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1.24 (오전) 정토불교대학 졸업 수련 3차_부산 울산, 경남
“사소한 일에 짜증이 많이 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새벽 일찍부터 정토불교대학 졸업 수련 특강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문경 수련원에서 특강을 해주기 위해 새벽 3시에 아침을 먹고 4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했습니다.

차가 없는 새벽길을 2시간 달려 오전 6시가 다 되어 문경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법상에 오르자 죽비 삼성에 함께 특강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서 480여 명의 불교대학 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문경 수련원의 시설이 열악한 편인데, 스님은 불편한 상황조차도 수행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잘 주무셨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큰 방에 처음 자봤죠?”

“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한 방에 처음 자봤죠?”

“네!”

“여러분은 하루아침에 인생에서 신기록을 많이 세우셨어요. 정토회는 시설이 아주 좋습니다. 겨울에도 화장실 밑에서 성능 좋은 에어컨 바람이 나오게 해 놓았어요. 엉덩이가 시원했죠? (모두 웃음)

이렇게 같은 조건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그것을 하나의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고통이나 어려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큰 방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큰 방에서 잘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모두 웃음)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코 고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자는 경험도 해봤습니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면 재미있잖아요. 혼자서 지내거나 둘이서만 지낼 때는 다양하게 코 고는 소리를 듣기 어렵지만, 여러 명이 같이 자면 밤새도록 다양한 음악을 연주해 주잖아요. 그런데 본인만 몰라요. (모두 웃음)

이런 경험을 통해서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것을 자꾸 깨닫게 되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둘이 있어도 귀찮지 않고, 혼자 자도 좋고, 여럿이 자도 좋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인생이 자유로워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혼자서는 외로워서 못 지내겠다고 하고, 둘이 있으면 귀찮아서 못 지내겠다고 하고, 방이 크면 청소하기 힘들다고 불평하고, 방이 작으면 너무 좁다고 불평합니다. 자꾸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삶이 힘들어집니다.

세상이 마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가만히 보면 세상은 우리를 귀찮게 할 의도도 없고, 우리를 행복하게 할 의향도 없습니다. 봄에 꽃피는 게 우리를 즐겁게 하려고 피는 게 아니고, 가을에 낙엽이 지는 게 우리를 슬프게 하려고 그런 것도 아닙니다. 여름에 더운 게 우리가 수영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겨울에 추운 게 우리를 괴롭히려고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건 그것대로 그냥 환경이 만들어질 뿐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봄에는 꽃구경할 수 있어서 좋고, 여름에는 수영할 수 있어서 좋고, 가을에는 단풍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좋고, 겨울에는 스키를 탈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삶이 덜 괴롭고 행복감이 커집니다. 반대로 주어진 조건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괴로움이 커집니다.

행복하게 살 것인지, 불행하게 살 것인지는 개개인의 선택입니다. 어차피 살아가는 인생인데 조금 덜 괴롭게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누가 행복하게 살라고 해서가 아니에요. 스스로가 행복하게 살 길 바라잖아요. 본인 스스로가 덜 괴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잖아요. 덜 괴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됩니다. 괴롭게 살고 싶으면 사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돼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으니, 금세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난 1년 동안 불교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총정리를 해주었습니다. 실천적 불교사상, 부처님의 일생, 근본불교, 불교의 변천사에 가르치는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한 후 “지식에 그치면 안 되고 반드시 몸과 마음에서 체험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깨달음의 장, 인도 성지순례, 명상수련, 경전반에서 더 체험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말하니까 지금 졸리죠? 이제 질문을 받을게요.”

오늘은 11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중 첫 번째 질문자는 ‘무아’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을 하다 보니 50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무아의 핵심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참 나를 찾는 것과 ‘무아(無我)’는 상충되는 것 아닌가요

“선불교에서 말하는 진공묘유(眞空妙有)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 용어는 ‘참 나’, ‘진여(眞如)’, ‘본래면목(本來面目)’, ‘주인공’ 등의 다른 말로도 쓰입니다. 불교대학에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불성(佛性)’과 같은 말도 배웠습니다. 이런 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무아(無我)’와는 상충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아무리 많이 배워도, 실제로 밖에 나가서 관찰을 해보면 여전히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도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마찬가지로 무아에 대해 아무리 많이 배워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자아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아(無我), 즉 ‘나라고 할 것이 없다’라는 말은 ‘작용은 있지만 그 작용의 실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면 사람과의 대화도 가능해질 거예요. 사람이 시키는 일도 다 하게 될 겁니다. 심지어 사람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일도 가능해질 거예요. 그런데 그런 인공지능의 실체가 있을까요? 인공지능마다 그 속에 다이아몬드 같은 게 있어서 그것을 인공지능의 실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을 분해해보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로봇은 부속품들의 결합일 뿐이고, 거기에 깔린 정신작용은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실체가 없다는 말은 프로그램 자체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신작용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런 정신작용 속에 고정 불변한 실체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인식이라고 하는 작용은 존재하지만, 그 속에 ‘나’라고 할 만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이것이 무아입니다. 무아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늘 변화하고 작용하지만, 그 속에 ‘자기’라고 할 만한 고정 불변한 실체가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늘 부모님을 따라서 구걸을 했던 사람은 기본적으로 구걸하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을 겁니다. 반면 어릴 때부터 늘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 일을 했다면 그 사람은 은연중에 다른 사람의 물건이 마치 자기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또 어릴 때부터 늘 사냥을 다닌 사람은 산에 있는 짐승은 언제든지 잡아먹어도 된다고 인식을 할 겁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듣고 배운 대로 프로그램이 깔리는 겁니다. 전생에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면서 살도록 정해져서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다만 어릴 때부터 그런 프로그램이 깔렸을 뿐입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어릴 때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바꾸기가 쉬운 건 아니에요.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해서 ‘천성적으로 도벽이 있다’, ‘천성적으로 살심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진단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올 인공지능도 어떤 프로그램을 까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기능을 하게 될 겁니다.

붓다는 정신작용도 이런 원리에 의해 작용한다는 것을 발견한 겁니다. 이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업식’, ‘까르마’입니다. 업식은 형성된 것이지 천성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더 발달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원리적으로 모순점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온갖 일이 다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집에서 딸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어릴 때 고아원에 맡겨져서 자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릴 때 친척에게서 성추행을 당한 사람도 있고, 자식이 먼저 죽는 부모도 있고, 사업이 망하는 사람도 있고, 몸을 크게 다치는 사람도 있고,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지금 살아있다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네.”

“그런데 당사자에게 가서 한 번 물어보세요.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람에게 가서 ‘당신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제가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한 사람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집착되어 있으면 불행하게 살게 되는 거예요. 그 일을 놓아버리면 그때부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괴로워해야 하는 실체가 본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 빠지면 괴로움이 작동을 하지만, 괴로워해야 할 실체는 없습니다. 내가 괴로워해야 하는 타고난 운명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일에 사로잡히고 집착해서 괴로움에 계속 빠져있을 뿐이에요.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람은 누구나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다’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괴로움이 없는 것을 ‘열반(涅槃)’이라고 해요. 괴로움이 없는 사람을 ‘붓다’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괴로움이 없는 사람인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사람은 불성이 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실제로 붓다가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사람들이 부처님께 이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사위성에 사는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이 질문을 하니 부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은 사위성에 살기 전에 어디에서 살았습니까?’
‘저는 왕사성에 살았습니다.’
‘그럼 사위성에서 왕사성으로 가는 길을 잘 아십니까?’
‘그럼요, 요즘에도 자주 오고 가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이 왕사성에 가는 길을 물어보면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네,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왕사성에 가는 길을 가르쳐 주면 그 사람들 모두가 왕사성에 반드시 도착합니까?’
‘그렇지는 않죠.’
‘왜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알려준 대로 가는 사람은 잘 도착하겠지만, 그 길을 가지 않거나 알려준 대로 가지 않는 사람은 도착하지 못합니다.’
‘저의 가르침도 그와 같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조리 있게 잘하십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정리하다 보면 표현이 차츰 다양해지는 거예요.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다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
‘열반을 증득하는 사람은 붓다이니, 모든 사람은 다 붓다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다 붓다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표현을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불성(佛性)’이라는 용어를 쓰다 보니 또 자연스레 우리 몸속에 구슬과 같은 불변하는 실체인 불성이 있어서 마치 그것을 발견하면 부처가 된다는 식의 오해를 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무아(無我)가 아닌 유아(有我)의 관점입니다. 이런 과정을 잘 살펴보면 어떻게 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왜곡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꾸 ‘나만의 나라고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분석을 많이 하다 보면 결국 유아(有我) 사상, 즉 무언가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이 우리의 관찰과 부합하니까 확 다가오는 것과 같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자기의 경험과 다르기 때문에 잘 다가오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도 일반 대중은 늘 자기의 경험을 통한 인식에 기초하기 때문에 인식의 오류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불교는 역사 속에서 때로는 종교의 길을, 때로는 철학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가 생겨나게 된 겁니다. 이제 이해가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강연을 시작한 지 3시간이 경과하고 끝무렵에 일어선 질문자는 평소에 짜증이 많은데 짜증을 줄이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짧고 재미있는 대화에 웃음이 많이 터졌습니다.

짜증이 일어났을 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정토불교대학에 다니면서 화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큰 일 앞에서는 나를 돌이키면서 ‘이것이 내 인식의 오류이구나’ 하고 알아차리지만, 사소한 일 앞에서는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미움이 생기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면 또 제 자신에게 불만이 생깁니다. 그럴 때 중도를 떠올리면서 제 욕구를 따라가지도 않고 억제하지도 않는 제3의 길을 가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어떻게 중도를 일상생활에 적용해 나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날려고 하네요. 저도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짜증이 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저보다 더 앞서가려고 하네요.” (모두 웃음)

큰 웃음과 함께 스님의 답변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원리는 이렇습니다. 욕구가 일어날 때 ‘이걸 해야지’ 하고 따라가지도 말고, ‘안 해야지’라고 억압하지도 말고, 그저 ‘욕구가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라는 겁니다. 무언가 먹고 싶을 때, ‘먹어야지’라는 결심도 하지 말고, ‘안 먹어야지’라는 결심도 하지 말고, 다만 ‘먹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욕구를 알아차리고 가만 놔두는 거예요.

욕구가 일어나는 그대로 알아차리라는 겁니다. 그냥 ‘내가 먹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주문 외우듯이 하라는 게 아니에요. 짜증이 날 때 ‘아, 지금 짜증이 올라오네’ 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차리는 겁니다.”

“저는 남편에 대해 짜증이 많이 올라오는 데요. 그럴 때 ‘짜증을 안 내야지, 저 사람을 이해해보자’라고도 하지 말고, ‘내 마음이 이런데 저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 될까’하고 내 마음을 확장시키지도 말고, 그저 ‘짜증이 올라오네’라고만 하면 될까요?”

“짜증이 날 때 ‘짜증이 나는구나’ 하고 짜증이 나는 줄을 알 뿐입니다. 짜증이 나는 것을 안 나게 하려고 억압하지도 말고, 짜증이 난다고 해서 드러내지도 말고, 그냥 짜증이 날 때 ‘지금 짜증이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명상을 할 때 알아차리는 방식이고, 깨달음의 방식은 조금 달라요. 깨달음의 방식은 짜증이 날 때 그 원인을 살펴보는 겁니다. 짜증이 나는 원인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내가 옳고, 상대는 그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그때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사실대로 알아차리면 내 짜증이 사라집니다. 짜증이라는 현상이 일어날 때는 원인 규명을 하지 말고, 그저 짜증이 올라오는 나 자신에게만 깨어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짜증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나아가 짜증이 왜 날까를 탐구해보면, 결국 ‘내가 옳고, 상대는 그르다’ 하는 생각에서 마음이 그렇게 반응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인 거예요.

‘남편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사실을 사실대로 보면 짜증은 사라집니다. 만약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왔다면, ‘왜 술을 먹고 오니?’ 이 생각 때문에 짜증을 내게 되는데, 그때 그냥 ‘내가 지금 짜증이 나는구나’하고 상황을 알아차리면 시간이 흐르면서 짜증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짜증이 영원히 가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짜증이 왜 나는지 원인을 규명해보면, 남편이 술을 먹고 온 것이 원인이 아니라 ‘남편이 술을 안 먹고 왔으면 좋겠다’ 하는 내 욕구가 짜증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요. 남편이 술을 먹고 오면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아, 남편이 술을 먹을 만한 무슨 일이 있었겠지.’

그러면 짜증이 안 일어나요. 깨달음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질문자가 밝게 웃자 청중이 박수를 보냅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스님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지옥에 가겠다고 하셨는데요.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 서암 스님께서 마음이 청정한 자가 스님이라고 하셨는데, 그게 ‘무아’라는 말과 같은 의미인가요?
  • 정토행자의 서원을 읽어보니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 고집을 버리고 주생의 요구에 수순 하는 보살이 되고자 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어떻게 중생의 요구에 수순 할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내가 지은 죄를 소멸할 수 있나요?
  • 어제 졸업 수련에서 처음으로 300배를 해보았습니다. 108배와 300배의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300배를 하면 뭐가 좋은가요?
  •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스님은 명상을 할 때 머리를 비우시나요? 아니면 사업적인 구상이나 복잡한 문제들을 정리하시나요?
  • 소승불교는 계율과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대승불교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배웠습니다.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 저는 결정장애가 있습니다. 저에게 왜 결정장애가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깨달음에 대해서 많이 듣는데, 아직도 깨달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중도를 깨달으셨다고 하는데, 깨달음이 곧 중도인가요?
  • 저는 평소에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인데요. 중도를 깨우치면 이런 성격을 고칠 수 있나요?
  • 지소미아 문제, 미국의 방위비 증가 요청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나요?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두운 새벽에 강의를 시작했는데,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니 밖이 훤하게 밝아 있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인 한일 관계와 지소미아, 미국의 방위비 증가 요청에 대한 대응법을 묻는 질문에 대해 답변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길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다만 사분오열된 정치 상황 속에서 국민들만큼이라도 일치단결된 행동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현재의 갈등 상황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우리 정부나 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거예요. 소나기가 강하게 내릴 때는 조금 피해 가면 되고, 필요하면 우산을 쓰고 갈 수도 있는 겁니다. 다만, 국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정부가 중심을 잡고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야죠. 그런데 야당 입장에서는 자기들도 국내 정치의 입지를 넓히고 싶어 하잖아요. 그러니 국가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국내 정치에서는 좀 양보를 해야 돼요. 그런데 국내 정치는 야당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또 야당의 도움을 좀 얻고 싶은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협조를 안 해주고, 미국 편이나 일본 편을 드니까, 지금 나라가 사분오열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이라도 일치단결을 해줘야 합니다. 물론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일본 여행 안 가고, 일본 제품 안 산다고 해서, 얼마나 영향이 갈까 싶을 겁니다. 그러나 칼을 한 번 빼들었으면 최소한 일 년이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참여해주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이런 운동에 동의를 안 했다 하더라도 일본이 한국을 우습게 보게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3개월을 못 간다’

이런 소리를 듣게 돼요. 그러니 내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 여행 안 가기 운동에 동의를 안 했다 하더라도 국가의 이익을 생각해서는 좀 동참을 해줘야 합니다. 아주 필수적인 물건이 아니면 일본 제품을 사지 않는 게 좋아요. 지금 일본 제품이 아니면 도저히 못 사는 수준이에요?”

“아니요.”

“코끼리 밥통 대신에 쿠쿠 밥통 쓰면 되잖아요.” (모두 웃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조금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을 해줘야 합니다. 저는 이런 운동에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에요. 그러나 국가의 상황이 이러하다면 나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동참해주는 것이 좋다는 거예요.”

큰 박수와 함께 3시간 30분 동안의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문경 수련원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선유동 정토 연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선유동에서는 어제에 이어서 전국 대의원 회의가 2일째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오후부터 대의원들은 스님과 함께 정토회의 10차 천일결사 사업 방향과 대의원회의 운영에 대해 연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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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2-30 18:11:19

박용삼

그 불교대학 학생 질문 수준이 매우 높군요~^^

2019-11-29 15:58:09

무지랭이

무아를 해석할 때 없다는 동사만 사용하지 않아도 많은 이해가 됨을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2019-11-28 13: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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