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6.7. 논 모 때우기, 화단 정비, 수행법회
“분노하지 않고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나요?”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울력을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6시에 스님은 문수팀, 농사팀 행자님들과 마을 어르신의 논으로 출발했습니다.

얼마 전, 농사팀 행자님들은 마을 어르신의 부탁으로 모내기를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모가 빈 곳이 있었나 봅니다. 어르신은 다시 말하기가 미안하셨는지 행자님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일주일째 빈자리에 모를 심고 있었습니다. 어제 그 사실을 알게 된 스님은 어르신을 찾아뵙고, 남은 빈자리에 모를 다 심어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약속대로 오늘은 어르신의 논에서 울력을 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며 스님은 어르신 논에 모내기를 했던 농사팀 행자님에게 말했습니다.

“행자님, 고마워요. 올해는 해외 답사를 다녀오느라 논에 한 번 못 들어갈 줄 알았는데 덕분에 논에 들어가네요.”

“죄송합니다.” (모두 웃음)

“전문가들은 모가 중간중간 비어도 그 주위 모에 영양분이 더 공급되어서 수확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해요. 그래도 어르신들은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아오신 분들이니까 모가 빈 곳이 신경 쓰이실 수밖에 없어요.”

스님은 행자님을 재치 있게 위로하는 한 편 어르신의 입장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논에 도착해서 곧바로 논장화를 신고 논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르신 논은 총 세 배미, 1800평이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모를 심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이사이 빈 곳에 모를 4-5개씩 심어주면 됩니다. 뜬 모는 걷어서 바깥으로 던져주세요.”



스님과 행자님들은 흩어져서 모가 빈자리를 메꾸기 시작했습니다.


행자님 한 명은 논둑을 말끔히 예초했습니다.

첫 번째 논을 끝내고 다음 논으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은 논장화가 자꾸 빠져서 장화를 벗고 맨발로 논에 들어갔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펴고를 반복하며 논 두 배미에 모를 다 보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배미가 남았습니다. 문수팀 행자님들은 사시예불을 할 때가 되어서 먼저 두북 수련원으로 떠나고 스님과 농사팀 행자님들이 남았습니다.

“얼른 마무리합시다.”

농사팀 행자님들과 남은 논 한 배미에 모를 마저 심고 9시가 다 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수로에서 장화와 장갑을 씻고, 어르신에게 찾아가 인사를 드린 후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발우공양을 하고 오후 2시부터 다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오후에 스님은 무성해진 화단을 정비했습니다.



지난번에 보수한 창고와 화장실 지붕에 물이 새는 곳이 있어 행자님 두 명은 지붕 수리를 했습니다.

각자 맡은 일에 열중하다 보니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스님은 감나무 가지를 당기다가 그만 전지가위에 손이 베였습니다. 간단히 응급처치를 하고 하던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공양을 하고 다시 5시부터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행자님들은 스님에게 휴식을 권했지만 스님은 다시 장갑을 꼈습니다.

“스님, 손도 다치셨는데 이제 그만 쉬세요. 남은 일은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밥을 먹었으면 일을 해야죠.” (웃음)

이번에는 장미, 제피나무 등 길게 뻗은 가시나무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수행법회에 늦지 않도록 6시 30분이 되어 화단 정리를 마쳤습니다.

“시원하네요.”

새벽부터 모를 심고, 울력을 했더니 몸은 고단했지만 말끔해진 화단을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생방송에 접속하자 스님은 지난주에 파키스탄 홍수 피해 구호활동을 다녀온 소식을 영상과 사진으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이 후원해 주신 돈이 이렇게 잘 쓰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후원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어서 해외 일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올봄에는 제가 해외 일정으로 농사를 제대로 못 지었습니다. 그래서 모내기도 한 번 못 해보고 지나가나 했는데 해외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농사팀 행자님들이 새로 농기계 사용법을 배워서 모를 심어놓았는데 줄이 삐딱해서 고속도로가 생겼다고 소문이 났어요. 어르신이 농담으로 ‘넓은 곳은 짐차도 다니고 승용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다’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대중들과 같이 모가 빈 자리에 모를 심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논둑과 밭둑 여기저기에 무성한 풀을 맸습니다. 이렇게 이제 한국에서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웃음)

그리고 주말에 전국의 으뜸절에서 회원들이 봉사활동을 했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다양한 의견을 인정하면 옳고 그름은 어떻게 구분하는지 모르겠다며 분노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바꿔 나가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분노하지 않으면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부처님 법을 만나 공부하면서 저의 많은 고통이 시비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태도가 양비론에 빠지거나, 옳고 그름의 사리 분별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모든 걸 초월한 듯한 태도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분노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불의에 눈감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부당한 상황을 개선하는 사회활동을 해나갈 때 분노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 불교와 다른 종교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얼마 전에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종교인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 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요즘 TV에서 정부의 외교정책을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제가 수행이 부족한 겁니까?’

그러자 기독교 목사님이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그것을 정당한 분노라고 합니다. 그런 분노가 있어야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분노를 정당한 분노라고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이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 중에는 ‘그럼 옳고 그름이 없으니까 스님은 아무것도 안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저는 항상 선택을 하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면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분노하지는 않지만 저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일본의 침략을 막는 일을 할 겁니다. 필요하면 저항 운동을 내가 선택해서 하겠다는 거예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어느 편에 서서 일을 하든지, 그건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거예요. 그럴 때 마음에서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증거입니다. 빨리 마음을 돌이켜서 화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야 됩니다. 그런 상황일 때 나는 이런 선택을 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어린이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북한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저항이 있습니다. 빨갱이라고 부르든지 북한에 가라고 하든지 온갖 비난을 하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죠. 제가 갖고 있는 신념은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서로 이기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는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자랑하면서 북한에서 인공위성을 쏘면 평화를 위협한다고 비난합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에 빠져서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북한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남한 입장에서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 가면 결국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 전쟁은 쌍방에게 엄청난 손해이다.’

게임에서 이기려고 하듯이 경쟁에서 이기겠다고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러나 무력으로 살상 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노동자들이 집회하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조 입장에서는 그럴 만합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불법 시위라고 판단해서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침묵을 하는 게 나을지, 노동자 편에 서는 게 나을지, 정부 편에 서는 게 나을지는 본인이 선택을 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이 길을 가겠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에 따르는 과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혜의 등불로 나를 비추면 나의 괴로움이 사라지고, 지혜의 등불로 주위를 비추면 주위의 고통을 내가 알게 됩니다. 그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없애는 데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장 큰 특징은 깨달음의 지혜입니다. 깨달음의 지혜는 다시 지혜와 자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혜의 등불을 자기 쪽으로 비추는 것은 지혜라고 하고, 타인을 향해서 비추는 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가 구족 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와 다른 행동을 했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볼 때는 그렇다는 것이지 그 사람이 틀렸고 내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는 이 경우에는 이 입장을 취하겠다는 관점을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르고, 믿음도 서로 다르며, 생각도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하나의 믿음으로 인정할 수가 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가 있는 거죠. 저는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을 없애는 붓다의 길을 선택한 겁니다. 이것만 옳고 저것은 틀렸다는 게 아니라 여러 방법 중에 저는 이 길을 선택하겠다는 거죠.

이런 관점을 가지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 다른 체제에서 사는 사람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부탄에 가도 왕이 있고, 중동에 가도 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3.1 운동을 하면서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세웠기 때문에 저는 민(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왕이 세상을 다스리는 나라를 인정합니다, 그런 방식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지난 5천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민(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지향하고, 그 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겁니다.

나와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을 비난할 이유는 없습니다. 여성이라고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계급과 계층으로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피부 빛깔로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저는 사람을 그렇게 차별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며 살겠다는 겁니다. 어디에서나 이런 작은 차별이 일어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또한 인정하겠다는 관점을 갖는다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울로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본래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내가 인천에 살고 있다면 서울 가는 방향이 동쪽이라고 제안을 해야 합니다. 저는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검소하게 살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비는 확대하지 말자. 지구 환경을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해서 너무 많은 소비를 하지 맙시다.’

이런 주장을 늘 합니다. 재산이 많고 적고 간에 개인이 소비를 자꾸 늘리면 우리 모두가 함께 써야 할 재화를 개인이 과도하게 쓰게 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생존에 위협을 주고, 지구 환경의 위기를 초래하여 모두를 고통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저는 과소비가 큰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그걸 범죄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부러워하죠. 저는 그걸 절대로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법으로는 범죄라고 규정되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과소비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습니다.

정토회는 환경을 살리는 쪽으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쪽으로,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 쪽으로 가자는 입장을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을 빌지 않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롭지 않은 삶을 살자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이런 입장이 분명히 있는데 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남방불교의 스님들 중에는 본인이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사람과는 만나지도 않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단식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 같이 앉아서 고기 먹는 사람, 담배를 피우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면 대화를 할 이유가 없지만 필요하면 대화를 합니다. 저는 그들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지만 본인은 그렇게 하겠다는 걸 어떡하겠어요? 물론 그런 행동이 남을 해쳐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섯 가지 계율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바른 길을 권유하자는 관점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라는 말씀에 깊은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분노하는 마음이 들 때는 마음을 잘 살펴서 저와 주변을 잘 비추는 지혜의 등불을 밝혀 보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정토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설문평가에 솔직히 답변을 해주는데 그대로 전달하면 진행자들이 감정이 상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어떡하죠?

  • 나눔의 장을 다녀온 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일상복귀 후 도반의 사연에 대한 감정이 일어나 마음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 딸아이가 자꾸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반복적으로 왕따와 학교폭력을 당했고,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벌써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밤 9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서울로 이동하여 오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하고, 오후에는 ‘전쟁, 생명, 평화의 새로운 인식’을 주제로 열리는 평화재단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7

0/200

드림하이

지혜의 등불로 나를 비추면 나의 괴로움이 사라지고, 지혜의 등불로 주위를 비추면 주위의 고통을 내가 알게 됩니다. "

2023-08-23 22:43:28

지금여기

스님의 지혜로운 법문 감사합니다

2023-06-16 08:38:32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6-15 09:48:4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