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6.5 전법회원 법회, 공동체 공청회, 길벗 강연
"배우를 준비한 지 10년, 이 길이 맞는지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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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법 회원들이 정일사 정진을 입재하는 날이고, 방송영화연극예술인들의 모임인 '길벗'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에 전법회원 법회를 하기 위해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정토연수원 원장님이 정일사(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 입재에 대해 안내를 한 후, 전법회원 모두가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정일사는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전법회원들의 정기 수련 프로그램의 약자입니다. 출가한 스님들이 일 년에 두 번 안거를 통해 수행의 깊이를 더해 가듯이 정일사는 수행자인 전법회원들의 안거에 해당하는 집중 정진 프로그램입니다.

스님은 정진을 시작하는 전법회원들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공동체입니다. 수행이란 우리의 괴로움이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달아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돈이나 집이 없어서 괴롭다’, ‘취직이 안 되어서 괴롭다’, ‘너무 덥거나 추워서 괴롭다’,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괴롭다’, ‘아내가 집안일에 충실하지 않아서 괴롭다’,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많이 해서 괴롭다’ 하는 것처럼 우리가 괴롭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이 있죠. 그럴 때마다 우리는 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이 바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괴로움의 원인에 해당하는 바깥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편이나 자식이 변화하거나, 돈을 많이 벌게 되거나, 지위가 높아지거나, 날씨가 시원하고 따뜻해지는 것처럼 변화가 바깥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아우성을 치며 나보다 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심리가 바로 종교가 발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밖을 향한 시선을 안으로 돌이키기

수행과 종교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점에서 똑같은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완전히 다릅니다. 정토회가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닌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행적 관점을 분명히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바로 정토회입니다.

그래서 정토회 회원이 가져야 할 첫 번째 관점은 남을 탓하거나 바깥을 탓하는 자세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괴롭지 않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꾸 남 탓을 하게 되곤 합니다. 나에게로 향해야 할 시선이 바깥으로 향할 때를 알아차려서 돌이키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은 어떤 특별한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수행마저도 형식에 치우쳐서 염불을 많이 해야 한다거나, 절을 많이 해야 한다거나, 참선을 오래 하면 좋다는 식으로 수행을 일로 삼아서 합니다. 수행을 일로 삼아서 하면 수행이 잘 안 된다고 힘들어하게 됩니다.

수행의 목표는 밖을 향한 시선을 안으로 돌이키는 것이고, 그것을 일상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시선을 안으로 돌이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만큼은 안으로 돌이키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를 되돌아봤을 때 놓친 것이 있으면 알아차려서 다음에는 놓치지 않도록 참회를 해야 합니다. 물론 매 순간에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놓친 뒤에라도 재빠르게 알아차려서 그것이 마음에 남아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늘 깨어있으면서 괴롭지 않은 상태로 사는 것이 수행의 목표입니다. 죽기 전에 깨달아서 죽기 직전에 잠시 괴롭지 않은 삶을 맛보고 죽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일상에서 괴롭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늘 깨어있기가 쉽지가 않죠. 그래서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는 괴로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 괴로움을 축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과거의 괴로움까지 쌓아서 상처로 남겨 두지는 말아야 합니다. 조금씩 쌓인 것이 있다면 아침마다 수행하는 시간에 청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을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고, 도와달라고 구걸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남은 에너지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데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점검하는 시간

전법회원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첫째, 내가 괴롭지 않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도 괴롭지 않게 살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진행하고, 깨달음의 장을 운영하고, 유튜브와 책을 통해 법문을 널리 전하는 것이 전법회원들의 주된 역할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기본적인 생활도 영위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 것도 전법회원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일도 많이 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스스로를 괴로움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수행의 원칙을 놓치게 됩니다. 전법을 하다가 너무 욕심을 내거나, 남을 돕는 일에 너무 욕심을 내거나,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하게 되면, 좋은 일을 하면서도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발생합니다. 또 이러한 일로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일 년에 두 차례씩 자기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자기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수행자라는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놓쳐버리고 계속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수행하는 시간을 가져서 자기 점검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느새 형식적으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본분이 무엇이었는지,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일사’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일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2주 동안은 다른 활동을 좀 못하더라도 정진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수련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법회원들은 어떤 마음으로 정진을 해야 하는지 가슴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은퇴를 한 후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정동표, 봉금례,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외 활동은 대부분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대중이 하고 있는데, 두 분은 직장을 다니다가 일찍 은퇴를 하고 활동을 시작한 경우입니다. 이런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두 분의 수행담을 자세히 들어보았습니다.


큰 박수로 두 분의 활동을 격려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세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사홍서원으로 법회를 마친 후 전법회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정일사 수련을 시작하면서 각자의 수행 과제를 선정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방송실을 나와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12시부터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손님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온 스님은 오후 4시부터 공동체지부 공청회에 참석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공동체지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함께 공유하고, 이번 달에 새로 진행하는 행사들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지난 4월과 5월에 진행된 스님의 해외 답사 일정 이후 공동체지부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나갈 것인지 여러 가지 의견들을 수렴했습니다. 특히 이번에 스님과 함께 동행을 했던 활동가들이 많은 의견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여러 가지 의견들을 경청한 후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번에 동남아 지역을 답사하고 나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앞으로 정토회 안에 국제협력을 담당하는 부서가 신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의 활동가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검토해서 맞춤형 지원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과 유럽에 세계 전법을 해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동남아 지역을 답사하면서 오히려 불교문화를 갖고 있는 동남아 지역에서 실천 불교를 알려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남아 사람들에게 실천 불교를 새롭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방법을 함께 연구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50여 일 동안의 해외 답사 결과 많은 과제들이 도출되었습니다. 하나씩 실행 계획을 세워나가기로 하고 공동체 지부 공청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길벗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송, 영화, 연극에 종사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지난 3년 동안 길벗 강연회는 온라인으로만 진행이 되었는데요. 3년만에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배우 조인성 씨가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반가워요! 잘 지냈어요?”

“네, 스님도 잘 지내셨습니까?”

스님은 지하 대강당 한쪽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일찍 도착한 배우들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했던 배우들도 보이고, 드라마 ‘더 글로리’에 출연했던 배우들도 보였습니다.

7시 정각에 스님은 배우들과 함께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길벗 모임이 지난 20년 동안 걸어온 길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회자가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 온라인으로 진행된 JTS 거리모금에서 길벗 회원들 521명이 참여하여 2천 7백여 만 원을 모금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수고한 길벗 회원들 모두에게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길벗 대표인 노희경 작가님이 무대에 올라 왜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지 소개했습니다.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다섯 명이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서 ‘우리는 왜 괴로운가’ 하고 대화를 나눠보았습니다. 일거리가 없는 사람은 일거리가 없어서 괴롭고, 일거리가 많고 돈도 많고 명예가 있는 사람도 그들 나름대로 괴롭고, 왜 우리는 괴로운 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인기를 얻게 되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생계의 노역에서 벗어나게 되면 더 즐거울 줄 알았는데,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마음이 더 불안해졌습니다. 왜 그런지 매일 모여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 함께 공부해 보자는 취지에서 길벗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고민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공부해서 정말 행복해졌는지 묻는다면 저는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제가 행복해지니까 주위도 돌아봐집니다. 나보다 어려운 조건에 놓인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게 되었고, 내가 가진 행복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즐겁고 유익한 길벗 모임에 여러분들이 많이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곧이어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본 후 박수갈채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며칠 전 파키스탄에 홍수 피해 구호활동을 다녀왔는데요. 먼저 그 소식을 영상과 함께 소개해 주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웃으며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파키스탄에 홍수 피해가 난 소식을 보니까 질문을 하기가 좀 어색하죠? (웃음) 옛날부터 자기 손톱 밑에 있는 가시가 제일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그들대로 고통이 있는 것이고, 여러분 개인은 개인대로 각자의 인생 문제가 가장 큰 고통인 법입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배우니 작가니 하는 생각도 다 내려놓고, 그냥 친구끼리 대화하듯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일곱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신청했습니다. 대화가 끝나면 즉석에서 질문을 추가로 받기로 하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시작부터 아주 활기찬 분위기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배우가 되기 위해 준비한 지 10년이 흘렀는데 이 길이 맞는지 회의감이 계속 든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배우를 준비한 지 10년, 이 길이 맞는지 고민입니다

“제가 배우를 준비한 지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20대 때는 솔직히 크게 걱정도 없었고 조급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서른이 딱 되고 보니 이 길이 맞는지, 여태까지 해온 게 잘한 건지, 잘했다는 게 어떤 건지, 여러 생각들이 계속 듭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렀을 때 자존감이 더 낮아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싶습니다. 이런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배우라는 인기 직종에 종사하여 10년을 했는데도 아직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니까 초조한 마음이 들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모든 배우가 다 유명해질 수는 없잖아요. 모든 스님들이 다 유명해질 수도 없고, 모든 정치인이 다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모든 작가가 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는 없잖습니까? 모든 사람이 유명해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가 이 직업을 갖고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재고를 좀 해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생활은 아니라 하더라도 월세방이라도 하나 갖고 세끼 밥은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연기 활동으로는 생존의 문제도 해결이 안 된다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연기만 해서는 밥을 못 먹으니까요.

또는 직종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이지만 이것 갖고는 생계유지가 어렵다면 그만둬야죠. 갑자기 재난이 일어날 경우에 아무리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있어도 당장 급하면 생존을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해야 되잖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가난한 시절에는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전공을 다 버리고 미국에 가서 접시를 닦으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그들의 고향에 가보면 대부분 학벌이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선생님이나 판사를 하는 것보다 한국에 가서 막노동을 하는 게 열 배 내지 스무 배나 월급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을 하는 겁니다. 그것처럼 전공을 살릴 수 있으면 좋지만, 때로는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좋지만, 원하는 일을 하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면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해야 되는 겁니다.

저도 스님이 되고 나서 절에서 목탁만 치고 있었으면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불교를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에 기존의 불교를 벗어나서 절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오니까 아무런 기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방을 하나 얻어서 ‘여기에 새로운 길이 있다’ 하면서 전단지를 천 장쯤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는 날에 달랑 세 명이 왔어요. 두 번째 강의를 하는 날에는 두 명이 떨어지고 한 명만 남았어요. 그런데 강의 프로그램이 3개월 코스였습니다. (웃음)

세 명이 모두 그만두면 새로 광고를 내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한 명만 달랑 남으니까 새로 시작하기가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한 명을 데리고 3개월 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광고를 냈더니 그 한 명이 다섯 명을 데리고 왔어요. 이것이 정토불교대학의 출발이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가려면 이 정도로 각오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사무실 유지비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하는 것을 병행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습니다. 시골 출신이니까 장학금이 나와도 학비만 주지 생활비는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쳐서 생활비를 벌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돈을 모아 사무실 유지비를 내고 정토회를 시작했습니다.

출가한 스님이 학원 선생님을 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러나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일단 생계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하는 불교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들 밖에 없었습니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불교에 관심이 없었어요. 저한테 배운 대학생들이 졸업을 한 뒤 직장을 다니게 되자 회비를 낼 수 있게 되었고, 그 돈을 모아서 정토회가 자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질문자도 이런 식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려면 이런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면서 사는 길도 있습니다. 어떤 길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모두 자신의 선택입니다.

배우의 길을 가려면 ‘빨리 유명해지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모든 배우 지망생이 빨리 유명해 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물이 좋고 키가 커서 빨리 유명해진 사람은 부모의 덕이지 본인의 실력은 아니잖아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연기력을 키워야 합니다. 연기력으로 선발이 되려면 인생 경험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학교 공부만 하거나, 대본 연습만 해서는 연기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힘든 것들을 경험해보고, 인생을 힘들게 살아봐야 연기를 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나는 연기를 하고 싶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연기 연습이기 때문입니다. 택배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그것은 곧 택배 기사를 연기하는 것이고,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그것은 곧 청소부 연기를 하는 것이고, 심부름을 한다면 심부름하는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연기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인생을 전부 연기로 봐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연기로 생계유지가 안 되면 부업을 하나 가지면 됩니다. ‘이것도 연기 연습이다’ 하는 관점을 갖고 부업을 해야 합니다.

만약 생계유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너무 빨리 유명해지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세상 경험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여행도 많이 해야 합니다. 여행을 할 때도 무전여행을 해야 합니다. 좋은 호텔에서 먹고 자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제 3세계에 구호활동을 자주 가는데, 현지 사람들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금방 친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어릴 때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려운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가자마자 어떤 상황인지 바로 파악이 됩니다. 대학에서 긴급구호에 대한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해서 저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가자마자 바로 상황 파악이 되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 경험 자체가 교육이지 꼭 대학에 가거나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것만이 교육이 아닙니다.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조급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기만 해서는 생계유지가 안 되면 아르바이트와 연기 연습을 동시에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생계유지에 문제가 없다면 더 편안하게 다양한 경험을 하면 됩니다. 내가 유명해지고 싶다고 해서 누가 나를 알아봐 줍니까. 연기자를 선발할 때는 연기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연기 실력이 좋아야 발탁이 될 것 아닙니까? 연기자를 선발하는 사람들은 그 배우가 돈을 주는 값어치만큼 연기를 잘할 수 있겠는지 이해타산을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를 선발하는 선택권은 질문자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선택을 못 받았다고 낙담할 게 아닙니다. 오히려 오디션에 떨어지는 것도 연기 경험으로 삼으면 다음에 직장에서 해고당한 실업자 연기를 할 때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오디션도 많이 보면 기술이 늘어나잖아요. 이런 식으로 어떤 것도 피하지 말고 모두 연기를 위한 연습으로 생각하고 매 순간을 온전하게 경험해 보세요.

서른 살에는 30대가 된 게 굉장히 나이를 많이 먹은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올해 71세가 된 제가 30세가 된 질문자를 볼 때는 아직 열두 번을 더 실패해도 괜찮은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40세까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저도 온갖 실패를 겪다가 30대 후반에 정토회를 시작해서 오늘의 정토회에 이르렀어요.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 하는 관점을 가져 보면 좋겠습니다.

책을 보고 배운 기교적인 연기는 오래 못 갑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해야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조인성 씨 사례를 이야기해 볼게요. 배우 조인성 씨가 지난번에 저와 함께 로힝야 난민캠프에 갔어요. 저와 함께 다니려면 값싼 비행기를 타야 해서 여러 곳을 경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첫 번째 비행기가 운행이 늦어져서 그다음 비행기를 탈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결국 함께 동행한 JTS 대표님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방법을 마련했어요. 조인성 씨가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모가디슈’라는 영화를 촬영할 때 원래 대본에 없던 긴급 상황에서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감독도 생각하지 못한 연기를 조인성 씨가 제안했다고 해요.

이렇게 온갖 경험이 연기를 하는 데에 밑거름이 됩니다.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징어 게임에서 배우 오영수 씨도 나이 70이 넘어서 할아버지 역할을 잘해서 골든 글로브 상을 받지 않았습니까? 30대에는 서른이 되었다며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40대가 되어서 돌아보면 그때가 한창때였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어도 괜찮은 때라고 볼 수 있어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했으면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정말로 고민할 게 없네요.”

“아주 큰 깨달음을 얻으셨네요.” (웃음)

이 외에도 방송, 영화, 연극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질문했던 분들의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 밝아진 얼굴로 짧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겪었던 실패들을 찬란한 실패로 생각한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바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집착 덩어리인 줄 몰랐습니다.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고 보니 별일 아니었다는 소감에 청중들도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질문한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내어놓기 어려운데 용기를 내어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 모두가 많이 배웠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분들께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가을에도 길벗 강연회를 할 예정인데 많이들 오실 거죠? 가을에 다시 뵙겠습니다.”

스님은 입구에 서서 강연장 밖으로 나가는 참가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넸습니다.

참가자가 모두 나가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만 모두 모여서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길벗, 파이팅!”

이것으로 서른 번째 길벗 강연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아주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한 후 하루 종일 화엄반 행자들과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84

0/200

드림하이

길벗모임의 취지가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기에 안성맞춤이네요 ~

2023-08-23 22:13:29

박용삼

감동적이었습니다

2023-06-26 22:06:00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6-14 13: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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