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8.21 무 심기, 벼 세우기, 일요명상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정토회에서 공식 행사를 잡지 않기로 한 가정의 날입니다. 스님도 하루 종일 법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북 공동체 대중과 함께 밀린 농사일을 함께 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앞밭, 밑밭, 아랫밭에 이어 4번째로 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어제 농사팀 행자님들이 두둑과 고랑을 잘 만들어 놓아서 씨앗을 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아요. 무를 다 심었다고 끝이 아니에요.” (웃음)

각자 엉덩이 방석 하나씩을 차고 3인 1조가 되어 한 두둑씩 맡았습니다.


출발과 동시에 한 사람이 먼저 30cm 간격으로 구멍을 뚫으며 앞서가고, 뒤를 이어 한 사람이 구멍 속에 손을 넣어 흙을 평평하게 만들어주고, 마지막 사람이 무 씨앗을 심고 흙을 살포시 덮어 주었습니다. 한 구멍에 씨앗을 2개씩 심었습니다. 씨앗을 심던 스님이 농사팀 행자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종자 값으로 일 년에 몇 십만 원 쓰죠?”

“네, 맞아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씨앗을 한 개씩만 심읍시다.” (웃음)

밭일을 하며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부지런히 씨앗을 심다 보니 금방 일을 끝냈습니다.


“다 심었다!”

아침 햇살이 밭에 가득 내릴 무렵 스님과 행자들은 무 심기를 마쳤습니다.

“자, 이제 다음 밭으로 갑시다.”

다음은 길가에 있는 밭으로 이동했습니다.

역시 농사팀 행자님들이 두둑을 반듯하게 잘 만들어 놓아서 다 함께 씨앗을 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 밭은 고랑이 아주 길어서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출발선에 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즉석에서 제안을 했습니다.

“여기서는 누가 빨리 씨앗을 심는지 시합을 해볼래요? 같이 시합해 볼 사람?”

“저요!”

행자들 몇몇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출발과 동시에 행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습니다. 젊은 행자님은 아주 빠른 속도로 구멍을 뚫으며 앞으로 질주했습니다. 그런데 뒤를 따르던 선배 행자님이 속도가 더디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후배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선배 때문에 꼴찌를 하게 되면 어떡해요?” (웃음)

“노세 노세 일하며 노세! 저는 일을 놀이 삼아서 하고 있습니다.”

향존 법사님도 행자들의 손놀림을 보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밭이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웃음이 오가는 가운데 무 심기를 마쳤습니다.

“끝냈다.”

다 함께 농막으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스님은 산밑밭으로 가서 가지를 수확해서 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이 다시 제안을 했습니다.

“한 시간만 더 일하고 갈 사람? 일이 바쁘거나 몸이 안 좋은 사람은 일찍 들어가고요.”

행자님 일곱 명이 남아서 스님과 함께 산밑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빨간 고추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여기 고추는 빨갛게 익을 때까지 안 따고 기다린 거예요. 오늘 전부 수확을 합시다.”

가위로 빨간 고추를 싹둑 자르고, 고랑에 고추 무더기를 줄지어 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랑을 옮겨 다니며 포대에 고추를 가득 담았습니다.

“고추 색깔이 정말 예쁘네요.”

토마토와 가지도 몇 개 수확한 후 다 함께 산아랫밭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는 생강을 심은 곳인데, 잡초가 많아요. 잡초를 전부 뽑고, 생강에 싹이 나지 않은 구멍마다 배추를 심으려고 해요. 그러니 잡초를 전부 뽑아 주세요.”

어제 스님 혼자서 잡초를 뽑을 때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오늘은 일곱 명이 함께 하니 순식간에 잡초를 다 뽑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 손이 무섭긴 하네요. 사람이 많으니까 금방 했어요.”


스님은 새벽부터 일을 해서 피곤한 데도 불구하고 함께 해준 행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산을 내려왔습니다.

낮에는 무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오후 5시가 되자 스님과 농사팀 행자들은 논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전 비가 많이 내린 후 논의 한가운데 있는 벼가 일부 쓰러졌습니다. 벼가 한번 쓰러지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계속 쓰러지기 때문에 긴급하게 말뚝을 박고 줄을 쳐서 벼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먼저 말뚝을 박은 후 줄을 쳐서 넘어진 벼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혹시 발을 내딛다가 벼를 넘어뜨릴까 봐 모두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일을 했습니다.

“벼가 물에 잠기지 않게만 하면 돼요. 물에 잠기면 벼가 썩거든요.”

묘당법사님과 행자들이 말뚝을 박고 줄을 치는 동안 스님과 향존법사님은 다른 한쪽에 넘어진 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저쪽에 넘어진 벼는 말뚝을 박지 않고 그냥 볏짚으로 묶을게요.”

향존법사님이 볏짚을 물에 적셔서 갖고 왔습니다. 필리핀 정토회에서 노재국 거사님이 도착해서 일손을 함께 도왔습니다. 다들 어렸을 때 부모님을 도와 벼를 세워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손쉽게 벼를 세워서 짚으로 묶었습니다.

“수고했어요. 다 세웠습니다.”

벼포기가 서로 의지하여 가지런하게 서 있도록 해놓은 후 논을 나왔습니다. 산 너머로 해가 진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예초기로 논두렁에 풀을 베려고 했으나 날이 어두워져서 앞이 보이지 않아 다음으로 미루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8시 30분부터는 일요 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24번째로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시청자들에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한국의 남부 지방은 낮에 기온이 30도를 넘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는 기온이 20도 가까이까지 떨어져서 선선한 가을의 기운도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들판에 벼가 익어가고 올벼들은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푸른 감에 붉은빛이 돌기 시작하고, 밤송이도 매우 커졌어요. 저희들은 오늘 가을 김장에 쓸 무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무더위 가운데서도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시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시간이 지나면 봄이 옵니다. 하지를 지나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면 지금 아무리 덥더라도 가을은 올 수밖에 없습니다. 동지를 지나고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면 아무리 춥더라도 봄은 오고야 맙니다. 이렇게 계절은 낮의 길이에 따라 변합니다. 즉,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자연의 이치뿐만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수행을 하면 지금은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괴로움이 줄어듭니다. 욕망을 따르고 성질대로 살면 지금은 특별히 나쁜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쁜 결과들이 나타납니다. 원인을 지으면 결과가 즉시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러다 보니 인연 과보를 믿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을 길게 보면 지은 인연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인연을 꾸준히 지어야 합니다.

오늘 저녁에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춤추고 놀다가 잠을 자든지, 조용히 명상하고 나서 잠을 자든지, 지금 당장은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큰 차이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꾸준히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 명상할 때 졸음이 오고 망상이 일어나고 다리가 좀 아프더라도 호흡에 집중하는 연습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한가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정신없이 살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습성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뚜렷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이번 주도 바쁘게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부터는 한가한 마음을 냅니다. 방금 전까지 바쁘게 움직였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생각도 멈추고, 동작도 멈추고, 편안히 있어 봅니다. 편안한 가운데 다만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놓치면 다시 알아차립니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냥 ‘망상이다’ 이렇게 흘려보내고, 오직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해서 뭐하나’ 의심하지 말고 오직 호흡에 집중해 봅니다. 이렇게 할 때 가장 깊이 휴식할 수 있습니다. 휴식을 하면 몸에 피로가 풀리고, 정신에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며, 건강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집니다.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참 다행이다!’ 하는 마음이 듭니다. 살아있음을 만끽해 봅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해보았습니다. 명상이 끝나고 스님은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소감을 직접 읽어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집중이 잘 안 되었습니다.”
“A lot of thoughts interfered with my focus.”

“졸렸습니다.”
“I was sleepy.”

“편안하고 시원한 느낌입니다.”
“I feel relaxed and refreshed.”

“며칠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 장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I kept recalling the scene of the traffic accidents I had several days ago.”

“허리 통증을 느꼈지만 망상과 호흡을 왔다 갔다 하다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I had lower back pain but eventually disappeared. I was going back and forth between distractions and thoughts.”

외국인이 영어로 올린 소감도 있었습니다.

“My mind was restless but it became calm eventually. I am grateful for the meditation session with everyone here.”
(마음이 좀 분주했지만 명상하면서 차분해졌습니다. 명상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A train of thoughts keeps arising and only towards the end of the session did I feel at peace in mind. Thank you, Snim.”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나다가 끝날 즈음에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마지막으로 스님의 마무리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30분씩 두 번 명상할 예정이니까 시간을 조금 더 길게 내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명상을 하며 지난 일주일을 차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고추를 수확하고 씻는 울력을 한 후 오전에는 주간반 전법활동가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전법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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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남

정신없이 살지말고 맑은정신으로 자신의 습성이 어
떻게 일어나는지 뚜렸이 알아차려야 한다는 스님 말씀 명심 하겠읍니다.

2022-09-16 15:34:47

보각

잘 보았습니다. 건강도 중요하군요.

2022-08-26 10:21:57

보광행

인연과보를 믿고 좋은 과보가 나타날 확률이 높은 인연을 지어나가겠습니다

2022-08-25 06: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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