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6.6 국화 삽목, 산윗밭 풀매기
“동생이 말기 암에 걸렸어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랜만에 두북 수련원에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했습니다.

어젯밤 길벗 강연을 마치고 서울 정토회관에서 잠을 잔 후 새벽 4시에 일어나 곧바로 두북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3시간 30분을 달려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지난 두 달 동안 해외를 답사하는 동안 텃밭이며 화단이 무성해져 있었습니다.

아침 공양을 하고 11시부터 예비 법사교육을 받고 있는 화엄반 문수팀 행자님들과 함께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행자님들은 상추를 따고, 앵두를 땄습니다. 고수는 씨를 받기 위해 밭에 두기로 했습니다.


화분에 심은 국화도 잎이 무성해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국화순을 가지런히 잘라주었습니다.


잘라 낸 국화순은 빈 화분에 심었습니다. 잎이 많으면 수분이 날아가 뿌리를 내리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윗 잎만 남겨놓고 다듬었습니다. 화분에 물을 듬뿍 준 후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국화를 쏙쏙 심었습니다.




다 심고 나서 한 번 더 물을 충분히 준 후 그늘에 화분을 옮겨두었습니다.

고수밭 사이사이 잡초도 맸습니다.

12시 30분까지 울력을 하고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공양을 하는 중에 마을 어르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 전 농사팀에서 마을 어르신의 논에 이앙기로 모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중간 모가 비어 있어서 할머니가 일주일째 논에 나가 모를 채워서 심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뜨거운 날씨에 매일 논에 나가는 할머니가 걱정되어 할아버지가 대신 스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스님과 행자님들은 함께 어르신의 논으로 가보았습니다.

어르신의 논에 가서 살펴보니 사이사이 모가 없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워낙 잘못 심었을 거라 예상하고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잘했네요.” (웃음)

논을 둘러보고 마을 어르신을 찾아뵈었습니다.

“아이고, 영감이 괜히 이야기를 해서 스님을 오게 만들었네.”

“진작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그럼 저희들이 얼른 와서 했을 텐데요.”

“젊은 사람들한테 이야기하기가 그랬지. 그래도 동네 사람들 보기에 남사스러워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있어야지.”

어르신은 답답했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풀어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스님이 사과를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내일 아침 일찍 와서 모를 마저 심어놓을게요.”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저녁공양을 하고 햇살이 한풀 꺾인 오후 6시에 행자님들과 다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산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산윗밭은 올라가는 길부터 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길부터 예초를 해야겠네요.” (웃음)

산윗밭도 온통 풀밭이었습니다. 행자님들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저희들이 한 달 전에 풀을 싹 맸는데 풀이 더 많이 자라 있네요.”

풀이 얼마나 잘 자랐는지 문수팀 중에서 키가 제일 큰 행자님보다도 더 컸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람이 풀보다 작으면 어떡해요?” (모두 웃음)

아랫단, 윗단을 살펴보고 윗단부터 풀을 매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모란밭 두 두둑만 풀을 맵시다.”

2인 1조로 한 명이 먼저 낫을 들고 큰 풀을 베어나가고, 뒤이어 한 명이 호미로 작은 풀을 꼼꼼히 맸습니다.


엄청나게 자란 풀을 뽑으며 행자님들은 “인류가 왜 농기계를 개발했는지 알겠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행자님들의 대화를 듣고 스님이 말했습니다.

“풀이 잘 자란다는 건 그만큼 지구가 생명력이 있다는 거니까 좋은 일이에요.”

“그렇네요. 스님”

시간이 지나자 모란밭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큰 풀을 어느 정도 다 베자 스님도 낫을 놓고 호미를 들었습니다. 한참 풀을 매고 있는데 호미가 뚝 부러졌습니다.

“아이고, 쑥 뿌리가 얼마나 센 지 호미가 부러져버렸어요.”

호미를 바꿔 계속 풀을 맸습니다.

울력을 하다가 저녁 7시가 되자 행자님들은 밭 한 편에 베어 놓은 풀을 깔고 저녁예불을 드렸습니다.

예불을 드리고 계속 울력을 이어갔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은 모란밭 두 두둑을 다 매고 어느덧 도라지 밭까지 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만하자는 말없이 계속 밭을 맸습니다.


저녁 8시가 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도구를 정리해 밭을 내려왔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가는 사이 날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스님은 울력을 마치고 씻은 후 원고 교정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어르신의 논에 가서 모를 심고, 오후에도 밀린 울력을 한 후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어제 길벗 강연에서 있었던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동생이 말기 암에 걸렸어요.

“동생이 유방암 4기 항암 투병 중입니다. 현재 저희 어머니께서 동생 가까이에서 동생을 돌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번은 동생이 자기가 암에 걸린 이유가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동생이 아프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동생을 돌보면서 그런 말을 듣게 되는 어머니의 건강도 걱정입니다. 동생이 너무 부정적이고 원망 어린 말을 쏟아낼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불안하고 걱정이 많아지니 감정 조절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의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이제 일흔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어머니도 치매나 암에 걸릴까 봐 걱정이 됩니다.”

“어머니와 유방암 4기인 동생 중에 지금 누가 더 급해요?”

“동생이요.”

“더 급한 사람이 어떤 말이든 막 쏟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동생이 하는 말을 자꾸 어머니와 연결 지어 생각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보세요. 동생은 무슨 말이든 자기 마음에 있는 걸 쏟아내는 게 정상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동생에게는 더 좋은 일이에요. 동생은 곧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죽을 때 죽더라도 자기 속에 있는 상처를 마음껏 쏟아 내고 죽는 게 낫죠. 그리고 그런 말들을 다 쏟아내야 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스님이 가끔 ‘남편이 술 먹는 걸 보약이라고 생각해라’ 이렇게 얘기하니까 술이 어떻게 보약이냐고 들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술을 먹는 이유는 내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다 풀면 아내가 받아줄까요? 싸움이 나서 같이 못 살게 되겠죠. 그래서 남편은 술을 먹는 것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겁니다. 술만 생각하면 나쁘지만 생명적 관점에서 보면 술을 마셔서 하루하루 생명줄이 더 길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술이 약이라고 하는 겁니다.

약과 독이 따로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작용하면 술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약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쪽으로 작용하면 산삼이라 해도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낫게 하면 약이고, 건강을 나쁘게 하면 독인 거예요. 음식이 맛있다고 과식을 하는 것도 다 독이 되는 일입니다. 입에는 맛있지만 몸에는 독이에요. 특히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그렇습니다. 요즘은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두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도록 해서 키우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의 몸에 독성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독성이 든 고기를 많이 먹게 되면 여러분들의 몸에도 다 독이 되는 겁니다. 약과 독이 본래 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 스님이 건강이 안 좋은데 고기 몇 점을 먹었더니 원기를 회복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게 고기예요, 약이에요? 그때는 약이 되는 겁니다. 고기를 안 먹는다고 고집하다가 건강이 나빠지면 본인만 손해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약을 안 먹어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교적인 믿음 때문에 수혈을 안 해서 죽는 사람도 간혹 있고요. 이런 것은 믿음의 영역에서 생기는 일들입니다.

동생이 그런 식으로 마음속에 있는 한을 풀어내는 것은 오히려 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조금이나마 수명이 더 연장될 수도 있고요. ‘한을 품고 죽으면 원귀가 된다’ 하는 말이 있듯이 설령 죽더라도 한을 풀고 죽는 것이 동생에게 더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 동생이 마음껏 얘기하도록 오히려 맞장구를 쳐주면서 들어주면 됩니다.

‘그래 네가 어릴 때 참 힘들었지. 언니가 여태껏 잘 몰라줘서 미안해’

이렇게 얘기해 주고 동생의 말을 많이 들어주세요. 엄마도 딸에게 ‘내가 널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됩니다.

‘엄마도 부족해서 그랬어. 지금이라도 옛날에 마음 아팠던 거 전부 얘기하렴’

이런 식으로 아픈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동생의 얘기를 온전히 들어줄 수준이 안 되면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엄마를 나무랄 수도 없어요. 엄마도 자신의 한이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엄마가 동생의 얘기를 못 들어줄 상태라면 동생의 얘기는 질문자가 들어주되 그 내용을 엄마에게 전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만약 동생이 엄마한테 하소연할 때 엄마가 받아줄 상태가 아니라면 엄마에게 이렇게 제안해 보세요.

‘엄마, 동생이 많이 아프고 힘든데 죽기 전에 속에 있는 얘기라도 다 하고 죽도록 우리가 좀 풀어주면 어떨까요?’

너무 살고 죽는 것에 연연해서 생각하지 말고 동생의 한을 풀어준다는 관점을 가져 보세요. 한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한을 풀게 되면 어쩌면 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살고 죽는 것에 너무 매달리면 나중에 동생이 죽게 되었을 때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4기까지 진행된 암이라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어요. 전체적인 통계를 보면 확률이라는 게 있잖아요. 암이 4기까지 진행된 사람도 천 명 중에 한 명은 살 수가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치료를 받아서 사는 게 아니고, 생명의 원리에 의해서 살아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다만 확률이 매우 낮죠. 대부분은 의사의 진단대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진단을 받은 사람이 갑자기 기독교를 믿어서 나았거나, 절을 하고 기도해서 나았다고 하면 난리가 나죠. 제 말은 자연적 생명의 원리에 의해서 살아날 확률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천 명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은 수치로 계산하면 0.1%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종종 살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사가 예측한 대로 동생이 죽게 되면 사별을 할 수밖에 없고, 조금 더 길게 연명이 되면 그것대로 동생의 옆에 있어주세요. 살아나면 살아나는 대로 기쁘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동생을 보살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동생의 한을 풀어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동생이 악담을 하고 화를 내면 낼수록 동생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기쁘게 들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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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채이

질문자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으로 저에게 귀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

2023-10-02 22:29:46

드림하이

너무 살고 죽는 것에 연연해서 생각하지 말고 동생의 한을 풀어준다는 관점을 가져 보세요. 한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한을 풀게 되면 어쩌면 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살고 죽는 것에 너무 매달리면 나중에 동생이 죽게 되었을 때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2023-08-23 22:23:09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6-14 13: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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