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8.22 고추 수확, 전법활동가 법회
“남편이 내가 하는 활동을 반대해서 힘듭니다,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농사팀이 고추를 씻고 말리는 일이 급하다고 해서 먼저 비닐하우스로 갔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수확한 빨간 고추가 널려있었습니다.


고추를 콘티 박스에 담아 농막으로 옮겼습니다.

건조기에서 잘 마른 고추는 포대에 옮겨 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고추를 3단계로 씻고, 고추 꼭지를 따고, 채반에 펼쳐서 건조기에 넣으면 됩니다. 씻는 일 보다 고추 꼭지를 따는 일이 손이 많이 가요. 고추 꼭지를 따고 건조기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한 사람이 고추를 씻어주면 스님과 나머지 행자들이 고추 꼭지를 땄습니다.

“옛날에는 건조기가 아니라 초가집 지붕 위에 고추를 말리곤 했어요. 가을 하면 코스모스나 황금들녘만 떠올리는데 지붕 위의 빨간 고추도 대표적인 가을 풍경이었어요.”

행자들이 본 적이 없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스님이 웃었습니다. 한 개씩 꼭지를 따고 있는 행자에게는 빠르게 할 수 있는 노하우도 알려주었습니다.

“꼭지를 한 개씩 따지 말고 이렇게 한 번에 고추를 가지런히 여러 개 쥐고 꼭지를 따면 빠르게 할 수 있어요.”

꼭지를 딴 고추는 채반에 놓았습니다. 스님이 물었습니다.

“이렇게 물기가 많은 채로 건조기에 넣나요? 이 물을 다 말리려면 전기가 엄청나게 많이 들 텐데...”

스님은 깨끗한 수건을 가져와 채반 위에 깔고 그 위에 고추를 깔도록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물기를 한 차례 빼고 건조기에 넣기 전에 한 번 더 물기를 한번 닦아냈습니다.


꼭지를 딴 고추가 일정량이 모이면 채반에 고추를 평평하게 펼치고 건조기 속에 넣었습니다.


곧 건조기가 채반으로 가득 찼습니다.


건조기는 꽉 찼는데 아직 남은 고추가 많았습니다.

“틀에 널고 태양에 말립시다.”

스님은 농막 앞에 먼저 엉덩이 방석을 깔아 두고 고추판을 가져가 널었습니다.


햇살을 받은 고추가 반짝였습니다.

세 판을 더 널고 나니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1시간 30분이 지나있었습니다.


“뒷정리 좀 해주세요. 저는 법회 전에 텃밭에 무도 심어야 해서 가볼게요.”

“네, 고맙습니다!”

스님은 빠른 걸음으로 텃밭으로 가서 무까지 심어놓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전법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주간반 전법활동가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먼저 신규 전법활동가 환영식을 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전법활동가가 된 277명을 소개하는 영상을 본 후 대표로 한 명의 소감도 들어 보았습니다.

환영식이 끝나고 대중은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의 농사 소식을 전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두북 수련원에는 ‘오늘과 내일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으니 조심하라’ 하는 마을 방송이 있었습니다. 늦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새벽 기온이 18도로 떨어져서 몸이 으스스할 정도로 쌀쌀했습니다. 가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벼가 다 패서 올벼는 벌써 고개를 숙였고요. 며칠 전에 많은 비가 내려서 벼가 일부 쓰러져서 어제는 벼를 세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오늘은 고추를 씻어 말리면서 제가 행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을을 상징하는 것이 지붕 위에 고추가 널린 모습이다.’

그러자 행자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무도 몰랐어요. 슬레이트나 초가지붕 위에 빨간 고추가 널린 풍경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웃음)

지난주부터 가을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제까지 무 파종을 마쳤고요. 배추는 지금 모종판에서 자라고 있는데, 다음 주부터는 밭에 옮겨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가을은 어김없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어서 신규 전법활동가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신규 전법활동가 여러분, 전법활동가 법회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긴 과정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전법활동가 교육을 신청해서 1년의 교육과 실습 과정 후 심사를 통과한 분들이 오계 수계와 법명을 받고, 통일의병 교육까지 수료하여 오늘 277명의 전법활동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일상적으로는 불교대학 진행자와 돕는이를 맡아 전법 활동을 하게 되고, 매월 하루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통일의병 활동을 하게 됩니다. 통일의병 활동은 한 달에 한 번 진행이 되지만, 만약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있거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여러분 모두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참여해야 합니다. 만약 그때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통일의병이 될 자격이 없으니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합니다. 통일 의병이 되고 나서 평화활동에 불평을 하지 말고, 처음부터 ‘나는 이런 활동은 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의사 표시를 하고 일반회원이 되어서 수행 정진하고 봉사하면 됩니다.

정토회는 이번 주 일요일, 8월 28일에 제1차 만일결사, 30년 결사의 마지막 100일 기도에 입재하게 됩니다. 마지막 입재이니 만큼 주위에 정진하다 그만두신 도반들에게도 마지막 100일 정진을 함께 하자고 권유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스님은 인도와 방글라데시, 필리핀 방문 일정으로 인해 생방송 법회가 불안정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왜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을 방문하게 되는지, 앞으로 3주 동안 펼쳐질 일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 후 활동가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법회 후 2차 만일결사의 방향에 대한 모둠 토론 시간이 있어서 한 명의 질문만 받고 법회를 마쳤습니다. 주말에 전법행자대회에서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오후에는 무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는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사업 방향과 관련해 각 분과별 발표를 듣고 토론을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후 5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 회의에 참석해서 현안을 다루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활동가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전법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전처럼 정토회 대표님의 진행으로 신규 전법활동가 환영식을 먼저 한 후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스님이 화면 속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스님은 신규 전법활동가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 후 활동가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정토회 활동을 반대하는 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힘들다며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남편이 제가 하는 활동을 반대해서 힘듭니다, 어떡하죠?

“신규 전법활동가 도반님들이 많은 난관을 거쳐 전법활동가 법회에 처음 참석하신 이 기쁜 날에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드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저는 9월부터 전법활동가를 내려놓고 일반회원으로 가려고 합니다. 전법활동가가 되어 많은 시간을 할애해 활동을 하다 보니 남편이 화가 나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남편은 제가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힘들어합니다. 저도 화내는 남편을 보기 힘듭니다. 저는 가정불화가 심한 가정에서 성장했고, 남편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어떤 관점을 갖고 수행을 해야 답답한 마음을 없앨 수 있을까요?”

“전법활동가 교육을 수료하여 전법활동가가 되었다는 것은 전법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했다는 의미입니다. 자격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집안에 큰일이 생기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잠시 쉴 수도 있고, 사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복귀 신청을 해서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집안에 어려움이 있어 일정 기간 동안 일반회원이 되어 수행정진을 하다가 형편이 나아져서 전법활동가로 복귀 신청을 하게 되면 약간의 추가 교육만 받으면 됩니다. 처음에 전법활동가 자격을 얻는 과정보다는 가볍습니다. 약간의 교육을 받고 복귀할 수 있으니까 너무 의기소침하지 마세요. 자유롭게 사퇴하시고 일반회원이 되어서 형편 되는대로 봉사하다가 조건이 되면 복귀 신청을 하면 됩니다. 그동안 전법활동가로 봉사하신 것만도 대단하신 거예요.

그런데 수행 차원에서는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질문자가 정토회를 만나 전법활동가가 되기 전에는 남편과 아무 문제가 없었나요? 만약 질문자와 남편이 이전에는 부부 사이가 아주 좋았는데 질문자가 전법활동가가 된 후로 사이가 벌어져서 많이 어려워졌나요? 그렇다면 전법활동가를 그만두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만약 정토회 오기 전에도 남편이 항상 화를 내고 부부 갈등이 많아서 힘들었다면, 갈등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오히려 정토회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뒤로 남편을 시비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아서 관계가 조금 더 좋아졌을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질문자가 전법활동가가 되어 활동이 많아지면서 남편과의 갈등이 다시 시작됐다고 한다면, 전법활동가를 그만두면 처음에는 나아지는 것 같지만 금방 예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으로 돌아갈 때 질문자는 훨씬 더 화가 많이 나게 될 것입니다. ‘너 때문에 하고 싶은 전법활동도 포기했다!’ 이렇게 나를 희생했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남편이 알아주지 않으면 더 실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전법활동가 사퇴가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첫째, 질문자가 정토회를 나오기 전에는 남편이 다른 걸로 시비했는데 이제 시비 거리가 전법활동가 활동으로 바뀌었을 뿐이기 때문에 이 활동을 그만둔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활동을 그만두면 한두 달은 조용하겠지만, 좀 지나면 다른 것으로 또다시 문제를 삼을 것입니다. 질문자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되니까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양보했는데 네가 이럴 수 있느냐!’ 하면서 울컥 화가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해결 방식은 부부 갈등이 있을 때 수행을 통해 극복하지 않고 이혼으로 해결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전법활동가를 그만두게 되면 똑같은 일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둘째, 남편 때문에 전법활동가를 그만둔다는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남편이 화내는 꼴을 보지 못해 그만두는 것은 내 문제입니다. 내 문제로 봐야 앞으로 갈등이 생기더라도 남편을 탓하지 않고 나의 수행 부족으로 보고 스스로를 살필 수 있게 됩니다. 장애가 생겼을 때 포기해서 문제를 푸는 방식은 남편 탓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알았다. 네가 활동을 그만두기를 원하니까 그만둘 테니 한번 잘해봐라!’

이런 심보라면 갈등이 증폭될 위험이 큽니다. 여러분들이 전법 활동을 하면서 남편에게나 아내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은 갈등의 원인도 되지만 그것 때문에 겸손해지기도 하는 겁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큰소리를 쳐도 미안하니까 ‘죄송합니다!’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되거든요. 전법 활동을 할 때는 이렇게 겸손한 맛이라도 있었는데, 막상 활동을 그만두게 되면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고 대들 확률이 높아집니다. 활동을 그만두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그만둔다고 사이가 좋아질 확률은 20퍼센트도 안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해요.

오히려 전법활동가를 계속하면서 남편이 화를 낼수록 남편을 더욱 겸손하게 대하고, 더욱 서비스를 잘해주는 쪽이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전법활동가를 계속 하기 위해서 원과 지혜로 지금의 갈등을 극복해가는 것이 곧 수행입니다. 절을 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에요. 남편이 원하는 걸 들어주는 것도 수행입니다. 그게 잘 안 되면 300배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봐야 해요. 남편이 화를 내면 ‘꼴 보기 싫다’ 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남편에게 말하는 겁니다.

‘여보, 죄송합니다. 제가 종교에 미쳐서 이러는 게 아니라 전법활동을 해보니까 유익하고 재미있어요. 나를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것이니까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양해해 주세요. 대신 다른 걸 잘해 드릴게요.’

이렇게 가볍고 재치 있게 넘어가거나 아양도 떨면서 지나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내가 나쁜 짓 했어?’ 하고 대드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질문자는 수행적 관점을 놓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전법활동가를 그만둬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것은 수행으로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부부 갈등을 이혼으로 풀려는 것과 같은 방식이에요. 차라리 남편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내가 보살펴주지 않으면 위험한 경우라든가, 아이들이 사춘기라서 내가 보살펴줘야 하는 경우라든가, 이런 이유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수행적 관점에서 볼 때 자기에게 사로잡힌 것이지 남편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시 한번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 잘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한두 명의 질문을 더 받고 답변을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밤 9시가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내일은 산윗밭에 올라가서 오전 내내 풀을 베기로 했습니다. 공동체 법사님들 중에 시간 나는 분들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오후에는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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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맞습니다 우리집도 남편이 반대하기도 하는데 그러할 때 좀 더 겸손하게 대하겠습니다

2022-10-05 06:05:11

보각

잘 들었습니다. 그만두는게 핵심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게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2-08-30 11:02:37

김봉실

힘들고 지치고 아프다는 이유로 잠시 내려놓고싶었던마음을 참회하고 다시 관점을잡고 새로운마음으로 잘 살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2-08-28 06: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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