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3.3. 8일 출가열반 정진 5일째, 교육연수 간담회, 금요 즉문즉설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져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8일 출가열반 정진 5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전 8시에 미국JTS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사업 보고와 올해 사업 계획을 검토하고 승인한 후 이사회를 마쳤습니다.

오전 10시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하고 8일 출가열반 정진 5일째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의 수행과 성도, 전법의 여정을 따라 매일 법문이 설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내용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서 처음으로 설법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욕망에 끌려가거나, 욕망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저항하거나, 두 가지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중도를 발견하시고, 욕망에 끌려가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욕망을 욕망인 줄 다만 알아차리는 정진을 했습니다. 욕망에 끌려가면 헐떡거려야 되고, 저항을 하면 이를 악 다물고 긴장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욕망을 욕망인 줄 다만 알아차릴 뿐이었습니다. 헐떡거리지도 않고 긴장하지도 않고 편안한 가운데 뚜렷이 깨어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맑아지고 아무런 번뇌가 없어지면서 아주 밝은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주위를 보니까 이슬 한 방울, 나뭇잎 하나, 발에 밟히는 모래알 하나까지, 이 세상에는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 고귀함을 마음껏 느꼈습니다.

부처님은 무엇을 깨닫고 자유로워졌을까요?

첫째, 보이지 않던 것이 환히 보였습니다. 이것을 갖고 ‘눈을 떴다’, ‘깨달았다’ 하고 표현합니다. 깨달은 자를 인도 말로는 ‘붓다’라고 불렀습니다. 깨달으면 번뇌가 없어지는데 이것을 ‘해탈’과 ‘열반’이라고 해요.

그동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독립된 각 개체의 집합으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을 ‘삼라만상’이라고 하죠. 그런데 부처님이 깨닫고 보니 이 세상은 개별적 존재의 집합이 아니고 서로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다섯 개의 손가락이 각각 다섯 개가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손바닥에서 서로 연결된 다섯 손가락인 것처럼 모든 존재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고체로 연관된 것도 있고, 액체나 기체로 연관된 것도 있고, 파동과 빛으로 연관된 것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뭇가지를 베어도 나무가 죽고, 물을 공급하지 않아도 나무가 죽고, 햇볕을 차단해도 나무가 죽고, 공기를 차단해도 나무가 죽습니다. 연관이 끊어지면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별적 존재라는 관점에서는 서로 경쟁을 하고, 투쟁을 하고, 이기고 지고, 귀하고 천하고, 이런 것을 따지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 연관된 존재라는 관점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상생을 하게 됩니다. 이기고 지는 게 아니고 조화와 균형으로 추구하게 됩니다. 어떤 것이 더 낫고 못한 게 아닙니다. 서로 다를 뿐이지 모두가 소중하고 평등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길은 불평등한 세상에서 평등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개체의 집합이라고 하는 세계관을 갖게 되면 양육 강식, 생존 경쟁, 이런 식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연기적 세계관을 갖게 되면 서로 다른 것은 존중받아야 할 일이 되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상생의 관계를 지향하게 됩니다.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전쟁을 일으켜야 되거나 이기고 져야 되는 세상이라면, 후자는 화해와 평화가 소중하게 여겨지게 되는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는 스스로 편안하고 행복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기고 지는 관계로 보지 않았습니다. 붓다는 ‘싸우고 투쟁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논쟁도 하지 마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그렇다는 거니까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되지 그것을 가지고 옳으니 그르니 논쟁하지 말라는 겁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은 소중하지만 그 계율을 갖고 분쟁을 한다면 그것은 더 큰 잘못이라고 하셨습니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부처님은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 이렇게 당당하게 일성을 내지르고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들이 함께 수행했던 다섯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다섯 친구들은 처음에는 부처님을 외면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나와 같이 지낸 지난 6년 동안 내가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다섯 친구들이 생각해 보니 부처님은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얻었다는 그 귀한 법을 우리에게 말해주겠소?’ 이렇게 다섯 친구들이 법을 청하자 부처님은 그들에게 법을 설했습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설법한 내용

초저녁에 명상을 하고, 중야에는 명상을 풀고 편안히 앉아 있다가, 후야에 법을 설했습니다. 마음이 들떠있고 혼란된 상태에서 법을 설한 게 아니에요. 아주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 즉 어떤 생각에 사로잡힘이 없는 상태, 그런 상태에 먼저 도달하게 한 후 법을 설했습니다.

가장 먼저 설법한 내용은 중도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행자가 가지 말아야 할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욕망을 따라가는 쾌락의 길입니다. 둘째, 욕망과 싸우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고행의 길입니다. 두 가지 길을 버리고 다만 알아차릴 뿐인 중도의 길을 가야 한다고 설했습니다.

그리고 ‘고집멸도’라고 하는 사성제를 설했습니다. 먼저 우리의 삶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됩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윤회합니다.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즐거움도 괴로움입니다. 이것이 고성제입니다. 그 괴로움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집성제입니다. 그 원인을 제거하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멸성제입니다. 괴로움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다시 또 괴로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괴로움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도성제입니다.

마지막으로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여덟 가지 길인 팔정도를 설했습니다. 첫째,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바르게 보아야 합니다(정견). 둘째, 바르게 생각해야 합니다(정사). 셋째, 바르게 말해야 합니다(정어). 넷째, 바르게 행동해야 합니다(정업). 다섯째, 바르게 생활해야 합니다(정명). 여섯째, 바르게 정진해야 합니다(정정진). 일곱째, 바르게 알아차려야 합니다.(정념). 여덟째, 바르게 집중을 해야 합니다(정정). 그러면 번뇌가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여덟 가지 바른 길인 팔정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첫 번째 설법에서 중도, 사성제, 팔정도가 설해졌습니다. 중도, 팔정도, 사성제의 근본 원리는 바로 연기법에 있습니다. 붓다는 연기법에 대해 이렇게 설했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렇게 첫 설법을 듣고 다섯 친구 중에 콘다냐가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나만 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일이 지나자 두 명이 깨닫고, 또 삼일이 지나자 또 두 명이 깨닫고, 그래서 일주일 만에 다섯 명의 친구들이 모두 깨달음을 얻고 붓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연하고 나서 가장 큰 사건

이렇게 해서 스스로 깨달은 이 붓다, 깨닫지 못한 이를 깨닫게 해주는 붓다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상가, 세 가지 보배가 구성이 됐습니다. 이것을 불법승 삼보라고 합니다. 불법승 삼보가 구성이 되자 이제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그 가르침을 따라 수행정진하면 누구나 붓다처럼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위에 관계없이, 돈에 관계없이, 신분에 관계없이, 성별에 관계없이, 신체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연하고 나서 가장 큰 사건입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깨달음과 전법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부처님처럼 스스로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고, 다른 사람도 행복할 수 있도록 이 좋은 법을 널리 전할 것을 다짐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봄에는 많은 사람들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서 그들 또한 행복한 인생의 길을 가도록 인도합시다.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는 3월 19일, 더 많은 사람들이 입재해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을 가도록 인연을 맺어줍시다.”

스님의 발원을 이어받아서 정토회 회원 모두가 각자의 원을 세워보며 300배 정진을 했습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까지 한 배 한 배 절을 한 후 8일 출가열반 5일째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이어 12시부터 공동체 법사단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2-1차 천일결사부터 천일결사 기도법과 예불, 의식 등을 수정할 것인지 몇 차례에 걸쳐 논의를 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2시에는 문경수련원과 연수원에서 교육 및 연수를 담당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스님과 함께 올해 사업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스님이 여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코로나 방역 지침의 전면 해제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4월부터는 깨달음의장, 나눔의장 등 모든 수련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3년 동안 문경 수련원과 연수원이 코로나 방역 때문에 침체가 되어 있었는데, 다시 활기를 갖고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교육 및 연수 파트의 경우에도 상근하는 인력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습니다. 논의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문경 수련원과 연수원이 정토회의 모체인데도 불구하고 각 부서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인력을 다 나눠주다 보니 정토회의 모체가 부실해진 상황이 됐습니다. 부족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인력들을 잘 키워서 일당백의 정신으로 문경 수련원과 연수원을 잘 운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부터는 부족한 상황에서도 깨달음의 장을 더욱더 확대해 나가고, 자원봉사자들을 확대 운영하여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고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56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날씨가 다시 좀 추워졌죠? 그러나 다음 주부터는 ‘봄이 왔구나’ 이렇게 느낄 만큼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봄이 오는 때에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골에 가보면 꽃들이 이미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물론 응달이 진 곳에는 아직 얼음도 있고 눈이 쌓인 곳도 있습니다. 지금은 겨울과 봄이 공존하고 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한쪽에는 꽁꽁 얼어붙어서 겨울 같기도 하고, 또 한쪽에는 얼음이 녹아서 입가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추위와 온기가 반복이 되고 있는 요즘 날씨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진다며 어떻게 하면 허무함을 벗어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져요, 어떡하죠?

“저의 가장 큰 고민은 모든 게 허무하다는 거예요. 제가 살아가는 게 약간 환상 같고, 뭔가 채우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허무한 느낌이 듭니다. 활력도 없어지고, 열정도 없어졌어요. 이런 생각이 들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허무한 마음을 없앨 수 있나요?”

“질문자의 앞길이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네요.” (웃음)

“어떤 앞길이 보이세요?”

“그런 생각을 자꾸 하면 앞길은 자살하는 것밖에 없어요. 결국 종착역은 자살입니다. ‘살아서 뭐 하냐? 죽는 게 낫겠다’ 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고속도로에 지금 올라탄 거예요.

‘결혼하면 뭐 하나? 그래봐야 애 낳고 살다가 결국 죽는 것 아닌가?’

‘돈 벌고 큰 집 사면 뭐 하나? 결국 죽을 것 아니냐?’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도 하나의 티끌에 불과한데 그런 티끌 같은 곳에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들 겁니다. 그런 의문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면 괴로움이 없는 길로 가는 건데, 질문자처럼 그런 생각이 자꾸 허무하게만 느껴지면 ‘경쟁할 필요도 없네’, ‘결혼할 필요도 없네’, ‘결혼도 안 해도 되네. 결국 죽을 건데’ 이렇게 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살아서 뭐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 마치 불교를 좀 아는 사람 같고, 도를 깨달은 사람 같지만, 그 종착역은 죽음이에요. 어차피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또 이렇게 말할 거예요.

‘너도 죽고 나도 죽는데, 빨리 죽으나 늦게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나? 하루살이가 저녁 10시에 죽으나, 오후 4시에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나? 스님도 그렇게 법문을 하던데 사람도 나이 40에 죽으나 80에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나?’

질문자는 모든 법문도 다 죽음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죽음의 대열에 올라섰다고 표현했던 겁니다. 법문을 들어도, 우주 공부를 해도, 뭘 해도 종착역은 죽는 걸로 딱 결론이 나는 길에 들어섰어요. 매우 위험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무도 자라서 뭐해요? 어차피 사람이 베어갈 것인데요. 닭이나 소도 살아서 뭐해요? 어차피 사람이 잡아먹을 건데요. 이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에 만물이 생존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예요.

이런 생각은 반생명적 사고방식입니다. 컴퓨터도 병이 들면 백신 치료를 해야 하듯이 질문자는 지금 정신적인 병이 든 거예요. 지금 이런 병이 현대인들에게 전염되다시피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잖아요. 가난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학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살률이 높은 게 아니에요. 가난한 나라나 독재 국가의 자살률이 많은 게 아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자살률이 높습니다.

자살은 대부분 정신적인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경쟁의 압박이 높아서 자살한다’, ‘너무 빈부 격차가 심해서 자살한다’, ‘가정폭력에 의해서 자살한다’, ‘왕따를 시켜서 자살한다’ 이렇게 말하는데 이것은 그때 그때 자살을 할 때의 상황을 말하는 겁니다. 상황을 갖고 얘기하면 전부 외부에서 오는 문제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왕따를 시킨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두드려 맞는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파산한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이혼을 하거나 연애에 실패한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닙니다. 슬픔이 확 올라오거나 어떤 허무감이 들 때 ‘차라리 목숨을 끊는 게 더 낫겠다’ 하고 죽음을 합리화하는 사유 체계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사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병이 들었다는 반증입니다.

대부분의 생명은 어떤 악조건에 놓여도 살려고 합니다. 새싹이 막 올라올 때 그 위에 돌을 덮어놓으면 못 이겨서 죽을 때도 있지만 옆으로 삐져서 올라오는 게 생명입니다. 모든 자연은 어떻게든 살려고 해요. 굶어 죽을 상황에 놓이면 훔쳐 먹고라도 살려고 하고, 학대를 받아도 살려고 해요. 질문자처럼 생각하면 옛날 노예들도 다 죽어버렸지 무엇 때문에 살았겠습니까?

질문자는 삶에 대해서 너무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10살짜리 아이도 있고, 남편도 있습니다...”

“병인 줄 알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뭘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건 맞아요. 그 부분은 질문자와 스님의 생각이 같습니다. 그런데 차이는 결론이 다르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그래서 죽겠다는 것이고, 스님은 그래서 죽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뭘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오히려 사는데 힘이 하나도 안 듭니다. 아이가 공부를 꼴등 하면 어때요? 1등 해도 죽고, 꼴등을 해도 죽는데요. 아이가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내버려 두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됩니다. 훨씬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질문자는 그러니까 죽어야 된다고 결론이 나거든요. 그래서 제가 병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치료를 받아볼게요.”

“질문자의 사유는 아주 훌륭해요. 마치 깨달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사유가 훌륭합니다. 단지 그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살아서 뭐 하냐’ 이렇게 결론이 나는 게 문제입니다. 스님은 ‘그러니까 웃으면서 살아야지’ 이렇게 결론이 나거든요. 반대로 질문자는 ‘그러니까 죽어야지’ 이렇게 결론이 난다는 겁니다. 해결책은 한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그러니 괴로울 일이 없네. 이제 편하면 살면 되네. 죽을 때가 되면 알아서 죽을 거니까 일부러 죽을 필요가 없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 번 바꿔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살다 보면 온갖 사람이 다 있죠. 제 얘기를 듣고 ‘스님은 죽겠다는 사람한테 말을 너무 쉽게 하네요’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죽겠다는 사람 하고도 우리는 웃으면서 대화를 해야 하는 거예요. 죽을 때 죽더라도 하루라도 웃어야죠.

불교를 잘못 공부하면 결론이 허무주의에 빠질 위험이 높습니다. ‘제법이 공한데 살아서 뭐 하나’ 이런 생각을 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잘못 깨달으면 죽어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삶에 대해 의미를 너무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겁니다.

풀 한 포기 나는 것이나, 나무 한 그루 자라는 것이나, 토끼 한 마리 뛰어다니는 것이나, 한 사람이 사는 것이나 모두 똑같아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죽을 필요도 없고, 억지로 살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인연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네. 저는 사람이 죽지 않는 이유가 책임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스님이 순리에 역행하는 생각이라고 하신 말씀이 크게 와닿았어요. 제가 오만한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질문자가 인생에 대해 너무 높은 환상을 갖고 있어서 그래요.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꼭 유명한 배우가 되어야 인생이 살 만한가요? 꼭 부자가 되어야 인생이 살 만한가요?

인생을 사는 이유를 알아야 된다고 자꾸 생각하는데, 사는 데는 이유가 없어요. 그냥 사는 겁니다. 이유가 없는데 이유를 찾기 때문에 결론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거예요. 이유가 있기 이전에 존재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이미 살고 있고, 그다음에 생각을 하는 겁니다. 생각을 해서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은 자연에 역행하는 거예요. 내가 살아있으니까 생각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가 웃자 스님도 웃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없으면 극심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고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연애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결혼생활 내내 남편은 폭언, 폭행 등의 문제를 셀 수 없이 일으켰습니다. 일단 저는 이혼을 마음먹은 상태인데, 친정엄마가 이혼을 만류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딸이 고부갈등으로 시댁과 사이가 안 좋아 그 여파로 힘드신 바깥사돈께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렵게 얘기를 꺼냈는데, 제가 너무 가볍게 대답을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무겁게 얘기한다고 인생에 무슨 뾰쪽한 수가 나오겠어요? 아무리 고민해 봐야 자고 일어나면 그냥 꿈일 뿐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다 별일 아닙니다. 순간순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한 발 뒤에서 내다보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어요.”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8일 출가열반 정진 6일째 법회를 생방송하고, 평화재단 통일의병 운영위원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정토회 합동회의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8

0/200

수수

감사합니다! 가볍게 살아보겠습니다

2023-04-22 14:37:05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3-22 10:32:06

고광남

아직도 내 마음의 상이 있어 괴로움이 생김니다.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나 내마음을 괴롭힙니다.
돈에 대한 탐욕이 일어나 마음이 괴롭습니다.
잘못된 가치관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가끔씩 선정과 정어를 놓침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무한한 믿음으로 꾸준히 수행정진합니다.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겠습니다

2023-03-11 22:03:3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