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01.20. 바라나시 강가강, 사르나트 박물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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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바라나시 타이절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아침공양을 한 후 스님은 성지순례단에게 숙소를 제공해 준 뉴타이절, 미얀마절, 티베트절, 캄보디아절, 중국절, 명상센터(Dharma Chakra Meditation)를 찾아갔습니다. 각 절의 주지 스님을 뵙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객들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보시금을 전달한 후 스님은 신물간다꾸디로 향했습니다. 어제 마하보디소사이어티 주지 스님이 초청한 행사에 참석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했습니다.


행사장을 나와 순례단과 함께 강가강으로 갔습니다. 도로가 매우 혼잡했습니다. 알고 보니 다가오는 22일에 힌두 축제가 열려 미리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버스가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스님은 지도를 살펴보았습니다.

“링 로드(Ring Road)로 가서 크게 돌아갑시다. 1시간은 이동한다 생각하고 천천히 가야겠어요.”

인솔법사 여광법사님이 아쉬워하며 말했습니다.

“네, 스님. 시장 구경은 물 건너갔네요.”(웃음)

스님의 제안대로 국도로 돌아가서 버스가 들어갈 수 있는 강가강 입구 산스크리트 대학교 앞까지 갔습니다.

“지금 시간이 12시 30분이네요. 순례객들에게 1시 30분까지 배 타는 곳인 다샤스와메드 가트(Dashashwamed Ghat)로 모이도록 안내해 주세요. 가트까지 오면서 시장 구경을 하도록 하고요.”

버스에서 내려 오토릭샤로 갈아타고 바라나시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골목 구석구석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오토릭샤, 자전거, 소, 개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습니다. 좁은 골목은 오토릭샤와 자전거의 경적소리, 사람들의 외침으로 가득했습니다.

혼돈 속에서도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규칙에 따라 제 갈길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탄 오토릭샤도 틈이 없는 바라나시 뒷골목을 비집고 가트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입구부터는 무척 붐비기 때문에 걸어서 가트까지 가야 합니다. 스님은 릭샤에서 내려 한발 한발 천천히 시장 속으로 걸어갔습니다. 한낮의 시장은 정말 복잡했습니다.


스님은 시장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발걸음은 계속 가트로 향했습니다.


이윽고 강가강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들은 질서 있게 배 위로 올라탔습니다.


곧 스님의 안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은 강가강입니다. 히말라야산에서 흘러내린 강입니다. 제일 서북쪽에서 야무나, 강가, 그라그라, 간타키 강이 흘러내리고 남쪽 데칸고원에서 손강이 흘러내립니다. 이 다섯 개의 강이 하나로 모여서 ‘강가’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있는 이 강은 야무나강과 강가강이 합쳐진 강입니다. 앞으로 흘러내려가면 그라그라강, 손강, 간타키강이 합쳐져서 큰 바다 같은 강이 됩니다. 강가강 주변에는 힌두 성지들이 많지만, 힌두 최고의 성지는 바라나시입니다.


왼쪽 편에 연기가 나는 게 보이죠? 그곳이 화장터입니다. 가까이 가면 시체를 메고 오는 사람, 시체를 물에 적셔서 건져 놓는 사람, 시체에 불을 붙이는 사람, 다 타고 남은 유골을 모으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신을 물에 적시는 이유는 인도 사람들은 강가강에 몸을 담그면 모든 죄가 없어져 천상에 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도도 화장이 현대화되고 있지만, 바라나시는 종교적 성지이기 때문에 전통식으로 화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배를 돌려서 화장터 가까이로 가 보겠습니다.”

스님은 화장하는 모습을 그림 그리듯 세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시신을 옮길 때에는 대나무 두 개를 사다리처럼 만들어서 그 위에 시신을 올리고 시신 위에 황금색 천을 덮습니다. 4명이 시신을 메고 옮기는데 남자들만 그 뒤를 따라옵니다. 복잡한 의식은 없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시신 위에 꽃을 더 많이 올려둘 뿐입니다.

화장터에 도착하면 네모 모양으로 쌓은 장작 위에 시신을 올립니다. 시신 위에 다시 장작을 쌓습니다. 머리와 발은 드러나게 하고 나머지 몸은 장작으로 덮습니다. 시신의 입에는 쌀을 넣고 장작 밑에는 짚을 넣어 불이 붙게 합니다.

불을 붙이기 전에 머리를 깎은 상주가 시신을 한 바퀴 돌고, 시신의 발에 이마를 대고 마지막 인사를 하면 화장장이가 불을 붙입니다.

다 타고 남은 재는 모두 강에 흘려보냅니다. 이때 시신을 덮었던 황금색 천은 부정 탄다고 해서 사람들이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 천을 승려들이 입었습니다. 그래서 ‘분소의’라고 합니다.

오늘은 화장터에 사람이 많네요. 이번 성지순례에 참여한 분의 시아버님도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자, 그러면 영가를 위해서 장엄 염불과 해탈주를 하겠습니다. 모두 합장해 주세요.”


스님과 순례단은 화장터를 바라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을 했습니다.


강가강 위에서 장엄염불을 하는 동안 배는 라즈가트(Raj Ghat)에 정착했습니다.

배에서 내려 한결 고요해진 마음과 발걸음으로 사르나트 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고고학 박물관입니다. 유물을 전시한 곳이기 때문에 사진을 일절 찍을 수 없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인도 유적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인도 역사는 4,500여 년 전 인더스 문명이 있었고, 아리안족이 인도 대륙을 점령하면서 아리안 문명이 형성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리안 문명의 마지막 시기에 출현하셨습니다. 부처님 열반 후 마가다국의 후예들이 인도 전역을 통일했습니다. 그들을 ‘마우리안 왕조’라고 합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200년 후 아쇼카 왕 때에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처음으로 기념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념탑이 세워지기 전에는 부처님 성지에 어떠한 흔적도 없었습니다. 마우리안 왕조가 멸망하자 쿠산 왕조가 들어섰습니다. 이 왕조에서는 아쇼카 왕 때 세운 스투파보다 더 큰 스투파를 세웠습니다. 쿠산 왕조 다음은 굽타왕조입니다. 그때에는 더 크게 스투파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불교 유적은 마우리안, 쿠산, 굽타 시대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는 유물은 대부분 굽타 시대의 것입니다.

이곳은 부처님의 초전법륜지이기 때문에 가장 유명한 것은 초전 법륜상입니다. 그러나 인도 국가적 차원에서는 아쇼카 시대에 만든 석주가 유명합니다. 사자 머리가 네 개 달린 석주입니다. 인도의 국장, 동전에도 다 새겨져 있죠. 자, 그러면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스님은 박물관 내부 유물도 30분가량 더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 저의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박물관을 조금 더 둘러보기를 바랍니다.”

참가자들이 박물관을 더 둘러보는 동안 스님은 숙소로 가서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스태프들과 회의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의 첫 설법이 이루어진 사르나트에서 순례단 전체가 모여 수계식을 하고 참배, 예불을 한 후 수자타아카데미로 출발합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금요 즉문즉설에서 질문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말을 안 듣는 아이들, 어떡하죠?

“저는 중국 교포이고, 한국에 온 지 9년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들을 중국에 두고, 혼자 타국에 와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유튜브에서 스님의 강의를 듣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작년 7월에 아이들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려는 생각으로 한국에 데려와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16살이고, 둘째 딸은 13살입니다. 저는 학업보다는 아이들에게 생활 태도를 가르치려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고집도 세고 말을 잘 안 듣습니다. 때가 되면 칫솔질해라, 신은 양말은 빨래통에 넣어라, 손톱을 깎아라, 쓰고 난 물건은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등 매일 이야기를 해도 고쳐지지 않아서 저는 매일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는 엄마가 되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지 막막합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봐야 할까요?”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시키면 아이들에게 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러한지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자란 시골은 음식을 구하기도 어렵고, 초등학교에 가도 선생님이 몇 분 안 계셔서 담임이 없이 지낼 때도 있었고, 농번기가 되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고, 소 먹이고 풀 베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도 직접 밥을 해 먹고 자취를 하면서 다녔어요. 제가 만약 어릴 때 시골이 아니라 미국에 가서 공부를 했다면 지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경제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이 꼭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학교를 다닐 수 없을 정도의 환경이라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바꿔주는 것이 교육 환경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또, 음식을 구할 수 없을 정도라면 제때 먹을 수 있게 하는 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병이 있는데도 치료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제때 치료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리밥 대신 쌀밥을 먹게 해 주거나 시골에서 다니는 학교를 도시로 옮겨주는 걸 두고 꼭 교육 환경이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가 없어요. 이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환경이 그에게 더 좋을지는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들이 자랄 때 엄마가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때는 돈에 미쳐서 돈 번다고 외국에 가버리고 아이들끼리 자라게 둔 것 같네요. 이렇게 되면 아이들의 무의식에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돈이라는 인식이 잡히게 됩니다. ‘오죽 돈이 귀하면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돈을 벌러 갔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아이들도 자라서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지금처럼 중국에서 잘 적응해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갑자기 한국에 데려오면 아이들은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도시로 옮겨놓기만 해도 아이들의 심리가 많이 위축됩니다.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아이들이 서울에만 가도 주변에서 친구들이 놀리는데, 중국에 있다가 한국에 오면 연변 사투리든 중국어든 언어적으로 조금 다르니까 친구들 속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입니다. 또, 중국과 한국은 문화 차이도 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어려움도 발생합니다. 물론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살면서 한국말을 전혀 모르다가 갑자기 한국에 오는 경우보다는 조금 수월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환경이 많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엄마가 그런 걸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돌보지도 않다가 어느 정도 자라서 거기에 적응해 놓으니까 이제는 뿌리째 뽑아서 옮겨 심은 격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앞으로 한국에서 공부해라’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해집니다. 또,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 요즘 아이들은 게임하는 것과 스마트폰 보는 것을 먼저 배웁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도 게임을 많이 하거나 스마트폰을 많이 해서 문제가 되잖아요. 지금은 새로운 곳에 와서 정서가 불안한 상태라서 적응하기도 어려운데, 이런 문화는 또 배우게 됩니다. 나쁜 건 빨리 배운다고 이런 건 또 금방 배웁니다. 한국에 오는 게 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열에 한두 명에게만 좋고 나머지 여덟, 아홉 명에게는 안 좋은 결과가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선 질문자가 판단을 잘못 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중국으로 돌아가서 중국에서 아이들을 돌본 다음, 아이들이 성인이 된 다음 한국으로 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중국에서 자라도록 하고, 질문자는 재정적 지원을 하거나 자주 방문해서 돌보고 질문자의 생활은 한국에서 계속해나가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한국에 데려오게 되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적응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늘 아이들 편에서 이해하고 감싸줘야 합니다. ‘너희들이 여기에 와서 언어도 다르고 적응하기가 어렵지’ 하면서 늘 따뜻하게 말해주고 감싸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엄마는 이 고생을 하면서 일하는데 너희는 여기까지 와서 공부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 이도 제대로 안 닦느냐’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지금 아이들한테는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도 물어보면 할 말이 있습니다. 속으로는 ‘우리가 오고 싶어서 왔나, 당신이 데려오니까 왔지’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뭐든지 불평을 하기 마련입니다. 겉으로 말을 안 해도 ‘엄마는 늘 자기 마음대로 한다, 우리가 어릴 때는 자기 좋다고 한국에 가더니, 지금은 자기 마음대로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여기 있으라고 하고, 또 이것저것 자기 마음대로 시킨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잔소리를 해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효과가 없으면 잔소리예요. 그래서 질문자는 지금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아주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중국에 다시 돌려보내서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마음껏 활동하고 생활하게 하든지, 아니면 질문자가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시간 나는 대로 아이들을 돌보면서 아이들이 적응하기 어려운 점을 늘 이해하고 감싸주어야 합니다. 이를 닦을 때가 되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니’ 하면서 같이 이를 닦자고 제안해서 늘 같이 해야 합니다. 그냥 옆에 서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 하고 시키는 건 효과가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선 질문자가 반성하는 게 좀 필요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마음가짐을 조금 더 넓게 가져서 아이들을 더 포용하고 잘 보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어요?”

“이제 6개월 정도 되었어요.”

“이사하고 첫 1년이 적응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그러니 항상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갑자기 와서 적응하기 어려울 거야’ 이렇게 포용해 주면서 ‘어렵지만 그래도 잘 적응해서 공부하면 미래는 더 나을 수 있어’ 하고 격려해 주는 게 좋아요. ‘미래가 더 낫다’ 이렇게 단정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을 가능성이 있어’ 하고 격려하는 게 좋습니다. 한쪽으로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잘 들어주고 보살피고, 다른 한쪽으로는 잘해나갈 수 있게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줘야 아이들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지금 질문자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보나 마나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너희들은 왜 이걸 안 하느냐’,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건데 너희는 왜 공부를 안 하느냐’, ‘너희가 한국에 올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복인데 그것도 모르고 공부를 안 하느냐’ 이렇게 말할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가 고생한 것만 생각하고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한테는 아무런 교육 효과가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셔야 해요. 지금처럼 계속하면 질문자는 질문자대로 고생을 하고,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안 되기 때문에 자기는 또 실망을 하거나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에는 부모 자식 간에 원수가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꼭 사춘기라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사춘기 때는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말을 안 듣습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것 같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제 스스로 어른이 되려고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듣고, 자기주장대로 하려는 걸 나쁘게 보면 안 돼요.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데다가 지금 이렇게 뿌리가 뽑혀서 새로운 곳에 옮겨졌기 때문에 사실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질문자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이미 몇 년을 살고 있으니까 ‘여기 적응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이렇게 말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안내해 주고, 못하면 다시 하고, 또 못하면 또다시 하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내가 운전을 할 줄 안다고 해서 처음 운전하는 사람에게 ‘그것도 못 하냐, 왼쪽으로 가라니까 왜 오른쪽으로 가냐’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이미 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게 쉽지만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지금 새로운 환경에 와서 적응하는 데 굉장히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네, 아이들을 더 많이 감싸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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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항상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갑자기 와서 적응하기 어려울 거야’ 이렇게 포용해 주면서 ‘어렵지만 그래도 잘 적응해서 공부하면 미래는 더 나을 수 있어’ 하고 격려해 주는 게 좋아요. ‘미래가 더 낫다’ 이렇게 단정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을 가능성이 있어’ 하고 격려하는 게 좋습니다. 한쪽으로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잘 들어주고 보살피고, 다른 한쪽으로는 "

2024-03-25 15:27:59

의천과 지눌이 균등해야지

마가다국 후예가 중요한 게 아니고
법륜스님은 어서 '지눌'을 양성하셔야지요.

지금 의천 대각국사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서
자칫하면 지눌이 기세를 못 펼 수도 있습니다.

의천과 지눌의 기운이
비슷한 힘을 내야 하는데요.


자연 생태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이게 자칫하면 '편해 공생'이 될 수 있습니다.

지눌은 의천만큼 정토회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요?

2024-02-24 17:00:11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1-29 10: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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