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15 인도성지순례 13일째 (상카시아)
“자신의 삶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성지순례를 떠난 지 13일째 되는 날입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 버스에 오른 순례단은 4시 정각에 쉬라바스티를 출발했습니다. 쉬라바스티에서 상카시아로 가는 여정은 10시간에 이르는 대장정입니다. 성지순례 기간 중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일정이기도 합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곧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버스에 불이 꺼지고 모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한참을 달리다가 휴게소 잔디밭에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매일 비슷한 반찬이지만 오순도순 먹는 도시락이 무척 맛있습니다.

버스는 점점 델리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새로 개통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델리 가까이 오니 분위기가 달라지죠? ”

매일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높이 튀어오르기 일쑤였는데, 고속도로 위를 달리니 조용했습니다. 고층 아파트들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깜짝 제안을 했습니다.

“차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사람이 노래를 불러보세요. 심사를 해서 제일 잘하는 차는 제가 짜이를 한 잔 사줄게요.”(모두 박수)

짜이 한 잔을 두고 치열한 노래자랑이 펼쳐졌습니다. 버스를 오래 타느라 찌뿌둥했던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 버스는 상카시아에 도착했습니다. 순례자들은 버스에서 내려 가사를 수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상카시아 탑을 돌았습니다.

어머니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상카시아 탑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부처님이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셔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느 해 안거 때 하늘의 도리천궁으로 가셔서 마야부인에게 법을 설하고 하강하셨다고 합니다. 이후 아쇼카왕은 이곳에 석주와 대규모 탑을 세웠습니다.

탑을 한 바퀴 돈 후 예불을 드리고 스님은 이 곳에 탑을 세운 배경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이곳 상카시아에서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담마, 진리의 성격보다는 세상에서 흔히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효(孝) 사상이 들어있는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해 안거 때 3개월 동안 어느 누구와도 함께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부처님 소식을 궁금해 했습니다. 어디에 계시는지 궁금하니까, 그 중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목갈라나에게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목갈라나가 자신의 신통으로 하늘 세계를 훑어보니 부처님께서 도리천궁에 계셨습니다.

마야부인은 싯다르타 태자를 낳은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은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그 공덕으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았는데, 정작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기에 이 좋은 법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리천에 계신 어머니를 위한 설법을 하러 안거 동안 도리천에 가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대중이 그 다음으로 궁금해 한 것은 안거가 끝나는 날 부처님께서 어디로 내려오실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중들은 다시 목갈라나에게 부처님께서 어디로 내려오실 것인지 여쭈어봐 달라는 청을 합니다. 목갈라나는 신통으로 도리천에 올라가서 부처님께 여쭈어보니 부처님께서 ‘7월 보름에 상카시아 성 밖으로 내려갈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인드라와 브라만을 대동하고 이 곳으로 하강했다고 전해집니다.

상카시아 일화와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는 당시 어느 비구니 스님이 부처님을 마중하면서 ‘부처님, 제가 가장 먼저 부처님을 뵙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자기가 가장 앞에 서 있는데도 부처님께서 ‘가장 먼저 마중나온 사람은 수보리 존자다.’ 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법을 보는 자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 법을 본다. 여래를 본다는 것은 곧 법을 보는 자다.’

그때 수보리는 영축산에서 정진을 하고 있다가, 부처님을 마중 가기 위해서 일어서는 순간 제법이 공한 도리를 깨쳐서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그걸 아시고 그 이야기를 했는데, 이건 현상보다 법(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일화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과 깊이 관계된 장소들이 8대 성지가 되었습니다. 아쇼카왕 당시에 이미 8대 성지는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부처님 열반 후 200여년 경이 지나 아쇼카왕이 집권했으니까 이러한 설화는 아주 초기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설화는 종교적인 믿음을 가진 관점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믿음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수행적 관점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습니다. 해석을 하려면 그 설화가 만들어진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사회과학적, 역사적으로는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초기 불교부터 성지였기 때문에 무슨 사건이 있긴 있었을 거예요.

저기 위에 보이는 작은 탑은 힌두 사원인데, 불교가 쇠퇴한 후 상카시아 탑 위에 힌두 사원을 만들어서 약 700년 간 사용해 온 거예요. 그래서 이곳이 불교에서 중요한 장소인 것은 맞지만 탑을 복원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불자들에게는 저 탑이 불교 탑이고, 힌두교도들에게는 힌두 탑입니다. 그래서 30년 전에는 둘 사이에 충돌이 있었습니다. 여기 들어오는 입구에 천막이 있는 걸 보셨을 텐데 그 충돌 이후에 이 지역에 경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8대 성지 중에 가장 믿음이 필요한 곳이 이곳입니다. 인도에 불교가 망하고 석가족이 대부분 죽었는데 묘하게도 이 곳에 5개 군에 석가족이 인구의 2-30%를 차지할 만큼 석가족 집성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은 오랫동안 부처님을 힌두 신의 하나로 믿었던 사람들이에요. 이분들을 1993년에 우연히 만나서 벌써 만난 지 27년이 됐네요. 이 사람들은 절도 만들고 싶고 불교 책도 만들고 싶어 해요. 그래서 마을에 작은 불상을 제작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땅을 사서 수련을 할 수 있게 큰 강당과 숙소, 그리고 탑으로 계속 분쟁을 하니까 탑을 지어주려고 해요.”

스님의 설명이 끝나고 경전을 함께 독송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지순례의 마지막 경전 독송이었습니다.

경전 독송을 마치고 다함께 법륜 스님이 쓴 발원문을 함께 독송했습니다. 스님은 매년 1월, 순례를 안내하기도 하지만 부처님의 성지를 찾아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고 새롭게 발원한다고 했습니다. 순례자들도 같은 마음으로 발원을 해보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어머님 은혜’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어머니를 위해서 설법을 하시러 하늘나라에 다녀오셨다고 전해집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곳이 초기불교부터 8대성지가 됐다는 것은 출가하신 분들도 부모의 은혜는 잊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고 어머니의 은혜를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낳으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머나먼 이국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그 마음이 더욱 애틋합니다. 순례자들은 문득 사무치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육신을 키워주신 것이 부모님이라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도록 키워준 것은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 조사, 스승님들입니다.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며 스승의 은혜도 불러보겠습니다.”

성지순례 막바지에 이르러 감사한 마음이 더욱 깊었습니다. 순례객들은 상카시아 탑을 돌아나왔습니다. 스님은 나오는 길에 걸식하고 있는 스님들에게 보시를 했습니다.

석가족의 환영

다시 버스를 타고 5분 쯤 가니 스님이 상카시아 석가족을 위해 담마센터를 지어주려고 마련한 부지에 다다랐습니다.

석가족들은 순례단을 가족처럼 환영해주었습니다. 부지로 들어서자 석가족 사람들은 순례객 한 명 한 명에게 환영의 의미로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꽃목걸이를 걸고 몇 걸음 걸어가자 이번에는 흙잔에 짜이를 건네주었습니다. 따뜻하고 달콤한 짜이 한 잔을 들고 부지 안쪽으로 더 걸어가자 알록달록 예쁜 천으로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무대 앞으로 순례객들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도 깔려 있었습니다.

너른 공터 한 켠에서는 석가족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 31차 성지순례 회향식

순례단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석가족 사람들이 준비한 성지순례단 환영 행사가 열렸습니다.

상카시아에는 전 인도에서 석가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데 약 20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 힌두교이고 절도 없고 해서 스님은 오래 전부터 이곳 석가족 집성촌 마을에 불상을 지원해주고 법회와 수련도 일 년에 한 차례씩 해오고 있습니다.

먼저 스님에게 석가족들이 꽃을 걸어주었습니다. 오늘 행사를 위해 석가족 10개의 시군에서 왔다고 합니다.

“인도는 우리와 환영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대표로 한 명이 꽃을 걸어주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대로 다 환영을 하다보니 꽃을 목이 부러지도록 걸어줘요. 처음에 저는 이 문화를 몰라서 왜 쓸데없이 꽃을 많이 거냐고 야단을 쳤는데 문화가 다른 거였어요. 그걸 견뎌내야 해요. 환영을 받아내야 해요.”(모두 웃음)

얼굴까지 꽃으로 뒤덮이자 목걸이를 증정하는 행사가 끝이 났습니다. 실제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습니다.

이어서 석가족을 대표하여 YBS(석가족 청년회) 회장 수바스지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청년이었던 수바스지는 이제 중년이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인도에 성지순례를 올 뿐만 아니라 배고픈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을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법륜스님을 비롯해 여러분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해도 짧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스승을 모시고 공부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여기 상카시아 불자들이 조금씩 보시해서 음식을 같이 장만했습니다. 인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겠지만 드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환영하고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수바스지와 45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했을 석가족 사람들에게 순례단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환영행사를 마치고 제31차 인도 성지순례 회향식이 시작 되었습니다. 스님은 성지순례를 회향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시작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주가 지나고 이제 순례를 마칠 때가 다 됐습니다. 바라나시(Varanasi) 사르나트(Sarnath, 鹿野園)에서 수행자로서 계를 받고 가사를 입으며 순례가 시작됐습니다. 오늘로써 순례는 모두 마치고 가사를 반납합니다. 순례는 마칩니다만 아직 이틀 간 여행 기간이 남아 있습니다. 몸조리 잘 하시고 나머지 여행도 무사히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던 이번 성지순례에서 제일 중요한 주제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땅을 기는 짐승도 괴롭게 살지 않는데, 왜 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괴롭게 살아가고 있을까?’

괴롭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괴롭게 살아가는 것이 비정상적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생명의 본래 모습대로 괴롭지 않은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렇다고 마냥 즐거워하면서 살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슬퍼하고 외로워하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비정상인 삶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잠시 그럴 수는 있지만, 그건 실수로 놓친 것이지 정상은 아닙니다. 그럴 때 ‘아차, 실수했구나’ 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자세를 가져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어요.

첫째, 머리 모양이며 옷 모양이 어떻고, 이름이 어떻고, 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겨서 괴롭지 않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은 곧 자기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내 괴로움을 두고 자꾸 남 탓을 해봐야 해결할 길이 없어요. 비가 올 수도 있고, 날이 더울 수도 있고, 추울 수도 있고,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나는 건 세상의 자연스러운 이치예요. 그런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는 가운데서 나는 괴롭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둘째,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해요. 괴롭지 않게 사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나 혼자 산다면 그래도 되지만, 다른 사람과 같이 산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때 나에게 자부심이 생깁니다. 늘 남한테 도움을 받고 살면 삶의 보람이 생기지 않아요. 자기가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새도, 토끼도, 벌레도 다 해요.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을 자립하지 않고 남한테 빌붙어 사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내가 자립하면 다 될까요? 그건 짐승만한 수준이지, 아직 사람답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남을 해치지 않고, 손해 끼치지 않고, 괴롭히지 않는 것은 기본입니다. 계율을 지키라는 것은 기본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말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해요. 해치지 않는 데서 끝날 게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이 있으면 살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남을 손해 끼치지 않는 데서 머무를 게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보면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데까지 가야 하고, 괴롭히지 않는 데서 끝날 게 아니라 남이 괴로워하면 위로할 줄 아는 역할을 좀 해야 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내 삶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를 괴롭혀서는 안 돼요. 내가 괴롭지 않게 살아가는 것, 이게 열반(涅槃), 즉 니르바나(nirvana)입니다. 이것이 상구보리(上求菩提)입니다. 더 나아가 내가 남에게 조금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하화중생(下化衆生)이에요. 이 좋은 법을 전해서 도움을 주든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든지,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든지, 아픈 자에게 약을 주든지,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책과 노트를 주든지, 넘어진 애를 일으켜 세워주든지, 이렇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자는 것이 하화중생입니다.

이 두 가지를 행하는 게 보디사트바(Bodhisattva), 즉 보살(菩薩)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할 때 자기 존재의 보람을 느낍니다. 괴롭게 사는 사람이 어떻게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겠어요? 남한테 빌붙어 사는 사람이 자기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겠어요? 보살의 삶은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된다.’

여러분들은 이걸 너무 어렵게 생각해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존재의 기본자세입니다. 우리는 기본을 잃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우선 내가 괴롭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기가 괴롭게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온갖 합리화를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순례를 하면서 가난하지만 웃고 사는 인도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웃고들 사는데 내가 괴로울 일이 뭐 있어요?

순례를 하는 내내 침낭 하나 갖고도 잘 자고 웃으며 잘 지냈잖아요. 밥에 단무지 한 조각 놓고 먹어도 잘 지냈고요. 우리는 작은 것에서도 얼마든지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자기를 괴롭히지 마라.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긴다면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마라’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이건 전혀 어려운 얘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갖춰야 할 기본입니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여러분이 이 두 가지는 꼭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첫째, ‘아, 그동안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을 남 탓으로 돌렸구나.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 하겠다’ 이것을 자각하셨으면 해요.

둘째, 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자세를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도우려는 욕심을 너무 많이 내지도 말고요.

이런 자세를 갖는다면 이 성지 순례를 참 잘 왔고, 참 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좀 비싼 밥을 먹고 호텔에서 자야 좋아합니다. 호텔에서 자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그때는 좋아요. 그런데 1년이 지나서 돌아보면 ‘1년 전에 맛있는 것을 먹었고, 1년 전에 호텔에서 잤다’ 이걸 지금에 와서는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 잠깐만 넘어가 버리면 어제 저녁에 어디서 잤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잤으면 된 거죠. 어제 먹었으면 됐지, 어제 뭘 먹었든지 지나고 나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일주일 내내 호텔 뷔페 먹은 거나 우리가 이렇게 다니면서 밥솥에 밥해서 먹은 거나 한국 돌아가면 아무 차이가 없어요. (모두 웃음)

참가하는 것만으로 복을 짓는 순례

먹을 때, 잘 때, 세수할 때, 그 당시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은 저도 인정해요. 그러나 우리가 그 잠깐의 감각적 쾌락을 좀 넘어설 수 있으면 이곳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비용을 조금 절약해서 모으고, 자는 비용을 조금 절약해서 모은 게 수자타 아카데미에서는 아이들의 책과 교실이 되고, 병원에서는 약이 되고, 인도의 석가족(Sakya, 釋迦族)에게는 그들의 소원인 담마 센터(Dhamma Center)가 됩니다. 여러분이 꼭 보시를 따로 하지 않아도 순례를 하는 것만으로 공덕을 짓도록 구조적으로 이렇게 갖추어 놓았습니다. (모두 박수)

여러분은 입이 이만큼 나와서 돌아다니지만, 여러분들이 왔다 가는 것만으로도 떡고물이 떨어져서 여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장치를 해두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왔다 가는 것만으로도 공덕이 쌓입니다.

이렇게 스님이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참가비 말고 자기가 더 마음을 내서 보시를 하면 더 공덕이 되겠죠. 그래서 보시해주신 여러분께 저희 스텝을 대표해서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모두 박수)

성지순례의 진정한 의미

이번 순례를 계기로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여러분은 이번 순례를 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남을 도왔어요. 여기 다녀가느라 냈던 참가비가 나중에 절이 되어 있고, 학교가 되어 있고, 병원이 되어 있고, 약값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여러분이 보시한 것 역시 모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순례를 하는 동안 여러분이 남한테 의지해서 산 것도 없었어요. 내 먹을 것을 내가 챙겼고, 내 짐을 내가 들었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돈을 지불하든, 물건을 들어주든, 수행자로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지난 15일 동안 살았습니다. 이 프로그램 자체가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은 같이 어울릴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정토회 인도성지순례는 내가 조금이라도 남을 돕고 봉사하고 내 마음을 살펴보도록 만들어놓은 시스템입니다. (모두 웃음)

성지에 가서 스님이 얼마나 자세하게 안내해 주느냐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순례를 하는 15일 동안 여러분을 수행자라고 정의한 이유는 수행자의 기준이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느냐’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곳 석가족 사람들은 여러분이 이렇게 많이 와준 것만 해도 큰 기쁨이에요. 우리를 같은 석가족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가족들이 한국에서 400명이나 방문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웃음)

룸비니에서 우리가 머물렀던 대성석가사(大聖釋迦寺)를 비롯해 인도에 있는 한국 사찰 스님들도 그런 이유로 정토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집니다. 스리랑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와서 신심 있게 정진할 때 대부분의 한국 신자들은 그냥 호텔에서 자고 잠깐 돌아보고 가버리니까 늘 부족함을 느꼈는데, 정토회는 신심 있게 순례를 하고, 다른 절에서 오는 순례객들보다 숫자도 많고, 그런데도 소란스럽지 않고 늘 여법하게 순례를 하니까 그 사람들도 덩달아 자기 목에 힘이 들어간다고 해요. (모두 웃음)

다른 한국 사람들을 보면 조금 부끄럽다가 정토회 순례단이 한번 왔다 가면 여러모로 고맙다고 합니다. 우리가 돈을 줘서 그분들이 잘해주는 게 아니라, 그런 고마움이 있기에 정말 정성을 기울여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챙겨주려고 하는 거예요.

이처럼 정토회의 인도성지순례 시스템 자체가 남에게 도움이 되고 자랑스럽게 되도록 짜여 있습니다. 어차피 호텔에 자면서 좋은 음식 먹고 다녀봐야 1년쯤 지나 돌아보면 고생 좀 하고 다닌 기억과 별 차이가 없어요. 먹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모두 웃음)

인간 붓다, 경전의 내용이 정말 사실이었구나

그리고 이번 순례를 통해 부처님이 그냥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어난 자리도 분명하고, 자란 환경도 분명하고,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비롯해 경전에 기록된 내용이 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다만 인도 사람이 기록을 하다 보니 인도의 전통 문화에 따라 조금 신비스럽게 보이도록 기록되었을 뿐이지, 허황되거나 뜬구름 잡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쨌든 2,600년 전에 살다 가신 위대한 스승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한 거예요.

한국에 돌아가서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내서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물론 부부가 같이 의좋게 살면 더 좋지만, 남편이나 아내가 죽었다고 불행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재산이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불행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그저 있으면 좋을 뿐이에요. 그게 없다고 불행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번 순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숙소가 좋아서 뜨거운 물도 잘 나오고 침대도 푹신하면 좋지만, 침낭에서 자더라도 그 문제로 괴로울 일은 없었습니다. 목욕을 할 수 있으면 좋지만, 하루 목욕 못했다고 괴로울 일은 아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을 딱 가지셔야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셔서도 성지순례의 경험을 큰 교훈으로 삼아서 인생을 복되게 사시고, 수행자로서 더욱 정진해 나가시고, 정토회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들도 마음을 내서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가사를 반납하고 나면 내일부터 스님 말도 안 듣고 마음대로 할 생각이에요?”

“아니요.” (모두 웃음)

“그런 사람에게는 제가 이렇게 말할 거예요.

‘너는 가사라는 상에 집착을 했구나.’ (모두 웃음)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은 또 형식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니 오늘은 가사를 반납하고, 이제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나머지 일정을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스님이 격려 말씀에 모두들 크게 웃으며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비록 성지순례는 이렇게 끝이 나지만 수행자로의 삶은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성지순례를 이끌어준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법사님들에게, 참가자로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준 차장, 조장들과 스텝들에게, 그리고 법륜스님에게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곧이어 가사를 반납했습니다. 순례자들이 가사를 고이 접어 머리 위로 들면서 “가사를 반납합니다.”고 말하자 스님이 “잘 받았습니다.” 고 답했습니다.

“시원해요, 아쉬워요?”

“아쉬워요!”

“말이 그렇죠?(모두 웃음) 불가에서는 일곱 번까지 출가를 거듭할 수 있으니까 다시 오세요.”

마지막으로 상카시아 탑을 바라보며 부처님께 ‘앞으로도 수행 잘하겠습니다.’ 하고 다짐을 했습니다.

모두들 아쉬움이 컸는지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서로 꽃장식을 하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습니다. 15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24시간 고락을 함께했기에 정이 많이 들었나봅니다.

마당에는 석가족 사람들이 순례단을 위해 손수 준비한 인도 전통 음식인 짜파티와 달, 사부지, 야채가 준비되어있었습니다.

순례단은 손을 씻고 인도인들처럼 손으로 저녁식사를 해보았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보시금을 모아 전달했습니다.

“이렇게 환영해주고, 맛있는 밥도 대접해주어서 보시금을 모았습니다.”

“보시는 괜찮지만 밥값은 필요 없습니다.”(모두 웃음)

“인도 사람들이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우리 큰 소리로 저녁 잘먹었다고 고맙습니다고 말해줍니다.”(모두 웃음)

인도인 활동가에게 번역한 말을 듣고 힌디로 인사를 했습니다.

“카나 아차세 카에 보훗 보훗 단야바드” (저녁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식사 후 저녁에는 각자 숙소에서 성지순례 회향의 기쁨을 다시 상기하며 조별로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로 정이 많이 들었나 봅니다. 나누기가 진행되는 방마다 웃음과 박수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내일은 무굴제국의 요새였던 아그라와 타지마할로 향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전체댓글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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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당

감사합니다 ♡
언젠가 꼭 함께 하고 싶습니다 ~~♡

2021-01-16 08:51:07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20-03-18 18:53:56

임다희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을 마중가기 위해 일어났다가 제법이 공함을 알고 다시 앉았다는 내용은 상의 무상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인도를 방문하기만 해도 공덕이 쌓일 수 있도록 인도성지순례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신 스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약 2주간 결코 쉽지 않은 여정에 큰 마음내어 차장과 조장 맡아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20-02-12 00: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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