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3.31 공동체 나들이 2일째, 천전리 반구대 암각화, 금요 즉문즉설
“왕따를 당한 이후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힘듭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공동체 지부 활동가들과 함께 하는 봄나들이 2일째 날입니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다 함께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7시에 천전리 각석을 보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차로 20분을 달려 천전리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냇가에 활짝 핀 복사꽃이 모두를 반겨 주었습니다.

대곡천을 건너 계단을 내려가니 바위 기슭에 각종 도형과 글, 그림이 생겨진 암석이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암석에 새겨진 그림을 보고 신기해하자 스님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 천전리 각석은 국보입니다. 여기는 제가 어릴 때 물놀이를 자주 했던 곳이에요. 이 바위 밑에서 사람들이 굿을 많이 했습니다. 문화 유적인 줄 모르고 지냈는데 이곳에서 화랑들이 활동을 했다고 해서 학술조사단이 답사를 하다가 1970년에 이 각석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요.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윗단에는 세모, 동그라미 등 해석을 하기 어려운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밑단에는 신라시대에 사람들이 새겨 놓은 글자들이 보입니다. 글자의 내용은 진흥왕이 어릴 때에 어머니를 따라 이곳을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입니다.”

모두 암석에 새겨진 글자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스님은 다시 반대편을 가리켰습니다.

“반대편에는 퇴적암 위에 공룡 발자국이 군데군데 새겨져 있어요. 강을 건너가서 살펴보겠습니다.”

강을 건너가 보니 바위 위에 공룡 발자국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 여기서 물놀이를 할 때는 이것이 공룡 발자국인지도 모르고 놀았어요.” (웃음)

주위를 둘러보니 강과 산, 바위가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계곡을 따라 산길을 걸으며 진달래, 개나리, 복사꽃 등 온갖 꽃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새싹들은 연두색 빛을 발했습니다.


싱그러운 봄기운을 느끼며 도반들과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반구대 암각화에 도착했습니다.

망원경이 여러 대 세워져 있고, 반대편 절벽 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 보였습니다.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2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 사냥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선사인들의 바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니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9시 20분부터는 다 함께 공동 울력을 했습니다.

양파 북돋기, 당근 심기, 봄나물 캐기, 밭두둑 만들기, 김매기, 지붕 수리하기, 데크 철거하기, 폐자재 정리, 재활용 물품 정리, 점심식사 준비 등 각 일감 별로 흩어져서 일을 했습니다.




스님은 데크를 철거하고 다래나무 가지를 쳤습니다. 땀을 흠뻑 흘리며 노동을 한 후 12시에 모두 농막으로 모여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사용한 공간을 깨끗이 청소하고 각자 처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대중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어떤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 자주 모여서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공동체 대중들이 다 같이 모여서 꽃구경도 하고, 울력도 한 것 같습니다. 한 해에 몇 차례씩 틈나는 대로 공동 울력을 하지만, 공동체가 흩어져 있다 보니까 한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덜 들만큼 따로따로 일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공동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조금 더 자주 공동 울력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꼭 두북 수련원에서만 할 게 아니라 문경 수련원에서도 하고, 봉화 수련원에서도 하고,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도 공동 울력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 종교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절에 출가하는 승려의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마치 대학에 입학생 수가 적으면 교수가 책임을 져야 되는 것처럼 주지가 된 사람은 절에 사람이 안 들어오면 책임을 져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 보니 각 사찰에서도 사람들의 요구에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입학생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하니까 그게 제일 겁나는 겁니다. 이렇게 사회적인 변화로 인해 기존의 원칙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는 것 같아요.

원칙을 지키면서도 자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만들려면

정토회도 지금 공동체 안에 사람들이 안 들어오고 있잖아요. 그래서 대중들의 요구에 맞춰서 갈 것인지, 원칙대로 갈 것인지, 이런 논의가 계속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안 들어오면 문을 닫으면 되니까요. (웃음)

‘원칙을 어느 정도 지켜가면서 자유롭고, 자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자꾸 가다 보면 수행자의 원칙이 없어지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도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반대로 원칙만 너무 강조하면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에서 세상이 어떻든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얘기를 나누어 보면 좋겠어요. 각자의 요구가 서로 다른데, 각자의 요구를 다 수용하면 과연 어떻게 되는지, 무조건 원칙만 정해놓았을 때 우리의 다양성이 어느 정도 존중이 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중도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공청회를 매 달 하거나, 분과별로 논의를 해가면서 함께 만들어 갑시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모인 것이라는 관점을 앞으로 계속 토론해 나갔으면 합니다.”

이어서 전체 대중이 돌아가며 1박 2일 동안 나들이를 함께 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푹 쉬는 시간이 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꽃과 같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어떻게든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 스님의 마음을 느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어버이보다 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꽃을 보면서 도반들이 티 없이 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까 더 행복했습니다.”


“제가 일 중독인데, 일을 쉬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해서 좋았습니다.”

“이번에는 평지를 걸어서 몸이 불편한 분들도 모두 함께 해서 더욱 좋았어요.”

......

한 명 한 명의 소감을 듣다 보니 스님의 배려 덕분에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음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홍서원을 한 후 1박 2일 동안의 봄나들이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운동장으로 나와 서울, 문경 등 각 처소로 향하는 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56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활짝 웃으며 봄소식을 전했습니다.

“올해는 꽃들이 예년보다 일찍 폈습니다. 벚꽃이 활짝 핀 것을 넘어서서 지금은 눈처럼 꽃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두북 수련원 앞에도 벚꽃이 아주 복스럽게 피어 있습니다. 지금은 벚꽃이 지면서 복사꽃이 빨갛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이런 좋은 봄날에 여러분들을 만나서 더욱 반갑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왕따를 당한 경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는데요.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얼굴이 점점 밝아졌습니다.

왕따를 당한 이후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힘듭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왕따를 당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지난 한 달 동안 어두워진 성격을 다시 고치고 적응을 어느 정도 한 상태입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안 좋은 기억이 많았기 때문에 대학생이 된 지금은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너무 과도하게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최근 생각이 많아진 탓인지 사람을 만나는 게 다시 불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사람을 만날 때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깊이 친해질 수 있는 친구를 꼭 사귀고 싶습니다. 저는 얼굴만 아는 사이가 전부인데 다른 친구들은 깊이 친해져서 같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학 생활이 계속 흘러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한 반에 학생이 30명인데 반에서 공부를 10등 하면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들어가요? 못하는 축에 들어가요.”

“잘하는 축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10등 하는 사람은 자기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할까요?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할까요?”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더 올라가고 싶은 욕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하고 자꾸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등을 하거나 5등을 하는 사람하고 자기를 비교하기 때문에 자기 실력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 학생은 5등을 해도 자신이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1등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100만 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우리가 보기에는 ‘오! 부자네! 저 사람은 더 이상 부러울 게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정작 그 사람한테 물어보면 안 그래요. 그 사람은 자신보다 재산이 없는 사람하고 절대로 비교를 안 합니다. 본인은 1000만 불을 가진 사람하고 비교해서 자신의 재산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비교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열등의식도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거예요.

한 반에 오토바이를 가진 학생이 5명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이 부러워서 부모님께 오토바이를 사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부모가 못 사준다고 하면 ‘우리 반에는 누구누구도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오토바이가 없는 아이를 생각하면서 ‘아, 내 친구도 오토바이가 없으니까 나도 오토바이가 없어도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오토바이가 있는 친구하고 비교해서 ‘왜 안 사주냐?’ 하고 불평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성 교제를 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체 통계를 내면 MZ세대의 60퍼센트가 이성 교제 없이 지내는 사람이라고 해요. 그런데도 내 눈에 들어오는 건 남자와 여자가 손잡고 가는 것만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재들은 저렇게 연애하는데 왜 나는 연애를 못 할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 눈에는 아주 친해 보이는 사람들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끝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지금 아무 문제가 없어요.

사람을 사귀는 데에는 깊이 사귀고 얕게 사귀고 이런 게 없어요. 이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그냥 알고 지내는 것이지 그중에 일을 같이 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마음이 통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을 뿐입니다. 일을 같이 한다고 깊이 사귀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통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고 깊이 사귀는 것도 아니에요.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뜻이 맞아서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고, 연애해서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연애만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자주 만나지만 연애까지는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수 만 종류의 경우 수가 생깁니다. 그중에 몇 개의 경우의 수를 보고 ’ 나는 왜 저렇게 안 될까’ 이렇게 생각하면 질문자는 죽을 때까지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가야 해요.

질문자는 지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도 안 사귀어도 사람이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고, 많은 사람을 사귀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연애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연애를 안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왜 연애를 안 하면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는 연애를 안 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결혼을 안 한 것이 왜 문제예요? 요즘은 결혼을 안 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기를 안 낳는 게 왜 문제예요? 앞으로는 아기를 안 낳는 사람이 더욱더 많아질 겁니다. 그렇다고 아기를 낳는 것이 문제가 될까요? 아닙니다.

이런 모습을 쳐다보고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나?’ 하고, 저런 모습을 쳐다보고 ‘나는 왜 저렇게 안 되나?’ 하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꾸 ‘다른 사람이 나를 왕따 시키는 것 아닌가’ 하고 불안한 거예요. 자기를 왕따 시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 사람은 질문자와 함께 지내보니까 질문자가 별로 안 좋은 겁니다. 질문자는 저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하는 것을 보고 왕따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경우의 수로 따져 보면 다섯 명 중에 다섯 명 모두가 나를 안 좋아할 수 있는 확률이 낮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를 안 좋아하는 것도 그 사람들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때 왕따 당했던 것을 토대로 지금 또 왕따 당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꾸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병이 되는 거예요.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 그때 내가 어리석었구나. 어려서 잘 몰랐구나. 사람들은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가는데 내가 거기에 못 낀다고 왕따 당했다고 생각했구나. 내가 어리석었구나.’

이렇게 돌이키면 고민이 싹 없어집니다. 옛날에 왕따를 당했다고 해서 지금 또 왕따를 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은 아직 병이 치유가 안 됐다는 반증입니다. ‘아! 그때는 별 일 아닌 것을 가지고 신경을 썼네’ 하고 돌이키면 바로 병이 치유가 됩니다.

그 누구든 만나지면 만나고, 안 만나지면 안 만나고, 얘기가 되면 얘기를 나누고, 얘기가 안 되면 얘기를 나누지 않고, 이렇게 그냥 열어놓고 살면 아무도 나를 왕따 시킬 수가 없어요. 나는 자유인인데 나를 어떻게 왕따 시킵니까?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건 그의 자유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내가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들끼리 노는데 왜 내가 왕따를 당하는 것이 됩니까? 내가 그 무리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왕따를 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들끼리 좋아서 노는 것이니까 그냥 놔두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는데, 왜 내가 사귀던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귄다고 그걸 배신당했다고 그래요. 결혼하기 전에 다른 사람을 사귀는 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나도 어떤 사람이 좋아서 만났다가 서로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새로 좋아할 수도 있고, 상대도 나를 좋아했다가 서로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새로 좋아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상대가 헤어지자고 하면 ‘아! 그동안 즐거웠다. 너 만나서 참 좋았다. 그래 안녕!’ 이렇게 바삭해야 합니다. 그렇게 끈적끈적한 엿처럼 붙어서 살려고 하니까 주위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예요.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끈적거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만나고 헤어지고 할 수가 있어요. 남을 때리거나, 남을 성추행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남에게 욕설하거나, 술 먹고 취해서 남에게 행패를 피우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살든 모두 개인의 자유에 속합니다. 그러니 ‘네가 그렇게 사는 것은 너의 자유다’ 이렇게 인정하고 젊은 사람이 좀 쾌활하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대학에 들어왔으니 이제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생각 자체도 잘못된 거예요. 그냥 해가 넘어가니까 고등학교 다니다가 대학을 갔을 뿐이지 작년과 올해가 무슨 차이가 있어요?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고, 저기도 사람 사는 세상일 뿐입니다.

이제 성인이 되었잖아요. 옛날에는 어리석어서 그랬으니 과거 일은 이제 잊어버리고, 앞으로는 자유인으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상대가 좋으면 ‘나는 네가 좋다’ 하고 말해보고, 상대가 싫다고 하면 그만두면 되고, 그래도 나는 상대가 좋으면 ‘그래도 나는 네가 좋다’ 하고 한 번 더 말해보고, 그래도 상대가 싫다고 하면 선물도 사서 줘보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상대가 싫다고 하면 포기하면 돼요. 결과를 얻으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죠.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찾아와서 친구 하자고 말을 먼저 건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런 것을 바랐다면 질문자가 욕심을 내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막연히 앉아서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말고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내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력을 해도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포기하면 됩니다. 그렇게 좀 바삭바삭하게 인생을 살아보면 어떨까요? MZ세대는 바삭바삭하다고 하던데 질문자는 왜 그렇게 끈적끈적해요?” (웃음)

“저도 욕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더라고요. 아마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는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안정제를 조금 먹으면 훨씬 덜 답답합니다. 옛날에는 감기 정도는 병이라고 취급을 안 했는데, 요즘은 감기에 걸리면 곧바로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거나 약처방을 받아서 먹으면 금방 낫잖아요. 그냥 내버려 두어도 낫기는 합니다. 그러나 치료를 하면 조금 더 빨리 나을 수가 있어요. 그런 것처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훨씬 낫습니다.

상대를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을 안 하려고 해서 생긴 병입니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자유를 좀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그들의 자유예요. 내가 그들의 무리에 끼고 싶은 것도 나의 자유이듯이 그들이 나를 그들의 무리에 안 끼워주는 것도 그들의 자유입니다. 상처를 받을 일이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면 본인이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치료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데 잘 안 된다거나, 뜻대로 안 되었을 때 가슴이 벌렁거린다거나, 이런 증상은 다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관계든, 직장관계든, 가족관계든, 다섯 명이 함께 지내다가 한 명이 꼴 보기 싫어지면 그것을 수행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그 사람 한 명만 내가 잘 봐내면 자유롭게 지낼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것은 수행의 과제로 삼아서 해결하면 됩니다. 그런데 다섯 명 중에 두 명이 꼴 보기 싫어지면 ‘내가 병원에 가봐야 하나?’ 하고 자기를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다섯 명 중에 세 명이 꼴 보기 싫어지면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합니다. 남편도 밉고, 자식도 밉고, 시어머니도 밉고, 이런 정도라면 무조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딱 구분을 해서 대응을 하면 인생을 사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한 명이 미우면 수행 과제로 삼고, 두 명이 미우면 ‘혹시 내가 문제인가?’ 하고 돌아봐야 하고, 세 명이 미우면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 잘 알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특별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 인생이 허전하게 느껴져요. 앞으로 예술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예술 활동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어요. 지금 고3입니다. 이대로는 수능도 망칠 것 같은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 저는 중독 가정에서 자라났고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분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연락을 하십니다. 욕을 먹고 죄책감을 느끼더라도 어머니와 분리를 하는 것이 제 살 길인 것 같은데, 지혜롭게 분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남편으로부터 집과 통장이 다 갈취된 상태에서 이혼소송을 당했습니다. 아이들의 양육을 혼자 감당하기는 어렵고,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려니 걱정됩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행복학교 특강을 생방송하고, 오후에는 청년들을 위한 청춘톡톡 생방송을 하고, 저녁에는 평화재단 통일의병들과 농사일을 한 후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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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감사합니다

2023-04-11 11:38:29

일심

상대를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을 안 하려고 해서 생긴 병이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내가 그들의 무리에 끼고 싶은 것도 나의 자유이듯이 그들이 나를 그들의 무리에 안끼워 주는 것도 그들의 자유이다. 상처를 받을 일이 아니다.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면 정신적으로 약한것, 과하면 치료를 받아라

2023-04-11 02:09:03

이준호

어느 누구도 나를 괴롭힐 수 없음을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2023-04-05 17: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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