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16. 인도성지순례 14일째 (아그라)
“이것으로 인도 성지순례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성지순례를 떠난 지 14일째 되는 날입니다. 

어제 가사를 반납하고 회향을 한 순례객들은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관람하고 성지순례 전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 5시, 상카시아에서 아그라로 출발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한숨자고 나니 아그라 외곽에 도착했습니다.

“아그라는 인도 제일 관광도시입니다. 첫 번째로 타지마할, 두 번째로 무굴제국의 수도이자 왕궁이었던 아그라 포트가 유명합니다. 오늘은 제가 특별히 안내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차량별로, 조별로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서 관람하시면 되겠습니다.”

비가 내렸지만 문제될 게 없습니다. 버스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세 팀으로 나누어 타지마할, 아그라성을 각기 다른 순서로 둘러보고 자유롭게 쇼핑도 해보았습니다.

그 사이 스님은 먼저 숙소로 돌아와 숙소를 점검하고 저녁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순례자들은 오후 2시부터 숙소에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름한 순례자 숙소에서만 지내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고급 호텔에 들어서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것도 공부거리입니다. 스님은 순례자들이 사문유관을 체험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마지막 날은 고급 호텔에 묵었습니다.

성지순례를 정리하며

오후 3시 30분부터 호텔 강당에서 성지순례를 총 정리하는 법회가 열렸습니다.

법문을 듣기에 앞서 명상을 잠시 했는데, 명상이 끝나는 죽비와 함께 곳곳에서 기침 소리가 콜록콜록 하고 쏟아져 나왔습니다. 웃음과 함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구경 잘 하셨습니까?”

“네!”

“비가 오는데 어떻게 구경했어요? 비 맞고 일하기도 하는데, 비 맞고 노는 거야 어렵지 않지요?”

“네!”

“저는 고소했어요. (모두 웃음)

모두들 충분히 관광을 하셨습니까?”

“네!” (모두 크게 대답)

“밖에 천둥이 치네요. 인도에서 겨울에 이렇게 비가 많이 쏟아진 것은 제가 인도에 다니기 시작한 지 30년 만에 처음입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지만,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사실인 것 같아요. 인도의 겨울은 비가 어쩌다가 한 번씩 와도 번개 한 번 치고 천둥 한 번 치고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다가 마는데, 오늘처럼 여름비 오듯이 쏟아지니까 저도 당황스러웠어요.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지 기침이 계속 나네요.” (웃음)

스님도 감기가 심하게 걸렸는지 말하는 도중 계속 기침을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난 보름 동안의 순례 여정을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듯이 자세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과 달리 우리는 어떤 순서로 순례를 했을까요? 지난 보름 동안의 여정을 다시 떠올려보며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장소가 겹치더라도 부처님의 일생을 따라서 순서대로 순례를 하면 가장 효과적이지만, 우리의 일정이 그렇게 길지 않았기 때문에 좀 조정을 했습니다.

중생에게 있어서 부처님은 부처님이 설법하시고 나서부터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설법을 하시기 전에는 중생의 입장에서는 부처님이 나타나신 줄도 모르고, 어떤 진리를 깨달으셨는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부처님이 첫 설법을 하신 바라나시(Varanasi) 성 밖의 사르나트(Sarnath, 鹿野園)로 우리가 부처님을 뵈러 간 거예요. 부처님이 첫 설법을 하신 다르마라지크 스투파(Dharmarajika Stupa)와 두 번째 설법하신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가 있는 녹야정사(鹿野精舍), 즉 물간다쿠티(Mulagandhakuti)에서 입재식을 하고 가사를 받으면서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섯 명의 비구가 부처님을 환영했다는 영불탑(迎佛塔, Chaukhandi Stupa)을 비롯해 여러 곳을 둘러봤습니다.

사르나트를 출발해 A팀은 16시간, B팀은 10시간 만에 수자타 아카데미(Sujata Academy)로 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6년 간 고행하신 전정각산을 참배하고, 부처님께서 하산하셨던 길을 따라 가면서 쓰러지신 곳과 공양 받으신 곳도 가고, 우루벨라 가섭(Uruvela Kassapa)을 교화하셨다는 터에도 갔어요. 나디 가섭(Nadi Kassapa) 교화터는 우리가 가는 길에서 강 건너편이었는데 거기까지 가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보드가야(Bodhgaya, 부다가야) 대탑에 가서 참배를 했어요. 부처님은 성도 전 49일, 성도 후 49일을 그곳에서 정진하셨어요. 성도 전에는 죽더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용맹정진에 들어갔고, 성도 후에는 장소를 일곱 군데로 옮겨 다니며 그 기쁨을 마음껏 누리셨다는 내용이 안내 팻말에도 나와 있었습니다.

다음은 부처님께서 전정각산으로 향하기 전에 오르셨다는 가야산(伽揶山)에 올라가서 천 명의 비구에게 설법을 했다는 곳도 둘러봤습니다. 그런 뒤 다시 차를 타고 부처님이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러 천 명의 비구와 함께 갔던 그 길을 따라서 제띠안(Jethian, 杖林)까지 갔습니다. 제띠안에 가서 참배를 하고, 왕사성(王舍城, Rajgir) 남문으로 들어가서 부처님이 오래 머무셨던 영축산(靈鷲山)에 올라 참배를 했습니다.

영축산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지바카(Jivaka)의 집터로 추정되는 유적을 창밖으로 보면서 빔비사라(頻婆娑羅, Bimbisara) 왕의 감옥터에서 식사를 했죠. 빔비사라 왕이 감옥에 갇히자 절망한 위제희(韋提希) 부인에게 부처님이 희망을 주신 내용이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竹林精舍, Venuvana Vihara)를 순례했습니다. 그런 뒤 경전을 결집한 장소인 칠엽굴(七葉窟, Sattapanni)에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가서 결집때의 얘기를 나누고, 부처님하고는 관계없지만 굽타(Gupta) 시대 중 5~7세기에 세계 최대의 대학이었다고 하는 나란다(Nalanda, 那爛陀) 대학에 갔습니다. 현장(玄奘) 스님도 거기서 유학을 하셨고, 혜초(慧超) 스님도 거기서 유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도 분들은 ‘중국에서는 현장 스님을 위해서 현장 기념관을 크게 지었는데, 왜 한국에서는 혜초 기념관을 안 짓느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뒤로 마하트마 간디 브리지(Mahatma Gandhi Setu)를 건너 강가(Gaṅgā) 강을 건너서 바이샬리(Vaishali, 毗舍離)에 이르렀습니다. 원후봉밀(猿猴奉蜜)터를 찾아가서 아쇼카 석주(Ashoka Pillar)가 온전히 남아있는 곳에서 참배를 하고, 부처님의 여덟 가지 사리탑 중의 한 군데인 바이샬리 사리탑을 참배하고, 왕궁터에 가서 잠깐의 여흥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병조 선생님께서 목이 안 좋은데도 ‘황성의 옛터’를 노래해 주셨어요. (모두 웃음)

그리고 우리는 쿠시나가르(Kushinagar)로 가다가 케사리아 대탑(Kesariya Stupa)을 참배했습니다. 부처님이 이별의 증표로 남겨주신 발우로 탑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곳이에요. 간다키(Gakndaki) 강을 건너서 춘다(Chunda, 純陀)의 공양터를 참배하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목욕하고 물을 마셨던 곳인 카쿳타(Kakuta) 강에 잠시 내렸습니다.

그리고 한국 절인 대한사에 가서 밥을 먹고, 열반당으로 갔어요. 열반당 안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마지막 열반 모습을 그리며 발원을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부처님께 뭘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남은 일들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이미 많은 일들을 하셨잖아요. 거기다 또 해 달라고 하면 불효막심한 짓이에요. (모두 읏음)

지루한 국경 통과 절차를 치룬 뒤,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의 거룩한 모습을 생각하며 룸비니(Lumbini)를 참배했습니다. 이튿날은 일출을 보려고 탄센(Tansen)에 가다 길이 막혀서 되돌아왔지만, 그 덕택에 꼴리족(Koliya, 拘利族)이 세운 랑그람(Rangram) 진신사리탑을 친견했습니다.

그리고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카필라 성)로 가서, 서문으로 들어가 동문으로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문유관(四門遊觀), 그리고 부처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북문 쪽으로 가서 태자 시절에 부처님이 수행자를 만났다는 곳을 지났고, 들녘을 통과해서 카필라 성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성도 후 카필라 성을 다시 방문하셨을 때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이 가족과 함께 마중 나왔다고 하는 쿠단(Kudan) 유적지도 살펴보았어요. 쿠단 유적지에 갈 때마다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반왕 탑입니다. 이것은 마하프라자파티(Mahaprajapati) 탑입니다. 이것은 라훌라(Rahula) 탑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부인이었던 야소다라(Yasodhara)의 탑만 없습니다. 가족들이 부처님의 출가에 섭섭해 하다가도 부처님의 성도를 다 같이 기뻐했는데, 부처님의 아내였던 야소다라만은 꼭 기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나중에 수행 정진해 훌륭한 비구니가 되어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셨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 또다시 지루한 국경을 넘어, 석가족(Sakya, 釋迦族)이 세운 삐쁘라하와(Piprahwa) 사리탑을 친견하고, 쉬라바스티(Shravasti)로 왔습니다. 아침에 행선을 한 후 기원정사에 도착해 그곳에서 부처님의 많은 교화 사례들을 살펴보며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붓다의 인격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걸어서 사위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천하의 악인이었다가 부처님께 교화되어 성인이 된 앙굴리말라(Angulimala)의 탑과, 그와 반대로 천하의 선인이었다가 부처님께 교화되어 성인이 된 수닷타(Sudatta)의 탑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악인을 버리고 해탈로 갔고, 한 사람은 선인을 버리고 해탈로 갔는데, 이 두 탑이 마주보고 있다는 점이 참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동원정사(東園精舍, Purvaram Vihara)로 가서 베사카(Vesakha) 부인의 신심을 살펴본 뒤, 천불화현탑(千佛化現塔)을 참배하고 돌아왔습니다.

어제는 버스를 타고 가장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옛날에는 버스 타는 시간이 엄청 길었는데,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시간이 많이 단축 되었어요. 그렇게 상카시아(Sankassa)를 참배하고 석가족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8대 성지순례가 끝이 났습니다. ‘4대 성지’라 하면 룸비니, 보드가야, 사르나트, 쿠시나가르입니다. ‘8대 성지’라 하면 4대 성지에다가 라즈길(왕사성), 쉬라바스티(사위성), 바이샬리(비사리), 상카시아(상키사)가 추가됩니다. ‘10대 성지’라 하면 8대 성지에다가 전정각산(前正覺山)과 카필라바스투(카필라 성)이 추가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10대 성지를 모두 순례했습니다.

초기의 8개 사리탑 가운데 3개가 발굴되었는데 그 3개의 탑도 모두 참배했습니다. 바이샬리의 리차비(Licchavi)족이 세운 사리탑, 데바다하(Devadaha)의 꼴리족이 세운 랑그람 진신사리탑, 카필라바스투의 석가족이 세운 삐쁘라하와 진신사리탑을 모두 친견했습니다.

우리의 순례는 대부분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의 이야기가 아닌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부처님 열반 뒤의 이야기는 3개의 사리탑과 경전 결집 장소인 칠엽굴(七葉窟), 나란다 대학을 통해서 살펴보았고, 그 외에는 모두 부처님의 일생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곳으로 순례를 했습니다. 그런 여정 끝에 오늘은 아그라(Agra)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이렇게 우리의 여정을 다시 정리해드리는 이유가 있어요.

첫째, 여러분이 ‘내가 직접 현장에 가보고 순례를 했다’ 이렇게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앞으로 여러분도 법사님들처럼 순례를 안내하는 사람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모두 웃음) 그러니 여러분도 앞으로 인도 성지순례 안내를 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네!” (모두 크게 대답)

앞으로 순례를 오는 사람이 자꾸 많아지면 스님이 한꺼번에 다 안내를 할 수 없어요. 그러면 훈련받은 여러분이 안내를 딱 맡아주셔야 해요. 이곳 여행이 가능한 기간이 10월부터 이듬해 2월 정도까지입니다. 2월 중순만 넘어가도 벌써 더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보름이나 투자해서 왔으니 이왕이면 여러분이 직접 경험해보고, 또 자신이 안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순례를 처음 시작할 때 제가 ‘바깥 순례도 좋지만 그 바깥 경계에 부딪히는 자기 마음을 보는 마음 순례도 중요하다’라고 얘기했는데 기억나요?”

“네!”

“다 잊어버렸죠?”

“아뇨!”

“입이 나오려다가 그 생각이 나서 다시 들어갔던 사람 있어요?”

“네!”

“이것으로 제31차 인도 성지순례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한 시간 동안 성지순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법문을 들은 뒤 대중들은 조별로 소감문을 작성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같은 성지순례를 했지만, 저마다 느끼고 배운 것은 다 달랐습니다.

다시 차량별로 나누기를 하고 대표로 한 명씩 소감문을 발표했습니다. 다 모일 장소가 없기 때문에 방에서 수신기로 소감을 말하고 들었습니다.

“기대했던 성지순례였는데, 성지순례 기간 내내 화와 짜증이 올라왔다. 다시는 인도라는 곳에 오지 않을 거라고 나날이 다짐했다. 그런 나를 보니 내가 진정 수행자였나. 그 동안 나를 사랑하지 않고 일만 죽어라 했구나. 거꾸로 수행을 하고 있었구나. 내 꼬라지도 제대로 보지 못할뻔 했구나. 힘들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순례기간이었다.”

“네. 잘 들었습니다. 다음 차 이야기해주세요.”

“시작하는 순간부터 순례를 마치는 지금까지도 두근거림과 감동은 계속 되는 것 같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지만 막상 순례를 시작하니 편안하게 여행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면서 짜증이 났다. 평소에도 게으르게 살아왔고 힘겨운 일은 도전하지 않고 살아온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이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마치니 자신감과 용기가 생긴다.”

“구멍 뚫린 스님의 바지를 보면서, 수자타 아카데미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검소하지 못하게 살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수행자 답지 못한 사람을 볼 때마다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도 나도 흠결많은 사람이라고 했을 때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평소에 아침 잠이 많아서 기도를 많이 빠졌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3시간을 자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잠자는 시간에 얽매여 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전반 부담당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시비했는데 순례를 하는 중에도 이 사람 저사람을 계속 시비했습니다. 스스로는 돌아보지 않고 상대방에게만 잣대를 들이미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재물만 추구하는 나의 모습에서 행복함을 찾을 수 없었는데 가난하면서도 당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경제적 부와 행복은 정비례하지 않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이고 인간이 아니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직접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깨달으신 곳, 설법하신 곳을 걸어보면서 우리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한 인간을 보았습니다.”

“수행자로서 가사를 처음 입어보는 영광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늘상 주위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를 못나게 여겼다. 순례를 하며 지금 이대로도 참 좋구나, 더 욕심내서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전 독송 중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마음이 활짝 열렸다.”

11차에서 각각 소감을 모두 발표하고 스님은 차장님들의 소감도 물어보았습니다.

“차장님들도 수고 많으셨는데 1분으로 소감 말해보세요.”

“처음에 소임을 거절했는데 봉사의 시간이 저에게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를 자꾸 내세우려고 하고 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 보며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드러내면서 가벼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고 성지순례 자체가 휴식이었습니다.”

“좋은 것만 하고 싶고 싫은 건 하기 싫은 업식과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장님들이 더 잘해주셔서 저는 놀고 먹다 갑니다. 제 인생에 하반기를 준비하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타인에게 욕먹기 싫어서 도망가는 업식대로 했습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앞으로 수행과제로 삼아보겠습니다.”

소감을 나누고 저녁 만찬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15일 동안 낡은 순례자 숙소에서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꾀죄죄하게 다녔는데, 오늘은 고급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는 데다가 푸짐한 저녁 식사가 차려져 나왔습니다.

한껏 흥이 오른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어서 성지순례를 진행하느라 애쓴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가장 먼저 울퉁불퉁하고 위험한 도로를 달리면서도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순례를 마칠 수 있게 해준 운전수와 조수에게 작은 선물을 증정했습니다. 무사히 순례를 끝냈다는 안도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인도어로 인사도 했습니다.

“보훗 보훗 단야바드!” (정말 고마워요!)

스님이 노래 한 곡 해보라고 하자 운전수와 조수들이 다 함께 흥겹게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또 같은 순례자면서도 차장, 조장 역할을 하며 머슴 역할을 톡톡히 했던 분들, 전체 진행을 했던 한국과 인도의 스텝들, 법사님들에게 작은 선물을 증정하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선물 받는 게 부러우면 내년에 와서 조장하세요.”(모두 웃음)

차량별로 돌아가며 장기자랑도 선보였습니다.

강당을 비워주어야 하고, 물품 정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만찬을 마쳤습니다. 사용한 물건을 반납하고, 수자타아카데미에 보시할 물건도 모았습니다.

내일은 델리로 이동해 델리박물관과 라즈가트, 간디 박물관을 연이어 관람하고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성지순례단을 공항으로 보낸 후 델리 교민들을 위하여 저녁에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밤에 상카시아로 이동해 석가족을 위한 명상수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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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희

제 자신이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을 이렇게 많이 시비하는 사람인지 인도성지순례를 통하여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짐 싸느라 고생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인원이 많다는 핑계로 많은 걸 돕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지순례 기간 내내 편안함을 추구하는 제 자신을 많이 보았습니다.

2020-02-16 23:59:57

반야지

비가 내려도, 감기에 걸려도, 함께 걸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든, 그래서 행복했던 인도 성지순례였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_()_

2020-02-10 00:16:37

수정

성지순례 기간 스님의하루 잘봤습니다~ 현장에 없어도 있는듯, 부처님 길을 따라 갔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0-01-22 09: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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