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3.30 공동체 나들이 1일째, 경주 벚꽃 구경
“돈을 많이 버는 삶에 대한 동경이 강해서 힘들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공동체지부 활동가들과 봄나들이를 하는 날입니다. 지금 경주는 곳곳에 벚꽃이 활짝 피어서 도시 전체가 하얗게 물이 들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나들이를 가기 전, 스님은 작업복을 입고 울력할 준비를 했습니다.

“감자 싹이 너무 많이 자라서 얼른 심어야겠어요.”

싹이 난 감자 한 상자와 연장을 챙겨 산밑밭으로 갔습니다.

싹이 난 곳을 중심으로 감자를 잘랐습니다. 며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말린 후 심으면 좋지만, 싹이 많이 자라서 바로 심기로 했습니다.

먼저 파종기로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감자를 심었습니다.

감자 싹이 길어서 땅 위로 싹이 올라왔습니다.

“이야, 심자마자 싹이 났네요.(웃음) 햇볕에 싹이 마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살 놈은 살 거예요.”

한 시간 동안 한 두둑에 감자를 다 심었습니다.

감자를 다 심고 스님은 개운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야, 아침 운동 잘했네요! 해외 답사를 갔다가 오면 곧 감자 캘 때가 되겠어요.”

작업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은 후 바로 경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공동체 지부 활동가들에게 벚꽃이 활짝 핀 경주를 보여주기 위해 한 달 전부터 벚꽃 개화 시기를 유심히 관찰해서 나들이 일정을 직접 잡아 주었습니다. 스님 덕분에 벚꽃이 활짝 핀 시기에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서울과 문경을 출발한 대중들은 오전 10시에 태종 무열왕릉 앞 주차장에 모였습니다.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봄나들이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공동체 대중들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경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경주는 보통 4월 초에 벚꽃이 만개하는데 시기가 일주일 당겨졌습니다. 사실은 이틀 전에 벚꽃이 가장 활짝 피었어요. 그래서 나들이 일정을 바꾸려고 연락을 했더니 다들 이미 잡은 일정이 있어서 오늘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도 아주 아름답습니다. 봄나들이를 왔으니까 설명을 많이 하기보다는 산책을 주로 하겠습니다.”

곧바로 벚꽃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태종 무열왕릉에서 김유신장군묘까지 가는 길에는 양쪽 가로수가 모두 벚나무입니다. 스님의 뒤를 따라 60여 명의 대중이 벚꽃이 화사하게 핀 가로수 길을 걸었습니다.

꽃비를 맞으며 도반들과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김유신장군묘 앞 흥무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과 대중들은 길을 걸으며 쓰레기가 보이면 자연스럽게 줍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점심 식사를 하고 벚꽃이 활짝 피기로 유명한 불국사로 향했습니다.

곳곳이 벚꽃 세상이었습니다. 행자님들이 탄 차 안에서는 봄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여기서 왼쪽으로 주욱 가면 벚꽃이 아주 오지게 핀 도로가 나옵니다.”

스님이 탄 차량이 선두에 서고 스님의 안내에 따라 이 도로 저 도로를 오가며 벚꽃을 실컷 구경했습니다. 차창 밖 구경에 흠뻑 빠져 있다 보니 어느덧 불국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또다시 벚꽃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자, 잠깐 자유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대중들이 벚꽃을 만끽하도록 잠시 시간을 주고 스님은 먼저 걸어 나갔습니다. 대중들은 삼삼오오 모여 꽃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벚꽃 구경은 실컷 했어요?”

“네.”

“그럼 이제 바닷가로 갑시다.”

다시 차를 타고 오후 2시가 넘어서 문무대왕릉에 도착했습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대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의 아들 신문왕은 바다에 수중릉을 만들었습니다. 나라가 독립이 된다면 대한민국 정부의 정문에서 수위를 하겠다고 했던 김구 선생처럼 문무대왕 역시 호국 정신이 투철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 함께 문무대왕의 애국심을 기리고 평온한 바닷가를 산책하며 자유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발을 벗고 바닷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행자님도 있고,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해변을 걷는 행자님도 있었습니다.

다시 차에 올라 문무대왕릉이 가장 잘 보이는 이견대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주변의 풍광을 살펴본 후 스님이 이승용 님에게 설명을 부탁했습니다. 역사 해설을 잘하는 이승용 님이 이견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은 해변에 감은사라는 절을 짓고,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들어와서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법당 밑에 동해로 통하는 물길을 하나 뚫어 두었습니다. 그 뒤에 용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이견대에서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는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차에 올라탔습니다. 오늘 봄나들이의 마지막 코스인 감은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습니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이어받아 682년에 완성한 절이 감은사입니다.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감은사지의 남쪽 방향으로 축대가 잘 쌓여 있었습니다. 스님이 축대를 가리키며 잠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여기 축대를 자세히 보시면 툭 튀어나온 돌이 보이죠. 아마 당시에는 배가 여기까지 들어온 흔적이지 않을까 추측해요. 배를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돌이라고 생각하고 복원을 한 것 같아요.”

계단을 오르니 우뚝 솟은 3층 석탑 두 개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석탑을 지나니 금당 터가 나타났습니다.

“여기는 금당의 마루 밑 공간입니다. 감은사가 동해의 용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금당 터를 지나 강당 자리와 회랑을 둘러본 후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삼국통일을 발원한 선조들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해 보았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에는 두북 수련원에서 스님과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60여 명의 대중이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이 편안하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꽃구경 잘하셨어요? 이번 1박 2일은 공동체 봄나들이 시간이니까 굳이 법문의 형식보다는 한 식구로 살아가는 도반으로서 서로의 고민에 대해 대화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또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면 얘기하셔도 좋습니다.”

미리 서면으로 신청한 질문이 5개였습니다. 옛날에 했던 법회처럼 스님이 질문지를 읽고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자유롭게 손을 들고도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원이 없어서 고민이라며 어떻게 원을 세우는지 질문했습니다.

저는 원이 없어요, 어떻게 원을 세우나요?

“사람들에게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원을 세우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저는 상황이 내 뜻대로 안 될 때 쉽게 마음속으로 관계를 포기합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각자 알아서 잘 사는데 왜 정성을 들이나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도 결국 내가 정한 목적인데, 내가 정한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위선이라고 느껴집니다. 저는 뜻대로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할 때 금세 힘을 잃어버립니다. 어떻게 원을 세워 나가야 할까요?”

“원을 일부러 세울 것까지는 없습니다. 전쟁을 경험하면 ‘진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본인이 직접 굶어 봤거나, 실제로 굶어 죽는 사람을 목격하면 ‘어떤 이유로든 굶어 죽게 해서는 안 된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고문을 당해봤거나 고문을 당하는 사람을 직접 봤다면 ‘자기 생각대로 안 된다고 고문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본인이 여자라고 차별을 받고 살아보거나, 동양인이라고 차별을 받고 살아보거나, 키가 작다고 차별을 받고 살아보거나, 신체장애라고 차별을 받고 살아보거나 하면 ‘절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피부는 내가 검고 싶어서 검은 게 아니잖아요. 태어나 보니 피부가 검은색이었습니다. 키가 작고 싶어서 작은 게 아니잖아요. 태어나 보니 키가 작았습니다. 여자가 되고 싶어서 여자가 된 것이 아니잖아요. 태어나보니 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차별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 저절로 문제의식이 생깁니다. 이런 경험들이 모이면 그것을 이름하여 원이라고 하는 거예요.

정토회가 세운 원은 이런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말 좋지만 대중에게 어렵게 다가가는 면이 있으니 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서 널리 확산을 시키자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일상생활과 너무 유리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또 기존의 불교인들이 너무 복을 구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으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라고 하면 복을 비는 종교라고 생각했는데,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해 보니 부처님은 당시에 사회 정의를 위해 많은 실천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계급 차별에 대해서 비판하셨고,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셨고, 사회적인 범죄자도 깨닫게 해서 출가를 시키셨고, 유녀들까지도 깨닫게 해서 출가를 시키셨습니다. 이런 일은 요즘도 하기 어렵잖아요. 만약 법륜 스님이 성매매 종사 여성들을 500명 출가시켰다고 하면 지금 사회에서도 난리가 났을 겁니다. 만약 법륜 스님이 성추행을 저질러서 전자발찌를 착용한 사람 30명을 법사로 임명했다고 해도 난리가 났을 거예요.

그러니 부처님께서 하신 일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시 사회에서 엄청난 저항이 따르는 일인데도 그걸 행하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비록 나는 그렇게 못하더라도 부처님은 참으로 존경할 만하니 그런 방향성을 갖고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인정하고, 가능하면 차별이 없는 쪽으로 나아가 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과 경험들이 모여서 원이 되는 겁니다. 원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돼요. 아무리 믿어야 된다고 강조해도 안 믿어지는 걸 어떻게 믿습니까? 안 믿어지면 안 믿어지는 대로 살면 됩니다. 믿어지면 믿어지는 대로 살면 되고요.

그래도 이러한 일에 동의를 하니까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도 밖에서 사는 것보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이 좋아 보여서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거잖아요. 물론 특별한 원을 갖지 않고 결혼 생활도 귀찮고, 회사 다니는 것도 귀찮고, 공동체에서 사는 것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것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부처님 당시에도 천민들 중에는 출가하면 천대를 받지 않고 밥을 얻어먹을 수 있어서 출가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한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보자고 해서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분도 ‘나는 배가 고파서 절에 들어왔다. 갈 데가 없어서 너무 배가 고파서 밥을 얻어먹으려고 절에 들어와서 살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옛날 얘기를 하셨어요. 이렇듯 정말 배가 고파서 절에 들어온 사람도 옛날에는 많았습니다. 그렇게 들어왔지만 어쨌든 배우고 공부하다 보니 훌륭한 스님이 되신 분이 있습니다. 그러니 원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첫째, 원을 세우고 살아가면 좋습니다. 정토회가 가진 목표성이 분명하니 거기에 동의해서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것이 가장 좋죠. 물론 오갈 데가 없는 사람도 공동체에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이 없는 사람은 원이 있는 사람을 따라가면 되니까요. 원이 있으면 자기가 그 원을 향해서 추진을 하면 되고요. 그래서 원이 없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또 살다 보면 원이 생기기도 합니다. ‘원이 꼭 생겨야 된다’ 하는 생각은 ‘꼭 믿어야 한다’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그러니 원이 안 생기는 걸 갖고 ‘왜 원이 안 생길까’ 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원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다 보면 나중에 기후 위기가 생기고 전쟁이 나면 ‘환경 실천이 중요하구나’, ‘평화가 중요하구나’ 하고 원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와 결혼을 하려고 하든, 친구를 사귀려 하든, 정토회 일을 같이 하려고 하든, 결국에는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걸 해주면 관계도 긴밀해지고 목적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들어야 해요. 이것을 이름하여 정성을 기울인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만약 사람이 오든 가든 신경을 안 쓴다면 그 사람은 무언가를 이룰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저는 구호 활동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니까 기부하는 사람에게 깍듯이 인사를 해요. 사업이 끝난 뒤에는 결과 보고도 열심히 해주고요. 불쌍한 사람을 돕든 말든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기부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안 가져도 되겠죠. 환경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본인의 필요와 목적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정성을 기울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자기 필요에 의해 상대방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것을 두고 무조건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전쟁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려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물론 내 돈을 벌려고 하거나 내 욕심을 채우는 것처럼 사익을 얻기 위해 남에게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비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익인지 공익인지 하는 구분만 있을 뿐이지 이익을 위해 남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람의 정신이 가진 성질로 봤을 때 당연한 거예요. 남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이익을 좇는 것이 본래 사람이 갖는 성질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위선이라고 느껴진다고 했는데, 이것은 결벽증에 해당합니다. 이런 성격을 갖는 사람은 불교에서 ‘제법이 공(空) 하다’ 하고 배우면 ‘공(空)’에 집착해서 ‘제법이 공(空)한데 옳고 그른 게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공(空)’이라는 상을 지어서 만(萬) 가지 잣대로 보는 태도예요. 이런 경우는 ‘공(空)’의 이치를 아는 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다음 질문자는 30대 초반의 젊은 행자님이었는데요. 공동체에 들어와서 살고 있지만 자꾸만 밖에 나가서 돈 벌 궁리를 하게 된다며 어떻게 수행을 하면 좋을지 질문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삶에 대한 동경이 강해서 힘들어요

“저는 공동체에 들어와서 살고 있지만 밖에 나가서 돈 벌 궁리를 계속합니다.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삶에 대한 동경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힘들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첫째, 직접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보는 겁니다. 둘째, 내가 직접 안 해봤지만 이미 해본 사람들을 깊이 관찰해 보는 겁니다. 이미 돈을 많이 벌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지금 나보다 힘들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반면교사로 삼아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겁니다. 물론 욕구는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출가한 스님들과도 얘기를 나눠보면 밖에 나가서 결혼 생활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분이 간혹 있습니다. 저와 상담을 한 스님 중에는 결혼 생활을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는 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결혼해 보고 싶으면 결혼을 해봐야죠. 어떡합니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밖에 나가서 잘 적응해서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이 길은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그때 다시 돌아와도 되죠. 한 번 속퇴했다가 다시 출가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잖아요. 대신에 시간을 좀 낭비하게 되죠.

지나 놓고 보면 하고 싶은 것을 해본 것이나 안 해본 것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젊을 때는 바닷가에 가서 배도 한 번 타보고 싶고, 비싼 호텔에 가서 잠도 자보고 싶어서 그걸 안 해본 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면, 그거 해보면 어떻고 안 해보면 어떻겠어요? 꼭 맛있는 것을 직접 먹어봐야 욕구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해보고 싶은 것을 한번 해보면 욕구가 빨리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먹고 싶은 걸 한 번 먹어보고, 구경 가고 싶은 걸 한 번 가보면 ‘한 번 해보니까 별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경우는 한 번 해보면 더 빨리 욕구가 떨어져요. 그러나 한 번 해봤더니 욕구가 오히려 더 강화되는 사람도 있어요. 욕구가 그대로 있거나 강화가 됐다면 그런 행위는 딱 끊어야 됩니다.

사람을 붙잡으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인생을 오래 살아본 경험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이 때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직접 나가서 경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너무 오랫동안 미련이 남으면 한번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예측은 하지 마세요. 결과가 나쁠 수도 있습니다.

맥주를 조금만 먹어도 설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자고 권유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 그냥 맥주를 마시고 설사를 하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먹고 그냥 설사하자. 안 먹으면 좋지만 어쩔 수 없이 먹어야 된다면 먹고 설사하면 되지’

이런 관점을 가지면 후회는 하지 않게 됩니다. 후회를 한다는 것은 괴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만 하고 어려운 일은 포기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포기하지 말고 밀고 나가야 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 두북수련원에서 하고 있는 하루 두 시간 울력의 취지를 ‘노동’으로 잡아야 할까요, ‘공동’으로 잡아야 할까요?

  • 코로나 이후 동남아 지역이 많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JTS에서 앞으로 해외 사업을 개척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 다음 주에 필리핀 JTS로 파견을 가게 됩니다. 제 성격은 말이 많고 주변을 시끄럽게 하는 타입입니다. 해외에서 도반들과 일할 때 어떤 자세를 갖고 수행을 해나가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 30분이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꽃구경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더니 피곤함이 몰려왔습니다. 모두 졸린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천전리와 반구대 암각화를 구경하고, 모둠 별로 공동체 울력을 함께 한 후, 오후에는 소감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진 후 공동체 봄나들이를 마무리하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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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놀이도 하셨습니까

이때 저는 웃을 수 없었던 시기였어요.

요즘 공무원 시험이 껌이라지만
저는 그래도 나름 진지하게 준비했거든요.

졸업 전에 어떻게든 취업해보려고
열심히 준비했고

결과적으로 97점으로 합격했죠.


저는 충효동에서
그렇게 무의 경지를 깨닫고 있었는데

스님은 벚꽃놀이를 하고 계셨군요.


경주시 충효동 흥무로는
벚꽃 명소로 유명합니다.

2024-02-19 00:14:51

선우

감사합니다

2023-04-08 17:51:05

박용삼

감사합니다

2023-04-05 20: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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