 함에 넣었으나 무기명으로 적혀 있어서, 마이크를 전달 할 수 없었습니다. 스님은 청중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질문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

“질문 없으면, 저는 갑니다. 저는 강연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물으면 대화를 하는 거예요. 질문지 써낸 분 계시지요? 손 번쩍 들어보세요.”

질문지에 이름을 적어서 냈다는 여성 질문자가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했고, 스님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청중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입가에 웃음꽃이 피자 강연장의 분위기는 집중되어 갔습니다.

여러 질문 속에서 엄마가 걱정되는 한 여성과의 대화 내용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스님. 우리 집에 요즘 안 좋은 일들이 많습니다.”

“어떤 안 좋은 일인가요?”

“재작년에는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죽는 일이 안 좋은 일이에요?”

“네. 작년에는 오빠도 세상을 떠나서 저희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엄마한테 어떻게 힘이 될 수 있을까요? 엄마를 여기 강연장에 모시고 오고 싶었는데, 엄마는 조개 팔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청중 웃음)”

엄마가 가족들 때문에 슬프고 힘든데, 어떻게 할까요?

“그런데 저는 서울에 살고 일이 바빠서 부모님께 자주 못 옵니다. 전화는 드리는데 걱정이 됩니다. 아빠가 힘이 되어주면 좋겠는데, 아빠는 약주를 너무 좋아하셔서 힘이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엄마가 너무 슬프고 힘들어하시는데 어떻게 말씀을 드릴까요?”

“질문자는 괜찮은데 엄마 힘든 것만 문제예요?”

“엄마가 힘든 것을 보면서 제가 너무 불안하고 걱정됩니다.”

“엄마가 힘 드는데, 왜 질문자가 불안하고 걱정돼요?”

“엄마가 힘드니까요. 엄마가 젊어서부터 고생하셨는데 좀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죠?”

“네.”

“저도 트럼프 대통령이나 푸틴이 전쟁을 좀 끝냈으면 좋겠는데, 제 뜻대로 안 되네요.”

“네.”

“트럼프나 푸틴이 제 마음대로 안 돼요. 그래서 요즘 힘이 듭니다. (청중 웃음)”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요?”

“제가 트럼프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요? (청중 웃음)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고,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뭔가를 해줄 수가 없어요.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그럼, 엄마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요?”

“엄마가 질문자보다 나이가 많아요? 적어요?”

“많아요.”

“질문자는 결혼했어요?”

“네.”

“아이는 몇이에요?”

“아이는 없어요.”

“질문자는 형제가 몇 명이에요?”

“원래 넷이었는데, 언니와 오빠가 세상을 떠나서 이제 두 명이 되었어요.”

“그럼, 엄마는 결혼해서 질문자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도 애 넷을 낳아서 키웠죠?”

“네.”

“그리고 엄마는 지금도 조개 팔러 가셨잖아요. 그러면 엄마가 질문자보다 인생 경험이 많을까요? 적을까요?”

“많아요.”

“그러면 질문자보다 더 잘 살까요? 못 살까요?”

“잘 살아가겠네요.”

“엄마는 지금도 잘 살고 있습니다. 단지 질문자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질문자는 지금 공연히 울고불고하는 거예요. 아빠가 술을 마시고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했는데, 그런 엄마가 혼자 사는 게 낫겠어요? 그래도 아빠하고 사는 게 낫겠어요?”

“혼자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누가 보기예요?”

“제가 보기에요.”

“그래요. 질문자가 보기에는 그렇지만, 엄마로서는 지금 이 나이에 혼자 사는 게 낫겠어요? 마음에 딱 드는 것은 아니지만 술을 마시는 영감이라도 있는 게 낫겠어요?

질문자가 늙어 보세요.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질문자 생각에는 ‘저 정도면 이혼하는 게 낫겠다.’라고 하지만, 엄마가 살아온 삶의 배경, 나이, 관계를 살펴보면, 아빠가 술 먹고 행패 부리고 해서 ‘지금 당장 못 살겠다.’라고 엄마가 말씀하셔도, 내일 아침에 아빠가 일어나서 숙취로 골골대면 엄마는 해장국 끓여서 갖다 줄 거예요.”

“맞아요. 진짜 그렇게 하세요. (청중 웃음)”

“질문자가 옆에서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보고, ‘그럴 바에는 같이 살지 마라.’고 얘기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엄마, 아빠는 찌그럭찌그럭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다만 엄마가 질문자한테 전화해서 ‘너희 아빠 술 먹고 또 주정을 해서 내가 못 살겠다.’ 하시면, 전화받아서 이야기를 들어주면 됩니다. 그러면 엄마는 이튿날 아침에 또 해장국 끓여 주실 거예요. 질문자는 엄마 전화를 받아서 ‘아이고, 엄마 힘들지?’ 이렇게 말해야지 ‘아빠가 또 술주정했어!’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엄마가 화가 날 때는 아빠 욕을 같이 하지만, 욕하고 끝난 뒤에 정신이 들면 자기 아버지를 욕한다고 딸을 욕해요. ‘부모 은혜도 모르고, 자기 아버지 욕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 심리가 이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섣불리 남의 살림에 끼어들지 마세요. 서울 가서 살다가 엄마 보고 싶으면 내려와서 조갯국이나 한 그릇 얻어먹고 올라가면 됩니다. 거기 껴서 ‘엄마. 살지 마라. 살아라.’ 하는 것은 질문자의 고민이지 엄마 고민이 아니에요. 질문자는 그런 엄마, 아빠에 대한 고민이 질문자의 고민인 줄 모르고, ‘이건 엄마 아빠 때문에 일어난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착각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나 잘 사세요. (청중 박수)

여러분들이 인도에 가서 사람들이 길거리나 담벼락 밑에 어렵게 사는 것을 보면 불쌍해요? 안 불쌍해요?”

“불쌍해요.”

“그런데 그게 내가 보기에 불쌍할까요? 그 사람이 정말 불쌍한 존재일까요?”

(청중 대답) “내가 보기에요.”

“그래요. 그건 내 문제지, 그 사람들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다 웃고 재미있게 잘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 문제를 자꾸 남한테 덮어씌우지 말고, ‘아, 이게 내 문제다.’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네.”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들으며 안타까워서 공감하는 청중도 있었고, 질문자를 응원하는 마음에서 박수를 치는 청중도 있었습니다.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지만,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한 여성분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했습니다.

“법륜스님,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보현사 묵원스님 밑에서 애들 다섯 명이랑 삽니다. 저는 1946년생인데, 어떻게 해서 건강하고, 우째서 절을 왜이리 좋아하는지, 그것을 말씀해 주이소. 절을 좋아해서 건강하게 사는 것일까요?”

“자기가 절을 좋아하면서 나한테 절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면 어떡해요? 내가 ‘보살님께 왜 그렇게 절을 좋아해요?’라고 물어봐야지요. (청중 박장대소)”

“스님, 이유를 좀 말씀해 주세요.”

“자기가 알지. 자기가.”

“좀 말씀해 주이소. 타고난 것입니까, 우째서 내가 이렇게 절을 좋아하는지요. 나이 81살인데, 70살로 밖에 사람들이 안 봐요. 건강한 이유가 뭡니까? 법륜스님, 저는 절이 너무 좋습니다. 아이고 건강해 보입니다. 이런 말씀 듣고 싶습니다. (청중 박장대소) 지금도 건강합니다.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어예.”

“이상으로, 자기 자랑이고 절 자랑이고, 광고였습니다. 저렇게 절에 다니니까 건강하다고 하시니까 절에 많이 다니세요. 돈도 안 내고 저렇게 광고하네요.”

한바탕 청중들이 웃고 나자, 가운뎃줄 쪽에서 한 여성분이 손을 번쩍 들고 마이크를 쥐고 일어섰습니다.

“스님,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스님, 통영까지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너무 큰 영광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저는 유튜브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질문도 없습니다. (청중 웃음, 박수) 스님, 건강하이소. 감사합니다.”

질문은 없지만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두 명의 통영 시민 덕분에 강연장의 분위기가 한층 환해졌습니다.

스님은 2시간 동안 청중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2시간 꼬박 통영 시민들의 질문을 듣고 이야기를 해준 스님께 통영 시민 2명이 무대 위로 올라와 감사의 꽃다발을 전했습니다. 강연을 마치자, 스님은 무대에서 내려와서 통영 시민들과 간단히 악수하며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스님은 건물 밖으로 나와 두북수련원으로 가는 차량을 탑승하기 전, 차담을 나눴던 부시장님과 여러 스님과 함께 계단에서 간단하게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바로 차량에 탑승하고, 스님은 두북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2시간을 달려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통영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동안 두북수련원에서는 2026 평화재단 정기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연구위원들이 두북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한 후 5시간 넘게 '대한민국의 미래 전략 : 시대전환, 문명 전환'이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AI와 미래 사회, 북한의 '두 국가론'과 우리의 대응, 북핵 문제의 패러다임 전환, 한국 민주주의 제도에 관한 개선점' 등을 짚어본 뒤 평화재단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활발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스님은 통영 강연을 마치고 두북에 도착하자마자 평화재단 위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 후에는 5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에 대해 듣고 질문도 했습니다.

"최근 변화하는 정세를 보며 '과거 긴 역사 속에서 지금이 과연 어떤 변곡점에 와 있는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중국사에서 그 징후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와 매우 흡사합니다.

이 증상은 부처님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화재단이 역사학자들과 팀을 구성해, 현재의 변화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춘추시대는 비록 패권 다툼은 있었으나 일종의 '합의'에 의해 세상이 움직였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전국시대는 강대국이 소국을 강제 통합하며 결국 몇 개의 강대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구조로 변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UN이라는 틀 안에서 국제적 합의를 통해 질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러시아, 미국, 중국, 그리고 조만간 인도까지 포함해 강대국들이 주변국에 노골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재 상황은 강대국 간의 협의로 세계를 분할하던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시스템과 비슷하며, UN은 점점 무력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단순히 제3차 세계대전의 전조로만 본다면 역사를 너무 짧게 보는 것입니다. 큰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과거 중국이 천하 통일로 나아가던 과정처럼, 지금의 세계화 역시 힘에 의한 통합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치 않더라도 이러한 변화를 예측해야 합니다. 과거 역사에서 우리가 범했던 실수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혹은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의 안위(安危)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오늘 제안한 문제의식들을 바탕으로 TF팀을 구성하는 등 구체적인 설계를 시작해 주었으면 합니다.”

스님의 당부가 있고 난 이후, 평화재단 위원들은 마당으로 이동해 향존 법사님이 며칠 전부터 손수 준비한 모닥불을 피우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내일, 스님은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 함께 경주 일대를 산책하고,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2

0/200

노랑

스님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2026-04-21 07:57:21

최영관

고맙습니다...

2026-04-21 07:11:19

세주행

바른법을 실행하는 스님의 매일속에서
어리석음 깨닫고 지혜를 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6-04-21 0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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