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7.12. 온라인 수계식 불교대학 졸업식, 일요명상
“노동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는 길은”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2019년 봄과 가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는 삼천 삼백여 명에게 온라인으로 수계를 하고 졸업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아침 기도가 끝나자마자 스님은 바로 서울대병원으로 가서 박원순 시장의 영가천도 법문을 하고 슬퍼하는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수계식

다시 법당으로 돌아와 오전 9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수계식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졸업생 모두가 한 곳에 모여서 수계식을 하지 못하고 정토회 역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수계식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국내 3,181명, 해외 117명, 총 3,304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카메라 앞에 앉은 스님이 수계식 기념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계식인만큼 좀 더 경건한 자세로 임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동안 해외에서는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수행자가 되겠다고 발심을 했지만 수계식에 참석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되어서 많은 분들이 수계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온라인으로 수계식을 하게 되면서 해외에 계신 많은 분들이 수계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이번 수계식은 2019년도 봄 불교대학과 가을 불교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합동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봄 불교대학 졸업생들은 지난 봄에 수계식을 했었어야 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졸업식은 했지만 수계식은 연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또 연기를 할지 논의를 하다가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규정해서 온라인으로 수계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개인 집에서 수계식을 하더라도 수계식이기 때문에 좀 더 경건한 자세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계율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수행자가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와 마땅히 행해야 할 세 가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했다면 이제 여러분들은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인생의 목표를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부자가 된다’, ‘지위가 높아진다’, ‘건강해진다’ ‘인기가 많아진다’, ‘죽어서 좋은 데 간다’ 이런 것을 인생의 목표로 하는 사람을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있으나 저기 있으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내 삶이 자유롭고 행복한 것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것이 중요하고, 돈이 있어도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이 목표를 분명히 해야 오늘 계율을 받는 의미가 살아납니다.

수행자가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

수행자는 다음 다섯 가지 계율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첫째, 아무리 감정이 상해도 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쾌락에 빠져서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넷째, 감정이 격하게 일어나도 욕설하거나 거짓말로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다섯째, 술을 먹고 취해서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들이 이 다섯 가지를 분명히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자리입니다. 만약에 지키지 못하면 깊이 참회하고 다시 정신 차려서 다짐을 해야 합니다. 계를 받기 전에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었겠지만, 계를 받은 오늘부터는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놓쳤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바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렇게 오계를 지킬 것을 다짐하고 꾸준히 행해나가면, 괴로움은 점점 줄고 행복은 늘어나게 됩니다.

계율을 지키는 자세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가 지금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왜 나한테 여러 가지 괴로움이 생깁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오랫동안 쌓아온 습관에 의해 지어온 인연이 있기 때문에 금방 좋아지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바르게 산다 해도 과거에 지어놓은 인연의 과보는 계속 따라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새로운 인연을 짓지 않으면 과보가 오지만 갈수록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수행자는 이때 과거에 지은 인연의 과보를 기꺼이 받겠다고 마음을 내는 사람입니다.

‘아, 그건 제가 옛날에 진 빚이라서 빨리 갚겠습니다.’

이렇게 마땅히 과보를 받아내면 이것 또한 괴로움이 안 됩니다. 이미 지은 인연의 과보는 기꺼이 받아내고, 그것이 손실이라고 이제 알았으니까 미래에 이런 과보를 받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는 그런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는 데서만 머무를 게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보면 오히려 살려주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지 않는 데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보면 베푸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남을 괴롭히지 않는 데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욕설과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리석은 자를 깨우치고 진실을 밝히는 쪽의 말을 해야 합니다. 내가 술 먹고 취한 행동을 멈추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더욱더 정신을 맑게 갖도록 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는 것은 마땅히 멈추어야 하는 일이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은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는 자세입니다. 남을 해치는 행동은 지금 당장 멈춰야 할 금기 사항에 들어가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은 권장 사항입니다. 손해가 나는 일은 바로 멈출 줄 알아야 되고, 이익이 되는 일은 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때 손해 나는 일을 ‘악’이라 이름하고, 이익이 되는 일을 ‘선’이라고 이름한다면, ‘선’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선은 권유할 문제이기 때문에 ‘권선’이라고 하고, 악은 바로 멈춰야 할 일이기 때문에 ‘징악’이라고 합니다.

수행자가 마땅히 행해야 할 세 가지

오늘 여러분들은 이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킬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에 더해서 수행자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세 가지 계율이 더 있습니다.

첫째,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는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합니다. 먹고 입고 자는 이런 삶의 방식을 불편하게 하라는 게 아니라 소박하게 해야 합니다.

둘째,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수행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돈이 좀 있다고, 지위가 높다고, 목에 힘을 주고 사람을 무시하면, 그는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고 겸손해야 합니다.

셋째, 마음이 들뜨는 즐거움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들뜨는 즐거움은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 괴로움으로 바뀌는 윤회의 사슬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행자는 마음이 들뜨는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술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 기분 좋다!’ 하는 이런 즐거움은 곧 괴로움의 씨앗이 됩니다. 수행자는 가능하면 항상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음은 항상 고요히 해야 하고, 소박하게 생활해야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수행자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는 금기사항이지만, 이 세 가지는 권장사항입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정진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참회와 연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래 수계식에서는 법사님들이 졸업생들에게 연비를 해주었는데, 오늘은 온라인으로 각자 시청하기 때문에 졸업생 스스로 직접 연비를 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연비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자, 그러면 대중은 호궤 합장을 해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들어 올립니다. 오른손은 이마 높이로 올려 합장 자세를 하고 왼 팔은 옷을 걷고 앞으로 내밉니다. ‘제가 연비를 합니다’라고 말하면 저화 함께 자기가 자기 팔에 연비를 하면 됩니다. “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열 가지 허물을 참회했습니다. 참회를 하고 직접 연비를 했습니다.

“자, 연비를 합니다.”

스님이 직접 연비를 하는 모습이 생중계되었습니다. 졸업생들도 각자 연비를 했습니다. 연비를 마치고 졸업생들에게 오계를 잘 지킬 것인지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첫째,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자비로써 모든 생명을 살리고 사랑하라. 적어도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는 말라. 그대들은 몸과 목숨을 바쳐 능히 잘 지키겠는가?”

“잘 지키겠습니다!”
...

이어서 부처님 앞에 꽃을 올렸습니다. 온라인으로 시청하는 졸업생들도 각자 꽃 한 송이를 준비해 자신 앞에 올렸습니다.

스님은 수계자들을 축원해주고 불명(佛名)과 수계증을 수여했습니다.

“여기 방송에 참여하신 분에게 대표로 수계증을 드릴 때 여러분도 똑같이 수계증을 받습니다, 염주를 걸어줄 때도 자신의 두 손이 스님의 손이라고 생각하고 염주를 걸어주십시오..”

“자, 온라인으로 보시는 대중 여러분에게도 수계증을 드립니다. ‘잘 받았습니다’하고 얘기하세요. 제가 염주도 걸어드릴게요.”

그리고 불명을 주는 의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부처가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서 도달할 목적지는 부처, 성불하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은 중생이지만 오늘 이렇게 발심하면 미래세에 성불을 하게 될 테니 그때의 부처님 이름을 오늘 미리 받는 것입니다.

불명이란 부처의 이름을 뜻합니다. 한량없는 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부처님이 출현하셨어요. 팔만대장경에 그 이름이 기록된 부처님이 만 명이 계세요. 그 만 명 가운데 나와 인연이 있는 부처님이 있습니다. 그 부처님이 내가 닮아 가야 할 부처님입니다. 불명을 가지고 좋으니 나쁘니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다 부처님의 명호입니다.”

부처의 길로 한 발 내디딘 졸업생들은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삼배를 드렸습니다. 수계식을 마치니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15분간 휴식한 후 바로 2부 불교대학 졸업식을 진행했습니다. 졸업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불교대학 1년을 돌아보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졸업생들은 불교대학을 어떻게 다니게 되었는지, 수행을 하며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들려주었습니다.


이어서 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 졸업장도 대표로 한 사람에게 주고 카메라 너머 졸업생들에게 일괄적으로 건넸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제가 ‘졸업장을 드립니다’ 하면 잘 받았습니다. 하면서 받으세요."

"졸업장을 드립니다.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이어서 한 해 동안 바른 가르침을 주신 스님에게 꽃다발을 드리고, 두 손을 모아 ‘스승의 은혜’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스님은 꽃다발을 받아 불단에 올려두었습니다.

다음으로 스님이 졸업기념 법문을 설해주었습니다. 먼저 졸업생들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2019년도 가을에 불교대학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생 여러분! 오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입학생 중에 절반 정도가 졸업을 하게 되는데, 여러분들은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졸업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다시 한번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나도 이제 수행자가 되어서 한번 살아보겠다’ 하고 마음을 내고 수계까지 받으신 분들은 더욱더 축하를 드립니다.”

이어서 스님은 졸업과 동시에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공동체입니다. 수행의 목표는 어떤 경우에도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소승적 수행법입니다.

더 나아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사회적 실천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대승적 수행법입니다. 마음이 괴로운 자에게는 법을 전해 주고,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주고,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주고,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주고, 전쟁이 나려고 할 때는 평화를 지켜내고, 이런 활동들도 모두 넓은 의미에서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

나 혼자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따로 돈을 낼 필요도 없고, 따로 봉사를 할 필요도 없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이 좋은 법을 전하려면 경제적인 것도 좀 필요하고, 누군가가 시간을 내서 봉사를 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수행, 보시, 봉사는 정토행자가 가야 할 3대 실천 지침입니다.

수행이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동안 정진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법문을 들어야 합니다. 일 년에 일주일간 또는 4박 5일 정도 시간을 내서 깨달음의 장이나 명상 수련을 갔다 와야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직접 체험하는 활동들을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보시는 자기 수입 중에 일부를 삼보 수호비로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봉사는 전법을 위해 때때로 시간을 내어서 봉사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봉사는 사랑의 표현이에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해주고 나면 반드시 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만약 그 돈을 못 받게 되면 노동 착취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내가 일을 하고 나서 돈을 받게 되면 그것은 노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못 받으면 노예가 되고, 돈을 받으면 노동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노동 해방

그러나 내가 자발적으로 대가를 안 받으면 봉사가 됩니다. ‘아니야, 그건 내 일이야’ 하면서 내 일 하듯이 어떤 일을 하면 그것은 자원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노동으로부터 해방이 된다는 건 노동을 안 하게 되는 게 아니라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마음을 넘어서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 여러분의 관념이 안 바뀌고 있어서 그렇지 지금 세상도 점점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어요. 요즘은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 월급을 지폐로 안 주잖아요. 그냥 통장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물건을 살 때도 지폐로 안 주잖아요. 카드를 긁기만 하죠. 이렇게 돈이 내 손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 방식으로 왔다 갔다 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달에 월급이 300만 원 들어오고, 옷 산다고 20만 원 쓰고, 신발 산다고 5만 원 쓰고, 밥 먹는다고 1만 원 썼다고 합시다. 이때 돈이란 건 컴퓨터 상으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에요. 컴퓨터 상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내용을 지워버리면, 아무런 월급을 받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나 똑같습니다. 똑같이 밥 먹고, 똑같이 쓰고, 똑같이 다니지만,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놓아버리면 미래사회는 다 이렇게 봉사하는 삶과 같아요.

만약 여러분이 봉사하는 것을 일일이 돈으로 계산해 보면 어떻게 될까요? 스님이 법문을 한 번 할 때마다 5만 원, 공양간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5,000원, 수계를 할 때마다 3만 원, 차 타고 이동하는 경비 1만 원, 숙박비 5만 원, 이렇게 계산해서 수입과 지출을 계산해보면 300만 원 수입에 300만 원 지출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수입과 지출이 전자로 왔다 갔다 했을 뿐입니다.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봉사를 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아직 과거의 주고받는 관습이 남아있어서 노동의 상태에 있는데, 이것만 놓아버리면 여러분 모두가 한 단계 높은 봉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봉사가 바로 보살의 길입니다.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되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에 입학하게 되면 이 ‘무주상보시’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경전반에 입학하셔서 꾸준히 수행하고 정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수계식과 졸업식을 마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으로 갔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실무자들이 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본부 이사를 앞두고 평화재단 3층 사무실에 짐을 빼 5층으로 합치고 청소했습니다. 실무자들이 청소를 거의 끝낸 상태라 스님은 짐을 함께 옮기고 뒷정리만 함께 했습니다.

저녁 8시 30분부터는 온라인 명상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벌써 온라인 명상을 시작한 지 14주째가 되었습니다.

스님이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아서 인사말을 시작했지만, 실시간 채팅창에는 스님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는 댓글이 수십 개가 올라왔습니다. 다시 문제를 해결하고 방송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영어 통역을 하는 이어폰에서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님은 시청자들에게 양해 말씀을 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꾸 방송에 문제가 생기네요. 방송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명상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명상을 40분 했더니 너무 길다는 의견이 많이 올라왔어요. 그전에는 명상을 30분 했더니 또 너무 짧다는 의견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35분 동안 명상을 해보겠습니다.”

사전에 올라온 질문이 3개 있었지만, 방송이 끝날 때 답변하기로 하고 곧바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눈을 편안히 감고 마음을 콧구멍 끝에 집중합니다.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어떤 상황이든 의미부여를 하지 말고 그건 그대로 두고, 나는 다만 콧구멍 끝에 집중해서 들어오는 호흡, 나가는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Strain your posture. Close your eyes comfortably and focus your attention on the tip of your nose and be awake to the breathing in and the breathing out. So whatever thoughts come to you whatever situation you feel, do not imbue them with any meaning or tension just let them be and just focus on the breath in and out, you not thinking about the breath just focusing on.”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한여름 저녁입니다. 세계 각지의 정토행자들은 고요 적정의 순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탁! 탁! 탁!

약속한 35분이 지났습니다. 다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해 보니 어땠습니까? 여러분들의 소감을 채팅창에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수백 개의 소감이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눈에 보이는 것만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습니다.

‘빨리 끝나서 아쉽습니다’
‘It ended too fast’

‘미래의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I have too many thoughts about the future’

‘살짝 졸았습니다’
‘I slept for a little bit’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My head's clear now’

‘다리가 저리고 묵직합니다’
‘My legs feels heavy and aches’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
‘My mind at peace’

‘잡념이 많았습니다’
‘I have too many distractions’

‘지난주보다 허리와 다리도 덜 아프고 시간이 잘 흘러갔습니다’
‘Compare to last week my back and my legs didn't hurt as much and time went by faster’

‘망상이 많이 올라오다가 다리가 아프면서 호흡에 머물려고 노력했습니다’
‘I had a lot of distractions but then my legs started aching and that droves me to focus on my breath’

‘편안하게 했고, 35분 하니 조금 더 힘들었지만 좋았습니다’
‘I was comfortable, 35 minutes was a little tough but it was still good’

‘여전히 명상은 어렵습니다’
‘Meditation is still tough’

여전히 명상이 어렵다는 말에 스님은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올라온 외국인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은 명상을 할 때 지금 여기 깨어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현재만을 생각하라는 의미인지 질문했습니다.

명상은 항상 현재만 생각하는 것인가요

“제 아내는 깨어있기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고, 과거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좋았던 기억도 기억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는 게 사실인가요? 만약 현재가 과거보다 좋지 않은 상황일 경우, 과거를 떠올리면 우리가 괴로워할까 봐 우려가 되어서 그런 건가요? 항상 현재만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My wife says that mindfulness is about being here in the present time and not to think about the past or the future. Is it true that Buddhism encourages us not to remember pleasant parts of our own history? Is the concern that these pleasant memories may make me feel bad about my current situation if it is not as pleasant as my memory? Should I only think about the present tense all the time?”

“항상 현재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라 명상 중에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과거의 생각이든, 현재의 생각이든, 미래의 생각이든,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이런 의문이 들 거예요.

우리의 정신 작용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느낌이라고 하는 작용, 생각하는 작용, 인지하는 작용, 뭔가 하겠다고 결심하고 각오하는 의지 작용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생각하는 작용은 주로 과거나 현재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작용입니다. 이것은 마치 가상현실을 보거나, 녹화해 놓은 것을 영상으로 틀어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인지하는 작용은 지금 일어나는 것을 인식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 깨어 있으라’

이 말은 지금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일을 인지하는 데에 초점을 두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호흡이 들어가고 나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직접 호흡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인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생각을 하지 말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인지하라는 얘기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상태를 인지하기

명상을 하지 않는 평소에는 과거의 좋은 기억도 생각할 수가 있고, 또 미래에는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구상도 할 수 있어요. 일상적으로 그런 생각 작용이 필요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명상은 지금 일어나는 상태를 인지하는 것입니다. 가령 호흡에 정신을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린다든지, 걸을 때 발의 동작을 알아차린다든지, 신발을 벗고 걸으면서 발바닥에 감촉을 알아차린다든지, 손으로 어떤 작업을 하면서 그 동작을 알아차린다든지, 손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알아차린다든지, 이렇게 지금 일어나는 현상들 가운데서 느낌을 알아차리거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지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지금 여기 앉아서 어제 동해 바다에 갔을 때 봤던 파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직접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생각과는 다릅니다. 명상은 지금 일어나는 상태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몸의 감각에 집중한다면 ‘몸에 열이 나는구나’, ‘덥구나’ 하는 감각을 사실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질문에 답변을 하고 나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방송 사고가 있어서 법문을 길게 하지 못하고 짧게 답변하고 명상을 마쳤습니다.

“자꾸 오디오에 문제가 생기네요. 저희들이 방송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자꾸 문제가 생기고 있는데, 앞으로는 점점 개선이 될 겁니다.” (웃음)

생방송이 끝나고 스님은 통역을 해준 제이슨과 미국의 코로나 대응 상황, 북미 관계 등에 대해 더 대화를 나눈 후 법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내일은 온라인 행복학교 2기 참가자들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이 열릴 예정입니다.

▼ 온라인 명상수련 유튜브에서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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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55

0/200

배미령

명상이 좀 된다고 들뜨지 않고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는 연습 꾸준히 하겠습니다. 마음의 평정심 유지.

2020-07-27 00:16:15

엄옥순

명상 의미는 이해가 되는데 명상의 적응을 못하고있습니다.

2020-07-20 04:48:28

윤화

처음엔 명상하기 참 힘들었어요 얼굴근육은 경직되고 생각은 안드로메다로가고 그런데 자꾸하다보니 온몸이 릴렉스되면서 몰입이 잘되고 바로 깊은선정에 들어가기 쉬워졌습니다 꾸준히하고 자꾸하다보면 익숙해지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

2020-07-20 0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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