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7 농사일, 수행법회
“이제 그만 쉬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조금씩 해 뜨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날이 밝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오늘도 8시에 밭으로 나갔습니다. 수행법회 전에 울력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일찍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특별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북미서부지부 대표를 맡고 있고 시애틀에 살고 있는 주상휴 거사님과 아시아태평양지부 대표를 맡고 있고 필리핀에 살고 있는 노재국 거사님이 두북 수련원을 찾았습니다.

오전 울력

오늘 일감은 저수지에 호스를 연결하는 일입니다. 높은 지대에 있는 저수지에서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낙차를 이용하여 아래에 있는 논과 비닐하우스로 물을 끌어옵니다. 작년에 처음 설치할 때는 이런저런 연구를 하느라 설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올해는 지난 성과를 바탕으로 바로 장치를 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먼저 작년에 썼던 관을 찾아 못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늘 불안하게 삐걱거리던 통나무 다리를 보완했습니다.

울력을 시작하려는데 스님과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분이 왔습니다. 어르신은 마을에서 계속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오래 전에 여기 논에 물을 댈 수 있게 설비를 다 해놨었어. 내가 열어줄게.”

물이 졸졸 흘러나왔습니다.

“나중에 기름칠해서 조이면 잠길 거야.”

“고마워.”

친구분은 기분 좋게 내려갔습니다.

스님은 논 장화를 신고 설치를 시작했습니다.

반대편 나무에 묶을 끈을 거름망을 씌운 플라스틱 상자에 묶은 뒤 물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이 상자에 호스 입구를 집어넣으면 됩니다. 거름망 상자는 물에 있는 찌꺼기를 걸러주고, 호스를 고정해줍니다. 또 나무에 끈을 묶어두었기 때문에 저수지 물이 줄어들면 끈을 당겨서 호스를 더욱 깊숙이 넣을 수 있습니다.

호스 입구에 한 번 더 촘촘한 거름망을 씌워주었습니다.

이제 낙차를 이용할 차례입니다. 물을 흘려보내야 하는데 주전자를 챙겨 오지 않았습니다. 행자가 주전자를 가지러 간 사이 스님은 벗어놓은 장화로 물을 떠서 호스에 흘려보냈습니다. 스님에게는 도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호스 아래쪽을 막아 놓고 물을 계속 흘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장화로 수십 번 물을 떠 넣었는데 계속 물이 들어갔습니다. 벚꽃도 매화도 다 졌지만 아직 물속은 서늘했습니다. 몸에 점점 한기가 들었습니다.

“이상하네요.”

아래쪽에 가보니 호스와 호스를 연결하는 부분에 물이 새고 있었습니다. 연결하는 부품을 다시 갈아 끼우기로 했습니다.

시간은 이미 아홉 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오전에 다 못하겠네요. 법회 끝나고 다시 합시다.”

법회 시간이 다가와 스님은 그만두고 장화를 벗었는데 아래에서 연결했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럼 지금 얼른 하고 갑시다.”

스님은 벗었던 장화를 다시 신고 물속으로 들어가 다시 호스로 물을 흘려보냈습니다.

어느 정도 호스에 물이 차고 입구를 물속에 있는 거름망 상자로 푹 집어넣었습니다. 동시에 막아놓은 아래쪽을 팍 열었습니다.

“물이 내려옵니다!”

호스를 물속으로 더욱 깊이 끌어당겨 놓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아직 이 호스에 논으로, 비닐하우스로, 물탱크로 호스를 연결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수고들 했어요. 오후에 호스를 마저 연결합시다.”

농사일을 마치고 10시 수행 법회 시작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내려왔습니다.

1200여 명의 주간반 활동가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삼귀의 반야심경을 한 후 수행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쌀쌀해진 어제와 오늘 날씨를 이야기하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인생의 봄을 맞이하며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이번 주에는 좀 쌀쌀해졌네요. 봉화에는 아침에 얼음이 얼었다고 합니다. 제가 있는 이곳 남부 지방도 아침 기온이 2도까지 떨어져서 옮겨 심었던 채소들이 냉해를 입게 됐습니다. 겨울에 많이 춥더니 2월과 3월에는 따뜻해서 봄이 일찍 오나 싶었는데 또 4월 들어 날씨가 쌀쌀해지네요. 이렇게 변화가 많지만 조금 길게 보면 나날이 따뜻해지는 게 봄입니다.

수행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면 봄날이 오듯이 인생살이가 점점 좋아지지만, 하루하루라는 짧은 시간만 비교해 보면 수행하기 전보다 오히려 못한 날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정진해 나가야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지난 일요일에 열린 전국대의원회의 결과를 간단히 소개하며 4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진행되는 정토회 온라인 선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약 30분 동안의 법문이 있은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200여 명이 방청객으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오늘은 5명이 스님에게 직접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두 번째 질문자는 그동안 법당 총무 소임을 하면서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서 이제는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질문했습니다.

이제는 활동을 모두 정리하고 쉬고 싶어요

“저는 현재 법당 총무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법당 총무 소임이 주어져서 개인적으로는 많이 성장했기에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 와서 이번 총무 소임이 끝나면 활동을 모두 정리한 후 쉬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개편이 되는 시점에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새로 시작하면 좋을까요?”

“그런 질문을 저에게 하면 쉬라고 하겠어요, 일하라고 하겠어요? (웃음)

그동안 너무 고생을 했습니다. 이번 10차 천일결사 기간에 법당 총무나 정토회 총무 등의 중요 직책을 맡은 분들은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직책을 맡고 나서 제대로 출발하기도 전에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사태가 벌어져서 아직 저와 다 같이 오프라인에서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했어요. 대의원들도 지난주에 해산될 때까지 한 번도 오프라인에서 전체 모임을 갖지 못하고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온라인으로만 모임을 진행하다가 마치게 됐거든요. 그래도 대의원들은 온라인 회의라도 하니 그나마 낫습니다. 여러분은 기존의 법당을 계약이 종료되고 철수할 때까지 관리해야 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업무도 해야 하니까 회의도 많고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해외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법당 총무를 맡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예 전법 활동가 신청도 안 한 경우가 있대요. 그만큼 어려웠나 봐요. 그러니 질문자가 힘들다는 것을 저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할 거냐는 이제 본인이 선택을 해야죠. 즉문즉설을 할 때 교회 다니는 분이 저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스님, 제가 교회에서 집사를 맡았는데 너무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면 스님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질문자가 스님이라 생각하고 한 번 대답해 봐요. 힘들어도 계속하라고 말할까요?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라고 말할까요?”

“계속하라고 말할 것 같아요.” (웃음)

“교회 집사가 묻는데도 그렇게 말할까요?

‘스님, 교회에서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죽겠어요.’
‘아이고, 그러면 그만두세요.’
‘목사님이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데요.’
‘그러면 그냥 하세요.’

아마 이런 대화가 이루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제가 ‘힘들면 총무 소임을 그만두세요’ 이렇게 말하면 정토회 대표님이나 다른 분들이 이렇게 말할 거예요.

‘스님, 스님이 하라고 얘기해도 안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스님이 그만두라고 하면 어떡합니까?’

그러나 즉문즉설이라는 건 내 편이니 네 편이니, 내 사람이니 네 사람이니 하는 것을 전혀 논하지 않고 진실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힘드시면 쉬어도 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동안 질문자도 세상살이를 할 때 힘들었잖아요. 힘들어하다가 부처님 법을 만나서 좀 자유로워졌잖아요. 그러면 세상살이를 할 때는 왜 힘들었을까요? 내가 좋아서 만난 남편이고, 내가 낳아서 키우는 자식이고, 내가 원해서 마련한 가게와 회사와 직장인데 왜 힘들어서 죽는다고 할까요? 그 당시에는 결혼했다고 얼마나 좋아했고, 애 낳았다고 얼마나 좋아했고, 취직했다고 얼마나 좋아했고, 가게 문 열었다고 얼마나 좋아했어요? 모두 다 본인이 좋아서 축하받으면서 시작한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스님한테 와서 괴롭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편 때문에 괴롭다’, ‘아내 때문에 괴롭다’, ‘자식 때문에 괴롭다’, ‘직장생활이 힘들다’, ‘가게가 안 돼서 힘들다’ 이런 얘기만 합니다. 이게 세상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힘들면 그만두세요’ 이렇게 가볍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결혼을 그만둡니까!’, ‘어떻게 애를 그만둡니까!’, ‘어떻게 직장을 그만둡니까!’, ‘어떻게 가게를 관둡니까!’ 이렇게 반응해요. 그러면 저는 또 ‘그러면 계속하세요’ 이렇게 얘기합니다. (웃음)

가게를 열거나 결혼을 할 때 축하 글을 써달라며 제게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결혼을 축하합니다’ 이런 글을 써준 적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있다면 제가 아직 도를 잘 모를 때 써주었을지는 모르겠어요. (웃음) 저한테 축하 글을 써달라고 하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축하 글을 못 써드립니다.’
‘왜요?’
‘그게 축하할 일인지 아닌지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저에게 찾아와서 결혼생활 때문에 힘들다고 얘기하는데 제가 어떻게 ‘결혼을 축하합니다’ 이런 글을 써줄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웃음)

여러분이 힘든 이유는 결혼생활 때문도 아니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 때문도 아니고, 직장생활 때문도 아니고, 가게 때문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모두 본인이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잖아요. 그러나 거기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이혼을 하라는 게 아니라 결혼생활에 집착되어 있는 부분을 놓으라는 얘기예요. 아이를 버리라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집착되어 있는 부분을 놓으라는 겁니다. 직장을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직장에 집착되어 있는 부분을 놓으라는 말이에요. 여러분과 저의 대화는 늘 이렇습니다.

‘아이고, 그러면 그만두세요.’
‘그만두면 뭐 먹고살아요?’
‘그러면 하세요.’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그러면 그만두세요.’

이런 대화를 농담처럼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이유는 이것이 상대편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라는 사실을 보라는 뜻입니다. 내가 집착된 부분이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그것을 놓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처음 정토회에 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을 때는 너무너무 좋았어요. 좋으니까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요. 고마운 마음으로 가볍게 하는 행위가 돈을 조금 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을 내어서 봉사를 하기 시작해요. 처음에는 너무너무 기뻐서 봉사를 시작했지만, 이것도 계속하게 되면 점점 집착이 됩니다. 그래서 봉사가 부담이 되고 일이 되어 버려요. 마치 결혼생활이나 직장생활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 질문자는 정토회 활동도 부담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제가 농사짓는 것을 운동 삼아 놀이 삼아한다고 종종 얘기하잖아요. 어떤 일이든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하면 운동이 되기도 하고, 놀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집착되면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농사가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법문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저한테 하는 수없는 질문들이 결과적으로는 거의 다 비슷비슷한 얘기예요. 매일 즉문즉설 때마다 질문을 받아보면 ‘애 때문에 죽겠다’, ‘남편 때문에 죽겠다’ 이렇게 뭐 때문에 죽겠다는 내용들이 전부입니다. 제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좋아서 해놓고는 내내 괴롭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얘기를 수십 년 내내 듣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반응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듣기 싫다고 내쳐 버리든지, 둘째, 대충 대답해 버리든지, 셋째, 이미 해놓은 얘기가 있으니까 그걸 들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똑같은 얘기라도 그 사람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매번 처음 하는 얘기처럼 대답을 합니다. 이 일을 수십 년째 계속하고 있어요.

제가 옛날에 한 법문을 들어보세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 강의를 듣고 나서 ‘예전에 들었을 때는 이러저러한 얘기가 없었는데, 올해 들었을 때는 그런 얘기가 있던데요. 강의가 바뀌었나요?’ 이렇게 묻는데, 내용은 하나도 안 바뀌었어요. 저는 같은 내용도 늘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하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지루하다거나 힘들다는 생각 없이 기쁜 마음으로 합니다.

그리고 저도 법문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결혼을 안 해봤지만 결혼생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워요. 자식을 안 키워봤지만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를 배웁니다. 여러분이 직접 낳아 키우면서 경험하는 건 한 가지 사례에 그치지만, 저는 직접 안 키우는 대신에 수백, 수천 건의 사례를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다른 온갖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것을 저의 공부로 삼아하는 거예요. 제가 그 일을 안 해본 대신에 더 많은 연구를 합니다.

‘저 사람은 본인이 좋아서 시작해놓고, 왜 저렇게 괴롭다고 할까?’

저는 그 이유가 궁금해요. 어제는 둘이서 한 이불 아래에 자고서는 오늘은 저한테 찾아와서 남편 때문에, 혹은 아내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제는 왜 같이 잤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어요.

‘밤에는 잠자리를 같이 해놓고 아침에는 왜 싸우는 걸까? 싸웠으면 밤에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왜 밤에는 또 같이 자는 걸까?’ (웃음)

저는 이렇게 연구하면서 배웁니다. 인간 심리를 연구해 보면 이런 경우가 많아요.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또 모르겠는데, 돈을 빌려주고서는 못 받아서 괴로워합니다. 호의를 베풀고도 오히려 원수가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런 사연을 자꾸 듣고 연구를 해보면 ‘아, 인간 심리가 이렇구나’, ‘부처님도 그래서 마음이 이러저러하다고 얘기하셨구나’ 이런 것을 배우게 됩니다.

질문자가 정토회 활동이 힘들다고 하면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활동을 그만두는 길이 있습니다. 둘째, 연구해서 풀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토회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것은 결혼생활이 힘들어서 이혼하는 것과 심리적으로는 똑같습니다. 이 방법은 도(道)가 아닙니다. ‘괴로워도 남편하고 계속 살아야 한다’ 이것도 도가 아니듯이 ‘괴로워도 정토회 활동을 하기로 했으면 계속해야 한다’ 이것도 도가 아니에요. 그만두는 것도 극단이지만, 힘들어도 참고하는 것도 도가 아니에요. 둘 다 극단입니다.

중도(中道)란 극단을 뛰어넘는 겁니다. ‘처음에는 다 좋았는데 무엇 때문에 괴롭게 되었을까?’ 이걸 살펴서 ‘아, 내가 여기에 집착돼 있구나!’ 이렇게 딱 돌이키는 거예요. 그래야 ‘제가 이런 사정이 있어서 이 일은 오늘 못 하겠습니다’ 이렇게 거절을 해도 별로 부담이 안 되고, 뭘 하라고 할 때도 ‘네!’ 하고 기꺼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남편에게 집착되어 있을 때 부처님 법을 통해서 어떻게 갈등을 풀었는지를 연구해서 이 문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해 보세요. 정토회 활동이 힘들다고 하는 것은 부부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부생활이 힘들었을 때 처음에는 이혼해서 해결하려고 했지만 부처님 법을 만나서 이혼하지 않고도 괴로움을 해결했잖아요. 정토회 활동이 힘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활동을 그만두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이 도(道)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이혼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것은 부처님 법을 만나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뜻입니다. 발전해서 나아간 게 아니라 발전했다가 도로 돌아가 버린 거예요. 그렇다면 반드시 무언가에 집착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질문자가 조금 더 살펴본다면 그걸 알 수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이 처음에는 좋아서 만납니다. 그 만남 때문에 귀찮아졌을 때는 헤어져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그러면 한번 헤어져보면 돼요. 헤어져보면 외로워서 또 사람을 찾습니다. 그래서 다시 만나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요.

‘아, 이건 헤어지고 만나고의 문제가 아니구나.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괴로울까?’

이 원리를 탁 알게 되면 만나도 귀찮지 않고 헤어져도 외롭지 않아요. 이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게 수행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면 이게 문제고, 저러면 저게 문제고, 늘 이런 경계에 걸려 있어요. 만약 질문자가 오늘 활동을 그만두면 얼마 후에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이 일어나는 문제가 또 생길 겁니다.

방금 전에는 일이 없어서 섭섭하다는 질문이 있었는데, 질문자는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죽겠다는 거잖아요. 정 반대되는 두 가지 질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밥을 너무 먹은 탓에 배불러서 힘들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밥이 부족해서 배고프고 힘들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이런 양 극단 사이에서 중도의 길을 찾는 것이 수행입니다.

첫째, 조금 더 연구해서 길을 찾아보세요. 둘째, 아직 중도를 발견하기 어려우면 일단 그만두어 보면 돼요. 그만두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 살펴보고, 허전하면 다시 또 활동해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는지 살펴보세요.

‘아, 이건 그만두느냐 활동하느냐의 문제가 아니구나.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문제구나.’

이걸 딱 해결해버리면 활동을 그만둬도 편안하고, 활동을 계속해도 편안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꼭 활동을 하는 것이 불법(佛法)이 아니에요. 이 이치를 깨쳐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길을 찾는 게 불법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무척 적극적으로 활동해오신 분이 요즘은 많이 위축된 상황입니다. 온라인으로 전환되면, 정토회에서 그동안 해오던 이웃과 세상과 함께 하는 사회활동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 제가 아는 사람이 선거에 출마했는데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한 표라도 힘을 실어 주고 싶은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저의 한 표가 제대로 역할을 발휘해야 되는 사이에서 갈피를 잡고 싶습니다.
  • 현재 4차 산업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IT, 과학, 공학계에 종사하는 정토행자들은 어떤 직업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 명상을 할 때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호흡에만 집중해야 한다고도 하셨고, 무상과 무아의 도리를 알아차려야 한다고도 하셨는데, 이 두 가지가 서로 모순된 것은 아닌지요?

답변을 모두 마치고 스님은 질문자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활동을 쉬고 싶다고 질문한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동안 활동을 재미있어 했고, 굉장히 신나게 활동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거기에 제가 집착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스님께서 딱 체크해 주셨어요. 제가 집착되어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좀 더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다음 주부터 변화되는 수요 수행법회와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 활동가 법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법회를 마쳤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수요 수행법회가 정토회의 주된 법회가 됩니다. 그래서 모든 행사는 수요일을 중심으로 열리게 됩니다. 전법활동가들이 전법을 하는 데 필요로 하는 교육이나 상담, 훈련은 이제 월요일로 옮겨서 진행이 됩니다. 그러면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법문이 끝난 후 곧이어 정회원 보고회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열린 제2차 임시 전국대의원회의 결정사항에 대해 정토회 김은숙 대표님이 20분 간 발표하고, 모둠별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합장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스님은 해외에서 온 주상휴 거사님과 노재국 거사님에게 두북 수련원에 마련한 재활용창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전국에서 170개 법당을 철거하면서 나오는 가구들을 모두 재활용하려고 이 창고에 모으고 있어요. 주말마다 봉사자들이 와서 물건을 분류하고 있고요.”

“굉장하네요.”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오후 울력

오후에도 노재국 거사님과 주상휴 거사님이 함께 했습니다.

호스를 더 길게 연결하고, 한쪽으로 고정시켰습니다.

논 위로도 호스를 연결했는데 물이 콸콸 잘 나왔습니다.

한편 노재국 거사님은 오전에 물이 새기 시작한 곳을 조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름칠을 하고 아무리 조이고 열고 조이고 열기를 반복해도 물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오래전에 잠가둔 걸 여니까 고장 난 걸 거예요. 친구가 잘한다고 했는데 저수지 물이 다 없어지겠네요.” (웃음)

호스는 다 연결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 겁니다. 임시로 쟁반과 크고 작은 돌로 물이 나오는 입구를 막아두었습니다.

울력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 이제 윗 논에서 아랫 논까지 이어지는 울타리 주변 가시덩굴을 제거할 거예요. 새싹이 많이 나기 전에 제거해야 그나마 수월해요.”

여름이면 무성해질 풀과 덩굴들을 미리 제거하느라 더욱 바쁜 요즘입니다. 낫과 톱을 들고 울타리 안팎에서 덩굴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뒤엉켜 있는 가시덩굴을 뜯어내다 보니 손끝에 작은 가시들이 박히고 ‘아이고’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두 시간이 지나자 울타리 주변이 말끔해졌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시원합니다.

스님의 손길이 닿은 곳곳이 말끔해지고 있습니다.

4시가 넘어 울력을 마치고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거사님들과 진달래, 연달래 구경을 했습니다.

저녁에는 4월 10일 정토회 온라인 선거에 방송할 법문을 녹화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서암 큰스님 열반 18주기 추모법회에 참석한 후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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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언뜻언뜻 상대를 탓하지만
잘 살피면 다 내 뜻대로만 하려는 마음
으로 짜증내고 화내고 막말하고...
감사합니다 꾸벅!

2021-04-15 14:26:18

송서양

집착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군요

2021-04-14 21:41:51

실상

24시간을 넘어 시간을 만드시는 느낌입니다.
스님의 농사이야기는 언제나 신기합니다. 쉬엄쉬엄 하십시오~^^

2021-04-14 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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