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14. 인도성지순례 12일째 (쉬라바스티)
“아주 오래된 새길”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이 가장 오랜 기간 머무신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에서 하루 종일 머물렀습니다.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450여 명의 순례단은 가사를 수하고 숙소를 출발했습니다.

“기원정사까지 걷기 명상을 하겠습니다. 천천히 자기 동작에 깨어있어 보세요. 염불 대신 묵언을 하겠습니다. 눈은 한 발이나 두 발 앞을 응시하고 왼발이 나갈 때는 왼발이 나가는 줄 알고, 오른 발이 나갈 때는 오른 발이 나가는 줄 알아차려 보세요. 자, 그럼 출발해 보겠습니다.”

자욱한 안개를 가르며 기나긴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450명이 지나가는 거리는 고요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많은 안거를 하셨던 기원정사

천천히 걸어 기원정사에 도착한 순례단은 스님을 따라 부처님과 당시 제자들의 발자취를 생각하며 거닐어보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기원정사에는 정토회 순례자들 뿐이었습니다.

아난 존자가 물을 떠서 부처님께 드렸다는 우물 터, 부처님이 열아홉 발자국 행선했던 자리, 부처님이 안 계실 때 부처님을 대신해서 생각하기 위해 심은 보리수 나무, 부처님께서 손님을 맞이했던 곳을 지났습니다.

부처님이 머문 처소인 ‘간다 쿠티’를 돌아 맞은 편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안내에 따라 조용히 자리를 깔고, 모든 분들이 자리에 앉을 때 까지 명상을 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모든 사람이 자리를 잡자 부처님이 머무셨던 곳을 향해 엎드려 예불을 드렸습니다.

예불을 드린 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기원정사를 창건한 수닷타 장자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생생한 묘사에 벽돌 더미의 유적지에서 부처님 당시의 상황이 금세 재현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에서 45안거 중에 19안거를 보내시며 수많은 사람들은 교화하셨습니다. 스님은 그 중 대표적인 교화 사례들을 주욱 들려주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악한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부처님의 명성에 흠을 내려는 여러 가지 음모들

부처님 당시에는 육사외도(六師外道)가 있었습니다. 이 여섯 교파는 자신들의 교세를 늘리려고 경쟁이 치열했었나 봐요. 그런데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귀의하면서 세상에는 이런 비난이 일어났습니다.

‘고타마 붓다가 어제는 누구 집 아들을 빼앗아 갔고, 오늘은 누구 집 남편을 빼앗아 가고, 내일은 누구네 제자를 빼앗아 갈 것인가?’

어느 집 아들도 출가하고, 어느 여인의 남편도 출가하고, 어느 스승의 제자도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가버리니 이런 소문이 났어요. 사리푸트라(Sariputra, 舍利佛)와 목갈라나(Moggallana, 目犍連)도 어느 스승의 제자였는데 붓다에게 귀의한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부처님의 명성이 높아지자 외도들이 이런 비난을 할 만큼 시기와 질투도 많아집니다.

그러다가 한 교파에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일이 빈번하니까 부처님의 명성에 흠을 내려고 음모를 꾸몄어요. 하루는 부처님이 설법하고 있는데 어떤 여인이 불룩한 배를 내밀고 앞에 나와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남 앞에서 좋은 얘기만 하지 마시고, 당신의 애를 어떡할 것인지 대책이나 좀 세워주시오.’

부처님하고 자기가 관계를 맺어서 지금 아기를 가졌다는 뜻이죠.

‘이 나라의 왕도 당신의 제자이고, 수닷타(Sudatta) 장자 같은 부자도 당신의 제자이니까 그런 사람들한테 얘기해서 나 좀 돌봐달라고 하시오.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할 텐데, 아이에 대해 책임은 안 지고 남 앞에서 좋은 소리만 매일 해서 되겠소?’

이렇게 말하면서 오해를 사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옷 속에 박을 넣어서 아이를 가진 척 꾸몄던 것이었어요. 이런 내막이 밝혀지자 오히려 부처님의 명성이 더 빛났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큰 사건도 있었어요. 부처님을 모함하는 무리들이 아주 예쁜 이교도 여인에게 시켜서 항상 밤에는 기원정사(祇園精舍, Jetavana Vihara) 쪽으로 걸어오고, 아침에는 기원정사에서 나가는 쪽으로 걸어가도록 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보기에 좀 이상하잖아요. 저녁만 되면 기원정사 쪽으로 가고, 아침만 되면 거기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모두 웃음)

그렇게 시키길 반복하다가, 그 여자를 죽여서 시체를 기원정사 뒤에 버려 놓았습니다. 그래놓고는 여인이 없어졌다며 막 찾는 척하다가 ‘기원정사 뒤에서 찾았다, 부처님 제자인 사문들이 여인을 탐하고 죽여서 버렸다’ 이렇게 소문을 냈습니다.

이 음모는 사람들에게 먹혀들었어요.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들이 사위성(舍衛城, 쉬라바스티)에 걸식을 하러 가면 아무도 밥을 안 줬어요. ‘나쁜 놈들’, ‘위선자들’ 이렇게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 일은 굉장히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부처님과 제자들이 진짜 위선자라고 믿었어요. 일을 꾸몄던 사람들이 여자의 시신을 등에 메고 시내로 돌아다니면서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나쁜 짓을 한다’ 이렇게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죽은 사람의 시신을 메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주일만 기다려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일주일간 욕을 얻어먹고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났을 때 범인이 밝혀졌습니다. 청부살인을 했던 사람이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내가 이런 일을 했다’ 이렇게 실토를 하는 바람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어요. 수닷타 장자와 베사카(Vesakha, Visakha, 毘舍佉) 부인이 여러 노력을 하기도 했고요. 이교도가 시켜서 저지른 일임이 드러나자 부처님과 제자들의 명성이 더욱 빛났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이 두 가지 사건인데, 그런 일화들이 이후에도 계속 일어납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실제 경전 속에서는 그 내용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함께 독송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함경의 절반 가까이가 이곳 사위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니 오늘 독송한 내용 말고도 어마어마한 사례들이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갖가지 사건과 어려움에 봉착한 부처님

“여기서 이렇게 경전을 읽으니까 ‘집에 돌아가면 경전 좀 읽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죠? 그것은 시험공부 할 때 ‘이번 시험 끝나면 다음 시험부터 열심히 해야지’ 이러다가 시험 끝나면 또 공부 안 하고, 또 시험 칠 때 되면 벼락치기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도 그런 벼락치기 공부가 쌓이고 쌓여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모두 웃음)

경전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바로 이곳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들입니다. 부처님의 삶을 다 좋게만 해석하지만, 실제 삶은 꼭 그렇게 편안한 것만은 아니었어요. 무슨 일이 있든 부처님의 마음이 편안하셨던 겁니다. 부처님이 남을 해치지 않아도 세상에는 늘 이런 갖가지 사건이 생기고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함은 아무런 사건이 안 생기도록 하신 데 있는 게 아니에요. 온갖 사건이 생기는 가운데에서도 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셨고, 대중이 불안해하거나 들뜨거나 혼란스러워하면 오히려 대중을 안심시키고 때를 기다리셨다는 것이 부처님의 위대함입니다.

특히 기원정사와 사위성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중에 몇 개라도 이렇게 여러분이 기억을 했으면 해서 소개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행복해진 사례도 많았지만,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임했느냐를 보여주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자, 그러면 이곳에서 일어난 옛 일을 생각하면서 잠시 명상하겠습니다.”

공부를 할수록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났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나니 오후 1시였습니다. 오전 7시에 도착해서 6시간이 지났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셨던 곳에서 순례자들도 가장 오래 머물러보았습니다. 이렇게 기원정사에서 법회를 모두 마친 후 다 함께 사위성을 향해 걸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기원정사에서 사위성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걸었을 바로 그 길이에요. 저희들은 서문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부처님 당시를 재현하듯 긴 행렬을 이루며 기원정사에서 사위성으로 향했습니다.

사위성으로 들어서니 길이 어딘지 분간이 잘 안 될 정도로 풀이 무성했습니다.

“이게 바로 제행무상입니다. 그 화려하던 사위성이 이렇게 정글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상함을 느끼며 순례자들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스님을 따라 사위성 서문으로 들어가서 성 중심에 이르니 멀리 큰 탑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스님이 송수신기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 탑은 앙굴리말라를 기념하는 탑이고, 그 옆에 수닷타 장자를 기념하는 탑이 있습니다. 수닷타 장자는 선한 사람으로서 위대한 사람이고, 앙굴리말라는 악인이었다가 참회해서 위대한 사람이 되었어요.”

순례객들은 스님을 따라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앙굴리말라 스투파를 돌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어떻게 99명을 죽인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교화했는지 당시의 모습을 영화보듯이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수닷타장자의 탑을 참배한 후 동원정사로 향했습니다.

동원정사

동원정사는 동문 밖에 있습니다. 성안에서 동문으로 바로 걸어가곤 했었는데 성벽을 둘러싸고 울타리를 쳐놓아서 다시 서문으로 나가서 빙 둘러 동원정사로 향했습니다.

원래 다니던 길보다 30분은 더 걸었어야 했지만, 논두렁을 따라, 시골 마을을 따라 걷는 것도 좋았습니다. 동원정사에 도착해서 스님은 베사카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또 실감나게 들려주었습니다.

시아버지를 교화한 베사카 부인

“저 쪽에 성벽이 있는 곳이 사위성의 동문입니다. 서문 밖에 기원정사가 있었듯이, 동문 밖에는 동원정사(東園精舍, Purvaram Vihara)가 있었습니다.

이 동원정사는 베사카 부인이 기증해서 지은 절입니다. 부처님도 이곳에서 머무셨습니다. 베사카 부인은 밧디야 지방의 큰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마가다국에 합병이 되었어요. 나라가 통합되면 왕족은 자리를 잃지만, 사업을 하는 장자는 관계가 없습니다. 한국이 중국이나 미국에 통합되면 정치인들은 다 자리를 잃지만 대기업은 오히려 더 크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듯이 이 집안도 나라가 마가다국에 통합이 되면서 오히려 사업이 더 커져서 왕사성(王舍城, 라즈길)으로 이사를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이 장자의 집에 공양을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베사카 부인은 일곱 살 정도로 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손녀를 많이 귀여워해서 부처님이 오시면 공양을 시중드는 일을 어릴 때부터 시켰습니다. 그래서 베사카 부인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불자가 된 분이에요.

어른이 된 베사카는 아버지가 사위성으로 장사를 다니다가 알게 된 사위성의 어떤 장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부자이기는 하지만, 베사카 부인의 친정에 비하면 부의 규모가 작았어요. 베사카 부인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지참금이 시댁의 전 재산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특히 할아버지가 손녀를 아껴서 지참금을 많이 줬을 뿐더러 시녀들도 많이 딸려 보냈다고 해요. 결혼생활 중에 어떤 손해를 볼 일이 생길까봐 8명의 현인도 딸려 보냈어요. 조언도 해주고 필요하다면 변호사 역할도 해줄 지혜로운 현자들을 붙여준 거예요. 이 정도로 아주 특별한 대우를 누리며 이곳 사위성에 와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댁 사람들은 니칸타(Nigantha) 외도의 신자였어요. 특히 시아버지가 니칸타의 제자이다 보니까, 스님들이 이 집에 탁발을 오면 탁발을 안 주었습니다. 하루는 시아버지가 밥을 먹고 있는데 스님들이 방문했어요. 옛날에는 거지도 밥 먹을 때 오면 반드시 한 숟가락이라도 나누어 주는데, 시아버지는 이교도에게는 밥을 주기 싫으니까 스님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등을 돌려 앉아 버렸어요. 그런데 베사카 부인은 독실한 불교 신자잖아요. 스님들한테 미안하니까 가서 사과를 했어요.

‘아버님이 시주를 못한 것은 어제 저녁에 드시던 식은 밥을 차마 스님들께 드릴 수가 없어서입니다.’

이렇게 좋게 말해서 스님들을 돌려보냈어요. 그런데 그 소리를 시아버지가 들은 거예요. 자기는 지금 금 발우에 엄청나게 좋은 음식을 먹고 있는데, 며느리가 자기더러 식은 밥을 먹고 있다고 말한 거잖아요. 그래서 시아버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파혼을 선언했어요.

이것이 문제가 돼서 재판을 했는데, 베사카 부인을 따라 왔던 현자들이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재판 결과, 파혼 사유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났어요. 시아버지를 모독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스님들에게 변명을 하다가 나온 말이니까요. 그래서 베사카 부인이 판결에서 이겼습니다.

그래서 시댁의 입장이 몹시 난처해졌습니다. 그 당시 법에 따르면 파혼을 신랑 쪽에서 선언하면, 지참금을 받았던 만큼 재산을 돌려줘야 했나 봐요. 반대로 여자가 잘못해서 파혼하게 되면 지참금을 다 포기해야 하고요. 시댁에서는 지참금을 뺏으려고 ‘시아버지를 모독했으니까 이것은 정당하게 파혼할 만하다’라고 주장했는데 재판에서 진 겁니다. 그런데 이 집은 지참금을 물어줄 만큼의 재정 형편이 안 되었던 거예요.

베사카 부인은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자기가 스님들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는 권한을 시아버지한테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시아버지도 교화하기 위해 부처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공양을 접대하려고 했습니다. 시아버지에게 ‘부처님께 공양을 접대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지만 거절을 당했어요. 니칸타 외도에서는 시아버지가 굉장한 지지자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분이 부처님 쪽으로 가버리면 니칸타 외도는 큰 타격을 입게 되니까 아예 니칸타의 제자 한 명을 이 집에 상주시켜 일종의 감독 역할을 하게 했는데, 비로 이 사람이 부처님에게 공양을 접대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겁니다. 그래서 공양 접대는 베사카 부인이 했습니다.

공양이 끝나면 법문을 하니까, 시아버지에게 법문을 함께 듣자고 이야기했어요. 이것 역시 감시하던 외도 수행자가 반대해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도 부처님의 법문이 궁금했는지, 병풍 뒤에 숨어서 몰래 법문을 들었어요. 부처님이 베사카에게 설법하는 내용을 이분이 병풍 뒤에서 몰래 듣다가 깨달아버렸습니다. (모두 웃음)

그렇게 해서 시아버지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어요. 그 후 시아버지는 늘 며느리를 ‘법(法)의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해요.

‘며느리로 인해서 내가 법을 만났으니 세속적으로는 며느리지만 법으로서는 나의 어머니다.’

그래서 베사카 부인이 지은 절을 ‘녹자모 강당(鹿子母講堂)’이라고도 부릅니다. ‘녹자(鹿子)’는 베사카 부인의 시아버지 이름인 미가라(Migara)를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동원정사가 지어지게 된 배경

베사카 부인이 하루는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기원정사에 갔다가 비싼 외투를 두고 그냥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하인에게 외투를 가지러 보냈는데,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외투가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가져오고, 혹시 아난 존자(Ananda, 阿難陀)가 그것을 이미 치워두었으면 가져오지 말고 보시하고 오너라.’

가보니까 아난 존자가 이미 외투를 치워두었습니다. 그래서 외투를 보시하려고 했는데 아난 존자가 거절했어요. 그런 보시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비싼 외투를 입을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외투는 돌려받았는데, 베사카 부인은 ‘이미 내가 보시를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팔아서 승단을 지원하겠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워낙 값비싼 외투라서 살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결국 베사카 부인이 자기가 돈을 내서 자기 물건을 샀어요. 본인이 본인 물건을 돈 주고 사서 그 돈으로 이 동원정사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비구들이 머물게 했다가, 후대에는 비구니들의 수행 도량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이 동원정사라는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증거는 찾기 어렵습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이 일을 기념하는 아쇼카 석주(Ashoka Pillar)가 여기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쇼카 석주가 부러지고 그 아쇼카 석주를 링가(Linga) 모양으로 다듬어서 힌두교 사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힌두교 사원으로 사용되던 것을 인도 스님이 구입해서 동원정사를 복원한 거예요. 우리가 앉아 있는 바로 이곳이 ‘푸르바람 비하르(Purvaram Vihara)’, 동원정사(東園精舍)입니다. 동원정사를 인도말로는 ‘푸르바람(Purvaram)’이라고 부릅니다. ‘푸르’가 동쪽이라는 뜻이거든요. 이와 관련된 경전 내용을 같이 독송해보겠습니다.”

이어서 명상을 하고 경전도 독송해보았습니다.

경전 독송 후 스님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재가 수행자의 표본

“남자 재가수행자 중에 제일 표본이라고 할 만한 분이 사위성에서는 수닷타 장자, 왕사성에서는 지바카(Jivaka)입니다. 여자 재가수행자로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베사카 부인입니다. 이런 분들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못지않은 위대한 수행자였습니다. 다만 후대에 불교가 승려 중심이 되면서 이들을 그저 보시를 많이 한 후원자로 취급해서 그렇지, 이들은 수행의 정도가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할 만큼 깊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런 분들이 자기 삶의 모델이 되도록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곳은 위대한 여성 수행자인 베사카 부인이 발원해서 지은 절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찾아온 겁니다. 많은 한국 순례객이 쉬라바스티에 오지만, 기원정사만 다녀가지, 이곳을 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잠시 명상하겠습니다.”

동원정사 바깥에는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매년 스님이 사탕을 주는 것을 알아서 온 동네 꼬마들이 다 모여있었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에게 사탕을 주라고 한 후 걸어서 천불화현탑으로 향했습니다

천불화현 탑

30분 정도 걷자 멀리 산 하나가 보였습니다. 산이 아니라 탑이었습니다. 케사리아 탑이 발견되기 전 까지 가장 큰 탑이었던 천불화현탑입니다. 탑 아래까지 걸어와서 스님을 따라 한 줄로 서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탑 위로 향했습니다. 좁게 서서 450여명이 모두 탑 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사위성 사람들은 대개 삿된 법을 좋아하고, 정법(正法)에는 눈이 멀고 귀가 어두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의 불자들이 부처님께 ‘여기 사람들이 삿된 법을 좋아하니 부처님께서도 무언가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하고 청하니 부처님께서 그 청을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느 날 어느 때에 사위성의 동문 밖에 대중들을 모으시고 망고 씨앗 하나를 땅에 심었는데 조금 있으니까 그곳에서 싹이 터나오더니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고목나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망고 열매가 열려 노랗게 익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망고들은 모두 부처님 모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천불화현(千佛化現), 천 분의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사위성 사람들이 감동해서 그 후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리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예불만 드리고 탑을 내려와 숙소까지 걸어갔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스님은 인도인 스님이 운영하는 절에 방문했습니다. 스님은 불교 인구가 거의 없는 인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 절에 매년 보시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건물도 짓지 않고 사셨잖아요. 절을 천천히 짓는 게 뭐가 문제예요. 서두르지 말고 불사를 하세요. 디레디레.(천천히)”

대중들은 숙소로 돌아와 조별로 모여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천축선원에서 준비해준 따끈한 무국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저녁 법회

저녁 식사 후에는 마당에서 저녁예불을 드리고 법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내일 가는 상카시아를 마지막으로 성지는 다 순례한 것이라며 성지순례를 온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알려주었습니다.

“오늘은 쉬라바스티에서 어느 성지보다도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른 곳은 오가느라 바빠서 정작 성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이곳 쉬라바스티에서는 온전히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전에는 내내 기원정사에서 보냈고, 오후에는 사위성과 동원정사, 천불화현탑(千佛化現塔)을 돌아봤습니다.

아주 오래된 새길

기원정사에서는 우리가 부처님의 법문을 다른 곳에서보다 좀 더 많이 읽었어요. 부처님의 법문은 오늘날 들어봐도 그 정도면 매우 훌륭한 대화이지만, 우리나라 같으면 거의 원시시대나 다름없었을 정도인 2,600년 전에 이 정도의 깨우침을 주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니 참 놀랍죠. 불교를 믿느냐 여부를 떠나서 누구나 ‘참으로 위대한 스승이시다’라고 경탄할 만합니다.

자유와 행복을 향한 길은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이미 발견하셨어요.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 오래 전에 열린 겁니다. 그러나 그 후 2,600년이 흘렀는데도 그 지혜가 더 성숙하기보다 오히려 후퇴한 측면이 있어요.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서 제자들이 부족한 것을 채우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더 발전해가야 할 텐데, 돌이켜보면 오히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속화되고, 물질화되고, 세속을 정화하기보다는 세속에 거꾸로 물드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2,600년 전에는 좀 어리석게 했다 하더라도 오늘날은 더욱더 지혜롭게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2,600년 전에 이미 지혜롭게 하신 모범을 수없이 보여주셨는데도 지금 우리는 그보다 못한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소위 물질문명이라고 하는 과학기술 문명은 그때에 비해서 수천만 배 더 발전했지만, 우리의 정신문명은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 우리는 더욱더 부처님의 법에 귀의하고, 그 법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이렇게 발달된 물질문명에 예속되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주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합니다. 2600년 전에는 자기밖에 몰랐다 하더라도 지금은 남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때는 남까지 생각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자기밖에 모른다면, 이것은 점점 퇴보하고 있는 거예요. 부처님 법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졌으면 합니다.

여기까지 현장학습을 하러 온 이유

우리가 시간과 돈을 내서 이 고생을 하면서 현장학습을 하는 이유는 경전에 있는 내용이 막연한 소설 같은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임을 알기 위해서예요. 기록 과정에서 조금 신비화되거나 추상화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전은 비교적 사실에 입각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의 삶을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로 느끼고 배우기 위해서 이곳까지 온 겁니다. ‘믿어라, 믿어라’ 한다고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닙니다. ‘직접 가서 내가 눈으로 보고 경험해보니 과연 사실이 그렇더라’ 이렇게 해서 믿어지는 것이 가장 큰 믿음이에요. 이것은 믿기 싫어도 저절로 믿어지는 것이니까요. 성지순례를 통해 여러분의 법에 대한 믿음이 더 견고해졌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순례하면서,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있거나, 좋은 제안을 하거나, 비판을 할 것이 있으면 지금부터 한 시간 정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순례자들은 순례를 하며 들었던 의문을 가볍게 질문했습니다.

  • 왜 남녀, 결혼 여부, 나이에 따라 거사, 보살, 법우로 나누어 부르나요?
  • 부처님 당시에 1250명, 500명과 함께 법회를 했다고 하는데 송수신기도 없고 확성기도 없는데 어떻게 법문을 하셨나요?
  • 부처님께서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요.’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경우에 그렇게 말씀 하신 건가요?
  • 스스로 경전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제법무아, 나라고 할 것이 없다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천도재도 지내고 예불 때 영가를 위해 축원도 합니다. 두 가지가 상충되는 것이 아닌가요?
  • 금강경을 보면 베풀 때 상을 짓지 말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북한 사람, 인도 사람을 돕는데 그런 일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하시는 것 아닌가요? 또 그런 국제구호사업을 하면서 화가 난 적은 없으신가요? 화가 난 적이 없다면 저와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요?
  • 무상정등정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 둥게스와리에 외부인들이 땅을 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주도처럼 외지인들이 땅을 차지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외지인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어갈 계획이신가요?
  • 왜 사위성은 발굴하지 않았나요? 인도는 유적 발굴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
  • 동원정사가 있는데, 남원정사나 북원정사는 없나요?

법회를 마치고 순례자들은 나누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어느새 내일 가는 상카시아가 10대 성지 순례의 마지막 순례 장소입니다. 내일은 새벽 3시에 기상하여 4시에 상카시아로 출발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전체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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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희

이 날 피곤한 나머지 다른 분들이 기원정사에서 깊은 감동을 느낄 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ㅎㅎ 그래도 앙굴리말라탑터를 보고 생각하면서 화를 끊지 못하는 제 업식을 돌이켜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25안거를 쉬라바스티에서 보내셨는데 사위성 사람들이 그만큼 교화하기 힘들었다고 하니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을 원림으로 삼으라는 보왕삼매론이 생각납니다.

2020-02-09 23:09:30

손승희

댓글쓰기 해보자는 마음이 처음엔 귀찮았는데 하루 하루 스님의 하루를 읽고 사진을 보니 인도 성지 순례를 다시 한 번 가 보는 보너스를 얻은 기분입니다. 이 또한 다 남들의 도움을 받은거네요. 감사한일이지요. 그냥 따라가다보면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2020-02-06 11:49:37

손승희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스님의 음모이야기 전생이야기는 늘 듣는 이야기인데도 실제 장소에서 들으니 실감나고 흥미진진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깊이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에서도 이렇게 좋은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도와 주는 차장님과 스탭 (준길법우님)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2020-02-06 11: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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