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3.23 8일 출가열반 정진 7일째, 행복학교 특강, 청춘톡톡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살기가 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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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8일 출가열반 정진 기간 중 7일째 날입니다. 하루 종일 세 번의 생방송이 연달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부터는 8일 출가열반 정진 7일째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도 3층 설법전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지난 6일 동안 부처님의 수행, 성도, 교화의 여정을 따라 법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성도 후 45년 동안 교화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부처님의 교화 초기 6년의 행적은 연대순으로 일기가 적혀 있듯이 비교적 자세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부처님의 45년 교화의 삶은 일기식으로 일일이 기록을 남길 수가 없어서 교화 사례별로 나누어 편집된 것이 경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까지 마지막 1년의 여정은 다시 또 매일매일 자세하게 일기식으로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그 마지막 여정이 기록된 경전을 열반경(涅槃經)이라고 합니다.

승가의 청정과 화합이 오래도록 유지되었던 이유

부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교화를 하셨고, 대부분 그들의 질문, 그들의 고뇌, 그들의 상황에 따라서 설법을 하셨습니다. 듣는 이에게 맞추어 법을 설하는 것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을 물으면 동쪽이라고 하고, 그들이 의정부에서 서울로 가는 길을 물으면 남쪽이라고 하고, 수원에서 서울로 가는 길을 물으면 북쪽이라고 하고,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길을 물으면 서쪽이라고 말하듯이, 그들이 놓여 있는 처지와 상황에 맞게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설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을 듣고, 이해하고, 증득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거나 증득한 것은 아닙니다. 또 법을 듣고 이해했다고 해서 그것을 다 실천한 것도 아닙니다. 법을 만나지 못하고 부처님을 비난하거나 전법을 방해한 사람들도 있었고, 법을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법을 듣고 이해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서 나중에 교단을 비난하거나 분열시킨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는 부처님보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다양하다 보니까 승가 공동체 안에서도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본다면 세상에 비해 상가 공동체는 평화로웠습니다. 계급 차별도 없었고, 사는 조건도 평등하였습니다. 때로는 말썽을 일으킨 사람도 있었고, 때로는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세상에 비한다면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수행공동체 승가가 비교적 평화롭고 화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처님께서 올바른 가르침을 설해 주신 것도 있지만, 부처님께서 항상 대중의 모범이 되어 사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대중들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생겼다 하더라도, 만약 부처님의 말씀만 남아 있었다면 법에 대한 이해가 달라서 분열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두고는 견해를 달리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승가는 비교적 청정성과 화합성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 방법

코살라국의 비두다바 왕이 원한을 가지고 석가족을 공격할 때, 부처님은 세상의 일이라고 해서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부처님은 홀로 길 위의 뙤약볕에 앉아서 그 행군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당당하게, 평화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두 번이나 설득되어 발걸음을 돌렸지만, 원한에 사무쳐서 세 번째는 부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석가족을 공격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은 거기에 원한을 품거나, 그것을 막으려고 또 다른 군대를 동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외면하지도 않았고, 세속적으로 대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이런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모습을 모델로 하고 일정한 범위 안에서 변형하고 응용해야 합니다.

석가족과 꼴리족이 가뭄이 심해서 로히니 강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울 때, 부처님께서는 ‘내가 가지 않으면 그들은 어리석어서 분명히 피를 흘리고 싸울 것이다’ 하고 생각하시고 직접 그곳에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에게 ‘당신들이 하는 짓은 하찮은 물을 위해 귀한 피를 물처럼 흘리는 짓이다’ 하고 말씀하셔서 물에 사로잡혀 피를 흘리는 걸 감수하려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서로 협력하여 가뭄을 극복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이처럼 결과가 성공적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부처님의 의도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세상 사람들이 눈을 뜨고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서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도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많은 과제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단 통일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한과 북한이 여전히 전쟁의 위험을 안고 있고, 이 전쟁은 우리 민족을 전멸시킬 수 있는 위험까지도 안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동시에 전쟁이라는 큰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이 되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졌지만, 동서냉전 속에 민족이 분단되고 전쟁까지 치르게 되면서 우리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지난 70년 동안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세계는 다시 미국과 중국의 경쟁 체제로 치닫고 있습니다. 동서냉전과 사뭇 다른 점도 있지만, 세계가 큰 두 나라를 중심으로 분열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열의 한가운데에 또다시 놓이게 되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서구 세계가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고, 중국을 중심으로 러시아와 몇몇 나라들이 다른 부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큰 대립 속에 북한은 북중러 관계를 형성하고, 남한은 한미일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즉, 세계가 두 쪽으로 나뉜 가운데 남한과 북한이 그 사이에 끼여서 한반도에는 대량 살상을 불러올 전쟁의 위험이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남북의 전쟁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국제전의 위험을 불러일으켜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나 중동 지역에서의 분쟁은 국지적 분쟁이지만, 한반도의 분쟁은 세계대전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재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는 민족과 통일을 뒤로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동안 통일을 외쳤던 북한조차 이제는 영구적인 두 개의 국가를 유지하자며 등을 돌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기 또한 극복해서 전쟁이 없는 평화를 이루고 통일의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평화를 지켜내고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미래 100년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세상의 혼란을 우리가 다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최선을 다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문제를 우리가 다 해결할 수 없기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또한 받아들이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사회 문제를 보는 관점과 해결 방법을 롤모델로 삼아서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는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정토행자는 바른 법을 실천하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항상 이 관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앞으로 사회적 실천활동을 할 때 ‘수행자가 왜 세상 일에 관여하느냐’ 하고 외면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온갖 세상일에 일일이 관여하려는 유혹에도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 좋은 법을 이웃에 전하는 전법도 꾸준히 하고, 사회적 정의와 평화를 위한 활동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국민 행복도를 높이는 일이라면 기꺼이 참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듣고,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며 수행적 관점을 다시 한번 오롯이 새기고 각자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서울 정토회관 방송실로 이동해서 행복학교 특강 생방송을 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과 행복시민들 30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날씨처럼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보면 희로애락이 거듭되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다 별일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가 조금 더 길고 넓게 보는 눈을 갖는다면 인생의 희로애락에 얽매여 도저히 못 살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도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에 빠지는 게 우리의 인생살이겠죠.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이어서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캐나다에서 외국인과 결혼해 살면서 열심히 일해 집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살기가 빠듯해 힘들다며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편안해질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살기가 빠듯합니다

“저는 10여 년 전에 혼자 캐나다에 와서 캐나다인 남편을 만나 살고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거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지난 10년간 몸과 마음을 희생하며 집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너무 기쁘고 행복했지만 그 이후에도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계속 열심히 일해야만 빠듯하게 살 수 있었고 크고 작은 사고들에 몸과 마음이 쉴 틈도 없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저희 부부 둘 다 예전에 비하면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이냐며 감사할 때가 더 많지만 가끔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편안해질까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면 앞으로 죽을 때까지도 그렇게 헐떡거리고 살게 됩니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니까 악착같이 살아야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캐나다 같은 나라에 가서 살면서 그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려면 그냥 한국에서 살면 되지요. 한국에서 살면 친구들이나 일가친척들이 사는 걸 보며 그에 뒤질세라 악착같이 일하게 된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낯설고 물 설은 캐나다에 가서 사는 이유는 남과 경쟁하지 않고 여유 있게 살기 위해서 아니에요?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집을 사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집을 임대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면 되잖아요. 예를 들어 4일은 직장을 다니고, 3일은 여행이나 산책을 하며 사는 겁니다.

캐나다에서는 세금도 많이 내잖아요. 세금 때문에 미국에 가는 게 나을 것 같지만, 육십이 넘어 은퇴한 노인들은 ‘정부만큼 효자가 없습니다’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세금을 많이 내는 대신에 늙으면 연금도 받을 수도 있고, 병원비 걱정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병원비가 많이 드는데 캐나다에서는 거의 들지 않습니다. 여유롭게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전성까지 담보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미국에 비하면 캐나다는 거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되어 있습니다. 대신에 세금이 좀 많죠.

그러니 캐나다에서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하면 죽을 때까지 헐떡거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임대해서 살더라도 ‘잠잘 곳이 있으니 다행이다’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집을 사는 것이나 임대해서 월세를 내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요. 집을 사면 ‘내 집이다’ 하는 기분이 날 뿐입니다.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겠죠. 인생은 모르는 것이니까요.

조금 여유 있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자꾸 돈을 많이 모아서 따로 노후 보장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보장한 최소한의 복지 수준에 노후를 맡긴다는 마음으로 여유 있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건 좋아요. 다만 그러려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됩니까?’ 하는 질문은 하지 말아야죠. 놀면 뭐 합니까?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잖아요.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주말은 쉬라고 있는 것이지 일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캐나다처럼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는 곳에서 본인 스스로 죽기 살기로 헐떡거리며 살겠다는 것을 어떡하겠어요?

한국 같은 데서는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몰라도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여유를 부릴 형편이 못 돼요. 많은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일하니까 ‘여유를 부리면 나 혼자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잘 모르지만 캐나다는 대다수의 사람이 천천히 여유 있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질문자도 그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 사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캐나다 사람이잖아요. 남편이 질문자한테 물들어서 죽기 살기로 사는 건가요?”

“저희 남편은 무척 성실한 사람입니다. 아주 열심히 일합니다. 야망도 크고요.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하고,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해서 저보다 더 여유 없이 생활합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더 조급해지는 것 같아요. 캐나다도 최근에는 10년 전에 비해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기름값만 해도 한국보다 더 비쌉니다. 쉼 없이 일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계속 듭니다.”

“자기가 잘 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걸 힘들다고 하면 어떡해요? 가령 내가 100m를 20초에 달린다고 합시다. 20초만 달려도 되는데 15초에 달리겠다고 목표를 세워서 매일 2시간씩 달리기 연습을 한다면, 그걸 갖고 힘들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15초에 달리고 싶으면 매일 연습하는 고단함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냥 실력대로 20초에 달려도 괜찮습니다. 그것처럼 여유 있게 살고 싶으면 재산을 많이 모으겠다든지, 더 큰 집을 사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더 큰 집을 사거나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겠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밤낮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겁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바쁘게 사는 것인데 그걸 힘들다고 하면 어떡해요?

저는 세상 사람들이 굶거나 병들어 죽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우니까 밤낮으로 여기저기를 다니잖아요. 필리핀 민다나오, 부탄, 파키스탄, 시리아에도 가고, 잠도 늘 비행기나 차 안에서 잡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에게 ‘너무 힘들어 죽겠어요. 왜 이렇게 여유가 없어요?’ 이렇게 하소연을 하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힘들면 안 하면 되죠’ 이렇게 얘기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그런 하소연을 일절 안 하잖아요. 내가 그런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니까요.

힘들면 안 하면 됩니다. 질문자도 힘들면 안 하면 돼요. 여유 있는 게 좋으면 힘들게 일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면 됩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밥조차 못 먹는 북한이나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라면 그런 하소연을 할 수 있고, 우리가 조금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본인이 더 큰 집을 사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라면 당연히 다른 사람이 쉴 때에도 일을 해야죠. 그게 재미이고 보람이잖아요.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재미가 있습니다. 어쩌면 남편은 스스로 그런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일하는 게 별로 힘들지 않고 성취감을 느끼며 살고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질문자는 좀 더 여유롭게 살려고 캐나다까지 이민을 왔는데 성취감에 취해 사는 사람을 만나 거기에 맞추려다 보니 힘이 드는 겁니다. 남편에게 ‘당신은 성취감을 즐기며 사십시오. 저는 여유 있게 살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여유롭게 살면 됩니다. 질문자가 선택하면 돼요. 내가 세운 목표를 천천히 달성하려면 천천히 가도 되지만, 그 목표를 빨리 달성하려면 남이 잠잘 때 안 자고, 남이 밥 먹을 때 안 먹고, 남이 놀 때 안 놀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걸 힘들다고 하면 안 되죠. 안 해도 되는데 자기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하면 ‘힘들면 하지 마라’ 하고 대답하는 거예요.

여유 있게 사느냐, 바쁘게 사느냐 하는 것은 자기 선택입니다. 더 많이 뭔가를 갖고 싶으면 잠을 줄이고 더 바쁘게 일하면 됩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뭐 할 건데? 죽으면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면, 여유를 갖고 현재를 즐기며 살면 됩니다. 그러려면 덜 먹고, 덜 입고, 덜 소비하고, 집 크기도 줄여야 하는 거예요.

여유를 즐기면 수입이 적어지고, 수입이 적어지면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반면에 수입을 늘리려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합니다. 소비는 많이 하고 싶은데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면 누구를 쳐다봐야 합니까? 부모에게 유산을 많이 물려받은 사람들을 쳐다봐야 할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런 부모를 안 만난 걸 어떡합니까.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은 옛날에 그만한 노력을 해서 부자가 된 겁니다. 질문자처럼 아무 노력도 안 하고 ‘나도 저 사람처럼 됐으면 좋겠다’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질문자는 욕심을 부리고 있어서 여유가 안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비교해도 제가 질문자보다 더 바쁠 겁니다. 그래도 저는 ‘바빠서 힘들다’, ‘삶의 여유가 없다’ 이런 얘기들을 남한테 안 해요. 저의 수첩에는 1년 스케줄이 이미 가득 차 있습니다. 연초에도 빈 공간이 조금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이미 딱 짜여져 있는 인생을 사는 거죠. 그러나 어차피 인생은 이래 사나 저래 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한 사람은 없어요. 저는 나이 칠십이 넘었기 때문에 이제 은퇴를 해도 돼요. 일을 안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어요. 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돼요. 내가 직접 답사를 가지 않아도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답사를 가도록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놀면 뭐해요? 산에 오르면 좀 힘들지만 운동이 되잖아요.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가 있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견문도 넓어집니다.

편안하게 살고 싶으면 집에만 있으면 되고, 견문을 더 넓히는 게 좋겠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면 됩니다. 어떤 인생을 살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겁니다. 돈을 더 벌고 싶으면 일을 더 하면 되고, 여유를 더 갖고 싶으면 소비를 줄이면 됩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모두 자기 선택의 문제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들풀처럼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처럼 제가 있는 자리에서 가볍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전쟁 없는 상태가 소극적 평화라고 수업에서 들었습니다. 괴롭지 않은 것이 행복이라는 말처럼 이 말이 소극적 행복에 안주하라고 들립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막내가 사춘기 때 버릇없는 언행을 해서 주먹으로 한 대 쳤고, 그때 이후로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얼마 전 막내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저를 초대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지내도 될까요?
  • 교육대학원을 다녀 교사 자격증을 땄지만 임용고시 TO가 줄어 시간강사를 하며 최저 시급을 받으며 삽니다.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자존감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요?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다 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다음 달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오후 4시에는 청년들을 위한 청춘톡톡 생방송을 했습니다. 청년들 75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먼저 ‘선택'을 주제로 이슈 두 가지를 뽑아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번째 이슈는 내 삶에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선택을 할 때 나만의 기준이 무엇인지이고, 두 번째 이슈는 2024년 선거입니다. 청년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본 후 스님이 이에 대해 소감을 말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법륜 스님은 어떤 결단을 하고 여기까지 왔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대화를 나눈 주제가 선택인데요. 여러분은 저한테 ‘스님은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결단을 하고 여기까지 왔습니까’ 이렇게 묻고 싶을 겁니다. 여러분이 ‘스님은 일생일대의 결단을 한 때가 언제입니까’ 이런 질문을 해서 저도 저한테 물어봤어요. 내가 언제 일생일대의 결단을 했을까 살펴보니까 저는 지금까지 일생일대의 결단을 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노예처럼 산 것은 아닌데 그냥 떠밀려 살아온 것 같아요. 학교 옆에 절이 하나 있어서 갔는데 스님이 자꾸 출가를 권유해서 여기까지 왔고, 이러다 보니 이렇게 되었고, 저러다 보니 저렇게 되었습니다.

요즘 부탄에 가서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려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원래는 북한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 활동을 하다가 환경 위기 시대에 인류 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모델을 하나 개발해 보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그러던 중에 누가 부탄이야말로 스님이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기에 가장 적당한 나라라고 권유를 했어요. 그런데 또 어떤 행사에 참석했다가 부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그럼 부탄에 한번 오십시오’ 하고 초대를 했고, 부탄에 가서 한번 둘러보니까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을 만들기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탄 국왕을 만나 얘기를 했고, 국왕도 저의 제안에 동의를 하니까 점점 사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거예요. 한편으로는 너무 큰 프로젝트라서 부담도 컸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이 사람이 붙고, 저 사람이 붙고, 마치 누가 설계해놓은 대로 굴러가듯이 자꾸 인력이 붙어서 지금은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꼭 결단을 내리고 선택을 해야만 어떤 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요.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런 환경이 조성되면 그 방향으로 굴러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자꾸 일생일대의 결단을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요. 너무 많은 각오와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어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 수행, 영어 학원, 학교 생활, 인간관계, 한꺼번에 많은 걸 하려다 보니 수행도 놓치고 공부도 놓치는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저는 게이 커플입니다. 혐오 세력으로부터 장문의 욕과 희롱하는 글을 받고 형사고소를 진행했는데 경찰의 늦장 대응으로 수사가 종결되었습니다. 경찰만 보면 분노가 올라옵니다.
  • 정신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 중에 부모가 우울증인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가 도움을 거부하면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떡하죠?
  •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단호하게 이혼했습니다. 마음의 상흔을 준 그 사람이 아직도 미워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 대한 복수심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에는 내일 부탄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부처님 열반재일 기념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을 한 후, 저녁에는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방콕을 경유하여 부탄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부탄에서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델을 만들고 주민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조사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9

0/200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4-15 15:51:11

드림하이

이렇게 수행공동체 승가가 비교적 평화롭고 화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처님께서 올바른 가르침을 설해 주신 것도 있지만, 부처님께서 항상 대중의 모범이 되어 사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대중들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생겼다 하더라도, 만약 부처님의 말씀만 남아 있었다면 법에 대한 이해가 달라서 분열이 되었을 겁니다."

2024-04-04 13:31:25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3-28 14: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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