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3.22 8일 출가열반 정진 6일째, 행복한 대화(2) 수원시
“주말마다 찾아오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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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8일 출가열반 정진 6일째 날입니다. 그리고 2024년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두 번째 강연이 수원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8일 출가열반 정진 법회를 하기 위해 오전 10시에 3층 설법전에 자리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정진 6일째입니다.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부처님께서 성도 하신 이후 전법의 길을 나선 교화의 과정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부처님은 교화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신분에 대한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브라만 사제 계급이든, 크샤트리아 왕족 계급이든, 바이샤 장자 계급이든, 수드라 천민 계급이든, 또는 계급 외의 사람들인 불가촉천민이든, 누구나 다 법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법을 듣고 깨달음의 눈이 열려 출가를 하겠다고 하면 신분의 제한을 두지 않고 누구나 다 출가 수행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신분 차별이 없는 공동체를 만들다

출가 수행자들이 동등하게 한 곳에서 같이 생활하며 도반으로 지낸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할 때는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제까지 노예였던 사람이 오늘 출가해서 주인과 평등하게 지낸다는 것은 주인과 노예, 양반과 상놈이 구분되어 있는 신분제 사회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부처님의 평등사상을 받아들였지만, 현실에서는 머뭇거림이 있었고 세상의 비난도 따랐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계급의식에 의해 생긴 비굴함과 교만함은 어리석음의 찌꺼기이고 세상의 때에 불과한 것이라고 질타하셨습니다. 그중 유명한 말씀이 ‘우빨리에게 경배하라’ 하는 것입니다. 우빨리는 이발을 해주는 노예 계급 출신인데, 석가족 왕자들의 출가를 돕다가 자기도 출가를 했습니다. 석가족 왕자들이 출가를 해서 선배 수행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왕자들은 자기들보다 먼저 출가한 우빨리에게 인사하기를 머뭇거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시고 왕자들을 질타하면서 ‘우빨리에게 경배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큰 충격이었고, 세상의 지배 계급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류 최초로 여성 출가 수행자가 등장하다

그런데 당시 사회에서 계급 차별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 차별이 극심했기 때문에 여성의 출가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출가수행이란 집을 버리고 나와서 광야나 숲, 동굴에서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야생 동물처럼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은 그런 생활을 견디지 못해서 출가하기 어렵다는 게 아니라, 당시 여성은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여성은 항상 부모나 남편, 혹은 아들로부터 보호를 받는 속박되고 종속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서는 주인 없는 여자는 아무나 데려가도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노천에서 생활하는 여성은 성폭행과 납치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한 후 20년이 지나고 정반왕이 돌아가셨을 무렵에는 많은 석가족 남성들이 이미 출가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의지할 남성이 없어진 여성이 오백 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도 출가를 하겠다고 부처님께 청했습니다. 오백 여인들은 의지할 남자가 없으니까 자신의 주인이 없는 독립된 사람이었지만, 사회적 통념과 야생에서의 생활이 아직 큰 장애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처음에는 여성들의 출가를 만류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끝내 출가를 하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고, 심지어는 부처님의 허락도 안 받고 삭발을 하면서 부처님 뒤를 따르는 결연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출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도시인 바이샬리에서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셨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여성 해방의 효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성에 의지해 있던 여성이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누구의 무엇으로 불리다가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갖는 자가 되었고,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화 사례를 통해 붓다는 세상의 어떤 차별도 용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가진 신분이 승단에 들어오는 데에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고, 그들의 역할에 아무런 차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불교가 사회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시 출가자의 세속신분에 따라 대우를 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여성의 출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여성 출가를 금지하거나, 아니면 출가는 하더라도 남성에게 종속이 되는 식으로 사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불교가 세상의 차별적인 가치관을 이겨내지 못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알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불교 교리만 배우면,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부처님의 실천 지침을 배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삼귀의,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12 연기, 오온, 십이처, 십팔계, 사념처관, 사무량심 등 불교 교리에는 세상의 정의에 대한 얘기가 없잖아요. 교리를 해석하면 모두 평등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교리 공부만 한다면 구체적인 실천 사례가 없는 이론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해야 하는 거예요.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면, 사회는 명백하게 계급을 차별했지만 붓다는 차별하지 않으셨고, 성차별이 만연한 세상에서 붓다는 성차별을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격적으로 고귀한 스승이었던 부처님보다는 인격이 없는 불교, 사회성과 역사성이 없는 불교를 공부하다 보니까, 부처님이 어떤 추상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우리가 뭔가 원하면 뭐든지 다 들어주는 신적 존재로 전환되어 버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시 세상의 철학과 종교가 갖는 맹점을 극복해 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는 다시 종교나 철학으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 출가, 수행, 성도, 전법, 열반 등 부처님의 일생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수행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첫째, 고뇌를 해결하는 바른 법이었습니다. 둘째, 대화체여서 이해하기가 매우 쉬웠습니다. 셋째, 타인을 험담하지 않는 온화한 인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넷째, 어디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일부 저항이 있었지만 수행자들이 워낙 겸손하고 계율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에 주위의 비난이나 저항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들이 할 일은, 첫째, 내가 법을 만나 마음이 편안해져야 합니다. 욕심에 찌들어 있거나 자기 성질에 휘둘리거나 바보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고 지혜로운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법을 널리 전해서 그들도 이 법을 만나 법의 가피를 입어서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사회적인 실천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차별이나 인권 침해, 전쟁 등 인간을 괴롭히는 것들을 없애고 평화를 지켜내야 합니다.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주고, 지나친 욕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욕심을 버리도록 해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사회적인 실천을 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의 기본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6일째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며 오늘 스님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고, 부처님이 걸어가신 길을 향해 우리도 함께 나아가 볼 것을 다짐했습니다.


설법전을 나온 스님은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점점 고조되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막기 위해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 많은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의 책 ‘새로운 백 년’을 선물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손님들을 배웅한 후 2시가 넘어 곧바로 차를 타고 괴산으로 향했습니다. 괴산에 사는 이은순 님이 집을 보시하고 싶다고 하셔서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2시간을 달려 4시에 이은순 님의 댁에 도착했습니다. 이은순 님의 댁으로 가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집을 팔아서 노후 자금으로 쓰시지 왜 기증을 하세요.”

“본래 제 것이 아니잖아요. 원래는 팔아서 현금으로 드리려고 했는데, 집이 안 팔리네요. 이렇게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정토회 초기 활동가들이 한 30년씩 일하고 나이가 드니까 환자가 많이 생기네요. 정토회를 시작할 때는 다 대학생이었어요. 그때는 외부 사람들을 돕기 바빴지 내부 복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안 썼어요. 근데 이제 한 3-40년이 지나니까 이십 대들이 전부 육십 대가 넘어서 점점 보살핌이 필요해지네요. 자꾸 남만 돕지 말고 내부에 사는 사람들도 돌봐야 한다는 요청이 많아요. 이제 실버타운을 지어야 할 처지예요.”

“실버타운 예약은 안 받으시나요?”

“오래 사시면 기회가 올 겁니다.” (웃음)

이은순 님은 스님의 건강을 걱정했습니다.

“저는 다른 건 궁금한 게 없어요. 다만 스님 건강이 괜찮으신지 궁금해요. 너무 과로하시는 것 같아요.”

“잠을 누워서 안 잘 뿐이지 차 타고 가면서 자고, 비행기 타고 가면서 자요.”

“아휴, 비행기 오래 타면 허리 아프잖아요. 한두 시간도 아니고 막 10시간씩 비행기를 타시던데요. 너무 힘들죠.”

“그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트럭 뒤에 타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 하물며 비행기를 타고 가잖아요. 공항에 가면 화장실도 있고, 세수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건강은 괜찮으신 거예요?”

“네, 건강합니다.”

대화를 나누고 집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은 환자들의 숙소로 사용하기에 적절한 지 집 곳곳을 살펴보았습니다.


5시가 되어 인사를 드리고 수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저녁에 수원에서 강연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스님. 감사합니다.”

스님은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차가 막혀서 강연 시작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수원에 가까울수록 교통 체증은 더 심해져서 결국 저녁 7시 40분에 강연이 열리는 수원 시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연장을 향해 달렸습니다. 강연은 7시 30분에 시작하여 여는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원 행복시민 두 명이 가야금 반주에 민요 메들리를 불러주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스님이 자리하자 소개 영상이 상영되고,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1층과 2층에 4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먼저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2층에도 많이 앉아 계시네요. 여러분들은 뭐가 잘났다고 높은 곳에 앉아 있어요?” (웃음)

이어서 행복한 대화 강연을 시작하게 된 취지에 대해 소개한 후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섯 명과 대화를 나눈 후 현장에서도 두 명의 질문을 추가로 받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릴 때 자신을 학대하던 엄마가 나이가 들어 주말마다 찾아와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주말마다 찾아오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저희 형제들을 아동학대 수준으로 대해서 저는 매우 힘들어하면서 자랐습니다. 엄마는 성질을 200퍼센트 마음껏 부렸고, 아버지가 농약을 먹고 자살 시도까지 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커서 결혼을 하게 되면 엄마하고 연을 끊고 살겠다고 다짐까지 했지만,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저는 결혼한 뒤에도 엄마하고 또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일을 그만둔 뒤부터 저희 형제들한테 엄청 집착하십니다. 큰언니는 멀리 대구에 살고 있고, 둘째 언니랑 저랑 한 동네에서 살고 있고, 엄마도 저희 집에서 도보로 40분 거리에 살고 계십니다. 그런데 언니네는 고양이가 있어서 엄마가 가기 싫어해서 주말만 되면 저희 집에 와서 주무십니다. 연휴 때 제가 때로는 특근한다고 거짓말을 하면 엄마는 하룻밤만 주무시고 갈 때도 있는데, 저는 특근한다고 나가서는 동네 산을 한 바퀴를 돌다가 엄마가 가시면 집에 들어와서 홀가분하게 쉽니다. ‘주말에 엄마가 또 와서 주무시고 가시겠지’ 하면서 주중에도 걱정과 스트레스 속에 삽니다. 어떻게 걱정을 덜고 살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엄마 몰래 이사를 가세요.”

“제가 멀리 이사 가면 저희 어머니는 저희 집에 와서 아예 보름이고 열흘이고 계실 것 같습니다.”

“질문자가 보기에 어머니가 자기한테서 떨어질 것 같아요, 안 떨어질 것 같아요?”

“안 떨어질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피부에 딱지가 붙었다고 합시다. 떨어질 것 같으면 떼면 되는데, 안 떨어질 것 같은 것을 떼면 내 살이 같이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제가 혼자 계신 엄마를 주말마다 차를 태우고 구경도 시켜드리고 식사도 대접하는데 꼭 저녁에 집에 갈 때 되면 '너희 집으로 가자' 해서 우리 집으로 오십니다.”

“그건 질문자가 바보 같은 짓 하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그 얄미운 사람한테 식사 대접을 해요?”

“어머니는 주말만 기다리면서 자식들 중에 누구한테 연락이 오나 기다리십니다.”

“질문자의 엄마에 대한 애증이 엄마의 딸에 대한 애증과 똑같네요. 제가 아는 부모들을 보면 딸을 막 욕해요. 방청소를 안 한다고 욕을 하고 나서 딸이 나가면 또 방을 다 치워줍니다. 방을 다 치워주고 나서는 또 ‘저런 게 어떻게 시집가서 사느냐’ 하고 욕을 하고, 스님한테 찾아와서는 '스님, 어디 좋은 총각 없어요?' 하고 묻습니다. 엄마도 싫다고 욕하는 처녀를 스님이 누구에게 소개를 시켜주겠어요? 이게 애증이라는 겁니다. (웃음)


아이들한테는 야단도 치지 말고, 방을 치워주지도 마세요. 야단을 치면 아이들한테 심리적인 억압이 생기고, 방을 치워주면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집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다 엄마가 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에요. 아이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자기 성질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야단을 치지 않음으로 해서 심리적인 억압도 하지 않아야 하고, 방을 치워주지 않음으로 해서 아이들의 버릇도 고쳐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에 대해서도 밥을 사드리고 차를 태워드리고 하면서 어머니가 주말마다 찾아오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오시든지 가시든지 상관 말고 그냥 질문자는 자기 볼일을 보면 됩니다.”

“그러면 주말에 연락을 안 해야 되나요? 주말이 되면 저희 집에 오시기만 기다리는데 어떡해요?”

“어머니가 집에 와 계시면 질문자가 밖에 나가 있으면 되잖아요. 질문자는 혼자 살아요, 가족이랑 같이 살아요?”

“남편이랑 둘이 살아요.”

“주말에는 남편하고 같이 밖으로 나가버리면 되잖아요. 어머니 혼자 집에 와서 계시라고 하고요.”

“그래도 주말에는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놀러 갔다가 어머니 집까지 데려다 드리고 싶은데요.”

“그건 질문자가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는 거예요. 어머니를 여행시켜드리고 밥은 사 드리겠는데, 잠은 집에 가서 주무시라는 거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건 어머니가 집에 오시는 건 좋은데 대신 입 좀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는 거잖아요? 뭐든지 해드리겠는데 왜 집에 와서 잔소리를 하느냐는 얘기네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사람인데 어떻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어요? 그게 독선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려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어머니가 용돈을 달라고 하면 '제가 10만 원만 줄 테니까 더 달라고는 하지 마세요' 이런 얘기를 하는 것과 똑같아요. 어머니는 20만 원이 필요한데 10만 원만 줘서 되겠어요?

어머니는 질문자랑 밥도 먹고 여행도 하고 집에 가서 잠도 자고 싶은 겁니다. 만약 질문자가 어머니와 같이 밥 먹고 여행하는 걸 안 하면 죄책감이 생겨서 어머니가 집에서 잠을 자도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내가 이미 이만큼 해주었는데 집에서 잠까지 잔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질문자는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과거에 어머니가 어떻게 했든 관계없이, 질문자가 지금 어머니한테 더 해주지 않아도 아무런 도덕적인 책임이 없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어머니에게 그런 도움을 안 주면 죄스럽고, 도움을 주면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면, 어머니를 도와주는 게 낫습니다. 어머니를 도와줄수록 더 스트레스받는다면 안 도와주는 게 나아요. 이것은 질문자의 문제이지 어머니의 문제가 아니에요.

남편도 없고 혼자 사니까 주말이 되면 딸한테 가서 밥도 얻어먹고 구경도 하고 잠도 자고 싶은 것이 어머니가 가진 기본적인 요구입니다. 어머니의 요구를 듣고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고 자유예요.

그중에 절반만 들어드려도 되고, 또 다 들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전부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건 질문자의 자유예요. 어머니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 제게 와서 천만 원만 빌려달라고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요구일뿐 그가 내게 와서 못살게 군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다른 사람의 요구에 내가 어떻게 대응할 거냐?’ 하는 것은 나의 권리입니다. 돈이 없으면 만원도 빌려주지 못할 수도 있고, 백만 원이 있다면 백만 원만 빌려줄 수도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천만 원을 다 빌려줄 수도 있겠죠.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질문자의 자유입니다. ‘왜 하필 내게 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느냐?’ 하고 비난하는 것은 내가 그에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건 그 사람의 요구일뿐입니다.

오늘 날씨가 갑자기 영하 10도로 떨어졌다면 그건 날씨 문제입니다. 그때 나는 외출을 포기해도 되고, 옷을 껴입고 나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니면 얇게 입고 나가서 추위에 떠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죠. 어떤 선택을 하든 내 자유입니다. 날씨를 비난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질문자의 어머니에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질문자가 어머니께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이제 노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요구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선택해서 해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백 가지를 요구하시는데 질문자가 그중 절반만 들어 드리면 어머니가 질문자에게 욕을 할까요? 안 할까요?”

“욕을 합니다.”

“그러면 욕을 좀 들어드리면 됩니다. 어릴 때도 욕을 감수하며 잘 살았는데, 지금 와서 또 욕을 하신다고 해서 그게 무슨 큰일이 되겠어요? 처음 욕을 듣는 사람이라면 힘들겠지만, 어릴 때부터 욕을 들어왔고, 지금은 나이 오십이 넘은 성인이 되었는데 그런 욕을 듣는 정도는 별일 아니지 않아요? ‘어머니는 원래 그런 분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요즘에도 어머니가 저희 집에 막 오려고 하시면, 제가 어릴 때 힘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게 싫습니다.”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해요. 트라우마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어릴 때 입은 마음의 상처가 자꾸 덧나는 겁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가 갖고 있는 정신질환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안 보면 또 괜찮습니다.”

“어머니를 안 보면 좋은데, 지금 질문자는 어머니를 안 볼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어머니를 가능한 만나지 않는 것을 권해드리는 겁니다. 멀리 이사를 하거나 주말에 자리를 피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걸 또 죄라고 생각하잖아요?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어릴 때 엄마가 욕을 해서 생긴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엄마에 대해 싫은 마음이 있는 겁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증(憎)’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욕을 하면서도 나를 키워주었잖아요. 갓난아기일 때는 젖을 먹여 주었고, 커서는 밥도 해주고, 옷도 입혀주고, 학교도 보내주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엄마에 대해 좋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애(愛)’라고 합니다.

이렇게 질문자는 어머니에 대해 애증(愛憎)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에 상처 입은 기억이 떠오르면 만나기가 싫고, 그래서 만나지 않으면 예전에 혜택 받은 게 있으니 죄의식이 들고, 이렇게 우리는 애증의 사슬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질문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애(愛)만 생각하는 겁니다. 질문자의 어머니가 욕은 좀 하셨지만 그래도 질문자를 낳아주셨습니다. 질문자가 갓난아기일 때 젖을 먹여 준 사람은 제가 아니라 질문자의 어머니입니다. 밥도 해주셨습니다. 법륜 스님은 질문자에게 욕도 하지 않았지만 질문자의 어머니처럼 질문자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자의 어머니는 욕은 좀 했지만 밥도 주고 옷도 입혀주고 학교에도 보내주었습니다. 필요한 것을 대부분 해주셨어요. 법륜 스님처럼 질문자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사람이 고마워요? 욕은 좀 하시지만 많이 베풀어주신 어머니가 고마워요?”

“글쎄요.”

”욕을 좀 하더라도 질문자에게 천만 원을 주고 가는 사람이 낫겠어요? 욕은 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안 주고 가는 사람이 낫겠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라면 욕 좀 듣더라도 저에게 천만 원을 주고 가는 사람이 낫겠습니다. 질문자의 뺨을 한 대 때리고 천만 원을 주고 가는 사람이 낫겠어요? 아니면 때리지도 않고 아무것도 베풀지도 않는 사람이 낫겠어요?”

“그런데...”

“저라면 한 대 맞고 천만 원을 받는 게 낫겠어요. 어머니가 욕을 해서 질문자가 싫다고 느낀 것은 어머니가 주신 것의 10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욕하신 것 외에 베풀어 주신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봐야 오히려 사실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어야 어머니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욕을 안 했더라면 더 좋았겠죠. 자식에게 욕도 하지 않고 때리지도 않으며 무엇이든지 베풀기만 하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나를 좀 욕하고 때리셨지만, 다른 걸 많이 베풀어주셨다’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질문자의 고민은 바로 해결됩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저한테 욕하셨던 것을 전혀 후회하거나 사과하지 않으십니다.”

“어머니는 당연히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할 겁니다. 어머니는 그냥 성질대로 사셨을 뿐이에요. 본인은 ‘내가 가끔 성질을 내긴 했지만, 너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는 생각만 하시는 거예요.”

“맞습니다. 자꾸 그런 말만 하세요.”

“당연한 겁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보수세력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를 억압하고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철도 놓아주고, 학교 지어 주고, 공장 만들어 주어서 너희들이 지금 이만큼 잘 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어머니를 비난하거나 과거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다면 어머니는 오히려 욕을 하실 겁니다. 힘들게 낳아서 키웠는데 지금 와서 큰소리를 친다고 못마땅해하실 거예요.”

“맞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적 없다고 하세요.”

“어머니는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기억한다 하더라도 다 자식 잘 되라고 한 기억밖에 없으실 겁니다. 그래도 질문자의 어머니는 밥도 해주고 학교에도 보내줘서 질문자가 지금 이렇게 살도록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첫째,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을 다 해드리는 것을 선택하셔도 됩니다. 둘째, 욕한 것에 대해 싫은 마음이 있으면 어머니께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드려도 됩니다. 어머니가 주말에 오시겠다면 오시도록 하고, 질문자는 다른 볼일이 있다고 하면서 외출을 해도 됩니다. 나가서 좀 놀다 오면 되잖아요. 그건 질문자의 자유입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어떤 책임감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어머니를 욕할 필요도 없어요. 질문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살면 됩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트라우마는 병원에 가서 검사받고 치료를 받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훨씬 좋아집니다. 감기에 걸리면 보통 열흘이면 저절로 회복하지만, 폐렴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잖아요?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거나 주사라도 한 대 맞고 오면 훨씬 빨리 낫습니다. 그것처럼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훨씬 좋아질 겁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며 질문자의 얼굴이 금세 밝아져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자가 질문을 하다가 울음을 터뜨리자 스님은 ‘아주 현장감이 있어서 좋다’ 하고 칭찬하고, 객석에서는 박수로 격려해 주었습니다. 사전에 신청한 네 명의 질문을 받은 후 현장에서도 두 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 직장생활을 한 지 1년, 업무는 늘어나고 삶에 여유가 없습니다. 부자들이 베풀지 않는 모습을 보면 분노감이 듭니다. 이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 집, 회사, 집의 패턴을 반복하고 삽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계획을 세우기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처럼 훌륭한 기업가가 되고 싶은데, 그런 위치에 도달할 수 없다는 현실에 공허함을 느낍니다. 제가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까요?

  •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다가 부담을 느껴서 다른 직장으로 옮기긴 했지만, 다시 영상 제작하는 일로 돌아가야 할지, 새로운 일을 할지 계속 고민입니다.

  • 스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데,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겠습니까?

각양각색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듣다 보니 어느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재미있으셨어요? 함께 대화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열다섯 번 정도 이렇게 직접 여러분들과 만나서 대화해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도움이 된다면 내년에는 횟수를 더 늘리려고 합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온라인으로 즉문즉설이 열리니까 온라인에서 계속 만납시다.”

오늘은 책 사인회를 열지 않기로 해서 대신에 스님이 입구에서 모든 참석자들과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스님, 건강하세요.”

참석자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수원 지역 행복시민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모두 뿌듯한 얼굴로 ‘행복시민 파이팅’을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스님은 수고했다며 봉사자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수원을 출발하여 차로 한 시간을 달려 11시가 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8일 출가열반 정진 7일째 법회를 한 후, 오후에는 행복시민들을 위해 행복학교 특강을 생방송하고, 청년들을 위해 청춘톡톡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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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4-15 15:34:38

능금

천만원만 있으면 법정스님 뺨때릴수 있다는 말씀 기억하겠습니다

2024-04-09 18:33:31

강원상

감사합니다

2024-04-09 11: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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