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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미국 텍사스 주의 가장 큰 도시인 휴스턴(Houston)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어젯밤 시카고에서 하룻밤을 머문 스님은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수행과 명상을 한 후, 현지 시각으로 5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생방송을 하기 전에 짐을 차에 모두 실어 놓고 생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33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개천절이라 질문을 받기 전에 특별히 개천절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 중부 지역에 있는 시카고에 와 있습니다. 이곳의 일반적인 날씨라면 좀 쌀쌀해야 하는데 지금은 여름처럼 덥습니다. 아마 이상 기온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은 개천절입니다. 환웅 천왕님께서 삼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동북아 지역으로 이주해 오셔서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세운 날입니다. 즉 환인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 천왕이 하늘을 떠나 이 땅에 내려와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을 ‘홍익인간’이라고 표현하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나라는 환인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나라의 평화와 정의를 이 땅에도 그대로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제세이화’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하늘의 문을 처음 열었다 해서 ‘개천절’이라고 우리가 부릅니다.
단군 왕검님께서 우리나라를 처음 세운 날이 개천절이 아닙니다. 바로 환웅 천왕님께서 배달나라를 처음 세운, 즉 신시를 처음 연 것을 개천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1565년간 지속이 되다가 하늘의 자손인 천손과 이곳에 살고 있는 토착민과의 사이에 태어난 단군이 드디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선포했는데 그것이 ‘조선’입니다. 단군 왕검님께서 조선을 창건한 지는 4300여 년이 됐지만, 환웅 천왕님께서 배달나라를 처음 여신 것은 6천여 년이 됩니다.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는 이렇게 긴 역사를 짧은 몇 개의 문장으로 표현하다 보니 전설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최근에 요하 문명이 발굴되면서 그것이 사실이었음이 점점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천절은 우리나라 역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나라가 처음 시작한 날이 날짜로는 10월 초순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해서 우리가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이지만, 불행히도 근래에 와서 나라를 일본 제국주의에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3·1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 독립운동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그동안은 임금이 주인인 나라였는데 이제는 백성이 주인이 된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 3.1 운동 직후 상해 임시정부가 만들어질 때 대한제국 부흥 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운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천절, 삼일절, 광복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3대 국경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개천절은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세운 배달나라가 시작된 날이라는 의미를 오늘 모두 함께 새기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자신이라는 존재가 사라질까 두렵고, 죽음 앞에서 느끼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제 자아에 대한 집착이 심합니다. 저는 특별히 이룬 것도, 잘난 것도 없는 20대 청년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모든 걸 좋아합니다. 겉모습부터 사고방식, 가치관, 성격 그리고 쌓아온 모든 경험과 추억,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악 같은 사소한 취향과 취미, 가정 환경, 친구 관계, 지식, 자잘한 특기 심지어 끈기 부족, 충동성 같은 단점까지 말이죠. 사람이 죽으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바스러져서 다시 우주의 원소로 돌아간다는 게 너무 허무합니다. 그것들이 다시 해체되어서 내가 아니게 된다는 게요. 특히 성공해서 역량을 발휘하기 전에 죽어 버릴까 봐 두렵습니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는 질병사보다 죽는다는 의식도 못한 채 죽게 되는 사고사가 더 끔찍합니다. 운전 중에는 ‘갑자기 덤프 트럭이 나한테 돌진하면 어떡하지?’, 공사 중인 건물 옆을 걷는 중에는 ‘옥상에서 철근 같은 게 떨어지지 않을까?’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제 자아에 대한 집착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말하는 모습을 보니 재기 발랄하고 명랑해 보이는데, 질문자는 지금 약간 정신적으로 불안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건 아무 문제가 없고 불안증만 심하니까 병원에 가서 검진받고 조금만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답변을 기대했었는데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병이에요. ‘내가 죽으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끼는 살면서 ‘내가 죽으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을 안 합니다. 이에 대해 종교나 철학에서는 심오하게 의미를 부여하는데, 살아있는 생명이 ‘내가 죽으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안증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집에 가스불을 안 끄고 온 거 아닌가? 불이 나면 어떡하지.’ 이렇게 미래의 어떤 일을 생각할 때 뇌는 그게 마치 지금 일어날 것처럼 착각을 일으켜요. 마찬가지로 지금 옥상에서 돌이 떨어져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뇌는 그 일이 지금 일어날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거기에 따라 불안해지는 거예요. 공포 영화를 볼 때도 불안하고 두렵잖아요. 그런데 전원 스위치를 끄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정신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꿈에서 강도에게 쫓기거나 뱀에 놀라거나 했을 때 일어나 보면 몸에 땀이 나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직접 겪는 것과 똑같이 신체가 반응을 하기 때문입니다. 달리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왜 갑자기 땀이 나요? 열을 가한 것도 아니지만 뇌가 착각을 하면 신체는 거기에 대해 반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몸이 뻐근해지기도 하고 나른해지기도 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자꾸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나’, ‘죽으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 더욱 불안해지게 됩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불안증을 유발하는 물질이 더 생겨나게 되고, 반대로 그런 물질이 많이 생겨나면 또 심리가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우선 응급 치료로 이 상태를 중화시키는 물질을 공급하면 안정이 좀 됩니다. 근본적으로는 어릴 때 어떤 예기치 못한 일로 놀랐던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상담 치료를 하거나 명상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료하면 훨씬 개선이 됩니다.
핵심은 불안증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성격이 우울하면 치료하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질문자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발랄한 가운데 불안증이 생겼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쉽게 치료가 될 겁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병원에 갈 수준은 아니에요. 그러나 조기에 진료를 해서 빨리 치료를 받으면 쉽게 나을 수 있습니다. 이걸 내버려 둬서 나중에 만성화가 된 뒤에 치료를 하려면 매우 어려워집니다.
자가 치료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불안한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겁니다. ‘내가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철학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사람이 벌써 그런 생각까지 하는구나.’ 하고 좋게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은 일종의 병적인 사고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면 고개를 흔들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좋습니다. 머리 위에 철근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골똘히 하지 말고 바로 다른 생각을 해버리면 불안증이 사라집니다. 혼자서 잘 안 되면 병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한번 받아 보라는 겁니다. 간단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면 치료를 받으면 되고, 치료할 정도가 아니라고 하면 그런 생각이 자꾸 들 때마다 호흡 알아차리기를 한다든지 다른 생각을 한다든지 해서 불안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점점 좋아질 거예요. 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산 사람이 죽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정신 질환에 걸린 증상이에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제가 유튜브 방송을 해보고 싶은데, 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두려움이 많아서 시도를 못 하고 있습니다.”
“시도해 보면 되죠.”
“제가 대중을 상대로 방송을 하면 당연히 익명의 다양한 반응들을 감수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라이브 채팅을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린단 말이에요.”
“그게 바로 불안증입니다. 불안증 치료를 먼저 하고, 그다음에 시도를 해보세요. 성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 시도를 못 하는 거예요. 사람이 어떻게 바로 성공을 할 수 있어요? 열 번 시도해서 아홉 번 실패하는 게 정상이에요. 실패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을 해야지 성공을 자꾸 염두에 두면 시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연습을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치료를 받고, 둘째, 연습 삼아 해본다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병원에 가보라 하셔서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별일 아니라고 말씀해 주셔서 용기가 났어요. 마음 공부 열심히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는 것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의사도 100퍼센트 맞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의 견해를 받아서 내 의견을 정리하는 게 낫습니다. 모르는 내가 자꾸 참고 견디고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가볍게 진료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 운전과 식사 준비를 해준 임광성, 강진희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사인한 책을 선물했습니다. 시카고에서 2시간 거리에 살고 있으면서 강연 담당을 맡은 이동우 님도 스님에게 인사를 하러 와서 사인한 책을 선물한 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곧바로 시카고 공항으로 가서 수속을 밟고 짐을 부친 후 게이트로 이동했습니다. 게이트에 도착한 후에 빵과 음료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면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전 9시 10분에 시카고 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을 비행하여 12시 10분에 휴스턴 조지 부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을 나오니 휴스턴 강연 총괄을 맡은 박경원 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2017년에 휴스턴을 방문한 이래 8년 만의 만남이라 더욱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구보경 님도 마중을 나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후 오랜만에 휴스턴을 찾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이어서 준비한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잠깐 휴식을 했습니다.
오후에는 자메이카에서 온 김진욱 님이 방문하여 잠시 미팅을 하였습니다. 미팅을 마치자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휴스턴 내 한인 사회 중심지인 스프링 브랜치(Spring Branch)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한인 커뮤니티 센터(KCC)입니다. 한인 커뮤니티 행사, 문화 프로그램, 언어 수업, 자원봉사 활동, 세미나, 모임 등이 활발히 열리는 곳인데, 오늘은 이곳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숙소와 강연장이 10분 거리인데 가는 길 곳곳에 한국어 간판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제 이곳은 한인 거리가 되어 가고 있는데,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도 많아졌고, 한인 마트도 3개나 생겼다고 합니다. 변화의 기운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입구에서 안내하는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에 대기실에서 휴식을 하다가 강연 시간에 맞춰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13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저녁 7시가 되자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대중이 큰 박수로 오랜만에 휴스턴을 방문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몇 년 전에 휴스턴을 방문한 기억을 떠올리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에 휴스턴에 홍수가 나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강연을 하러 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성금을 모아서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는 한파가 와서 또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은 기후변화로 인해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 휴스턴도 홍수로 물에 잠기는 일은 역사상 처음 있었다고 해요. 그 뒤에는 이렇게 더운 지역에서 영하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져서 곳곳이 동파로 인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즉문즉설은 강사가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강의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주제를 선정하는 겁니다. 어떤 주제라도 괜찮아요. 여러분의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하는 자리가 즉문즉설입니다. 자, 그럼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샌안토니오에 사시는 분은 5시간을 걸려서 질문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아홉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20대 중반이 된 자녀들이 여전히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어, 이제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를 키울 때 세 살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게 좋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아이가 어릴 때 그렇게 키웠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스님의 강의를 듣지 못했습니다. 현재 아이들이 2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먹고사느라 바빠서 아이들이 어릴 때 3년 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습니다. 그 여파로 아이들이 본인들의 앞길을 정해서 가는 것을 너무 힘들어합니다. ‘너희 인생은 너희가 살아야 해.’라고 얘기해 줘도 ‘나는 여태껏 그렇게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왜 나를 세상에 그냥 던져 놓으려고 해?’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앞길을 정하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합니다. 지금이라도 스님의 말씀을 듣고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관계 개선을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 수 있도록 부모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첫째, 아이들을 세 살 때까지 알뜰히 살펴주지 못한 것이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울증, 불안증과 같은 것에 영향을 많이 주지 자립심과는 관계가 적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심리적 안정을 위해 세 살까지 따뜻하게 돌봐주는 것이 중요하고, 아이들이 본인의 인생을 알아서 살도록 자립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사춘기 때 너무 간섭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문자가 고민하는 문제는 아이들이 어릴 때 잘 돌봐주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사춘기 때 ‘이런 것은 하면 안 돼, 저런 것은 하면 안 돼.’ 하고 너무 간섭해서 아이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이 더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이 사춘기 때 말을 안 들으면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 겁니다. ‘어른이 되려고 하는구나.’, ‘아이도 생각이 있구나.’ 하고 좋아해야지 ‘이게 어디 부모 말도 안 듣고!’ 하면서 야단치지 말아야 합니다. 진단이 잘못된 거예요. 질문자가 문제 삼는 건 아이들이 사춘기 때 발생한 문제이지 어린 시절의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가 우울증이 있거나 방에서 나오지 않거나 마음에 상처가 있거나 불안해하거나 늘 걱정이 많거나 한다면 그건 어릴 때 심리적으로 제대로 안정을 못 시켜서 생긴 겁니다. 두 가지 모두 겹쳤다고 한다면 두 가지 모두 부족하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먼저 기대를 크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어릴 때 따뜻하게 돌봐주지도 못해 놓고 ‘너는 왜 그런 것을 가지고 자꾸 문제로 삼느냐. 별일 아니야.’ 이렇게 얘기해 봐야 도움이 안 됩니다. 심리가 불안한데 어떡해요? ‘너는 그런 것도 못 하니!’ 하고 말해도 안 됩니다. 해본 게 없는데 어떡해요? 오늘부터 식사 시간이 되면 숟가락이라도 밥상에 놓도록 하고, 청소할 때 걸레라도 가져오도록 해야 합니다. ‘엄마 힘드네. 걸레 좀 가져다줘.’ 이렇게 말하면서 같이 집안일을 해야 방을 쓸고 닦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래라저래라 시키면 안 됩니다. 엄마는 안 하면서 ‘네가 좀 해라.’ 하면 아이들이 저항합니다. 반대로 내버려 두면 아이들은 배우지 못합니다. 엄마가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아이고, 허리야. 방 닦던 거 마저 닦아줄래?’ 하면서 아이들이 한 번 해보고, 두 번 해보고, 세 번 해보고 하면서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스무 살 넘으면 자립해야 한다고 했다고 해서 갑자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청년에게 ‘집 나가라. 스님한테 얘기 들으니까 자립시키라고 하더라.’ 이렇게 말하니까 아이들이 스님에게 항의를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강아지 키우듯이 키워 놓고, 갑자기 야생 동물이 되라고 숲에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간섭을 안 해야 합니다. 아이가 뭘 물으면 ‘네가 알아서 해라.’ 하고 내치지 말고, 약간의 조언을 하면서 ‘너는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몰라. 엄마는 옛날 세대잖아.’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합니다. 아이가 물었을 때 거절부터 하면 아이는 상처를 입어요. 나이만 먹고 덩치만 컸지 아직 어린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는 그렇게 생각을 못 했네.’ 하면서 반대부터 하지 말고 어느 정도 수용을 하면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엄마도 잘 모르니 같이 연구해 보자.’ 이런 식으로 자기 스스로 자꾸 방법을 찾아가도록 도와줘야 해요.
아이를 창조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창조는 훈련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누가 틀에 박힌 식으로 훈련을 시키면 거기에 종속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지금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냐는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자는 똑같은 잘못을 또 하려고 하는 겁니다. 지금은 방치해서도 안 되고, 간섭해도 안 되고, 지켜보되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어야지 내가 어떤 역할을 자꾸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고, 못 도와주면 미안하다고 하고, 그래서 불평을 하면 ‘아빠가 제대로 못 해주어서 미안하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때 부모가 죄를 지은 것처럼 말하면 아이들에게 더 안 좋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을 성인으로 대우해 주어야 합니다. 집에서부터 부모가 자식을 성인으로서 대우해 줘야 밖에 나가서 성인 역할을 하는 거예요. 집에 오면 어린애 취급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대우하면 조금씩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일을 가볍게 하면 잘 되고, 일을 열심히 하면 잘 안 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아이들을 양육 중인데 남의 집 아이와 자꾸 비교를 하면서 아내와 갈등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해외 동포들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미국에서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제사를 아들한테 물려준다고 말을 해도 될까요? 아니면 말조차도 하면 안 되는가요?
인류는 지금 우연이나 필연 중 어느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이가 자기 앞길을 스스로 정해서 나가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게끔 하려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할 일이 많고 일정이 너무 바쁜 주부입니다. 너무 힘들 때는 무슨 일부터 내려놓으면 될까요?
사회 초년생인 아이가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데, 아이에게 생활비를 받아야 할까요?
불교경전과 간호학을 연관시켜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불교경전에 입각해서 글을 쓰는 게 좋은지, 아니면 좀 더 대중 친화적으로 글을 쓰는 게 좋은지 궁금합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질문을 더 하고 싶은 분들이 있었지만 약속한 시간이 되어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준비한 책이 부족하여 많은 분들이 책을 구입할 수 없어 아쉬워했습니다. 사인을 받을 때는 대부분이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대중이 강연장을 모두 빠져 나가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휴스턴, 파이팅!”
그리고 강연 전체 총괄을 맡은 박경원 님과 부총괄을 맡은 양해미 님에게는 사인한 저서를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 법해 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강연 총괄을 맡은 박경원 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한 기분이었습니다. 15년 전에 스님을 모시고 오스틴과 휴스턴 강연을 마쳤을 때 느꼈던 감동을 오늘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휴스턴에서 강연이 열릴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유튜브에서 즉문즉설을 보고 삶이 행복해졌는데, 그 현장을 직접 보게 된 것이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오스틴에서 3시간이나 걸려서 오신 분들, LA에서 오신 분들, 이전에 시카고에서 강연을 들었던 분들까지 20여 명이 봉사자로 참여한 덕분에 성황리에 강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 도착하여 죽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내일 일정에 대해 논의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미국 동남부 지역의 최대 도시인 애틀랜타로 이동하여 이번 북미 동부 순회강연 중 마지막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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