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4.5 서암큰스님 열반 21주기 추모법회, UNHCR 최고대표보 미팅
“어릴 때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어디서 채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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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암대종사 열반 21주기를 맞이하여 봉암사에서 열린 추모법회에 참석한 후 오후에는 UNHCR(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와 관계자들과 로힝야 난민 지원 문제에 대해 미팅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6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가은초등학교에 마련된 22대 총선 사전투표소에 들러 투표를 했습니다.

투표를 마친 후 8시 10분에 문경 선유동 연수원에 도착했습니다.

선유동 연수원에는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병을 앓게 되어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환자들이 지내고 있습니다. 스님은 환자들에게 유기농 야채를 먹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라고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필요한 거 사서 드세요.”

환자들은 스님에게 녹즙과 목련차를 한 잔씩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희가 매일 먹는 것인데, 스님도 맛을 한 번 보세요.”

녹즙을 마시면서 스님이 환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는 보살님은 20년 전에 말기 암 진단을 받고 곧 죽는다고 했거든요. 그 보살님을 어제 만났는데 아직도 안 죽고 잘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죽으면 스님한테 보시하려고 돈을 갖고 있었는데, 그 돈을 아직도 못 주고 있대요. (웃음)

낫지 않아도 괜찮아요. 안 죽고 살아만 있으면 돼요. 그래서 암 환자가 어떻게 식이요법을 하고 어떻게 생활을 하면 살 수 있는지 책을 하나 쓰세요.”

“네, 마음 편히 치료받으면서 잘 지내겠습니다.”

환자들을 격려한 후 문경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자행 스님의 연세가 95세가 넘으면서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잠깐 들러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저는 아무것도 못하고 밥만 먹고 살고있습니다.”

스님은 자행 스님의 손을 꼭 잡고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밥만 먹고 살면 돼요. 숨이 넘어가기 전까지는 건강하게 살다 가세요. 그게 제일입니다. 마음은 젊어도 몸이 못 따라가니까 조심하셔야 해요.”


자행 스님은 스님의 얼굴을 보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문경 수련원을 출발한 스님은 오전 9시 30분에 봉암사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서암 큰스님의 부도탑을 참배했습니다. 봉암사 경내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자 한적한 곳에 부도탑과 탑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서암 큰스님은 검소한 삶의 모범을 보여주시고 마음이 청정한 것이 불교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서 오늘날 정토회가 바른 불교를 실천할 수 있게 방향을 제시해 주신 분입니다. 스님은 서암 큰스님의 부도탑 앞에 삼배를 한 후 큰스님의 검소한 삶과 깨달음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겼습니다.

“큰스님, 법륜이 왔습니다.”


부도탑 참배를 마치고 나서 봉암사 주지 진범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봉암사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10시 30분이 되어 다 함께 추모법회가 열리는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문중을 대표해서 수좌 스님들이 먼저 잔을 올린 후 이어서 곳곳에서 참석한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잔을 올렸습니다.


천도재를 지낸 후 죽비 삼성으로 간결하게 추모법회를 마쳤습니다.


대웅전을 나온 스님은 참석한 다른 스님들과 비빔밥으로 점심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눈 후 봉암사를 나왔습니다.

12시에 봉암사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오후 3시에 서울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에는 스님을 만나기 위해 JTS를 찾아온 라우프 마조우(Raouf Mazou) UNHCR(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보와 미팅을 했습니다. 작년 11월에는 필리포 그란디(Filippo Grandi) UNHCR 최고대표가 JTS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운영총괄을 맡고 있는 라우프 마조우 최고대표보가 JTS를 찾아 스님을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라우프 마조우 최고대표보는 JTS가 로힝야 난민캠프에 지원한 가스스토브 20만 개 덕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영상을 보여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As you saw in the video, we hope the impact of the gas stoves supported by JTS in the Rohingya refugee camps was well conveyed, and we would like to express our gratitude once again. The hygiene products sent by JTS to the earthquake victims in Turkey and Syria were also successfully delivered. We appreciate your efforts in convincing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Republic of Korea to provide gas support."

(영상에서 보셨듯이 JTS가 지원한 가스스토브가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잘 전달이 되었기를 바라고,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JTS가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피해자들에게 보내준 위생용품들도 잘 전달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외교부를 설득하셔서 가스 지원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부분도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라우프 마조우 최고대표보는 난관에 봉착한 로힝야 난민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로힝야 난민 문제를 어떡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전 세계의 난민 문제 중에 로힝야 난민 문제는 특히나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11월에 미얀마를 방문해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여전히 로힝야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정부 관계자들도 만났는데, 재정 부족으로 인해 로힝야 난민캠프를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해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힝야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방글라데시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가는 일을 해나가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법륜 스님은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는지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해결책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첫째, 일단 로힝야 난민들이 더 이상 국경을 넘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로힝야 난민 중에 미얀마 정부에 대한 저항 의식이 약한 사람들은 일부라도 미얀마로 돌려보내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JTS에서는 작년에 미얀마 사이클론 피해가 발생했을 때 시트웨이에 들어가서 로힝야족뿐만 아니라 라카인 주의 피해 주민들을 지원하면서 그 지역을 안정시키는 방식으로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을 수용하게 하는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 지원을 한 후에는 미얀마 정부가 외국단체의 지원을 불허해서 더 이상 지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라카인 주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서 그 지역을 안정시킨 다음 일단 더 이상 로힝야족이 국경을 넘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난민 중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집과 가축, 농토가 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신분 보장이 안 되어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덜 느끼는 사람들부터 일부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국제단체가 그들의 정착을 지원해서, 위험이 낮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로힝야 난민들의 경우 어린이 교육 문제를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는데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하면 나중에는 교육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취학연령층에 해당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빨리 제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난민캠프를 방문했을 때는 벵갈어로 교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해결이 되었는가요?”

“여전히 벵갈어 교육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넷째, 난민캠프에서 자라고 있는 여자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남자 형제들과 한 방에서 지내다 보니 가정에서의 성폭력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난민캠프 안에서 남녀가 자라니까 결혼을 해야 하는데 결혼한 부부에게 방을 따로 주지 못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난민캠프의 공간을 더 넓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난민들을 받아준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난민캠프의 공간을 더 넓혀 주는 것과 아이들이 벵갈어를 배울 수 있게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시급히 해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방글라데시를 방문했을 때 방글라데시 난민 구호 및 송환위원회(RRRC)의 장관님이 고장 난 가스스토브를 지속적으로 수리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가스스토브를 제작한 공장에서 기술을 지원하고, JTS에서 부품을 지원하고, UNHCR에서 수리할 수 있는 공간을 지원하기로 약속해서 JTS에서는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현재 UNHCR에서 공간 확보를 하지 못해서 추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난민들을 방글라데시에서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고요. 대다수인 80퍼센트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수용하고, 미얀마 정부가 10퍼센트 정도 수용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10퍼센트 정도를 수용하고, 이렇게 분산하는 방법을 협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신에 국제사회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방글라데시의 경제가 점점 좋아져서 노동력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난민 수용을 부담으로 안을 게 아니라 오히려 난민을 노동력으로 활용하도록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방글라데시 정부와 잘 의논하면 합의에 이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경제가 계속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력이 점점 필요해지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고임금 노동력은 외부로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일단 미얀마 정부도 로힝야족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난민들을 전부 받아들이면 가장 좋지만,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이미지가 굉장히 나쁘기 때문에 군사 정부가 들어서든 민주 정부가 들어서든 관계없이 그 방법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일부는 미얀마로 돌려보내고, 대다수는 방글라데시가 수용하는 방안을 협의해야 합니다. 대신 방글라데시 정부에게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지원을 국제사회가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난민캠프를 10년간 운영하는 경비를 모아서 방글라데시 정부에 지원한다고 생각하면, 난민캠프를 10년간 운영하는 것보다는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라우프 마조우 최고대표보가 현재 UNHCR에서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제가 작년 11월에 미얀마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봤는데, 로힝야족의 일부를 받아들여보니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내부의 치안 불안으로 로힝야족의 귀환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제안하신 대로 UNHCR에서는 국제사회를 설득해서 세계은행에서 7억 불, 아시아개발은행에서 3억 불을 지원하는 문제를 설득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난민 생활이 오래 지속되고 있고, 지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보니까, 난민들의 폭력성이 점점 커져가고 있고, 특히 청소년들의 방글라데시 정부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UNHCR에서도 주변국이 난민들을 일부라도 수용할 것을 적극 제안하고 있는 중입니다. 스님의 고견을 적극 수용해서 저희가 해야 할 역할을 느리지만 꾸준히 해나가겠습니다.”

스님도 JTS가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JTS에서도 라카인 주에 로힝야 난민들이 정착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민주세력과 군부의 갈등이 심하다 보니 이 상황에서 적절한 방법을 못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JTS에서는 태국 쪽으로 넘어온 미얀마 난민들도 비공식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UNHCR이 인정하는 난민들 외에도 난민이 많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지원을 하는 중입니다. 난민이 부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저임금 노동력 차원에서 주변국에서 필요로 하는 측면도 있어 보였습니다.

일단 로힝야 난민캠프에 가스스토브 수리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UNHCR에서 공간만 마련해 주면 언제든지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리 시설을 난민캠프 안에 마련해야 난민들에게 수입이 될 수도 있고 기술 교육도 제공할 수가 있거든요.”

다음은 UNHCR의 아태 지역 본부장인 전혜경 님이 스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최근에 방글라데시 정부와 협상을 했는데, 더 오래 살 집을 말하는 게 아니라 더 안전한 집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라고 설득을 했더니 협상이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도 방글라데시를 몇 차례 더 방문하셔서 UNHCR뿐만 아니라 세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로힝야 난민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방글라데시 정부도 조금 더 유연하게 나오게 될 것입니다. 방글라데시가 다음 선거까지 앞으로 2년이 남았기 때문에 로힝야 난민 문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가 지금입니다. 스님께서도 계속 로힝야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자금이 부족해서 중단한 사업이 난민들에게 비누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네, 비누를 대량으로 제공하는 것은 JTS에서도 검토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라우프 마조우 최고대표보가 스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Actually, we are also feeling quite drained, but we truly appreciate you sharing your concerns and valuable insights with us. We would be grateful if you could review and let us know about any additional support requests."

(사실 저희도 힘이 많이 빠지고 있는 상황인데, 함께 고민해 주시고 고견을 이야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추가 지원 요청은 검토하셔서 다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어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스님이 라우프 마조우 최고대표보와 UNHCR 관계자들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Thank you.”

스님은 라우프 마조우 최고대표보 일행을 현관까지 배웅한 후 JTS를 직접 방문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로힝야 난민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지원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오후 4시 30분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장과 평화재단 20주년 기념사업에 대해 의논을 한 후 저녁에는 정토회관 방송실로 이동하여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이 되자 44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벚꽃이 만발했네요. 개나리도 노랗게 피어 있고, 산천은 진달래로 붉게 물들어 있고요. 저는 지난 이틀간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나무를 심으며 식목을 잘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봄이니까 한 그루라도 나무를 심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분은 봄에 나무를 심지 않으면 봄을 느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일부러 나무를 심으러 온 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봄소식을 나누면서 여러분의 마음의 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부탄에서 생방송을 하다가 전기가 나가서 방송이 중단되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지난주에 질문을 하지 못했던 세 명과 이번주에 새로 질문을 신청한 한 명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릴 때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며 그 영향으로 연애도 오래 하지 못하고 한눈을 자꾸 팔게 된다며 어떻게 치료를 해나가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은 어디서 채워야 할까요?

“8살 때쯤 어린 마음에 평소 느낀 대로 어머니가 저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가 혼이 난 기억이 있습니다. 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는 술주정 중 하나가 아버지가 자식들 중 저를 가장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엄했던 아버지는 딱히 저만 편애하는 모습도 없으셨는데, 자식을 아끼는 아버지를 불만스러워하는 어머니가 미웠고, 만약 아버지가 제가 아닌 다른 형제를 편애했다면 어머니는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 저는 연애를 포함한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이 공허하고 외롭습니다. 그러다가도 막상 연애할 때에는 충실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한눈을 팝니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 더 외롭고 공허한 탓에 연애를 그만두지는 못합니다. 우울증으로 병원에 몇 년째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어린 제가 종종 불쌍하게 느껴질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요?”

“질문자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 저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상담 치료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질문자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어릴 때 입은 마음의 상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약물치료 이외에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식도 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우울증 약만 타서 먹고 있나요? 아니면 상담 치료도 병행하고 있나요?”

“처음에는 상담 치료도 진행했었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지금은 그냥 약물 중심으로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먼저 절을 한번 해보면 좋겠습니다. 절을 하면서 이렇게 오히려 참회 기도를 해보세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저를 너무나 아껴주셨는데 제가 어려서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조건 ‘사랑해 주세요’ 이러지 말고요. 그 당시 어머니는 본인이 가능한 범위에서 질문자를 사랑했을 겁니다. 사랑의 정도가 내가 원하는 만큼 아니었을 뿐입니다. 어머니도 살아가기 힘들고 바빠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애들한테 악을 쓰고 했겠죠. 내가 어머니에게 바라는 만큼은 아니지만 어머니 수준에서는 할 만큼 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어머니에게 어릴 때 사랑받지 못했다고 하거나 학대를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어머니는 동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서 자식들을 키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은 아닌 건 맞아요. 그러나 어머니의 당시 입장과 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인 역량 내에서는 그 정도 한 것도 죽을힘을 다해서 한 거예요.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1,000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나한테 100을 해줬다고 하면 내가 좀 섭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100의 힘을 가지고, 나에게 100을 해줬다면 어떻습니까? 나한테 100을 해줬다는 것은 같지만 후자는 최선을 다한 것이죠. 역량이 100밖에 안되는데도 모두 준 것이니까요. 질문자의 어머니는 역량이 적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수준에서는 부모로서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어머니는 동의를 못 합니다. 질문자의 생각에는 지금이라도 엄마가 뉘우쳐서 나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좀 풀릴 것 같겠지만, 정작 어머니 본인은 그런 생각을 절대 못 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당시에 할 수 있는데 안 한 게 아니고 자기 깜냥으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의 말을 들으면 오히려 괘씸한 생각이 들 거예요. ‘내가 온갖 고생을 해서 키워놨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질문자가 8살 때 야단을 맞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내가 어른이었으면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는데 질문자도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걸 몰랐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엄마에게 혼나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엄마도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아이가 그런 소리를 하니까 섭섭해서 혼내고 악을 썼던 것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반복이 된 것입니다.

아빠가 특별히 질문자를 더 편애해서가 아니라 질문자가 엄마한테 자꾸 야단을 맞으니까 보호를 해준 것입니다. 누가 야단을 맞으면 ‘너무 야단치지 마라’ 하면서 한쪽에서 좀 보호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그런 아빠의 모습에 엄마는 화가 더 나서 또 성질을 부리게 되었겠죠. 질문자는 어린 마음에 ‘아빠는 나를 보호해 주고, 엄마는 나를 학대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엄마에 대해 미움이 생긴 것입니다. 보통은 아버지가 야단을 치고 엄마가 보호해 주니까 대부분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로 감사함이 없고 엄마에 대해서만 감사함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도 아버지가 특별히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역할이 서로 달라서 그랬던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내가 어려서 엄마의 그런 힘듦을 몰랐구나! 어머니 나름대로는 힘껏 한다고 한 게 그거였구나!’ 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머니, 제가 어려서 몰랐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힘껏 사랑해 주셨는데 제가 그걸 모르고 엄마를 미워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언제 엄마가 나를 사랑했어, 나를 미워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염주를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기도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삶이 힘든데도 어린아이를 버리지 않고, 화를 내면서도 아이를 돌보았던 엄마의 깊은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 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 속에 있는 상처가 다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필요하면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꾸준히 기도하는 것을 겸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트라우마가 있으면 한 사람하고 오래 못 사귑니다. 사랑을 찾기 위해 주변을 계속 기웃거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나를 사랑해 주니까 좋았다가도 조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못 받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한눈을 팔게 됩니다. 거기서 또 사랑을 구걸하다가 또 조금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을 찾게 되면서 방황하게 됩니다. 보통 남자나 여자가 바람기가 있다고 평가를 받는 일도 알고 보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행동입니다. 모르고 보면 나쁜 사람인데 알고 보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엄마에 대한 상처가 좀 치유가 되면 사랑을 갈구하는 껄떡거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치유하지 않고 누구로부터 흠뻑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갖게 되면 죽을 때까지 충족이 안 됩니다. ‘이미 나는 흠뻑 사랑을 받은 존재다’ 이걸 자각해야 더 이상 구걸하는 행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지금의 제 나이였을 어머니가 가엾게 느껴지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도 느껴집니다. 절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만약 질문자도 결혼해서 아이가 둘이 있는데 남편은 술 먹고 딴짓을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힘들어 죽겠는데 아이는 ‘엄마, 나 사랑 안 하지?’ 이렇게 채근합니다. 그러면 질문자도 성질이 날 수밖에 없어요. 엄마가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질문자와 똑같은 수준의 사람이에요. 혼자 살기도 힘든 젊은 여성이 결혼하자마자 마음에 안 드는 남편과 살면서 아이도 키워야 했을 때 얼마나 살기 힘들었겠어요. 힘든 속에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데 조그만 아이까지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고 뭔가 부족하다고 하니까 성질을 냈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엄마의 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내가 원하는 만큼은 엄마가 못해준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해주지 않았다고 엄마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내가 커서 보니 내 나이 때 엄마는 그 수준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구나!’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엄마가 정말로 자기 인생만 생각했다면 아이도 버리고 남편과 헤어져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생각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던 거예요. 딸이 그걸 몰라주고 자꾸 딴소리를 하니까 성질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 ‘엄마 나름대로는 사랑의 표현이 좀 서툴렀는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했구나!’ 하고 생각하면 질문자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가 치유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부탄에 가져갈 짐을 싼 후 저녁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방콕 공항을 경유한 후 부탄 파로 공항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모레부터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부탄 2차 답사 일정이 시작됩니다.

전체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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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저의 상처까지 치유가 되었습니다. 눈물이 툭 떨어집니다. 고맙습니다. 스님_()_

2024-04-14 08:54:09

김민주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지혜가 가득한 곳, 나의 어리석음을 돌아볼수 있는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어려서 엄마의 사랑을 몰랐던거군요 엄말 많이 미워했었습니다 어리석음 참회합니다

2024-04-13 06:03:19

박향숙

감사합니다

2024-04-12 07: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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