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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역사 대장정 다섯째날인 오늘은 백두산과 발해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정입니다. 새벽 4시 반. 서둘러 백두산을 향해 출발하는 버스 안은 새벽의 고요함과 설레임 그리고 기대감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북편 산문을 향해 한 시간 반 가량 가는 동안 동이 터오기 시작했고 구름이 뒤덮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산문에 도착해 입장을 기다리는 사이 날씨는 화창해졌고 천지를 볼 수 있으리란 확신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드디어 입장시간인 6시 15분. 관광객을 맞이하는 중국 직원들의 유쾌한 인사춤이 끝나자마자 선발대가 표를 끊기 위해 뛰어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입장을 기다리는 대중들에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안전에 주의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윽고 표를 받아든 우리도 서로를 챙기며 버스 승차장을 향해 힘껏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봉고로 갈아타고 천지를 향해 하늘 가까이 올라가는 시간. 굽이굽이 버스가 달리는 동안 눈부신 햇살이 차안을 가득 채웠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우리는 백두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이리저리 쏠리며 오르던 봉고차가 드디어 멈추었습니다. 머리위로 손에 잡힐 듯한 구름을 이고 계단을 한달음에 올라 도착한 그곳은 백두산 천지! 눈부신 태양 아래 에메랄드 빛 천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수면위로 희미한 물결이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민족의 영산 천지. 우리의 선조는 떠난 지 오래지만 천지가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높고 자유로운 기상이 우리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곧 모두의 얼굴이 천지와 같이 맑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장군봉 등 천지 둘레의 봉우리와 북한과 중국의 경계지점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가슴 뛰는 풍경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고, 가슴에 담았습니다.
천지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비룡폭포였습니다. 회색빛의 화산지형 사이로 새하얀 물줄기가 떨어져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그 모습에, 이름처럼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스님께서는 참가자들 모두와 개인 사진을 찍어주셔서 모두들 멋진 사진을 남기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습니다. 마지막은 환한 미소를 띤 스님의 독사진으로 마무리하고 다음 장소로 향하였습니다.
비룡폭포를 따라 내려오는 양옆으로는 구불구불한 자작나무와 싱싱한 야생화들이 마주보며 길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거대한 장막과도 같은 웅장한 화산지형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아래로는 온천수가 흘러 신묘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온천수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뜨거움, 그리고 온천수에 달궈진 계란 맛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소천지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소천지는 마치 거울처럼 위쪽의 풍경을 수면 위에 똑같이 반사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설명을 해주시며 그 주위를 한바퀴 돌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면 위로 똑똑 떨어져 내리는 반짝거리는 빗방울들... 그 고요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우리는 천천히 걸었습니다.
소천지에서 나와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녹연담이었습니다. 조각해 놓은 듯한 바위 위로 떨어지는 세 개의 물줄기가 진옥색의 물속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청명함에 우리는 감탄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녹연담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뒤로 한 채, 암반 사이로 흐르는 차가운 물에 손을 적시기도 하며 우리는 지하 삼림으로 향했습니다. 지하 삼림은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함몰된 넓은 면적의 땅에 숲이 형성된 곳을 말하며 주변을 뺑 둘러서 절벽이 있으므로 마치 땅 아래에 숲이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하여 그렇게 이름 붙여진 곳입니다. 바닥은 온통 화산석으로 이루어져있고 흙이 덮여있는 부분은 채 20cm 도 안되어 나무뿌리가 전을 부쳐놓은 것처럼 옆으로 퍼져있다는 스님의 설명에 청년들은 신기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태고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상쾌함과 웅장함을 만끽하였습니다.
백두산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나오는 길, 출입구의 장백산이라는 표지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백두산을 빠른 속도로 관광지로 개발하는 탓에 한해 한해 달라져가는 그 모습 또한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그래도 청년들이 힘들어하면서도 열심히 일정을 따라준 공덕으로 좋은 날씨 속에서 천지도 보고 백두산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는 스님의 말씀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시각각 날씨가 변하여 우리가 내려온 후 다시 안개로 뒤덮여버린 천지를 생각하니 이렇게 무사히 일정을 마친 것에 대한 감사함이 들었습니다.
이도백하에서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발해의 첫 수도 동모산으로 향했습니다. 대석하라는 개울 앞에서 둥글게 솟은 동모산을 바라보며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고구려 말기의 상황과 발해의 건국과정에 대한 스님의 설명을 듣는 청년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발해 유적에 대한 중국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어 성벽 위에 올라가 볼 수가 없으며, 한때는 멀리 떨어져 서서 설명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2배에 달하는 영토를 이룰 정도로 번성했던 발해의 첫 시작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함에 안타까움이 몰려왔습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창밖으로 육정산과 정혜공주 무덤을 바라보며 최근에 발굴되고 있는 발해의유적지에 대한 정보가 아직은 공개되고 있지 않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중 24개의 돌은 오직 발해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유물입니다. 길가 한구석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강동 24개석의 모습을 바라보며 타국에서 선조들의 유물이 함부로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리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것의 용도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채 여러 가설만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시며 그 용도를 맞추어 보라고 우리에게 과제를 주셨습니다. 청년들은 그 쓰임새에 대해 궁금해 하며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후 이어진 5일차 저녁강의에서는 동모산에 다녀온 말씀과 함께 발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백두산에서 제일 가까운 지역에 수도가 있다면 발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고구려의 수도에서도 백두산까지는 4-5시간, 요하문명에서 백두산까지는 10시간, 그래서 발해야말로 백두산 아래 신도시를 건설했습니다. 그래서 내일은 발해의 유적지를 직접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발해가 고려 시대에는 우리 민족의 정통 왕조로서 우리의 역사로 재조명 되었으나, 조선 시대에 오면서는 우리 역사에서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주자학에만 몰두하던 조선 선비들이 명나라에만 사대를 취하다가 실학이 일어나면서 발해의 역사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그러나 이미 발해 멸망 800년 뒤라 이미 많은 자료가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전통과 정체성을 유지하며 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80년대에 들어서서 민주화 이후 우린 전통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생겨나며, 전통 문화를 유지, 계승,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먹고 살기 힘들어 하다가 먹고 살만 하니까 자기 정체성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죠.
요즘 우리나라의 한류처럼 전통문화에 서양 문물이 믹스되며 재창조되어 새로운 문화로 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류가 오래가려면 자기정체성을 둔 것이 나와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모방에서 최고 수준이 되었지만, 없는데서 새로 개발이 되는 것은 아직 힘듭니다. 이러면 미래에는 힘들어지는 겁니다.”
“전통에 너무 갇히게 되면 국제화가 안 되고 앞선 문명이 오래 못가는 이유가 자기도 모르게 안주하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방은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합니다. 모방은 압축 성장이 가능하고 실패할 확률이 적지만 창조성이 없어 결국은 한계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우리가 압축 성장의 신화가 있지만 이것은 창조성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성장속도가 느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창조성이 결여되어 성장이 점점 정체 국면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어서 자기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서양을 모방하여 고속 성장을 해서 먹고 살기 시작하자 어느 날 내가 누구냐 하고 자기 정체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도전의식도 있고 실패를 해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없으면 자기가 조금만 못하면 피해의식, 자기가 조금만 잘하면 우월의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발해는 영토 뿐 아니라 역사도 잃어 버렸습니다. 역사를 간직하는 것이 영토를 간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중국 조선족은 우리의 언어는 가지고 있지만 민족 역사의식이 없습니다. 우리도 지금 역사의식이 부족합니다. 한국 사람의 전통이란 말 뿐, 집을 전통적으로 짓고 사나, 옷을 전통적으로 입나, 이걸 무조건 고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식을 회복해야 창조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은 역사의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개방성을 가져야 합니다. 남한은 정체성은 부족한데 개방성이 있고, 북한은 정체성은 있는데 개방성이 없어 고립되어가고 있습니다. ”
“중국에서는 한국에서 데모하는 거 보면 한국이 내일 망할 것 같은데 안 망한다고 합니다. 한국사회는 아침에 일어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안 된다고도 합니다. 외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인데, 한국에서는 혜성처럼 나타나 사라지는 일이 많습니다. 좋게 말해 역동성, 나쁘게 말해 혼란스럽습니다. 여기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역동성과 질서를 어떻게 같이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발해의 건국과 멸망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발해의 역사를 되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현장을 답사하고 이러는 거지, 중국 사람과 싸우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라고 마지막 말씀을 하시며 강의를 마치셨습니다. 청년들의 심장엔 오늘도 또 하나의 역사의식을 새겨 주셨습니다.
오늘은 정말 하루가 길게 느껴집니다. 3시 40분에 출발한 면도 있지만, 백두산 천지와 비룡폭포, 녹연담 등 아름다운 여러 풍경을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내일은 발해의 유적지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오늘 낮 기행부분은 황지현님이, 강의 속기는 연아람이 수고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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