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6.7 온라인 명상수련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하고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후 저녁에는 온라인으로 명상수련을 진행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대나무 숲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서울 공동체 대중을 위해 죽순을 캤습니다. 이미 키보다도 높이 자란 죽순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대나무 숲 사이로 사라졌다가 곧 죽순을 한 아름 안고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금방 두 가방을 채워 내려왔습니다.


죽순은 잘 삶아서 껍질을 벗긴 다음 서울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제 봉화수련원에서 가져온 화덕을 설치했습니다. 물에 떠내려가던 화덕이어서인지, 녹이 많이 슬어있었습니다. 먼저 망치로 두들겨 녹을 떼어냈습니다.

화덕을 설치할 위치에 벽돌을 깔았습니다.

벽돌을 다 깔고 화덕을 올려보았습니다.

“연기 나가는 방향 때문에 조금 트는 게 좋겠어요.”

방향을 살짝 틀어 벽돌을 다시 놓은 다음 화덕을 올렸습니다. 스님은 완성된 모습을 살펴보다가 다시 화덕을 내리고 벽돌을 다 치우고 땅을 더 고르게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 흙을 체에 걸렀습니다. 고운 흙은 고르게 펴주었습니다.


다시 벽돌을 깔고 화덕을 올렸습니다.

“방향을 조금 더 트는 게 좋겠네요. 연기 때문에 감나무가 상하겠어요.”

화덕을 내리고 벽돌을 다시 깔았습니다. 방향도 조금 틀고 벽돌 이음새를 엇갈리게 깔았습니다.

“한 번만 더 고칩시다. 구정 선사처럼 솥을 아홉 번 걸겠네요.”

화덕을 여섯 번 올리고 내린 끝에 드디어 벽돌 깔기를 마쳤습니다.

화덕 앞 쪽에서는 땔감을 넣고 불을 피우기 때문에 벽돌을 더 깔고 빈자리를 흙으로 메웠습니다.

솥을 올리고 주변 정돈까지 한 후 일을 마쳤습니다.

화덕 설치를 마치고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있는 수련원 옆으로 가보았습니다. 두 개는 설치를 마쳤고, 두 개는 미세하게 위치를 조정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막대기를 들고 컨테이너 뒤로 가서 함께 위치를 조정했습니다.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위로 살짝 들어 올리면 사람들이 모서리마다 붙어서 방향을 맞춰주었습니다.

“하나, 둘, 셋!”




완벽하게 수평을 맞추기 위해 여러 차례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습니다.

발우공양 직전에 설치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마지막까지 뒷정리를 하다 작업복을 입은 채로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수고한 대중들을 격려하며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컨테이너 옮기느라고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컨테이너 뒤 쪽으로 조금 더 마무리가 필요한데요. 나무 자른 것은 치우고, 복숭아나무 밑에 돌이 튀어나오거나 푹 파인 곳이 있으니 평평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뒤쪽이 지저분한데 풀이 자라면 모기를 감당할 수 없거든요. 이제 주택단지가 됐으니까 전체를 정원으로 꾸몄으면 좋겠습니다. 틈나는 대로 울력을 해서 정비를 하면 좋겠어요.

저는 컨테이너 설치하기 전에 어제 봉화수련원에서 가져온 화덕을 설치했습니다. 오늘처럼 울력을 하고 나서 땔감이 생기면 겨울에는 군불이라도 때는데, 여름에는 불을 못 때잖아요. 그래도 죽순을 삶는 정도는 굳이 가스를 쓸 필요가 없어요. 땔감을 사용하면 에너지를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화덕을 새로 설치했습니다.”

오후에는 인근에 사는 스님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두북 수련원을 찾아왔습니다. 이 분들이 스님과 함께 다녔던 학교는 이제 정토수련원으로, JTS 구호물품 창고로 쓰이고 있습니다.

스님은 동창들과 함께 학교를 둘러보고 안내해주었습니다.

“이게 다 재활용품이야.”

“이야, 좋은 일 하네.”

스님은 책 ‘지금 이대로 좋다’와 직접 농사지은 고춧가루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건 작년에 행자들과 함께 키워서 만든 유기농 고춧가루다.”

“스님이 좋은 일 많이 하는데 보탬이 안 되고 우리는 받기만 해서 되나?”

“받을 자격 있다. 우리 6년이나 같이 살았잖아.”

60년 만에 찾은 초등학교를 둘러보며 모두 그때로 돌아간 듯 신이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여기서 뛰어다니고 하던 때가 벌써 60년이 지났다.”

“이 팽나무가 아직도 있네. 나뭇가지 타고 막 올라갔는데.”

“이걸로 딱총 만들어서 놀았잖아.”

“이거 열매도 먹었다.”

팽나무 아래에는 조그만 의자가 놓여있었습니다. 옛날 학교에서 썼던 의자는 지금까지 남아 수련원을 찾는 봉사자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거 우리가 앉았던 의자네. 여기 앉아서 사진 하나 찍자.”

엉덩이 한쪽을 겨우 걸친 채 다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팽나무 아래에 둘러서서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1학년 때 그 선생님한테 참 많이 맞았는데 손이 맨날 부어있었어.”

“스님이나 안 맞았지 우리는 다 맞았다.” (웃음)

“2학년 때 선생님이 참 좋았는데 잘 계신가 모르겠다.”

옛 추억이 끊임없이 되살아납니다.

“이야, 니는 이제 말하는 게 꼭 할배 같다.”

“이제 칠십이 다 되어 가는데 우리 다 할배지.” (웃음)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맙다, 스님.”

“스님, 몸 건강 하이소.”

마지막 차가 나갈 때까지 스님은 손을 흔들었습니다.

동창들을 보내고 오후에는 원고를 교정하고 실내 업무를 보았습니다.

저녁예불을 드리고 저녁 8시 30분이 되자 스님은 이어폰을 끼고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이어폰으로 제이슨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제이슨, 잘 지냈어요? 지금 바로 명상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네요. 오늘도 통역에 수고해 주세요.”

생방송이 시작되고 스님은 시청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잘 보내셨습니까? 질문을 먼저 받고 명상을 하겠습니다.”

곧바로 지난주에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총 5개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마쳤습니다.

화면에 스님의 얼굴이 나오고 다시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명상해 보니 어땠습니까? 소감을 올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네요. 미국에서 올라온 질문 하나를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How was it now that you have done it. Since there is sometime alike between when you upload your comments and we see it. Let me address a question that we got from the US”

사람들이 소감을 올리는 사이에 스님은 지난주에 미국인이 올린 질문 하나에 대해 답변을 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질문입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하나요

“현재 미국은 코로나19로 의료 위기, 경제 위기에 조지 플로이드 사건까지 겹쳤습니다. 불교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다지만 세상에는 명백하게 선악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불교적 관점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The US is currently suffering simultaneously for a public health crisis, economic crisis and the crisis that was triggered by the killing of George Floyd. Buddhism teaches us there is no right or wrong but in the real world there seems to be good deeds and bad deeds. How should I interpret the George Floyd issue from a Buddhist perspective?”

“먼저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조지 플로이드뿐만 아니라 이런 사건으로 인해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수행적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 이렇게 볼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첫째, 정부의 대응이 서로 다릅니다. 정부가 전염을 막기 위해 국민의 자유를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중국의 경우가 있고, 북유럽처럼 개인의 자유를 막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두면서 문제를 푸는 나라가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 vs 전염의 방지

강력하게 통제하니까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는 데는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었습니다. 유럽처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니까 바이러스 전염이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잘했다 잘못했다 할 수 있을까요? 전염을 막는 것을 기준으로 할까요, 아니면 개인의 자유를 기준으로 할까요?

이것은 기준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고 할 수가 없고, 서로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중국보다 덜 강압적으로 대응을 했고, 개인의 자유는 유럽보다는 더 통제했습니다. 한국은 중국과 유럽의 중간 수준에서 대응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인들이 보기에는 개인의 자유도 통제하지 않고, 그러면서 바이러스의 전염도 어느 정도 차단이 되고 있으니까, 한국 방식이 가장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다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유럽 지역의 일부 사람들은 ‘한국은 통제를 심하게 해서 방역을 하고 있다'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누가 잘했다’, ‘누가 잘못했다’ 하고만 있을 게 아닙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나는 이런 가운데서 어떤 쪽을 선호한다’
‘나는 선택한다면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얼마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 정부의 대책에 대해서도 ‘나 같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겠다, 저런 방식은 내가 볼 때는 비효율적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자기의 선택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세상에서는 감정이 격해지고 분노가 일어나야 행동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 위한 행동들이 심각한 갈등이나 분쟁을 불러일으킵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행하는 사회 실천

이때 내 감정이 기분 나쁘다, 옳다, 그르다, 이런 데에 너무 사로잡히면 수행적 관점을 놓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감정이 미움이나 분노로 가지 않아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진 사람들은 어떤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불교적 관점이라는 것은 마음에 분노는 없이, 그러나 나의 선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상황을 제가 아는 대로 살펴보면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생겼지만, 그 사망자들의 절반 이상이 유색인종, 즉 흑인입니다. 흑인 인구가 미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7% 정도이기 때문에 흑인들의 사망률이 백인들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흑인들이 신체적인 문제 때문에 이런 전염성이나 사망률이 높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들의 삶의 환경이 열악하거나, 치료받을 기회가 적거나, 사회적으로 보건의료 시스템이 불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의란 평등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보건 의료시스템을 개선하든지, 보건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에 필요한 행동을 하든지, 이렇게 뭔가 정의를 향해서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 불교적 관점입니다. 그러나 그 전제는 분노와 미움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운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수행적 관점을 놓친 겁니다.

‘수행자는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정의를 실천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답변을 마치자 수백 개의 소감이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하나씩 읽어 내려가며 짧게 답변을 했습니다. 그중 인종차별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없다고 하셨는데,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이 없는 건가요?”

스님은 짧게 대답했습니다.

“인종이라는 것은 피부 색깔의 문제입니다. 피부 색깔이 서로 다를 뿐 어떤 색깔이 더 좋다든지, 나쁘다든지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흰 것은 좋고 검은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보는 것은 사실에 깨어 있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러나 그런 생각의 결과는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줍니다.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잘못된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색깔이 다를 뿐이지 그것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차별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잘못 알고 있는 사람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깨우쳐 줘야 합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소감과 질문이 채팅창에 계속 올라오는 가운데 스님은 법문을 마쳤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창문을 여니 개구리울음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강의를 한 후 오후에는 두북특별위원회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창밖으로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입니다.

전체댓글 64

0/200

정명

화덕을 설치하는 모습에 배웁니다.

2020-06-21 18:41:42

김현숙여래심

자리이타 기준하에 나의 선택 실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2020-06-15 13:06:46

이필남

지혜로우신 스님의 생각은 온 세상을 훤하게 밝혀주는 느낌입니다.

2020-06-14 03:33:44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