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01.22. 인도성지순례 2일째 전정각산, 수자타아카데미 환영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에 수행하셨던 전정각산을 참배하고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의 환영식에 참석했습니다.

새벽 5시, 스님과 오백 명의 순례단은 수자타아카데미 쁘락보디홀에 모여 예불을 시작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스님은 스태프들과 일정을 논의했습니다. 원래는 예불 후에 곧바로 전정각산에 올라 능선을 오를 계획이었습니다.

“안개가 무척 짙네요. 계획대로 전정각산에 가면 자칫 사고가 날 수 있겠어요. 일정을 조정하겠습니다. 출발 시간을 늦추고 성지에 대한 설명은 다 같이 들은 후 팀을 나누어 전정각산을 참배합시다. 또 유영굴이 작아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볼 수 없어요. 한 팀은 유영굴에 갔다가 샘터로 가고, 한 팀은 샘터에 갔다가 유영굴에 가는 것으로 합시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니 법당에서 인도 JTS 활동가들이 스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순례단이 모여 있는 교문으로 갔습니다. 교문 밖을 나서니 돌무더기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탑터였습니다. 스님이 탑터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부처님이 6년 간 고행한 곳, 전정각산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부처님은 6년 동안 고행하셨습니다. 한문으로는 깨닫기 전에 머무셨다고 해서 전정각산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쁘락보디힐입니다. 원래 이름은 시체를 버린 숲이기 때문에 부정한 땅이라고 해서 둥게스와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우리 앞에 보이는 돌무더기는 기초석을 돌로 쌓고 위에는 벽돌로 쌓은 탑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벽돌은 가져가고, 기초석이 된 돌도 여기저기 공사할 때 가져가서 일부만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6년 고행 후 중도를 발견하고, 고행림(林)을 떠나 네이란자로 강가로 가실 때 아무것도 입지 않고 계셨나 봐요. 그래서 몸을 가리기 위해 천을 구했는데 마침 죽은 여인을 덮었던 천이 있어서 그것을 걸쳤습니다. 그 여인은 숨이 끊어지기 전에 부처님을 보고 '저 수행자가 내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했는데 부처님이 그 천을 입었기 때문에 그 여인은 하늘나라에 태어났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이를 상징해서 이곳에 부처님과 그 여인의 탑을 세운 것 같아요. 그러면 탑을 향해 반야심경을 하고 전정각산으로 오르겠습니다."

스님은 A팀과 함께 전정각산으로 한 발 한 발 이동했습니다.


너른 터에 도착해 모두 가사를 수하고 앉았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출가를 한 후 전정각산에 오셔서 수행하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부처님은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기슭 카필라바스투의 왕자로 태어나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그곳에서 성장하면서 종교나 철학이 인간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 새로운 길을 탐구했습니다. 전통적인 브라만의 가르침에 한계를 느껴 새로운 사상가인 사문의 길을 따라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사상가들은 출생에 의한 브라만의 신분이 아닌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사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집과 가족을 버리고 숲에서 요가와 명상을 통해 진리를 탐구했습니다. 부처님도 사문이 되고자 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태어나자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부처님은 왕궁을 떠나 출가수행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300여 개의 나라가 있었고, 그중 가장 큰 나라가 마가다국이었습니다.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자그라하는 왕들의 집을 의미합니다. 라자그라하 주변에는 많은 신흥사상가들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 배웠습니다. '선정주의자'로 불리는 그들에게 배워 예전보다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지만, 선정에 들 때만 그 편안함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해 스승 곁을 떠나 이곳 가야근교로 왔어요. 다른 스승을 찾아가려 했지만 이미 최고의 스승에게 배웠기 때문에 다른 스승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과제는 자신이 혼자 해결해야 했습니다.

스승 곁을 떠날 때 친구 다섯 명이 고타마를 존경해 '우리도 함께 가겠다'라고 하여 고타마를 포함한 6명이 이곳 가야로 왔고, 가야산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고 수행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냈습니다. 그곳은 강 건너 언덕 아래에 있는 숲으로 가야 사람들이 죽으면 시신을 버리는 시타림이었습니다. 시타림은 시체를 버리는 곳이라서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곳에서 깊은 정진을 했습니다. 시타림 근교에는 민가도 없어서 밥을 구할 수 없어 야생 대추나 곡식 낱알로 생존했습니다.

제가 30년 전에 이곳에서 처음 학교를 시작했을 때도 점심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추나무 아래를 서성였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학교를 지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대추밖에 줄 것이 없다’고 하면서 대추를 줬어요. (웃음)

부처님은 바로 이곳에서 극심한 고행을 했습니다. 거의 죽을 정도의 모습이었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묘사에 따르면 해골만 남아서 앉아있는데 머리에는 이끼가 끼어서 새가 벌레를 쪼아 먹으려 앉아있을 정도였습니다. 시타림을 뒤지는 천민 아이들이 와서 '저 사람 죽었을까?' '아니야, 안 죽었어!' 하고 흙덩이를 던지거나 나뭇가지로 귀를 찌르는 장난까지 할 정도였어요. 스스로도 ‘이렇게 정진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 하는 두려움이 생겼을 만큼이었습니다. 경전에서는 이를 '마왕의 유혹'이라 표현합니다.

'너 이러다가 죽으면 수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니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렇게 마왕이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 것을 보면 수행자 ’ 고타마‘도 후회되는 마음이 있을 때도 있었다는 거겠죠. 그러나 부처님이 후회되는 마음을 냈다고 하면 조금 불경스럽잖아요. 그래서 후대의 경전에서는 '마왕의 유혹'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럴 때 부처님은 마왕에게 ’ 나는 너의 협박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항복하지 않겠다 ‘고 선언합니다.”

설명을 마친 후 스님은 실제 경전 속에서는 이 모습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살펴보자며 경전을 펼쳐 들었습니다. 순례객 모두 다 함께 전정각산을 마주 보고 앉아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경전 독송을 마치고 부처님이 6년간 수행했던 곳에서 대중과 함께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이 끝나고 부처님이 물을 마셨다는 샘터를 지나 명상터로 가보았습니다. 부처님이 앉아서 정진하셨을지도 모를 그 자리에서 모두 함께 명상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숨결을 한껏 느낀 순례단은 전정각산을 내려와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11시 30분에는 인도 JTS 홍보관을 개관하는 커팅식을 하고 홍보관을 둘러보았습니다.




곧이어 12시 30분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성지순례단을 위해 환영식을 시작했습니다. B, C팀은 오늘 새벽 바라나시 사르나트를 출발했습니다. 8시간이 지나 겨우 보드가야의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과 오백 명의 순례단은 두 줄로 나란히 서서 학교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 전교생이 교문 앞으로 나와서 순례단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흰색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앞에 나와 스님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오백 명의 순례단 모두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었고, 순례단 모두가 꽃목걸이를 걸고 수자타 아카데미 교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문 앞에 자리한 전정각사 법당에 들어가 참배를 한 후, 고 설성봉 거사님의 부도탑을 참배했습니다. 설 거사님의 부도탑을 지나 운동장에 들어서니 따뜻한 짜이와 쿠키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짜이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가지는 사이 운동장에서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의 환영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뜻한 환영식을 마치고 1시 30분에는 다시 전정각산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아침에 전정각산 순례를 다녀오지 못한 B, C팀과 함께 했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에게 안내를 맡기고 먼저 산에서 내려와 4시 20분부터 국제국 회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녁공양을 하고 저녁 6시부터는 해외지부 회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녁예불 후에는 쁘락보디홀에 모여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보광법사님이 이번 성지순례에서 버스 운전을 맡은 기사님과 조수님을 소개하고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인솔법사님과 차장, 조장, 스태프도 소개했습니다. 소개를 할 때마다 강당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지순례를 안내해 주시는 스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려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습니다. 순례자들은 잠시 당황했다가 각자 휴대폰을 꺼내 불빛을 밝혔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마치자 거짓말처럼 불이 환하게 켜졌습니다. 이렇게 소개를 마치고 스님이 인도 JTS와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현장에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 부처님이 직접 경전을 쓰진 않았을 텐데 자세한 묘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부처님이 당시 설법하셨을 때 본인의 경험을 예로 들어서 설법하셨을까요?

  • 전법선언에서 홀로 가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 수자타 아이들의 눈빛이 바라나시에서 구걸하던 아이들과 다르게 선명하고 맑아서 감화를 받았습니다. 이 아이들도 괴로움이 있을 텐데 마음공부나 불교를 가르치나요?

  • 환영식 때 춤을 췄던 학생들을 보니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좋은 옷을 입고 있었어요. 제가 알고 있던 정보와 달라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오늘 새벽에 독송한 경전 내용 중 ’ 이치에 맞는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아쉽지만 9시가 되어 내일 순례를 위해 법회를 마쳤습니다. 9시 30분에는 법사님, 스태프들과 일정에 대해 논의한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 예불을 올린 후 수자타 아카데미를 출발해 보드가야까지 걸어서 이동합니다. 부처님이 전정각산에서 6년간 고행하다가 고행을 멈추고 보드가야까지 걸어갔던 그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오후에는 가야산을 참배하고 저녁에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성지순례 안내가 있었기 때문에 지난 12일 한국에서 열린 금요 즉문즉설 강연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작년에 코로나 후유증으로 심장에 무리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갔고 죽음 직전까지 경험을 했습니다. 그 짧은 찰나였는데도 ‘나는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하는 마음속의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고비를 넘겼지만 그 뒤부터 계속 죽음이라는 화두를 안고 살았습니다. 죽음은 어느 순간 그냥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을 제가 직접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불교대학을 공부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 여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을 배우면서 한 줄기 빛을 만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는 돈, 직업, 커리어, 명예, 이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제가 경험했지만, 또 일상생활로 돌아오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시 또 돈이 필요하고, 직장에서도 더 일을 잘해야 되고, 미래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죽음이 갑자기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도 제가 만들어낸 집착일까요? 죽음이 올 때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질문자는 여여함을 아주 좋아하시네요. 질문자의 사유에 문제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이렇게 사물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자에게 죽음이 인생의 큰 과제가 되어버린 겁니다. 문제의 첫 단추가 거기에서 잘못 끼어진 거예요. 산을 오르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든, 교통사고가 나든, 병이 나든, 죽을 수 있는 경지까지 갔을 때는 이렇게 사물을 봐야 합니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네. 죽는 것은 간단하네!’

죽음은 어느 순간 언제든지 내 가까이에서 일어날 수 있어요. 코로나에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지만,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죽을 수도 있고, 차에 치여서 죽을 수도 있고, 음식을 잘못 먹어서 죽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죽음을 전혀 생각 안 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데, 질문자처럼 죽을 고비를 한번 겪어보면 ‘이렇게 죽을 수도 있네’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 인생을 사는 데에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직장에서 승진하려고 아등바등 안 해도 돼요. 갑자기 죽을 수도 있었는데 아등바등 경쟁해서 뭐해요? 그렇다고 직장을 다니지 말라는 게 아니라 어떤 집착도 내려놓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연애하다가 헤어졌다 하더라도 죽는 것에 비하면 그게 뭐 그리 중요해요?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데 연애하다가 헤어지는 정도는 아쉽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승진이 안 되면 어때요? 죽을 수도 있는데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그렇다고 게으르게 살라는 뜻이 아니에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는 별로 연연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한번 경험해 봄으로 해서 오히려 이런 여유를 가질 수가 있지 않을까요?

똑같은 경험을 해도 질문자는 '나 이렇게 죽으면 억울해' 이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죽음이 질문자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된 겁니다. 그 상처가 지금 계속 덧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죽음을 경험하면서 '죽음이라는 게 이렇게 갑자기 올 수도 있네' 이렇게 받아들였으면 앞으로 살면서 온갖 일에 도움이 됩니다. 어쩌다가 돈을 잃어버렸다 해도 '죽기도 하는데 돈이 뭐가 중요하냐?' 하고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은 아들이 갑자기 죽었어요. 충격이 컸는데 다행히 잘 극복을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다 풀리진 않았겠죠. 자식이 죽었는데 어떻게 응어리가 풀리겠어요? 그래도 그분은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나니까 삶이 굉장히 여유로워졌습니다. 자식이 죽어도 사는데 무슨 일을 못 하겠어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안 쓰게 되고, 남편이 죽는다고 해도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죽는 것은 자식이 죽는 것과 그 고통이 비교가 안 되잖아요. 집에 불이 나서 손실을 입어도 마음의 여유가 있게 됩니다. 자식이 죽어도 사는데 집에 불난 게 그렇게 대수냐 이거죠. 어떤 사건이 경험으로 축적되면 이렇게 미래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계속 고민거리로 작용하는 겁니다. 지금은 죽을 뻔한 경험이 똥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 경험을 거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똥을 거름으로 바꾸는 방법은 ‘이렇게도 죽을 수 있네’, ‘죽음이란 게 참 간단하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면 삶에 훨씬 여유가 생깁니다.

회사에 다니면 승진이 필요하잖아요. 그렇지만 승진에 목매달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살다 보면 인기가 필요하지만 거기에 목매달 필요는 없어요. 결혼이 필요하지만 거기에 목매달 필요는 없습니다. 건강이 필요하지만 거이에 목매달 필요는 없어요. 죽음을 한 번 경험해 본 사람은 어떤 일이 안 됐다고 쉽게 낙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보다 더 큰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큰스님들은 전부 죽을 고비를 한 번씩 넘긴 분들입니다. 부처님도 6년 동안 고행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나는 일체의 두려움이 없다’ 이렇게 선언하는 모습이 경전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49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예수님을 죽일 것이라고 미리 알았잖아요.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길을 갔습니다. 자살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과거의 경험을 트라우마로 갖지 말고 오히려 소중한 자산으로 삼아 보세요. ‘죽기 싫어. 이렇게 죽으면 억울해’ 하는 게 아니라 ‘죽는 게 간단하네. 이렇게 죽을 수도 있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죽음 앞에서 다른 게 뭐 그리 중요해요? 이 말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승진이 필요하면 승진을 위해 노력을 하세요. 대신 그게 안 됐다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과거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된 사람은 ‘그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떡할까?’ 하고 두려워하게 되는데, 이미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별일이 아닙니다. 비난도 처음 받을 때 힘들지 몇 번 비난을 받고 나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옛말에 ‘욕이 뭐 배 따고 들어가나?’ 이런 말이 있듯이요. 과거의 일을 상처가 아닌 경험으로 쌓아 나가면 삶에 여유가 생기고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죽음이 간단하네. 이렇게 죽을 수도 있네’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집착을 좀 내려놓으면 도화지처럼 하얀 공간이 남아 있게 될 것 같아요. 그러면 하얀 도화지 위에 어떤 그림을 채워나갈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화지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내일 아침밥 먹고, 직장 나가면 돼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죽을 수도 있었는데 뭐 이게 대수라고’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도화지처럼 되는 것입니다. 도화지에 무슨 그림을 또 어떻게 그리려고 그래요? 자꾸 그렇게 생각하면 머리만 아파요. 좀 단순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71

0/200

드림하이

옛말에 ‘욕이 뭐 배 따고 들어가나?’ 이런 말이 있듯이요. 과거의 일을 상처가 아닌 경험으로 쌓아 나가면 삶에 여유가 생기고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죽음이 간단하네. 이렇게 죽을 수도 있네’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2024-03-25 16:43:09

서은희

감사합니다 .스님과 동시대에 살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2024-02-23 16:05:26

풀꽃

단순하게 살겠습니다. 오로지 정진만._()_

2024-02-14 10:17:18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