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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시, 시카고(Chicago)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5시, 미주 정토회관에서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 오전 8시 50분, 볼티모어-워싱턴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미국 연방 정부 셧다운으로 공항이 혼잡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한산하여 수속을 빠르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전 9시 47분 워싱턴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뒤, 현지 시각 오전 10시 50분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오늘 강연을 총괄하는 이동우 님과 운전 봉사를 맡은 임광성 님이 나와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시카고는 보통 캐나다 토론토와 기후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오늘은 워싱턴 D.C.보다 더운 여름 날씨였습니다. 현지인들도 이번 주 내내 이렇게 더운 것은 이례적이라며 기후 변화의 영향이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공항 근처 숙소로 이동해 점심 공양을 한 후, 내일 새벽에 진행할 금요 즉문즉설 온라인 생방송을 위해 인터넷 환경도 점검했습니다. 저녁 강연 전까지 시간이 남아, 오후에는 시카고 시내를 돌아보고 한국 사찰인 선련사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오후 2시, 숙소를 나서 시내로 향했지만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 약 1시간이 걸려 다운타운에 도착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 미시간 호수와 도심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스님은 잠시 차에서 내려 산책을 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이후 선련사로 향했습니다. 선련사는 삼우 스님이 1992년 외국인 포교를 위해 세운 도량으로, 현재는 재개발을 거쳐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삼우 스님은 토론토, 미시간, 시카고, 멕시코 등지에 선련사를 개원하여 선불교를 활발히 전파했고, 2022년 캐나다 토론토 선련사에서 입적하셨습니다. 한국 불교 전통 예법을 영어권 신자들이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참선 중심의 법회를 시도했던 분입니다. 현재 시카고 선련사에서는 매주 일요일 정기 법회, 좌선, 어린이 프로그램, 경전 공부, 서예 등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한 스님이 나오셨습니다. 법륜스님을 보고는 놀란 듯 눈이 커지며 공손히 인사하고 자신을 다나 스님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다나(Dāna)는 빨리어로 보시를 뜻한다고 합니다.
“2014년 UCLA에서 영어 통역으로 진행된 스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은 삼우 스님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40여 년도 더 전에 경주에서 처음 삼우 스님을 뵌 뒤 서로 교류를 이어왔습니다. 제가 시카고에 올 때는 이곳 선련사에서 묵곤 했습니다. 삼우 스님도 한국에 오실 때면 저를 찾아오셨지요.”
다나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습니다. 선련사에 모셔진 불상은 법륜스님이 한국 대각사에서 모셔온 것이었습니다. 다나 스님도 삼우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며 반가워했습니다.
교회를 개조해 만든 도량은 아담하면서도 단정했고, 저녁 명상 수업을 준비하느라 방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선련사의 현재 운영 상황을 물은 후 친절하게 설명해 준 다나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음에 시카고에 오면 하루 머물다 가겠습니다. 예전에도 3층에서 머물렀습니다.”
다나 스님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스님은 보시금을 전달하며 당부했습니다.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시면 정토사회문화회관에도 꼭 들르시지요.”
인사를 마치고 선련사를 나와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5시 25분에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을 둘러보며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 후 다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시카고 한인문화원(BISCO Hall)입니다. 2년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 아주 깨끗했습니다.
26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저녁 7시 정각에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모두가 큰 박수와 환호로 스님을 반겼습니다.
먼저 스님이 즉문즉설이라는 강연 방식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즉문즉설은 강사가 주제를 선정하거나 대화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주제를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여러분 중 누구든지 얘기하고 싶은 것을 꺼내면, 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나 가족 관계와 같은 인생 문제를 꺼내면 인생 상담이 되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실이나 정치·안보 문제를 꺼내면 사회학 교실이 되기도 합니다. 자연 과학이나 종교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이고, 여러분의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주제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의 만남은 돈을 지불하는 상담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무료 대화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대중에게 공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시려면 이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다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도록 내용에 따라서 얼굴을 가리거나 음성을 변조할 수도 있습니다. 주로 공익을 위해 도움이 되겠다 하는 부분만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먼저 대화를 나눈 뒤, 현장에서도 자유롭게 손을 들어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아홉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손을 들고 질문한 사람은 박사 과정 졸업을 앞둔 학생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용기를 얻을 수 있는지, 좌절을 겪을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청했습니다.
“현재 박사 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방향을 찾고, 용기를 내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제가 이번 여름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연구하는 것이 즐거웠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하루하루 성실히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름, 다음 단계를 생각하면서 다른 또래 박사생들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보다 보니, 제 연구가 너무 한심해 보이고, 지금까지 잘해 왔다고 생각했던 저 자신이 너무나 작아 보였습니다. 이것밖에 안 되는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고, 시간을 낭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진로를 바꾼다고 한들 제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부터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고자 한국 가서 자전거 타고 5박 6일 국토 종주도 했습니다. 조금 나아지는 듯했지만 그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항불안제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어떻게 하면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요? 둘째, 이런 자책감과 비교 의식들이 들 때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셋째, 인생을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으신 스님의 현명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질문하신 분의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마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에 부딪히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이 원하는 대로 안 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사람과의 만남에도 헤어짐이 있을 수 있고, 죽을 수도 있고, 또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고, 많은 것이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 자기가 계획한 대로 되었다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 다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 자체가 이런데, 질문자처럼 사는 게 힘들다고 하면, 첫째는 정신적으로 약간의 병이 생겼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한번 의사의 진료를 받아 보는 게 필요합니다. 검진을 해보고 문제가 있다고 하면, 치료를 받으면 되고, 약간의 불안증이나 트라우마가 있다면 상담 치료를 하는 게 필요합니다.
둘째, 정신적으로 병원 치료를 받을 만큼 심한 것은 아닌데 내가 매우 힘들다고 하면, 원인은 대부분이 욕심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욕심을 내려놓게 되면 삶이 좀 더 편안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계를 한번 보세요. 다람쥐가 산에서 살면서 이 나무에 올라가서 도토리를 따고, 저 나무에 올라가서 과일을 딴다고 할 때, 아무리 높은 나무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다람쥐가 ‘힘들어서 못 살겠다.’ 이렇게 느낄까요? 소가 풀을 뜯을 때 ‘영양분도 없는 것을 계속 뜯어먹으려니까 너무 힘들다.’ 이렇게 느낄까요? 풀이 많으면 많은 대로 뜯고, 풀이 적으면 적은 대로 뜯고, 풀이 많으면 짧은 시간에 뜯고, 풀이 적으면 많은 시간을 뜯습니다. 그래서 만약 힘들다고 느낀다면 대부분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것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힘든 이유는 정신적으로 약한 고리가 생겼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첫째는 병원에 가서 한번 진료를 받아 보는 게 필요하고, 둘째는 욕심을 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을 용기 있게 살 수 있도록 조언을 해 달라고 하셨는데, 인생을 사는 데는 아무런 용기가 필요 없습니다. 다람쥐가 용기를 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소가 용기를 내서 사는 것도 아니에요.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학교를 다닐 때도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인생을 사는 데 무슨 용기가 필요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직장 가면 직장 가고, 학교 가면 학교 가고, 공부할 거 있으면 공부하고, 집에 와서 피곤하면 자면 되는데, 왜 용기가 필요해요? 인생을 용기 있게 살 수 있도록 조언을 해 달라고 했는데, 인생을 사는 데는 아무런 용기가 필요 없습니다. 삶은 저절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물론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가령 전쟁을 할 때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을 가면 아군한테 사살당하고, 전진하면 적군한테 사살당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왕 죽을 바에야 그냥 전진하고 죽자는 판단을 할 때 용기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이렇게 어떤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 때 ‘그냥 차고 나가라!’ 하는 의미에서 용기라는 말을 쓰는데, 일상적으로 살아갈 때는 용기라는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공부하는데 무슨 용기를 내서 공부해요? 공부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하면 되지요. 다른 사람들은 학위를 받았는데 나는 못 받아서 위축되는 건가요? 열심히 연구해서 논문을 제출했는데 교수가 부족하다고 하면 보충하면 되는 것이고, 더 부족하다고 하면 1년 더 연구하면 되는 겁니다.”
“제가 생각해도 욕심이 좀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으려고 많이 노력했었습니다. 항불안제도 같이 먹으니까 괜찮아지기도 했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꺼번에 다 안 내려놓아지면 차근차근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인생은 질문자가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인생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 기독교를 믿으면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 길을 정해 놓기도 하고, 불교를 믿으면 수행하며 살아야 한다고 길을 정해 놓기도 하고, 유교를 믿으면 효도하고 살아야 한다고 정해 놓기도 하고, 그때그때 사람들이 정한 길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다 내가 정하는 것입니다. 남이 정한 것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도 다 내가 정해서 사는 경우입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이렇게 살아라.’ 하니까 그걸 내가 받아서 사는 것인데, 그렇게 살라고 정해진 길은 본래 없어요.
산에 있는 노루가 다가와서 ‘노루답게 살려면 어떻게 살면 됩니까?’ 이렇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좋을 대로 살아라.’ 이렇게 대답하겠죠. 토끼가 와서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네 생긴 대로 살아라.’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얘기잖아요. 그런 것처럼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당신 좋을 대로 사세요.’ 하는 겁니다. 인생을 사는 데는 용기도 필요 없고, 어떻게 산다고 정해진 길도 없습니다. ‘스님은 전법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물을 수가 있는데, 저도 이렇게 살아야 해서 이렇게 사는 게 아니고, 이렇게 사는 게 좋아서 이렇게 살 때도 있고, 저의 스승님이 간곡하게 요청해서 그걸 받아서 살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그때그때 이렇게 살 때도 있고, 저렇게 살 때도 있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사는 게 더 훌륭한 삶이라고 하는 것도 없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하는 거지요. 똑같은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의 평가는 다 다릅니다. 절에 어떤 사람이 10만 달러를 보시했다고 하면, 그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를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 누가 그걸 들으면 ‘미쳤다!’라고 하지요. 똑같은 행위인데 평가가 다 다릅니다. 무슬림들은 자기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성스러운 전쟁을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 테러리스트라고 부릅니다. 유부남이 나를 끔찍이 사랑하면 나는 ‘부인이 있는데도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불륜이라고 하면서 미쳤다고 평가를 합니다. 그러니 과연 어떤 게 옳은 길이겠어요? 그냥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여기서 옳은 것이 저기서는 그르기도 하고, 저기서 옳은 것이 여기서는 그르기도 하지요. 여러분 형제 중에 한 사람이 절에 가면 절에서는 ‘잘했다.’ 이러는데, 교회 다니는 형제들은 엄청나게 비난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게 옳다고 정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이렇게 살고 싶으면 이런 선택, 저렇게 살고 싶으면 저런 선택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첫째,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 보는 게 지금 제일 중요합니다. 둘째, 지금 욕심을 내고 있다 보니 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것 같은 매우 큰 두려움에 처한 것 같습니다. ‘박사 학위를 못 따지 않을까?’, ‘박사 학위를 따도 취직이 안 되지 않을까?’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니까 용기도 필요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언도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욕심을 내려놓으면 지금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미국에 유학을 온 경우는 한국에서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혜택입니다. 그것도 박사 과정까지 공부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박사 학위를 못 받아도 성공한 인생이에요. 대통령 선거 나가서 떨어졌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한 거예요? 아니면 정치인으로서 성공한 경우에 해당해요? 도대체 대한민국 사람 중에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 선거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정치적으로 성공해야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떨어졌다 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질문자의 고민은 다 욕심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욕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일등 아니면 다 실패가 되는 거예요. 오늘날 신자유주의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을 계속 세뇌하잖아요. 일등이 아닌 것은 다 필요 없다고 하는데, 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다 일등을 해요? 이런 잘못된 가치관의 세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저보다 키도 크고, 인물도 괜찮고, 나이도 한참 어리고, 거기다가 또 박사 과정에 있으니 다 좋은 조건이에요. 박사 학위 따는 것 하나 빼고는 다 갖추고 있습니다. 박사 학위 못 딴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고, 박사 학위를 딴 후에 취직을 못 한다고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일본 남자와 결혼하였고, 일본에서 살다가 죽을 것 같아서 미국에 왔습니다. 서로 참고 사는 것은 이제 싫고, 한국에 가서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울에서 살다가 유학을 온 이후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미국도 내 집 같지 않고, 한국도 내 집 같지 않고,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생활을 하면서 좋을 때는 너무 좋고, 안 좋을 때는 아주 나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 수 있을까요?
가난한 나라에서 상하수도와 학교 건축을 할 때 값싼 오염 물질을 사용하는 것도 환경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의 처우 개선을 환경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몇 년 전 아버지께서 암과 투병하다 돌아가신 후 어머님께서 많이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시는데요. 어머님을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할까요?
스님 말씀 중에 용기가 필요 없다는 말씀을 반은 이해하고 반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자식이 부도를 당하여 힘들어하면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하지 않나요?
대화를 마칠 무렵에는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다는 여성 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마라톤을 준비하며 긴 시간을 달리는 동안 붙잡을 수 있는 인생의 큰 질문을 스님에게 요청했습니다.
“저는 요즘 달리기를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달리면서 생각을 비우곤 했는데 이제는 달리기 자체에 너무 몰두하다 보니 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지난주에는 21km 하프 마라톤에 참여했고, 다음 주에 42km 풀 마라톤에 참가합니다. 4시간 이상 달려야 할 때,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만한 인생의 큰 질문 하나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거는 굳이 견뎌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달리기 싫으면 그만두면 돼요.”
“저는 달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계속 달리면 돼요. 달리고 싶으면 그냥 달리면 되지 ‘각오를 한다.’, ‘결심을 한다.’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거예요. 달리고 싶고, 끝까지 간다고 정했으면 그냥 달리는 거예요. 다리가 아파도 달리고, 숨이 차도 달리고, 다만 달리는 겁니다.”
“그러면 스님이 요즘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저요? 고민이 많죠.”
“하나만 말씀해 주세요.”
“제일 큰 고민은 지금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위험을 어떻게 낮출까 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일단 대화를 하는 겁니다. 우선 북미 간에 대화가 시작되고, 그다음에 북한과 일본 간에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이 관계 정상화 즉, 수교로 나아가야죠. 한국과 북한이 두 개의 국가든 한 개의 국가든, 평화롭게 관계를 맺으면 전쟁의 위험을 낮출 수 있습니다. 만약 남북이 적대적 관계에 있으면, 현재 동아시아에서 분쟁이 일어날 위험이 제일 큰 곳이 대만 해협이에요. 대만 해협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이 전선의 유불리에 따라서 한반도에도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큽니다.
저는 지금 시리아 전후 복구를 지원하고 있고, 미얀마 난민들도 돕고 있습니다.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방글라데시와 태국으로 넘어와 난민이 되었고, 미얀마 내부에서도 곳곳으로 흩어져 지진과 내전 피해를 겪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위정자들이 국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전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국민의 고통이 안중에도 없잖아요.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 국민이 입을 피해는 엄청날 겁니다. 이걸 막는 게 지금 제일 큰 과제입니다. 현재로서는 첫 실마리가 북미 간의 대화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논란이 있지만,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는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바마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강경한 지도자는 오히려 같은 성향의 상대와 더 쉽게 통할 수 있습니다. (웃음) 그런 면에서 저는 한반도 평화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동안에도 미 국무부, 의회, 싱크탱크를 찾아가 계속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고민은 많아요. 가자 지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의 휴전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유럽에서 반 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 정당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까, 이런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앞으로 굉장한 갈등과 혼란에 빠질 거예요. 제가 노력한다고 해서 다 막아지는 건 아니지만 인류가 어떻게 하면 희생을 덜 치를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고민을 들어 보니 질문자가 하는 고민은 고민도 아니죠?”
“그냥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웃음)
“질문자가 42km 풀 코스를 완주하려면 1킬로에 10달러를 걸어 보세요. ‘1킬로를 뛸 때마다 미얀마 난민 한 명이 살아난다.’, ‘1킬로를 뛸 때마다 가자 지구의 아이가 한 명 덜 죽는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숨이 턱 끝에 차도 뛰게 될 겁니다. 괜히 이 악다물고 용쓰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뛰는 것이 지구를 살리는 길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뛰어 보세요. 왜 악을 쓰고 뛰어요? 악을 쓰고 뛰느라 질문자가 에너지를 과하게 쓰면 오히려 기후가 더 나빠집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이어 책 사인회가 시작되자 길게 줄이 이어졌습니다. 오늘 준비한 책이 모두 판매되어 책을 사지 못한 분들은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책 사인회가 끝나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시카고, 파이팅!”
강연 총괄을 맡은 이동우 님, 부총괄을 맡은 이유정 님, 배태욱 님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의 저서를 선물하고 따로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스님은 먼저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묘덕 법사님과 법해 법사님은 봉사자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봉사자들 중에는 미시간, 위스콘신, 인디애나를 비롯하여 가장 먼 곳은 5시간 거리에서 달려와 봉사를 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밤 10시가 넘어서 숙소에 도착한 후 내일 일정에 대해 논의하고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시카고를 출발하여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으로 이동한 후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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