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8.10 안거 회향식
“타성에 젖어서 수행을 하고 있다면”

안녕하세요. 안거(安居)를 잘 마쳤습니다. 스님은 안거 기간 동안 6박 7일 온라인 명상수련과 4박 5일 온라인 명상수련을 12일 동안 진행한 후 공동체 수행 대중과 6일간 24시간 함께 연찬과 수련을 함께 했습니다.

공동체 대중은 문경 정토연수원에서 명상수련을 한 후 지부별 으뜸절 탐방을 하고, 8월 5일부터 두북 수련원에서 농사일을 하며 2차 만일결사의 방향에 대해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토론 주제는 2차 만일결사의 방향, 농업, 재활용 유통, 온라인정토회, 공동체, 사회활동, 으뜸절, 지역실천, 총 8가지였습니다.

6일 동안 주제별로 열띤 토론과 발표가 있었고, 오늘은 마지막 토론 주제인 ‘공동체’에 대해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공동체에 살면서 입으로는 자신을 수행자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타성에 젖어서 수행을 하고 있어 보여요. 아침마다 수행문과 경전을 읽고 108배 정진을 하고 있지만 말이죠. 매일 읽는 경전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면 한 구절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서 수행의 관점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에 경구는 읽지만 뜻이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거예요.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타성에 젖어서 수행을 하고 있다면

하지만 인간의 의식 구조가 원래 그렇습니다.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아무리 좋은 일도 반복을 하면 타성에 젖기 마련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것이든 다 습관적으로 흘러가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인간이 가진 의식 구조로는 자각이 일어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반면 아주 오래되고 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습관도 자각을 하면 거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를 일컬어 옛 선사들은 ‘부처도 한순간 어리석으면 중생이 되고, 중생도 한순간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라고 까지 표현하셨습니다.

한순간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잖아요. 이것은 자연스러운 정신 작용이에요. 현실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행자라면 조금 더 자기를 돌이키는 힘이 있어서 수행의 관점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명상을 할 때 망상을 피우다가도 호흡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원리는 쉽지만 현실에서는 늘 망상에 끌려가지 않습니까?

사로잡힌 상태는 마치 명상할 때 생각에 빠져 있는 것과 같아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딱 돌이키면 금방 앞길이 보이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씩 수행을 점검해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이 되어야 고생을 하거나 생활이 불편해도 보람을 느낄 수 있어요. 수행이 안 되면 아무리 큰 집에서 살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도 늘 불평불만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현실은 포용하면서 최선을 향해

인생을 살면서 늘 최선의 길을 선택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지향하지만 현실은 최선으로 가지 못할뿐더러, 차선 아니면 최악을 피한 차악으로 가기만 해도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고 볼 수 있어요.

여러분들도 최선의 기준으로 보면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악이나 최악을 기준으로 여러분을 본다면 참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 세상에는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이 몇 사람 안 된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기준을 최선으로 두기 때문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기준이 너무 높으면 괜찮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잘못된 사람처럼 인식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경계해야 해요.

차선 정도 되는 데도 마치 최악이나 차악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헤어지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를 하게 돼요. 왜냐하면 헤어지고 나서야 돌아보면 ‘괜찮았구나’ 이런 자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토회는 수행 공동체이기 때문에 사바라이(四波羅夷)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본인이 공동체에 있겠다고 하면 강제로 내보내지 않아요. 우리의 기준이 최선이기 때문에 문제가 많아 보이는 것인데, 객관적으로 보면 여러분은 사회에서 다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행자이니까 항상 최선을 기준으로 평가를 하되 포용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이어서 스님의 제안으로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1인당 A4 용지 반장씩을 나눠준 후 내가 지금 가장 바라는 소망 한 가지와 정토회가 지금 개선하면 좋은 점 한 가지를 각각 쓰도록 했습니다.

“무엇을 적어도 좋아요. 이것만 이뤄지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가지만 적어보세요.” (웃음)

각자 작성한 내용을 돌아가며 발표했습니다.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안식년이 있으면 좋겠다, 휴가를 다녀오면 좋겠다, 휴일이 생기면 좋겠다 등 주로 휴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어서 소감 나누기를 했습니다. 특히 이번 안거에는 해외에서도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함께 참여했습니다. 워싱턴 정토회관 그리고 인도JTS와 필리핀JTS에 파견되어 있는 활동가들도 온라인으로 소감을 말했습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네요. 해외에서도 안거에 참석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소감 나누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공동체 대중이 지난 18일 동안의 안거를 끝내며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수행자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강조했습니다.

“18일간의 안거를 오늘로 마치게 됐습니다. 그런데 ‘안식년을 달라’, ‘휴가를 달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노동자들이 여기 모였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노동자들이니까 안식년이나 휴가가 필요하죠.

삶이 그대로 휴식이고 휴가

정토회를 창립할 때 실무자가 가져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월급 없음. 둘째, 휴일 없음. 셋째, 휴가 없음. 이것을 세 가지 없음이라고 해서 ‘삼무(三無)’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군대처럼 휴일이나 휴식이 없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삶이 그대로 휴식이고, 삶이 그대로 휴가이고, 삶이 그대로 수행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러니 굳이 휴가나 휴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원칙을 정한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여러분의 마음속 밑뿌리에 휴식에 대한 욕구가 늘 남아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 수행자라기보다는 일꾼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한마디로 좋은 일을 하는 일꾼들이라는 거죠. 혁명 일꾼이든, 자선사업 일꾼이든, 지금 여러분은 일꾼으로 살고 있다는 거예요. 명상을 하더라도 일로 하기 때문에 명상을 하면서 지치게 되고, 명상을 하고 나면 다음날 하루를 쉬어야 합니다. 실컷 쉬고는 또 하루 더 쉬는 격이에요. 세속 사람들이라면 휴가를 갔다 와서 너무 피곤하니까 하루 쉬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휴식에 대한 여러분들의 요구가 굉장히 정당하다는 거예요. 왜 정당할까요? 그건 여러분들이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행적 관점으로 돌아오면 어떨까요? 수행자는 쉬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일’로 하지 마라는 얘기예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이 말은 세속 사람들의 경우 결과를 좋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결과가 어떠하든 그 일을 수행적 과제로 삼아서 해나간다는 입장이 분명해야 돼요.

육체가 피곤한 것은 1시간을 쉬어도 되고 하루를 쉬어도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금 쉬고 싶어 하는 이유는 대부분 정신적 스트레스라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절에 와서 돈을 내고 명상도 하고 휴식도 하러 올 수가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절에 사는 게 너무 피곤해서 밖에 나가 먹는 것 좀 실컷 먹고 싶다거나 어디 가서 놀다 오고 싶어 한다는 거잖아요. 이건 모순이죠. 그렇다면 결국 여러분들은 절에 살면서도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저기 살던 사람은 여기 구경하고 싶고, 여기 살던 사람은 저기 구경하고 싶은, 그냥 세상 속에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일체의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의 관점은 놓치고 있는 겁니다.

수행자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지금 상태를 정의하면 ‘좋은 일을 하는 일꾼들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선 사업가가 불쌍한 고아들을 돕고, 노인들을 돕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그걸 운영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울고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수행자는 아닙니다. 결국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될 뿐이에요.

수행자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없습니다. 헌신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 일이 괴로움으로 쌓이지 않도록 늘 마음관리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정토회 일을 하면서 마음이 지치고 원망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고 수행적 관점을 놓친 거예요. 물론 이것은 저를 비롯해서 누구에게나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관점을 상당기간 놓쳤더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관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해요. 법문을 듣거나 상담을 하거나 명상이나 산책을 하다가 관점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심이 잡히면 몸이 아파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면 약 먹으면 되잖아요. 우울증에 걸리면 치료를 받으면 되잖아요. 다리가 아프면 지팡이를 짚으면 되잖아요. 못 걸으면 휠체어를 타면 되잖아요. 못 일어나면 누워서 하면 되잖아요.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더 이상 괴로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괴롭다는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만약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문제를 비수행적인 방법으로 푼다면, 우리가 이렇게 모인 수행공동체의 정체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정토회의 모토는 ‘수행’이에요. 정토회가 만들어지고 나서 여러분들이 여기에 참여한 핵심 이유는 바로 수행입니다. 물론 그 취지에 대해 여러분들이 잘 모르고 참여했을 수도 있고, 취지는 원래 알고 왔지만 살다 보니 놓쳐버렸을 수도 있어요. 마치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목표가 있지만, 명상을 하다 보면 졸음이나 망상에 빠지거나 혹은 망상이 재미있어서 망상으로 큰 건물 한 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상한다고 앉아 있는 이유는 깨어 있기 위해서지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명상의 과정에서 어떤 연구를 하게 될 수도 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소득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행의 부수입일 뿐입니다.

수행적 관점을 지켰느냐, 놓쳤느냐?

정토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관심을 받았다’,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다’, ‘정토회의 재산이 늘어났다’ 이런 것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부수입일 뿐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살다 보니 지은 인연의 과보로 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건 복에 불과하지 해탈은 아닙니다. 해탈은 그런 복이 있든지 없든지 아무 관계가 없어요. 만약 우리가 10년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안 알아주고 심지어 탄압을 하고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평가이지 수행자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세상이 이렇게 평가한다고 성공이고, 세상이 저렇게 평가한다고 실패이면, 우리가 어떻게 해탈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세상 놀음에 놀아나는 것일 뿐입니다.

‘수행적 관점을 지켰느냐, 수행적 관점을 놓쳤느냐?’

우리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수행적 관점을 지켰으면 성공이고, 수행적 관점을 놓치면 실패이다’ 이렇게만 평가해야 합니다. 정토회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조금 좋을지 몰라도 그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복일뿐이에요.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복은 얼마 있으면 다 걷어가고 또다시 비난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 비난을 준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어요. 또 조금 있으면 비난이 거꾸로 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고(苦)와 락(樂)은 윤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칭찬받는다고 들뜨지도 말고, 비난받는다고 기죽지도 마세요.

이 수행적 관점은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걸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산다는 것은 마왕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걸 제외하고 나머지는 우리 모두가 평등한 수행자니까 의논을 해서 다수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농사를 많이 지을지 적게 지을지, 유기농을 할지 말지,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우리가 의논해서 결정해나가면 됩니다. 여기에는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전체 대중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무엇이든지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지나친 편리 중심으로 가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관점을 놓칠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수행적 관점을 지키고 소득이 적은 길과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소득이 많은 길이 있다면, 우리는 수행적 관점을 지키고 소득이 적은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홍서원과 함께 안거를 마쳤습니다. 두북 수련원의 구석구석을 대청소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스님은 서울과 문경 등 각자의 처소로 향하는 공동체 대중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스님의 일상이 평소처럼 이어집니다. 오전에 서울에 올라가서 병원 진료를 받은 후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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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수행

2021-08-25 04:35:46

도원심

수행자는 어떤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휴가와 휴식에 대하여 말씀하신 부분에서는 웃음이나왔습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_()()()_

2021-08-19 13:17:23

이윤주

수행적관점 잘 지켜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1-08-17 20: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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