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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3차 대의원대회가 어제부터 1박2일로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열렸습니다. 2014년 상반기 행정처 사업에 대한 보고와 평가 및 하반기 집중 사업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대의원회의 성과 및 과제를 주제로 한 워크숍도 있었습니다.
오늘 워크숍에서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은 '만나자 회의'라는 표어로 대의원의 활동 방향을 제시하면서 만일 결사 시대를 대비하여 지부별로 기획조정위를 구성하고 주 1회 정도 꾸준히 모여 운영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며, 이를 주제로 한 모둠 토론과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워크숍을 지켜보신 스님께서는 정리 말씀에 법문을 더하여 먼저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정토회원으로서의 관점을 잡아주셨습니다.
"정토회의 지난 역사를 보면 정토회가 설립될 때 첫째가 '이 땅에 살고 있는 고뇌하는 사람들을 자유와 행복의 길로 이끄는데 우리가 무엇인가 좀 기여를 하자. 어떻게 기여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그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지금의 이 현실 사회에 구현하자'고 하였습니다. 기존의 불교는 이러한 취지에서 너무나 멀어져버려 '불교'라는 용어를 쓰면 대중들이 헷갈리지 않겠느냐는 염려와 아울러 종교라는 카테고리, 불교라는 형식에 갇힐 위험도 있으므로 이 불교라는 형식마저도 버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깊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영역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사회운동인지 종교인지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불교라는 이름과 형식을 그냥 담아가자고 결론이 났습니다. 그런데 정토행자들마저도 자기를 이 세상에 말하는 종교의 한 부분, 그 중 불교의 한 부분으로 은연중에 규정하면서 불교라면 이래야 하지 않는가, 또는 종교가 이런 걸 해도 되나 하는 등의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면 정토회의 설립취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적어도 대의원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이 아주 분명히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경쟁을 하려면 종교가 아니라 과학, 사회민주주의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앞서가는 진보적인 경향과 경쟁해서 더 앞서가야 세상에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세상의 그 어떤 사상보다도 앞서 가는 진보적인 눈이 있어야 합니다. 붓다께서 제시하시는 관점은 현 시대에서도 가장 앞서 있습니다. 이것이 깨우쳐져야 진짜 가슴속에서 붓다에 대한 믿음이 일어납니다."
대중 주체의 의미와 대의원회의 설립 취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옛날에는 붓다가 중심이 되어 높이 받들면 되었지만 지금은 누가 주체가 될 것입니까? 비록 부족하지만 붓다가 되겠다고 원을 세우고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대중이 다 붓다의 길로 가야하므로 승려, 법사, 실무자가 중심이 아니라 대중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어떤 대상을 따로 귀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부처님과 법에 귀의하고 우리 스스로가 승의 멤버로서 참여하는 것이 대중주체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첫째, 내가 승의 일부이기 때문에 수행정진해서 붓다의 가르침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수다원과 이상을 증득한 승이 되기에는 수준미달이므로 우리들의 좋은 면을 서로 모은 모자이크 붓다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부족한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민주주의의 삼권 분립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대의원제도, 행정처, 법사단을 두었습니다. 대중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실제로 정토회 일을 유지, 관리, 진행해 나가는 행정처 업무와 그에 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해주는 대의원입니다."
대의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두 가지로 나누어 말씀해 주시고 대위원 제도의 비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의원이 해야 할 것은 첫째, 정토회를 민주주의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적으로 운영하려면 정회원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정토회에 반영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나에게 위임된 열 명의 정회원을 생각하고 그 회원들이 정토회에 대해서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개선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지를 늘 살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들은 정토회가 나아갈 방향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예산 집행, 사업 계획 등도 결정을 해야 되고 그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합니다.
우리 정토회가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고, 두 번째는 가장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담보하는 게 이루어져서 정계도, 회사도, 다른 종교 단체도 우리를 벤치마킹해서 조금씩이라도 사회전체를 개선을 해나갈 수 있다면 그만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과 현상을 변경하는 것에 대한 대의원들의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원칙만 지키면 고리타분하다 그러고, 의견을 들어서 자꾸 변경하면 원칙이 없다 그럽니다. 대중의 의사를 늘 반영하는 유연성을 지녀야 하지만 또 정토회의 설립 취지를 살리는 원칙도 지켜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자기가 대중의 의사를 받아들이기 싫을 때 원칙을 강조합니다. 한편 자기가 정토회 원칙이 마음에 안 들면 대중들이 못하겠다고 핑계를 대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자기가 하기 싫어서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 병폐를 대의원이나 행정 단위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이미 정해진 법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폐지하지 말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법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새롭게 제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원칙과 변경에 대한 기본 입장으로 이것을 지키는 한 쇠망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끝으로 문명의 혁명적 전환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류 문명을 보면 이집트 문명, 에게문명, 그리스문명, 로마문명이 일어난 것은 각각 오백년 내지 천 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 안에서도 주도세력의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크게 보고 길게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명적 전환은 혁명이지 개선이 아닙니다.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한 것은 개선입니다. 역사가 혁명적으로 전환할 때 개선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은 혁명적 변화가 아니라 개선입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성격은 이 시기에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났습니다.
정토회가 '멀리만 보고 꾸준히 나갈 것이냐, 단기간의 문제도 풀면서 갈 것이냐'에 대한 입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부정적 모습을 한꺼번에 노출시켰으나 이것을 우리 사회가 혹은 정토회가 받아 사회를 혁신할 수 있겠는가. 그런 역량이 있는가? 어느 게 더 큰 문제인가를 보는 큰 눈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큰 틀의 안목을 갖지 못하게 되면 반짝 일어났다가 소멸합니다.
우리가 꾸준히 발전하려면 큰 틀의 문제도 잘 봐야 하지만, 두 번째 정반대로 굉장히 정밀하게 세세하게도 봐야 합니다. 끊임없이 혁신을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대의원제도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정토회를 창립하고 대중주체를 하고 큰 틀에서 성공적으로 됐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내부 혁신이 없으면 답보 상태가 됩니다. 각 분야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어서 진행된 서원행자대회에는 서원행자 320명중 약 18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입재 법문에서 그동안 우리가 아침마다 독송하는 정토행자의 서원에 대해 자세히 짚어주시면서 서원행자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러주셨습니다.
“백일기도 입재자는 매일 아침 정토행자의 서원을 독송합니다. 첫 구절이 ‘지금 우리인류는 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파괴라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에서 인간성 상실은 정신질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심각한 것은 엄마들의 마음상태가 좋지 않아서 생겨난 것입니다. 가정불화가 심하면 엄마의 정신 건강이 안좋기 때문에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불안할 확률이 높고, 학교에서 약한 아이를 집단 폭행하고 괴롭히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군대에 와서도 폭행하니까 요즘 일어나는 군대폭행 사태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은 자살을 하지만 앞으로 자살을 넘어서서 무차별 살인을 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은 나혼자 죽기는 억울하니까 다 쏴 죽이고 자기도 죽는다고 합니다.
두 번째 그러면서 급격하게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지구환경문제도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문명이 거의 종말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생활해서는 더는 안됩니다. 작은 공동체로, 지역공동체로 새로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사는 것은 이제 얼마 안남았기에 우리는 새로운 모델, 공동체의 모델, 삶의 모델을 개발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살아가는 이러한 삶이 엄청난 위기에 처했을 때, 저것만이 살길이다라는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마저도 없으면 공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인류에 희망이 될 수 있는 해결책을 붓다의 근본 가르침속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현대인의 세계관, 즉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부속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바구니에 담아 놓은 것처럼 개별 존재의 집합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는 사람과 사람이, 자연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연기적 세계관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는 존재의 상호연관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있는그대로의 모습이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네가 살면 나도 산다. 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다는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함께 살고 함께 행복해지는 이 길을 추구한다.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화단을 이루듯이 각자의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한다. 시기와 질투를 뛰어넘어 사랑을, 대립과 경쟁을 뛰어넘어 화합을, 투쟁과 전쟁을 뛰어넘어 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자한다.’ 이처럼 정토행자의 서원 첫 번째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것입니다. 1차 만일결사자는 와닿지 않겠지만, 앞으로 2차, 3차 만일결사자는 현실에 당면한 문제일 것입니다.
‘부처님과 보살을 우리 삶의 모범으로 삼는다.’ 모델이 부처님입니다. 우리는 소비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평생을 가사 한 벌과 바루 한 개로 걸식하며 살아가신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며, 어디에도 구애 받지 않고 살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를 갖는다.’ 이것은 하나의 대안적 방향입니다. 원시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근본적으로 해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검소하게 살고, 그것을 가난한자와 나누며 살자는 것입니다. 붓다의 삶이 우리의 대안적 삶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해탈로 가지만, 이웃에 대해서는 아픔을 나누고 가난과 고통을 나누는 이것이 보디사트바입니다. 관세음보살입니다.
‘나아가 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스스로 사바세계와 지옥 속으로 뛰어들어 중생을 구제하시는 대비 관세음보살님과 대원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본받아 일체 중생을 구원하는 대승보살이 되고자 한다.’는 것은 수행·보시·봉사를 말합니다.
이런 실천의 근본 사상은 ‘무아·무소유·무아집을 수행의 지표로 삼는다.’입니다. ‘정토세계를 이룩하기 위하여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 고집을 버리고, 오직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보살이 되고자 한다. 그리하여 한 생각 돌이켜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괴로움도 없고 얽매임도 없는 대자유인이 되고자 한다.’ 이것이 성불이고 상구보리입니다. ‘나아가 인류에게 불어닥친 이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맑은마음), 평화로운 사회(좋은 벗), 아름다운 자연(깨끗한 땅)을 일구어 살기좋은 세상 정토를 만들고자 한다.’ 행복한 인생은 인간성 상실의 극복이고, 평화로운 세상은 공동체 회복이며 아름다운 자연은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살아가야 할 길, 인류가 나아갈 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입니다. 이것에 대한 깊은 이해, 현실속에서 실천해서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정토행자의 길입니다.
발심행자는 이런 사상에 동조하여 한번 해보겠다고 마음을 낸 자이고, 서원행자는 이것을 확고히 받아들이고 내 삶을 이것에 투신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토회의 핵심은 서원행자입니다. 적어도 정토회의 임원이 되려면 서원행자가 되어야 하는데, ‘대표를 하시오. 총무를 하시오라고 요청을 했을 때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욕심을 못버린 것이고, 하라는데 안하는 것도 수행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서원행자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나 건강이 허락지 않아 못하는 것은 들어보고 그럴 수 있겠다고 대중의 동의가 있으면 괜찮지만 아니면 안됩니다.
서원행자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정토회를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직책은 임시로 붙여진 것입니다. 대의원은 우리를 대신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제도상에서 우리 모두가 다 의사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권한을 줬지만, 결정을 제대로 했는지는 들어봐야 합니다.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다음에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서원행자대회를 한다는 것은 이 서원행자중 3분의1이 결정하지만 그 결정을 서원행자 전부가 내린 결정으로 받아들여 솔선수범해서 나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원행자대회를 하는 것입니다.
대의원대회에서 회의 결정은 정토회 존립이 걸린 문제인데, 이번에는 95% 참석했습니다. 10%정도 빠진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일이기 때문에 감안해야 합니다. 근데 참가율이 50%도 안된다면 서원행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구나고 볼 수 있습니다. 법사단이 교육을 잘하고 서원행자 선발할 때 잘해야 합니다. 수행이란건 분위기 따라서 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뜻을 같이 모으느냐, 안모으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주는게 중요합니다. 대의원들이 회의해서 결론낸 것에 대해 박수쳐 주고 우리가 할께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직책을 가진 사람이 하면 일반회원들이 볼때는 직책이 있어서 한다고생각하지만, 서원행자는 직책이 없는데 더 열심히 하면 일반회원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대단합니다.
우리는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재산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관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명,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수 있다고 말만 하고 행동이 옛날과 똑같으면 안됩니다. 스님도 백일 입재식에는 무조건 참여한다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다음 백일기도 입재식에는 워싱턴에서 강연회를 하다가 입국해서 입재식을 하고 당일 미국으로 강연하러 가야 합니다. 죽어서 못오면 몰라도 역할 때문이 아니라 참여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백일 입재식에 꼭 참여하는 것처럼 서원행자는 서원행자대회에 꼭 참여해야 합니다. 내가 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놀다가 가더라도 왔다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쾌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원행자는 이런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님께서는 정토세상을 만들고자 원을 세운 서원행자들을 위해 현재 우리의 상황과 미래에 다가올 문명의 종말에 대한 대안으로써 부처님의 삶을 본받자고 하는 정토회의 취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주시면 서원행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부처님의 법을 전수받는다는 자세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흔들림없이 수행정진하도록 법의 상속자가 되겠다는 발심을 다시 해보았습니다.
이어서 저녁 공양시간을 가지고 저녁예불 후 7시부터 8개지부와 공동체의 서원행자 소개의 시간을 가졌고, 또 각 부서의 보고를 받고 질의 응답시간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무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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