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6.20 온라인 천일결사 기도, 모둠장 대회
“작심삼일에서 벗어나는 방법”

안녕하세요. 오늘은 온라인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매실을 따고 감자를 수확했습니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둠장 대회가 생방송으로 열렸습니다.

4시 42분, 두북 수련원의 종성 소리와 함께 온라인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원차종성변법계(願此鐘聲遍法界)
철위유암실개명(鐵圍幽暗悉皆明)
삼도위고파도산(三途離苦破刀山)
일체중생성정각(一切衆生成正覺)”

종성이 끝나자 스님이 일어서서 오늘 기도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오늘은 정토회가 만일결사를 시작한 지 제10차 천일결사 104일째 날입니다. 기도를 시작하고 나서 9,104일이 지나도록 하루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곳은 두북 정토수련원입니다. 이곳에서 농사짓고 사는 대중들과 함께 아침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예불, 반야심경, 해탈주,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까지 차례대로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108배를 하는 내내 땀이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사홍서원으로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법상에 앉았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2차 백일기도에 새로 입재를 했기 때문에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격려를 먼저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2차 백일기도를 시작한 지 6일째 되는 날입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죠. 어떤 일을 결심하고 시작해도 3일 만에 그만두게 된다는 말입니다.

작심삼일에서 벗어나는 방법

이건 물리학으로 말하면 관성의 법칙과 같습니다. 관성의 법칙은 움직이려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멈추어져 있는 물체는 계속 멈추어져 있으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움직이는 물체를 멈추게 하려면 반드시 힘을 가해야 하고, 멈추어져 있는 물체를 움직이게 하려고 해도 반드시 힘을 가해야 합니다. 멈춘 물체가 움직이든, 움직이는 물체가 멈추든, 거기에는 속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속도의 변화를 가속도라고 합니다. 속도의 변화(a)는 가해진 힘(F)에 비례하는데, 이를 물리학 법칙으로 정리한 것이 F=ma라는 뉴턴 역학의 제2법칙입니다. 아침부터 너무 어려운 얘기를 하나요? (모두 웃음)

우리의 습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6시에 일어나다가 어느 날부터 5시에 일어나려고 하면 평소처럼 6시에 일어나려는 성질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5시에 일어나기 시작하려면 힘이 가해져야 합니다. 그만큼 이전 습관의 저항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저항을 각오와 결심으로 이겨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결심은 그리 강하지 못해서 주로 3일을 못 넘기고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이걸 작심삼일이라고 표현합니다.

물통에 물을 담아놓고 호스를 연결해서 지대가 낮은 쪽으로 물을 보내려고 할 때, 호스가 물통보다 낮게 연결되면 물이 자동으로 흘러 내려가지만 호스가 물통 위로 넘어가게 하려면 처음에 호스를 입에 물고 물을 빨아 당겨서 물이 통을 넘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한 번만 그렇게 넘겨주고 나면 그 뒤로는 자동으로 물이 계속 넘어갑니다. 그런데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해서 조금 빨아 당기다가 도로 내려가면 물은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호스로 물을 옮기는 것도 고비를 넘겨야 그 다음부터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여러분도 매일 6시에 일어나다가 5시에 일어나려고 하면 몸과 마음에서 저항이 일어납니다. 우선 몸에서 저항이 먼저 일어납니다. 몸에서 저항이 일어나면 마음이 거기에 반응을 합니다. ‘잠을 적게 잤다’, ‘너무 일찍 일어난다’ 이렇게 마음이 변명거리를 만들게 되면 몸은 더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몸이 저항을 할 때 마음에서 그걸 용납하지 않아야 합니다.

수련을 할 때도 여러분에게 시계를 주고 12시에 취침해서 5시에 일어나면 ‘5시간 밖에 못 잤다’ 하는 생각 때문에 낮에 계속 좁니다. 그런데 시계 없이 12시에 자면서도 10시에 취침한다고 하고, 아침에 5시에 일어났는데도 6시에 일어났다고 하면 똑같이 5시간을 잤는데도 졸지 않습니다. 반대로 10시에 자면서 12시에 취침한다고 하고 6시에 깨우면서 5시라고 얘기하면, 처음에는 괜찮다가 ‘그래도 오늘은 너무 적게 잤는데’ 하면서 낮에 졸리게 됩니다.

이걸 보면 몸은 많이 자고 적게 자고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의식이고, 마음은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면 몸이 영향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신경질이 나거나 기분이 팍 나쁘면 소화가 안 되는 등 몸이 마음의 영향을 받습니다.

결심은 의식입니다. 의식에서 아무리 결심을 해도 무의식에 영향을 주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지’ 하고 결심을 해도 잠이 들면 무의식의 세계에는 어제 결심한 의식이 별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깨워달라든지, 알람을 맞춰놓든지 해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막상 알람이 울려도 의식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의식은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대로 반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알람이 울리면 그냥 싹 일어나 버려야 합니다. 알람을 듣고 나서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자꾸 결심을 하면 오히려 못 일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일어나야지!’라는 말은 ‘일어나기 싫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어나야지!’ 하고 결심을 자주 하는 건 ‘일어나기 싫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심대로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버립니다. 나중에 일어나서는 후회가 되고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리고 ‘나는 의지가 약해’ 하고 자책을 하게 됩니다.

자꾸 각오하고 결심해서 무언가를 하려면 계속 힘이 듭니다. 벨이 울리면 싹 일어나고,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는 게 좋습니다. 놓쳤으면 ‘이번에 놓쳤네, 다시 해야지’ 하고 가볍게 접근해야 합니다.

오늘이 백일기도를 시작한 지 6일째인데 새로 입재한 초심자들 중에 오늘까지 기도를 잘해온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어요. (웃음) 설령 중간에 놓치거나 그만두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어느덧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물통의 물이 고비를 넘듯이 고비를 탁 넘겨버릴 수 있습니다. 고비를 넘긴 다음부터는 저항이 약해집니다. 그렇다고 저항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가장 큰 저항을 이겨버리면 나머지 저항은 남아있긴 하지만 ‘이제는 할 만하다’ 이렇게 됩니다.

이렇게 한 번 이겨내면 계속할 수 있게 되는데, 중간에 어떤 핑계로 인해서 한 번 놓치고 두 번 놓치게 되면 호스로 물이 잘 내려오다가 어떤 일로 호스가 들려서 물이 다시 내려가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다시 새로 결심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놓쳤다고 해도 놓친 것을 너무 탓하지 말고, 앞으로 남은 94일은 놓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해봅니다.

‘그냥 한다’ 하는 마음으로 해보세요. 벨이 울리면 싹 일어나고, 하기 싫어도 하고, 하고 싶어도 합니다. 자꾸 좋고 싫고에 구애받으면 안 됩니다. 좋고 싫은 감정은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 때문에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 감정을 애지중지하는데, 그건 단순히 습관에 의해서 반응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게 좋은 습관이면 유지하면 되지만, 그 습관이 나에게 손해가 되거나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장애가 된다면 하기 싫어도 능히 해버리고, 하고 싶어도 멈추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어서 경전을 독송할 때 나왔던 ‘마왕’이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경전 속 마왕이 하는 말이 뜻하는 것

“요즘 경전을 읽으면서 도대체 마왕이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의 일생을 읽어보면 마왕이 자주 나타납니다. 성도 하기 직전에는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부처님에게 마왕이 ‘알겠다, 그렇다면 너에게 자재천왕의 자리를 내어주겠다’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자재천왕의 자리는 곧 마왕의 자리인데, 거기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자리입니다. 만약 저에게 누가 이런 자리를 제안한다면 저는 받을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저의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평화가 정착되게 해 주겠다’라고 한다면 고민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웃음)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성불과는 거리가 먼 생각입니다. 부처님은 이 우주를 다 준다고 해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마왕의 속삭임이 부처님의 마음에는 아무런 유혹이 되지 못했습니다. 무언가 바라는 바가 조금이라도 있고, 욕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그걸 미끼로 삼아서 유혹을 할 텐데, 부처님은 아무런 바라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마왕이 물러나게 됩니다. 이것을 마왕의 항복을 받아내었다고 해서 ‘항마(降魔)’라고 표현합니다. 즉, 부처님은 마왕의 항복을 받고 마침내 성도(成道)를 이룬 것입니다.

경전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이런 표현은 마음속에 아무런 집착이 없는 무념과 무상의 경지는 부처님의 마음으로 표현하고, 약간이라도 번뇌를 일으키는 건 마왕의 목소리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부처님도 도를 구하는 과정에서 마음속에 고민과 번뇌가 있으셨을 겁니다. 그것이 괴로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건 이렇게 해볼까?’, ‘저건 저렇게 해볼까?’ 이런 고민과 연구 끝에 열반에 도달하셨을 텐데, 열반이라는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후대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이런 모습이 번뇌처럼 비쳤던 겁니다.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고 연구할 수 있는 데도 절대화된 열반의 관점에서는 번뇌처럼 비칠 수 있으니까 그런 고뇌는 모두 마왕의 이름으로 기록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정신분열이 일어나면 한 사람인데도 두 가지 인격처럼 말합니다. 요즘은 이런 증상을 정신분열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사람 몸 안에 귀신이 씌어서 한 번은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 번은 귀신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옛날에는 정신현상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과 다르게 해석한 겁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정신작용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느낌 작용, 생각 작용, 의지 작용, 인식 작용이 있는데, 이를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작용에 대해 잘 모르면 느낌, 생각, 의지, 알아차림이 모두 하나의 정신작용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각각은 서로 다른 작용입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날 때 한쪽에서는 ‘일어나야지’ 하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어나기 싫어’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일어나야지’ 하는 건 자신의 의지로 표현하고, ‘일어나기 싫어’ 하는 건 마왕의 유혹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전을 기록하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반영되어 있는 경전

‘유수행(留壽行)’이라는 표현에도 기록한 사람의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유수행을 하셨으면 영원히 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법이라는 형상에 집착해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대중들을 상대로 열반에 들겠다고 선언하시기 전에 아난다에게 먼저 열반에 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난다는 부처님께 ‘부처님은 영원히 사셔야 합니다. 아직 열반에 드시면 안 됩니다’ 하고 간곡하게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건 진리에 어긋난 얘기이다. 몸이란 형상에 불과하며 제행무상이다’

제행이 무상인 줄 알아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번뇌가 없는 상태가 도(道)입니다. 이 말씀은 도를 얻고 나면 몸이라는 형상조차 영원해야 하는 줄 아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한 것입니다. 아마 이 내용을 기록한 사람도 ‘유수행’에 대해 이해가 안 되니까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시 인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적인 면을 생각하면 이렇게 기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왜 유수행을 그만두십니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부처님은 ‘내 가르침인 진리에 어긋나는 요구를 하고 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언어와 문자로 남기고 전수한 건 결국 중생입니다. 그들도 당시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중생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으로 기록을 하게 되었겠죠. 그 점을 감안하셔서 경전을 이해하는데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당시 인도 사람들은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문화적인 요소를 감안해서 경전을 읽으면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그릇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릇에 담겨있는 알맹이가 무엇인지를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경전은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농사 이야기를 하며 법문을 마쳤습니다.

“아침 기도를 마치면 저는 오늘 감자를 캘 겁니다. 지난번에는 하우스 안에서 재배한 감자를 캤는데, 오늘은 노지에 재배한 감자를 캐는 날입니다. 이틀 후면 일 년 중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인데, 이 무렵 캐는 감자를 ‘하지감자’라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골에 내려와 있다 보니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살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도시에서 살면 주변에 무슨 꽃이 피는지 자연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제가 시골에서 보고 듣는 계절의 변화를 계속 알려드릴 테니 자연의 변화도 함께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매실나무가 있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늘 새벽 울력은 ‘매실 따기’입니다.

“자, 한 그루씩 맡아서 따세요. 흠이 없는 초록색으로 따주세요.”

통통하고 보드라운 매실을 보니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나무마다 한 명씩 서서 매실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매실을 따고 있는데 곧 김제동 씨가 도착했습니다.

새벽 3시에 출발한 김제동 씨는 작업복을 갖춰 입고 등장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누가 스님인지 모르겠어요.”

옆에 있던 행자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동 씨도 함께 매실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매실나무 사이로 사라진 스님은 앞치마를 불룩이 채워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자, 이제 그만 따고 내려갑시다.”

장아찌를 담글 만큼의 매실을 따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산을 내려가는 데 보리수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 있었습니다.

“이건 보리똥이라고 해요.”

빨갛게 익은 열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주먹씩 따고 보니 발우공양 후식으로 먹을 만큼 양이 되었습니다.

트럭 뒤에 매실을 실었습니다. 스님과 제동 씨도 트럭 뒤에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11시부터 감자를 캐기 위한 사전 작업을 했습니다.

이틀 전까지 비가 왔기 때문에 땅이 축축했습니다. 먼저 감자 줄기를 다 벴습니다.


땅을 말리기 위해 부직포도 다 걷어냈습니다.

부직포는 다시 사용하기 위해 넓은 터에 말렸습니다.


일을 하는 사이, 흐릿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걷히고 해가 완전하게 드러났습니다.

“날이 너무 뜨거워서 지금 감자는 못 캐요. 땅도 말라야 하고요. 저녁 먹고 4시 반에 다시 일을 시작합시다.”

가장 뜨거운 정오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밭을 떠나기 전에 스님은 호박꽃을 수정시켜주었습니다.

암꽃에는 꽃 아래에 탁구공 같은 볼록한 씨방이 있고 수꽃에는 씨방이 없이 꽃만 있습니다. 스님은 수꽃을 따서 암꽃에 꽃가루를 묻혀주었습니다.

“요즘은 벌이 많이 없어서 이렇게 수분을 해줘야 해요. 안 그러면 호박이 크기 전에 열매가 다 떨어져요.”

스님의 설명에 김제동 씨도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벌이 많이 없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해가 뜨거워서 호박꽃이 꽃잎을 오므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살짝 꽃잎을 열어 꽃가루를 묻혀주었습니다.

저녁에 삶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감자와 완두콩만 캐어서 밭을 내려왔습니다.

오후에는 매실을 씻고 설탕에 재워 매실청을 만들었습니다. 점심 겸 저녁을 먹은 후 햇살이 약해진 오후 4시 30분부터 감자 캐기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엉덩이 방석을 끼고 호미를 하나씩 들고 고랑마다 자리를 잡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감자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이야, 제일 큰 감자다!”

스님이 주먹보다 큰 감자를 들고 외쳤습니다.

지난 5월에 비닐하우스에서 감자를 캘 때 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비가 오긴 했지만 땅이 포슬포슬해서 호미로, 손으로 살살 흙을 긁어내면 뿌리를 따라 주렁주렁 열린 감자들이 드러났습니다.


“앞으로 비닐하우스에는 감자를 심지 말아야겠어요.”

밭 양쪽에서 감자를 캐오던 스님과 제동 씨는 금세 만났습니다.



“이야, 두 번째로 큰 감자다!”

큰 감자가 나올 때마다 스님은 감자를 들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김제동 씨는 사람 얼굴처럼 생긴 감자 형제를 캤습니다.

“이 감자는 사람 얼굴처럼 생겼네요. 돌에 끼어서 이렇게 자라났나 봐요.”

제동 씨가 특이하게 생긴 감자를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감자가 제동 씨 닮았어요.” (웃음)

“감자가 못생겼네요.”

이 말을 듣던 제동 씨도 한 마디 했습니다.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요? 얘들도 크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자꾸 정이 가네요.” (웃음)

감자를 한참 캐고 있는데 벌써 저녁 6시가 되었습니다. 7시부터 스님은 모둠장 대회를 생방송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생방송을 하러 가야 해서 먼저 일어날게요. 감자를 상자에 담는 일은 행자님들이 마무리를 끝까지 해주세요.”

스님은 촬영을 해야 하는 행자들과 함께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다른 행자들은 해가 질 때까지 감자를 박스에 담고 무게를 재고 트럭에 싣는 일을 했습니다. 15kg씩 총 29 상자가 나왔습니다.


저녁 7시 정각에 스님은 생방송 카메라를 바라보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감자를 캐다가 왔다며 스님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모둠장 여러분! 저는 방금 전까지 감자를 캐다가 방송 시간이 다 되어서 뒷정리도 못하고 헐레벌떡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웃음)

그리고 코로나 19 이후의 사회 변화와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토회가 잡은 모둠 중심의 운영 방향은 미래 사회의 변화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토회는 10차 천일결사에 들어오면서 사업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간다는 방향 하에 모둠 중심의 운영으로 개편을 했습니다. 이것은 코로나 19 이후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전환될 것을 예측하고 나서 그렇게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 온라인으로 전환이 된다고 해도 이 방향은 전혀 수정할 것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 사회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조직

방향은 잘 잡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둠 중심의 운영이 가능하도록 제대로 교육과 훈련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방향에 있어서는 가장 미래에 대한 준비를 잘할 수 있는 운영 방식입니다.

그동안 팀에 편재되지 않는 대다수의 정토회 회원들은 주어진 일이 없고 소외가 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팀에 편재가 된 소수의 정토회 회원들에게는 일이 너무 몰려서 지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업 중심으로 운영하지 말고, 사람 중심으로 운영하자고 한 겁니다. 그 방법으로 7명씩 모둠을 만들고, 모둠원이 사업을 맡는 쪽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람을 챙기는 게 우선이 되고, 그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해 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한 모둠 안에는 다양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게 되는 겁니다. 예전에는 한 가지 사업에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면, 이번에는 사람이 먼저 모둠에 소속이 되고 나서 그 모둠에 소속된 사람들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게 되는 겁니다. 즉, 사람을 더 우선하는 방향인 겁니다.

이런 방식은 여러분들이 그동안 안 해본 방식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이렇게 바뀌면, 첫째, 사람이 다 챙겨지게 됩니다. 둘째, 일이 골고루 배분됩니다. 그런데 운영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까 일이 오히려 많아진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일이 골고루 배분되다 보니 그동안 일이 없던 사람은 일이 많아졌다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 이 방향으로 조금 더 운영해보면 수월해지는 게 많아질 겁니다.

모둠은 공간 없는 작은 법당입니다

앞으로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이 되면, 모둠 중심의 운영 방식은 훨씬 더 효과적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온라인으로 수업을 다 듣게 되면 법당이라는 공간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기 집을 수행 공간으로 만들고, 모둠원끼리는 실천 활동을 할 때만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모이면 됩니다. 즉 모둠이 곧 공간 없는 작은 법당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법당 운영을 위해 필요했던 일들도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모둠원들이 주로 해야 할 일은 불교대학과 경전반 학사 모둠을 운영하는 것이 됩니다. 가령 온라인 불교대학 조장 또는 온라인 경전반 조장을 맡게 되는 겁니다. 즉, 사람을 챙기고 교육하고 전법하는 것이 주된 일이 되는 것이 봉사의 주 내용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토회의 핵심은 모둠입니다. 모둠의 핵심은 모둠장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공간 없는 작은 법당의 책임자다’

더 나아가서 여러분은 그 법당의 법사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지금 놓여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그런 수준이 안 됩니다. 그래서 법사단에서는 여러분을 빠른 속도로 그런 수준이 될 수 있게 교육을 시켜드리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꿀벌로 지냈다면, 앞으로는 로열 젤리를 먹게 해서 여왕벌로 만들어드릴 테니까 열심히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둠장이 정토회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스님이 여는 인사를 하는 사이 600여 명의 모둠장들이 모두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의 격려를 듬뿍 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모둠장 대회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100일간의 모둠 운영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시청한 후 곧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00일 동안 모둠 운영을 하면서 애로사항에 대해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모둠장들의 질문에 답변을 모두 다 해준 후 마지막으로 생방송을 참관하고 있던 사람들의 질문을 취합해서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느덧 약속한 2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모둠장들의 어려움을 경청한 소감을 이야기하며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해주신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모둠 운영에 반영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정토회가 이렇게 새로 개편하고자 하는 건 모두 잘해보고자 하는 것임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물론 잘해보고자 해도 반드시 옳은 건 아닙니다. 일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한 번 믿고 시행해보시기 바랍니다. 백일 동안 시행해보니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 건의를 해서 개선해야 합니다. 아직 숙지가 덜 되거나 운영이 미숙해서 생긴 문제라면, 자리를 잡는 데에 200일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교육을 받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방향도 옳고 운영도 잘하는데 사람이 적게 모이거나 조건이 열악하다면, 거기에는 충분히 예외적 상황을 인정해줄 수 있습니다.

부처님도 그러셨듯이, 법륜스님과 정토회도 고지식한 집단이 아닙니다. 비윤리적인 집단도 아니고, 독선적인 집단도 아닙니다. 실력이 부족해서 겪는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부처님의 법대로 가고자 하고, 민주적으로 운영을 하고자 하고,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자원봉사를 하는가

우리는 이 세상에 모범이 되는 일을 해보려고 모였습니다. 요즘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휴일도 없이 이렇게 모여서 일하고 봉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스님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도 모두 자원봉사로 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직장생활만 하기에도 바쁘고 힘든데 정토회에 나와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려고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음 생에 복을 받으려고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자식들이 대학에 합격하니까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건강해지거나 사업이 잘 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일이 내 삶을 유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나는 내 삶을 유의미하게 살고 있다’ 하는 자부심을 갖고 활동에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토회에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아무리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해도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업식으로 인해 아직 잘 안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엉뚱하게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중에는 의도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회활동을 하는 이유는 모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희망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런 원(願)을 갖고 환경운동, 빈곤퇴치,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다른 의도가 없습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이유

우선 정토회가 가지고 있는 큰 원칙을 신뢰하고,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했을 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운영규정을 바꾸거나 예외를 인정해주며 나아가면 됩니다. 여러분도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선은 정토회의 원칙을 신뢰하고 그 방향에서 진행을 해나가면 좋겠어요.

모둠 중심의 운영 방향으로 개편이 잘 이루어지면 앞으로 여러분이 운영하고 있는 각 모둠은 ‘법당 없는 정토회’, ‘공간 없는 법당’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둠장이 곧 법당의 당주입니다. (웃음)

나아가 온라인 방식이 더 확산되면 개개인이 법당의 당주가 될 것이지만, 우선 첫 단계는 모둠장이 공간 없는 법당의 당주가 돼요. 마치 법당을 운영하듯이 모둠 안에서 모든 일을 회원들과 의논해서 진행 해나가게 됩니다. 정토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이런 방향은 미래 사회의 변화에도 적합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모둠 활동에 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두 다 집에서 앉아서 생방송을 시청하고 있기 때문에 앉은 채 사홍서원을 읽은 후 모둠장 대회를 마쳤습니다.

모둠장 대회가 끝나고 모둠장들은 정토회 별로 채팅방에 접속해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의 확고한 원칙과 예외를 인정하는 포용력이 참 감명 깊었습니다. 원칙에 억눌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기본 원칙은 지키되 예외 규정을 두면서 함께 가려고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토회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도와준다는 말에 위안이 많이 되었습니다.”

“다른 지역의 모둠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어보는 시간을 통해 현재 우리 모둠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생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정토회의 운영 방식이 미래지향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희망이 생기는 기분입니다.”
...

질문도 좋았고, 스님의 분명한 답변도 명쾌했습니다. 저녁마다 이뤄지는 온라인 대화를 통해 정토회 전체가 새로운 변화에 맞춰 조금씩 정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가을 불교대학 졸업 수련이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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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온라인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0-12-07 23:42:58

한정희

일어 나야지 하는 것은 일어나기 싫다는 말이라는 것이 새삼스럽습니다. 벨이 울리면 그냥 일어납니다. 하기 싫어도 그냥한다. 감사합니다!

2020-10-24 12:53:30

전미리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20-06-30 15: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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