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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북아 역사기행 넷째 날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압록강을 따라 버스로 이동하면서 강 건너편 북한 땅을 보고 북한 사람들의 삶을 직접 눈으로 보는 날입니다. 림강을 거쳐, 장백, 백두산 아래 동네 이도백하까지 가는 여정이 길어서 이른 새벽에 출발했습니다. 새벽 3시 20분에 기상을 해서 4시에 출발 예정이었는데 모닝콜 소리를 못 듣고 늦잠을 잔사람, 방에 물건을 두고 온 사람 등 이런 저런 사연들로 예상보다 20분 정도 출발이 늦었습니다. 전 날 호텔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컴컴한 방안에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서 더듬더듬 짐을 싸고 내려왔기 때문인 듯합니다.
한 시간 후, 림강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아침식사는 림강 아침시장에서 각 자 사 먹기로 했습니다. 새벽 5시인데 이미 해는 환하게 떠 있고 길거리 시장에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각종 과일들, 야채들, 튀김류, 빵, 돼지고기, 생선들 등 갖가지 음식들이 푸짐합니다. 30분 이내로 각자 아침거리를 구입해서 버스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과일과 땅콩, 만두, 튀김, 빵, 옥수수, 사과, 블루베리, 복숭아, 바나나 등을 사서 버스로 부리나케 돌아옵니다. 버스 밖 길거리에서 서로 사 온 음식들을 나누어 맛나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스님은 2원으로 아침 식사를 구입하셨다고 하시는데 참가자들은 저마다 얼마를 썼는지도 모르게 이 음식, 저 음식을 산 거 같습니다. 간단하게 음식을 맛보고 나서 다시 버스를 타고 장백으로 향합니다.
림강에서 압록강 상류를 향해 4시간 동안 올라가는 여정입니다. 림강에서 백두산 최상류까지 중국 쪽에서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계곡물을 번호를 붙여 24도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압록강 너머 북한 땅을 바라보니 산은 온통 뙈기밭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계단식도 아닙니다.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든 가파른 산에 옥수수, 콩 등 작물을 심어서 산에 있어야할 나무는 모두 잘려 보이지 않고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연두색의 조각보가 온산에 빼곡히 펼쳐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뙈기밭 주인들은 직장에 가기 전이나 퇴근 후 밭을 매우 열심히 일군다고 합니다. 직장에서의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각자의 뙈기밭을 열심히 가꾸어 식구들의 식량을 마련한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집들은 검은 회색빛으로 오랫동안 손을 못 보아 한눈에도 남루함이 느껴집니다. 북한이 조금씩 자유 시장 경제를 도입하려고 한다니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우리나라가 통일되고, 주변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여 동아시아 공동체가 만들어져서 모두 함께 잘 사는 날이 얼른 오기를 기원해봅니다.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압록강 위로 떠내려 오는 커다란 북한 뗏목을 만납니다. 커다란 오징어 모양으로 나무를 주렁주렁 엮어서 뗏목을 만들어 강물을 따라 하류로 흘러 내려가서 자른 나무들을 판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네다섯 명 타고 조정을 하는데 뗏목 크기에 비해 그들은 아주 작아 보입니다. 연이어 뗏목들이 내려와서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고 사진을 계속 찍었습니다. 방학인지 아이들이 여러 가지 색깔의 튜브를 타고 물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여자들은 강에 빨래를 하고 군인들이 목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저 강 하나만 건너면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동포들을 우리는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요? 많은 수의 남한 사람들이 통일을 원하지 않고 북한의 가난을 도우려고 하지 않는 현실 속에 스님같이 통일을 간절히 바라시는 분이 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의 지혜로운 생각과 실천을 배워 저희들도 통일을 위해 조금씩 노력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긴 시간을 달려 장백에 도착했습니다. 장백에는 발해시대의 유일한 탑인 영광탑이 남아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영광탑을 볼 수 있는데 유일하게 남은 발해의 영광탑에 와서 천년 후의 후예들이 선조의 기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을 발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하루빨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생존권과 인권이 보장되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여기 모인 사람들이 기꺼이 최선을 다하기 바라는 스님의 발원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북한 혜산시가 아래로 훤하게 내려다 보였는데 제법 큰 도시였습니다.
1990년대 좋은 벗들에서 북한 돕기를 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던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지금은 돌아가시고 그 부인인 할머니가 식당으로 스님을 만나러 오셔서 가슴 아픈 경험담을 나눠주셨습니다. 북한을 탈출하고 어려운 형편에 처한 어느 여자 분을 우연히 알게 된 할머니가 그녀가 뇌종양이라는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도울 방법이 없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게 했는데 결국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하셨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탈출한 북한 난민들을 돕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북한에서의 삶이 힘들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 사연들입니다.
점심 식사 후 백두산으로 향했습니다. 압록강 상류로 갈수록 강폭은 좁아지고, 나중에는 작은 냇가처럼 좁아졌습니다. 폴짝 뛰면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건널 수 없는 곳인가 봅니다. 버스에서 잠시 내려 압록강 물에 발을 담그고 강 건너편 사람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해 봅니다.
한참 후에 드디어 백두산 남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오르는 길이 산사태로 파괴되어 도로공사 한다고 지금은 남문으로는 오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중국에 비싼 입장료내고, 눈치를 보면서 천지를 오를 것이 아니라 북한 땅을 통해 백두산 동문으로 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남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천지를 못 본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문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지루할 때쯤이면 다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조별 대항 노래자랑을 하고 또 야외에 내려 수박을 잘라 나눠먹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특히 스님께서 수박을 자르는 시범을 보여주셔서 참가자들을 즐겁게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장백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3호차 타이어가 펑크가 났습니다. 다른 버스가 타이어를 가지고 와서 교체하는 동안 3호차 탑승자들은 버스에서 내려 20분가량 도로를 따라 다른 버스 탑승자들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습니다. 버스 속에서 오랜 시간 접혀 있던 다리도 펴고 백두산 야생화가 그득한 길을 걸으니 모두들 행복해합니다.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는 신기한 자작나무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버스를 수리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버스에서 내려 잠시 산책도 하고 법륜스님 사회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예기치 못한 일이 하루에 한번 꼴로 일어나지만, 그 때마다 적절하게 참가자들이 불편하지 않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상황을 이끌어 나가시는 지혜가 빛나는 것 같습니다.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흐르는 마을인 이도백하에 있는 숙소에 도착한 후 스님의 저녁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백두산 천지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천지의 물은 북쪽으로 흘러 송하강으로 가고, 백두산 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으로, 남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간다고 합니다.
백두산에 이어서 스님은 오늘 압록강 1도구부터 24도구까지 오면서 고개가 아프도록 바라봤던 맞은편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압록강을 쭉 따라오면서 북한을 보셨는데 소감이 어때요?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은 면도 있고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감정이 교차했을 겁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럼 왜 북한이 이렇게 되었나? 첫 번째, 대외적으로는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경제 봉쇄정책 때문입니다. 두 번째, 대내적으로는 소위 말해서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가면서 기술보다 이념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군비에 GDP의 25% 이상을 사용하는 등 비경제적인 것에 돈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북한이 왜 못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부터, 왜 북한동포 돕기를 하게 되었는지,왜 북한을 돕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그동안의 스님의 북한동포 돕기 활동 경험 이야기를 나눠주시며, 북한 동포들이 겪는 고통, 탈북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하나하나 말씀을 해주십니다.
“이런 아픈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면 북한동포 돕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십년 넘게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결과는, 이 문제는 통일을 해야만 해결될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과 통일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북한 동포들의 고통과 아픔을 결코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하고, 통일을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불철주야 가리지 않고 하고 계십니다.
내일은 백두산 북문으로 올라가서 천지를 보고, 오후에는 발해의 유적지를 돌아 볼 예정입니다. 일반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새벽 일찍 출발해서 매표소 앞에 가장 먼저 도착하려고 합니다. 부디 천지의 선명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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