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9.2 백중 회향 법회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자꾸 나빠지는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한 후 백중기도 회향을 맞아 기념법문을 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저 멀리 태풍 ‘마이삭’이 몰려오는 하늘은 물기 가득한 먹구름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산 아랫 밭에 가서 어제에 이어 나뭇가지를 정리했습니다. 행자들은 태풍에 대비해 논과 밭, 비닐하우스에 비설거지를 했습니다.


나뭇가지 중에는 가시가 있는 것도 많았습니다. 스님은 가시 장갑을 끼고 가시나무를 주로 치웠습니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한쪽 구석에 모았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그래도 다 옮겼네요.”

울타리 한쪽 면의 나뭇가지를 다 치웠습니다. 나머지 두 면은 태풍이 지난 후 치우기로 했습니다. 햇살 한 줄기 받을 수 없었지만 오늘도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땀을 안 흘릴 수가 없네요.”

울력을 마치며 밭에서 갓 딴 오이로 목을 축였습니다.

“예초기를 돌리고 갈까요?”

“스님, 오늘 법문이 있는데 무리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무거운 예초기를 들고 온 게 아깝잖아요.”(웃음)

법사님들이 계속 만류해서 결국 울력을 마쳤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오전 10시에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음력 7월 15일 백중절(百中節)입니다. 다른 말로는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합니다.

스님은 백중기도가 생긴 유래와 현대적 의미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음력 7월 15일이 조상의 넋을 기리는 전통 명절입니다. 조상을 기리는 인도의 전통 명절이 불교 안으로 들어왔고, 불교를 따라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와서 우리의 명절이 된 것이 백중입니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조상신을 기리는 믿음이 있다 보니, 백중절이 인도의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바로 세운다

백중절은 우란분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우란분절은 ‘울람바나(ullambana)’라는 말에서 왔는데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바로 세운다’라는 뜻입니다. 거꾸로 매달렸다는 것은 삶에서 거꾸로 갔다는 뜻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왜 거꾸로 갔을까요? 칭찬받기를 원하면 내가 먼저 칭찬을 해야 하는데, 나는 남을 비난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칭찬이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을 지어야 언젠가 복을 받을 텐데, 베풀거나 복을 지어놓은 것 없이 복만 받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화가 돌아올 행동을 해놓고 복을 기대하죠. 이런 행동이 ‘거꾸로 된’ 행동입니다. 나는 천상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오히려 내가 지은 인연의 결과는 지옥에 떨어지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옥에 떨어지면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않고 억울해합니다.

‘왜 나만 이런 결과를 갖게 되는가?’

이것은 하느님의 벌도 아니고, 전생의 죄도 아니고, 사주팔자가 나빠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도록 원인을 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인연을 매우 중요시 하신 거예요. 어떤 결과를 원한다면 그것이 가능하도록 인연을 지어야 합니다. 지금 어떤 인연을 짓고 있다면 나중에 그에 따른 과보가 올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

이런 이치를 알게 되면 인생살이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가미니라고 하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미니가 부처님께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부처님,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강가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다 죄가 없어진다고 하고,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죽을 때 브라만들이 기도해 주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못 간다고 합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가미니를 데리고 연못가로 가서 큰 돌멩이를 하나 연못에 던지셨습니다.

‘가미니여, 어떤가?’

‘예, 돌멩이가 물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러면 브라만들이 이 연못가에 와서 ‘돌멩이여, 물 위로 떠라’ 이렇게 기도한다고 돌멩이가 물 위로 뜨겠는가?’

‘뜨지 않습니다.’

‘왜 안 뜨는가?’

‘무거운 것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니까요.’

‘그렇다.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사음하고, 거짓말하고,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를 피우는 것은 무거운 업을 짓는 것이니라. 이는 마치 무거운 돌멩이처럼 저절로 지옥으로 가라앉게 되어 고통을 겪게 되느니라.’

그런 다음 부처님께서는 항아리에다가 기름을 넣어서 연못에 던지셨습니다. 처음에는 항아리 무게 때문에 연못 바닥에 가라앉았는데, 긴 장대로 항아리를 때리자 항아리가 깨지면서 기름이 올라와 물 위에 떴습니다.

‘가미니여, 어떤가?’

‘기름이 물 위에 떴습니다.’

‘그러면 바라문들이 이 연못가에 둘러서서 ‘기름아, 물 밑으로 가라앉아라’ 이렇게 기도한다고 기름이 가라앉겠느냐?’

‘가라앉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가벼운 것이 위로 올라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니까요.’

‘그렇다.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고,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남을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해 주고, 거짓말하지 않고 오히려 진실을 말해주고, 취하지 않고 맑은 정신을 갖는다면, 그 지은 업은 희고 가벼운 것이어서 저 기름과 같다. 그리하여 저절로 위로 올라가서 천상으로 가느니라.’

그러자 가미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부처님.’

다른 누군가가, 또는 어떤 외부의 힘이 고통을 주거나 복을 주는 게 아닙니다. 다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 거예요. 이것을 인연과보(因緣果報)라고 말합니다. 인연에 따르는 결과가 있다는 뜻이에요.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준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와는 다릅니다.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사음하고 거짓말하고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를 피우면 아무리 절이나 교회에 열심히 다녀도 결국은 무거운 돌멩이가 밑으로 내려가듯이 고통받는 세계로 갈 수밖에 없어요.

이 얼마나 이치에 맞는 말씀입니까?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은 ‘진리’ 또는 ‘담마(dhamma, 法)’라고 해요. 허황하지 않고 이치에 딱 맞다는 뜻입니다.

먼저 나를 천도하는 것부터

이처럼 중생은 어리석어서 자기는 잘한다고 했는데 거꾸로 해서 고통에 떨어집니다. 그걸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을 해친 사람은 남을 살려주는 방생의 복을 지어야 해요. 남에게 손해를 많이 끼친 사람은 베푸는 복, 즉 보시의 복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남을 괴롭힌 사람은 남을 즐겁게 해주는 복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거짓말하고 욕설한 사람은 자비롭게 말하고 진실을 말하는 복을 지어야 합니다.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 피우는 사람은 맑은 정신을 갖는 복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이렇게 복을 많이 지으면 저절로 거꾸로 된 게 바로 서게 돼요.

그래서 자기 수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겁니다. 백중 천도재(薦度齋)를 지낼 때도 자기를 천도하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해요. 거꾸로 살아온 내 삶을 바르게 사는 삶으로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라서 내가 바른 길로 가면 이미 나는 지옥에 갈래야 갈 수가 없어요.

그러면 조상을 천도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상들은 이미 돌아가셨으니 자기 스스로 천도를 할 수가 없어요. 조상의 은혜를 받은 후손들이 대신 천도를 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라는 존재는 자기 혼자서만 인생을 살았다면 그렇게 큰 죄를 지을 일이 없을 텐데, 자식을 키우다 보니까 자식을 보호하려고 남을 해치기도 하고, 자식을 잘 키우려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거짓말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식을 보호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혼자 사는 사람보다 남을 해치기가 쉽죠.

객관적으로 보면 부모님이 어리석어서 나쁜 짓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는 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그러나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과보를 다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백중절은 자식 또는 후손이 먼저 돌아가신 조상 영가들, 다시 말해 거꾸로 살았던 분들에게 은혜를 갚는 의식으로 점점 발전해 온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천도한다는 것은 수행적 의미이고, 돌아가신 부모 또는 조상을 천도한다는 것은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자꾸 나빠지는 이유

지금 나는 내가 잘나서 이렇게 잘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부모가 있기에 아이가 생겼고, 뱃속에서 자랐고,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태어난 뒤에도 먹는 것이며 입는 것 하나까지 부모의 손길이 가지 않은 게 없어요. 그걸 하나하나 다 계산한다면 그 은혜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기울여서 우리를 키워주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그냥 혼자서 자랐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어릴 때는 그런 손길을 잘 알지 못하고, 그게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다 보니 그런 거예요.

반면에 그런 사랑을 베푼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자식이 자라면 당연히 기대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 감사할 줄도 알고 말도 좀 잘 들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돼요. 그러나 자식은 자기가 무엇을 받았는지 잘 모르니까 늘 불평불만만 있고 고마운 줄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부모 자식 사이는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인연인데도 현실에서는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자식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잘 모르고, 부모는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자식도 또 자기 자식을 낳으면 똑같은 사랑을 베풀고, 그 자식은 또 자신이 받은 은혜를 모르고 크지만 또 부모가 되면 그 자식에게 똑같이 사랑을 베풉니다. 이게 인생사예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은 부모에게 되돌려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되돌려주는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자식에 대해서 너무 큰 기대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한테 되돌려주지 안는다며 섭섭해 하지만, 그 자식이 또 자기 자식에게 내가 한 것 이상으로 베푸니까요.

그래서 부모는 자식에 대한 기대를 끊어야 해요. ‘내가 해준 게 있는데 그걸 좀 받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끊어야 합니다. 반면에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좀 알아줘야 해요. 그래야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오늘은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알아주는 날

백중은 부모가 자식에 대한 집착을 놓는 날이 아니고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좀 알아주는 날이에요. 살아계시면 전화라도 한 통 하고, 앞으로 가끔 찾아뵐 때 부모님이 뭐라고 뭐라고 하면 말이라도 ‘알겠습니다, 어머니’ 이렇게 공손하게 대답하면 좋겠죠. 그런데 우리는 자기 뜻과 안 맞으면 성질내고 짜증내기 일쑤입니다. 너무 가까워서 그래요. 그래 놓고 돌아서면 ‘아이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내가 그것도 못 참았구나’ 하고 후회를 합니다. 후회가 되어서 다시 찾아가면 또 화를 내고, 또 후회하기를 반복합니다.

부모의 은혜를 꼭 돈으로 갚거나 부모가 하자는 대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노예밖에 안 돼요.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가 나한테 기대를 하거나 어떤 생각을 갖는 것은 그분들의 마음이에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의 뜻을 무조건 따르라는 게 아니라, 그걸 인정해서 이해는 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어쨌든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이렇게라도 은혜를 갚을 수 있는데, 부모가 돌아가셨으면 이렇게라도 할 수가 없으니 마음이 답답합니다. 법의 이치를 모를 때는 몰라서 그냥 지나갔는데, 이제 그 은혜를 알고 나니까 후회가 되는 겁니다.

‘아이고, 그때 대답이라도 공손하게 한번 할 걸.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뵐 걸.’

마음속에 이런 답답함을 풀어내는 게 바로 백중기도입니다. 형식은 부모님이나 조상 영가를 향해 ‘지옥에 있으면 천상으로 가고, 고통받고 있으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지만, 어쩌면 내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를 풀려고 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마음속의 답답함과 응어리를 풀어내려면 어려운 이웃에게 많이 베풀어야 합니다. 많이 베풀면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교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죽은 귀신에게 음식을 올리는 것을 자꾸 천도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다른 믿음이나 문화와 섞여서 제사 지내는 형식으로 자꾸 생각되는 거예요. 그러나 불교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는 게 아닙니다. 부모의 업장 또는 죄업을 녹이고자 내가 음식을 마련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천도재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푼 그 공덕으로 부모님의 죄업을 녹인다는 의미입니다.

죄업을 녹이는 방법, 베풀어라

그래서 천도재 때 음식을 마련하면 먼저 불단에 공양을 올린 후 영단에 잠시 얹어놨다가 내려서 결국은 배고픈 사람들이 먹도록 합니다. 이것을 ‘음복(飮福)’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배고픈 사람들이 그 음식을 먹어줌으로 해서 복이 되는 거예요. 음식이 풍족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천도재가 있다고 하면 거지들, 가난한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몰려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음식이 궁한 게 아니니까, 음식은 간단하게 형식적으로만 차리고 그 돈을 정말 배고픈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인도의 불가촉천민이나 북한의 굶주리는 아이들처럼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량과 약을 보낼 수 있게 보시하는 것이 천도재를 지내는 본래 정신을 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오늘 백중을 맞아 자기 생활비를 좀 아껴서 이런 공덕을 지어야 진정으로 천도가 되는 거예요. 음식을 얼마나 많이 차렸느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정성을 기울여서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원래는 위로 7대 조상까지 천도를 하라고 합니다. 그분들이 계셔서 오늘 내가 있을 수 있으니 그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 개개인은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지만,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호국영령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되겠죠. 환인, 환웅, 단군 이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셨던 수많은 호국영령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그분들이 좋은 세계에 가시도록 발원하는 겁니다.”

이어서 스님은 백중기도에 동참한 모든 대중을 위해 축원과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곧바로 온라인 생중계로 천도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법문은 두북 수련원에서 했지만, 천도 기도는 서울 서초법당을 연결하여 이원 생중계를 시도했습니다. 천도 기도가 시작되자마자 생방송에 문제가 생겨 방송을 중단했다가 결국 대체 영상을 내보냈습니다. 생방송을 시청하던 정토행자들이 많이 아쉬워했지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은 온라인 기술에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편 두북 수련원에는 공동체 법사단이 상주하고 있어서 자체적으로 백중 회향 천도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 과일을 간소하게 차려 상에 올린 후 한 명씩 앞으로 나가 절을 했습니다. 방금 들은 스님의 법문을 떠올리며 천도재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았습니다.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니와노 평화상 수상 연설문 원고를 오후 내내 교정했습니다.

뉴스에는 오늘 밤에 대형 태풍 마이삭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계속 나왔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상주하는 대중 모두가 역할을 분담하여 바람에 날아갈 물건들이 있는지 곳곳을 점검하고 치웠습니다.


운동장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담벼락 밑에 눕혀 놓고, 장독대는 그물망을 덮여서 단단히 고정했습니다. 승합차를 비롯해 파손 우려가 있는 물건들은 모두 창고 안으로 넣었습니다. 신발도 모두 실내로 옮기고 신발장은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바닥에 눕혔습니다.

저녁에 스님은 비옷을 입고 홀로 태풍 피해를 줄이도록 채비가 잘 되었는지 논과 밭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거센 물줄기가 밭으로 넘치고 길로 넘치는 걸 막기 위해 삽으로 물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어둠이 내린 마을에는 비바람이 점점 거세졌습니다. 수련원의 문과 창문을 꼭꼭 닫은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태풍이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길 바래봅니다.

내일은 아침에 태풍이 지나간 후 피해가 없는지 전체를 둘러본 후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오전에는 경전반 입학식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오후에는 공동체 법사단 회의가 진행됩니다.

전체댓글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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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법문 감사합니다.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1-11-09 10:10:28

양윤건

법문 감사합니다, 1원이라도 보시 실천하겠습니다.

2020-12-12 23:35:59

김현숙여래심

백중... 부모님 이하 7대 조상들과 호국영령들에게 은혜와 감사새기는 날로 기억하겠습니다

2020-09-25 20: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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