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1.24 (오후) 전국 대의원회 회의 2일째, 회향식
“좋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방식도 모범이 되려면...”

안녕하세요. 오전에 문경 수련원에서 불교대학 졸업 수련 특강을 3시간 30분 동안 한 후 오후에는 선유동 연수원으로 이동해 전국 대의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대의원들은 오전에 정토회 2019년 결산과 2020년 예산 내역을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고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행정처, 10차 천일결사 사업계획, 법제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의에서 올라온 안건을 검토하고 토론했습니다. 모든 안건에 대한 의결을 마친 후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선유동 계곡은 보고 가야죠.”

식사 후 스님의 제안에 따라 다 함께 산책을 나갔습니다. 스님이 앞장서고 140여 명의 대의원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비가 오지는 않았는데, 물의 양이 평소보다 늘었습니다. 어제 스님이 법문 때 말한 것처럼 나무들이 겨울을 대비해 물을 뿜어내는가 봅니다.

계곡을 건너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산길이 나타났습니다. 두 명씩 세 명씩 짝을 이뤄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걷습니다.

“단풍이 거의 다 졌네요.”

그래도 몇몇 군데는 단풍이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낙엽이 진 산길도 운치가 있고 멋있었습니다.

계곡을 건너는 구름다리에 도착해 스님이 카메라를 보며 말했습니다.

“저기 보세요.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웃어요.”

도반과 이 길을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따뜻한 햇살과 추운 그늘을 오가며 산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선유동 정토 연수원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정토회의 구조 개편에 대해 연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찬은 어떤 주제에 대해 기존의 관념을 모두 내려놓고 어떤 길이 가장 올바른 길인지 탐구하는 자리를 뜻합니다.

정토회 대표, 행정처장, 천일준비위원회 위원장, 자격심사위원장, 법제위원장, 선거관리위원장이 모두 앞자리에 앉고 나서 본격적으로 연찬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의 구조 개편에 대해 누구든지 의견이 있으면 손들고 이야기해 보세요.”

10차 천일결사부터는 지역 정토회에서도 자치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그리고 전국 각 법당에서도 회원들의 의사가 충분히 수렴될 수 있도록 대의원, 총무, 대표의 선거 방식을 개편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사람이 손을 들고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스님도 어떻게 하면 정토회의 원칙도 지키면서 대중의 요구도 잘 수렴해나갈 수 있는지 평소 고민해오던 내용을 자세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좋은 의견을 많이 주셨는데요. 이런 우려들을 고려해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더 시물레이션을 해보고 최종 판단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예요. 첫째, 수행공동체의 순수성을 어떻게 잘 유지하고 계승해나갈 것인가 하는 겁니다. 둘째, 순수성이 유지되는 범위 안에서는 가능하면 정토회 회원들의 의사를 광범위하게 수용을 해서 민주적으로 운영해나가자는 겁니다. 두 번째 방향에 근거해서 오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모아 본 것이라고 이해해 주세요.”

2시간 동안의 연찬을 마치고, 이어서 스님이 대의원들을 위해 깜짝 선물을 공개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선물을 하나씩 드리려고 해요. 올해 고추 농사를 많이 지었어요. 스님의 하루에서 보셨죠?”

“네.”

“그래서 농사지은 고추를 대의원 여러분께 선물로 드리려고 해요. 3년 동안 수고하신데 대한 선물이에요. 고추만 담아주면 고춧가루로 빻아서 먹기가 번거롭잖아요. 그렇다고 고춧가루만 주면 잘 자란 고추를 못 보잖아요. 그래서 고추 3개와 고춧가루 한 근을 박스 안에 함께 넣었어요. 이 전단지는 우리가 농사짓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에요.” (모두 웃음)

정성껏 포장한 고추 3개와 고춧가루 한 근, 감사 편지 한 장을 보여주자 모두 환호를 하며 기뻐했습니다.

한 박스씩 모두 나눠주고 난 후 스님이 어떻게 농사짓고 포장을 했는데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원래는 판매를 할까도 생각했는데, 농사를 함께 지은 실무자들이 ‘스님, 올해는 처음 지은 농사인데 수고한 활동가들에게 선물로 나눠줍시다’라고 해서 지금 이렇게 나눠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하나 포장하느라고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공평하게 나눠주려니까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고, 얼마만 한 양으로 줄 것인지, 고려할 게 너무 많았어요. 양은 한정되어 있고, 다 나눠줄 수는 없으니까, 나줘주고 욕 얻어먹게 생겼어요. 여러분들 다 주려고 하다 보니, 우리는 김치 담을 고춧가루도 없어졌어요. 모두 다 우리 공동체에서 주말마다 울력을 해서 농사지은 거예요.” (모두 웃음)

기뻐하는 대의원들의 모습을 보니 한 해 농사지은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기쁜 마음을 뒤로하고 대의원들은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1박 2일 동안 머리를 맞대고 긴 시간 회의를 한 대의원들을 격려했습니다.

“1박 2일 동안 회의하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동시에 지난 3년 간 애 많이 쓰셨습니다.”

그러면서 정토회가 왜 이렇게 대의원 구조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대의원 구조를 만든 이유

“어떻게 보면 현재의 정토회 규모에서는 행정처만 있으면 되지 굳이 대의원회까지 구성해서 의사결정 구조와 집행 구조를 나눌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작은 규모에서는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꿈이 늘 이 정도의 규모로만 있을 게 아니잖아요. (모두 웃음)

앞으로 정토회는 장대하게 발전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만약 규모가 커졌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일반 사회처럼 지도부를 선거로만 뽑는다면 포퓰리즘에 빠져서 배가 산으로 갈 위험이 있어요. 그렇다고 계속 임명제로 뽑는다면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대중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아직은 그래도 법사님들이나 행정처 활동가들이 수행 정진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앞으로 정토회의 규모가 커지고 사회적으로 도덕적 지위가 높아지면 부정부패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선출제(민주주의) vs 임명제(관료주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갖는 가장 큰 허점은 포퓰리즘입니다. 즉, 행정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대통령이나 주지사가 된다는 겁니다. 대신에 좋은 점은 투명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중국의 사회주의가 갖는 문제점은 오랜 시간 훈련을 받은 전문가를 임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부정부패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양쪽 체제에는 장단점이 있어요. 임명제로 가면 점점 관료조직으로 변해가고, 자유선거를 하게 되면 인기 위주로 가게 됩니다.

이런 모순을 극복하려면, 권리만큼 책임을 지도록 하고, 책임 있는 사람에게 그만큼의 권리를 주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좀 더 헌신적인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하도록 해야 해요. 그러나 또한 정토회는 대중의 의사를 좀 더 받아들여서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현재의 규모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런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나 앞으로 점점 규모가 커지고 1세대와 2세대가 사라졌을 때 남는 것은 결국 시스템 밖에 없어요. 이런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탁 만들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시스템은 하나의 전통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선배들이 만들어 온 전통이 있어야 새로 들어온 사람이 그 전통에 따라서 ‘정토회는 당연히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래야 질서가 잡히게 되고, 우리가 처음에 추구했던 정신을 좀 더 오래도록 세상에서 유의미하게 추구해 나갈 수 있어요. 물론 어떤 것도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지만요.

여러분들이나 저나 우리는 모두 좋은 일을 하려고 해요. 나쁜 일을 하지는 않잖아요. 즉문즉설을 통해서, 정토불교대학을 통해서, 깨달음의 장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합니다. 아껴 쓰고 모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합니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합니다. 이렇게 누가 봐도 좋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 규모가 너무 작고, 그래서 영향력도 작다 보니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렇게 자원봉사로 그런 일을 하는 단체와 사람들은 정말 보기 드뭅니다.

일을 하는 방식도 모범이 되게

그런데 정토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일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과정도 세상에서 봤을 때 모범이 되려고 해요. 돈을 많이 모아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돕는, 그렇게 결과만 좋은 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과정도 자발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거예요.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토론과 연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대중과 충분히 소통되지 못하면 밑에서는 이렇게 평가할 수 있어요.

‘말은 맨날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내려오는 건 맨날 독선적으로 내려온다.’ (모두 웃음)

이런 평가는 우리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미비한 게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도는 어쨌든 ‘좋은 일을 하되, 그 일을 하는 과정도 민주적이 될 수 있도록 하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것을 보고 ‘우리도 앞으로는 정토회의 방식을 도입해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자는 거예요.

그러나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도만큼 우리가 아직 실현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 또한 인정을 해야 해요. 그래서 대중의 그런 비판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나 여러분들이나 어차피 한 번 태어나서 죽는 인생인데, 이런 새로운 모델을 한 번 만들어보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살아생전에 그 모델을 만들어내면 가장 좋지만, 그게 안 되면 우리가 죽고 나서라도 후세 사람들이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나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시작한 작은 일이 세상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지금 몸부림을 치고 있는 거예요. 여러 번 회의를 거듭해서 이렇게 제도를 자꾸 보완하는 이유는 ‘그래도 조금 더 유의미한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하는 취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 천일준비위원회에 많은 의견을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시스템이란 게 한꺼번에 만들지 못하다 보니까 3년 단위로 적용해보고 있는 겁니다. 일단 결정이 되면 잘하든 못하든 3년은 그대로 해보고, 문제점을 보완해서 다음 3년에 다시 개선해서 해보고, 이런 식으로 보완을 해온 거예요. 이번에는 그 3년이 끝나는 해이니까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지방에까지 그 시스템을 적용하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지방에까지 실현되는 민주주의

그동안 정토회는 사업을 집행하는 행정처 외에 의사를 결정하는 대의원회를 따로 만들고, 결정과 집행을 감사하는 법사단을 구성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중앙 조직만 그렇게 만들어왔던 거예요. 아직 지방 조직까지는 이렇게 완결 구조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중앙은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지방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늘 중앙에서 결정되어 코에 받쳐서 지시가 내려오는 것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앙은 굉장히 민주적으로 운영해보려고 했지만, 밑으로 내려가면 그냥 지시가 떨어지는 방식이거나, 늘 코에 받쳐서 일을 해야 되거나, 하라고 하면 무조건 해야 되는 식이 될 때가 많았어요.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합니다’라는 명심문은 수행적으로 주어지는 과제인데, 이게 밑으로 내려가면 ‘무조건 해라’ 이렇게 강제성으로 뒤바뀌어 버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모두 웃음)

그래서 10차 천일결사 기간 동안인 다음 3년에는 이제 지방 조직도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민주적으로 운영해 보려고 해요. 지역 법당까지는 구현해내지 못하더라도, 지역 정토회 단위까지는 좀 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의사 결정이 이뤄지고, 자기들이 낸 돈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사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확대해 보자는 취지예요.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좋은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시고, 오히려 여러분들께서 지역에 가셔서 그 취지를 잘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몇몇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실현이 가능합니다.

대의원의 역할

집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때문에 대중이 불만을 토로하면, 여러분들도 같이 불만을 토로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불만을 외면하기 쉬운데, 오히려 대의원 여러분들이 나서서 이렇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아, 이것은 원래 이런 좋은 취지로 시작했는데, 좀 충분히 소통이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이런 입장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대의원들이 모두 나서서 이렇게 해명도 하고, 대중의 불평도 들어주고, 천준위에 보고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부족하긴 하지만 이런 자신감을 좀 가지면 좋겠어요.

‘정토회는 많은 미비점이 있지만, 세상에 있는 다른 집단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민주적이고 소통이 잘 된다.’

그럴 수 있게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모두 박수)

큰 박수와 함께 전국 대의원회 회의를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이 9차 천일결사의 마지막 전국 대의원회 회의였습니다. 마지막을 기념하며 다 함께 건물 앞으로 나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3년 동안 고생한 대의원회 의장인 정토회 대표님과 행정처장님에게도 직접 농사지은 무와 배추를 선물한 후 선유동 연수원을 출발했습니다. 다시 2시간을 달려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두북에는 감나무에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밭 정리를 하고, 점심 때는 문경에서 농사를 지은 행자님, 탑곡에서 농사를 지은 거사님 부부, 두북에서 농사를 지은 분들이 모두 모여 올 한 해 농사를 평가하고, 자급을 위한 내년 농사 계획을 세울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서울로 이동해 대학생 소셜클럽 제3강 ‘인생관’에 대해 강의가 진행됩니다.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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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감사드립니다^^

2019-12-31 10:29:03

정지나

주도적,책임,소통 그리고 있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아~그렇구나 그럴수있겠구나 나도 그럴수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12-04 22:01:34

고경희

고추가루와 고추 선물을 상자 없이, 고추는 굳이 비닐에 안넣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맘이다. 대의원들이니까^^

2019-12-01 01: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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