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4.5.28. 수행관제 5,6강 - 대구법당

오늘은 대구법당에서 수행관특별법회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첫법회를 시작 할 때는 설레임과 긴장감이 있었는데, 오늘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으로 더욱 스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졌습니다.

     

불교의 수행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다섯 번째 강의는 스님께서는 지난 시간의 강의를 간략하게 정리 해주시면서 시작하셨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로 한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은 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 일을 하지요. 그러니 우리가 눈만 뜨면 일을 해야 하고 때로는 일이 힘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일을 해서 사람이 사는데 큰 불편이 없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일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욕구와 욕망이 끝이 없으니 일도 끝이 없습니다. 욕망과 욕구가 적절히 조절된다면 우리들의 일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이고 그러면 여유도 가질 수 있을 것인데, 욕구와 욕망이 끝이 없다보니 일도 끝이 없습니다.

     

지금은 못 먹어서 굶어죽거나, 못 입어서 얼어 죽거나, 집이 없어서 노천에서 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집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부자든 가난하든 그 문제는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지금 사람들은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옛날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나 사회제도적으로 많이 개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고마운 줄을 잘 모릅니다. 그저 불평, 불만을 표출하는데 정말 자유롭고 행복하려면 이제는 욕망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욕망의 줄달음질에서 멈출 줄 알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고뇌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욕망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수행이 어느 때보다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제는 수행 없이 자유와 행복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욕망에 끄달려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하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 보다 더 바쁩니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왜 이 시대에 더 필요한가? 못살고 못 먹던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가르침이 있었다면 이 시대에 잘 먹고 잘 사는데도 생기는 괴로움은 해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2600년전에 이미 지금의 우리의 수준으로 사셨습니다. 신분이 왕자였으니까요. 그런데도 이 인생의 고뇌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괴로운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말씀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그런 답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정법, 바른 가르침만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고뇌를 고칠 수 있는 양약이 됩니다. 지금의 시대야말로 부처님의 정법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부자이던지 가난한 사람이던지 그 누구에게나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는 답이 되는 이유는 부처님이 스스로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하게 생활하시면서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셨고, 그런 속에서도 오히려 부처님은 도움을 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사셨습니다. 왕 앞에서도 당당히 왕에게 고뇌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다 평등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합니다. 무상정득각을 인도말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우리말로 보편타당한 최고의 진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밖만 보고 욕망의 충족만을 추구 할 것이 아니라 안으로 보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수행정진을 해야 하는데 부처님 당시에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 철저하게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어야 된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 참 자유, 괴로움이 없는 삶, 즉 해탈과 열반의 길로 나아가려며 욕망을 조절하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아집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인 생존 욕구는 충족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일이 필요합니다.

     

재가자는 일을 해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면서 자기 해탈의 길을 가고, 출가 수행자는 기본적인 욕구마저도 절제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못 먹는다고, 못 입는다고 못 잔다고 괴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하되 상대적인 욕구는 자제하고 제도적으로 차이가 덜 나도록 만들어주면 그 환경이 사람이 사는데 괴로움을 덜 느끼도록 행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정토라고 합니다. 청정국토, 깨끗한 나라 즉 정토는 환경이 좋은 세상, 괴로움이 덜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하는 온갖 일은 바로 정토를 만드는 일입니다. 수행의 차원에서 일이라고 하는 것은 정토건설의 일입니다. 정토건설을 수행으로 삼는 자를 보디사트바, 이것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차별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것은 이상이고, 현실은 차별을 하나하나 없애가는 것이 괴로움이 줄어드는 쪽으로 갑니다. 소승불교는 수행자가 기본적인 욕구마저도 내려놓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희망을 주는 것으로 자기 수행이 철저해야 하고, 대승불교는 여러 사람이 행복으로 가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차별이 적은 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개선해 나가는 것이 수행의 한 부분이고 그 일을 수행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회 즉 정토를 만드는 일이 수행입니다.

     

수행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일입니다.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 정토를 건설하는 것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하화중생입니다. 바로 정토회에서 이렇게 환경운동, 평화통일운동을 하고 민주주의가 심화되고 사회적 차별을 철폐 하자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조금 더 정토에 가깝게 하자는 것입니다.

     

보살의 행은 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일과 수행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토회에서는 일과 수행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온갖 장애가 다 수행이라 보고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가 나아가는 이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며 우리가 욕망을 줄이고 다함께 잘 사는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과 수행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님의 마지막 말씀을 끝으로 오전 특별법회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대중에게 다가서서 직접 악수도 하시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체 조용히 법당을 나가시는 분들의 마음속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희망들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스님께서는 오전법회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겸한 손님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오후 430분에는 토론토법당 개원법회를 축하하는 영상을 촬영하시고는 저녁법회를 준비하셨습니다.

     

저녁에는 대구에서 하는 스님의 마지막 강의를 듣기 위해 아쉬운 마음으로 240여명의 대중들이 3층 법당에서 함께 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엄마와 함께 온 듯한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스님의 책 엄마수업에 사각사각 연필로 뭔가를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 강연 후에 사인을 해 주신다는 얘기를 듣고 사인 받을 책에 어린아이의 마음을 표시하나 보다 하고 살짜기 들여다봤습니다. 법륜스님 이라고 쓴 글씨 밑에 안경을 쓰시고 가사를 입으신 스님이 서 계십니다. 아이가 부끄러워하며 손으로 그림을 가리네요. 어느새 스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인지도가 급경사를 그리며 올라가고 있는 듯해 기분이 좋아집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욕망, 계율, 참회, 관법, 일의 다섯 가지 주제를 큰 나무를 그리시듯 굵직하게 되짚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간결한 내용들을 다섯 번에 걸쳐 알기 쉽도록, 실천하기 쉽도록 전해 주시기 위해 애쓰신 스님께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이 된 후에, 안전 중심, 삶의 질 중심, 환경 보존, 평화 유지, 민주적인 의사 반영, 사회 안전망 구축 이런 요구와 각성이 있어야 세상이 변합니다. 마음가짐과 세상을 바꾸는 것이 따로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정토회 설립 취지대로 새로운 삶을 살자는 정토운동이 이제 국민운동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법과 수행이 중요합니다.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바른 법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정토회의 뿌리인 용성조사님께서 이루려 애쓰셨던 불교의 지성화(바른 불교)와 대중화(쉬운 불교) 불교화(생활 불교)가 실현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 기아가 만연한 시대와 풍족한 시대를 비교했을 때 언제가 더 나은 시대입니까? 여자라고 차별받고 억압받는 세상이 행복으로 가는데 더 나을까요? 아니면 여자라고 차별 받지 않는 시대가 더 나은가요?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가 나은가요? 아니면 최대한 평등한 사회가 나은가요? 이에 대해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차별이 없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입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해질 수는 없으나 그 차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삶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도 이러한 삶의 조건이 좀 더 개선되도록 한 세상을 정토 즉 청정국토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세세하게 하나하나 말씀하실 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참으로 우리들을 자비로 가르쳐 주신다는 것을.

     

살기 좋은 조건이 잘 갖추어진 세상이라고 사람들이 모두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처럼 사회기반시설과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여도 모두가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보다는 평균적으로 행복도가 높겠지요. 그들이 우리보다 수행을 많이 해서 행복하다기보다 그들이 사는 사회가 우리들보다 좀 더 삶의 조건이 나은 정토세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정토 세상 만들기와 개인의 수행 두 가지는 병행되어야 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삼계개고 아당인지이 둘이 수레바퀴처럼 짝을 이뤄 부처님의 탄생계에 들어 있습니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지혜이고, 괴로움에 떠는 중생들을 구하여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자비입니다. 이것이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예전에는 선농일치가 바로 일과 수행의 통일이었어요. 앉아 있든, 서 있든, 가든, 오든, 말하든, 침묵하든, 마음이 여일하다면 그것이 바로 선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도 마음은 올곧게 가질 수 있습니다.

     

외줄을 탈 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곧장 앞으로만 가면 된다고 이론적으로 말하지만, 실제는 늘 치우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괴로운 것이 다 세상 탓이라고 하게 됩니다. 반면 주위 조건에 관계없이 행복할 수 있도록 수행해야 한다고 하면 세상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합니다. 줄타기할 때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앞으로만 가라라고 하는데 말이 쉽지요. 열번 백번해도 균형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연습을 해서 균형을 잡으면 흔들흔들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듯이, 우리는 자기 마음의 번뇌를 보고 세상을 탓하지 않고 자기를 봐야 합니다. 마음의 괴로움과 번뇌가 없는 상태로, 세상을 더 좋게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한다면 우리 정토회는 어떤 입장을 취할까요? 그래도 전쟁에는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우리를 친일세력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어요?”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스님께서 쉬시는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평화가 말이 쉽지 사람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심리가 있기 때문에 평화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도 남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셨는데도 때로는 비난을 받으셨어요. 미워하지 말고 책임을 물을 줄 알아야 세상이 정화됩니다. 책임을 묻자는 것은 정토의 일이고, 미워하지 않는 것은 수행의 관점입니다. 미워하지 않아야 내가 힘들지 않잖아요. 우리는 책임을 물을 때는 화를 내며 미워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방관합니다. 이런 극단에서 벗어나야 해요. 우리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서 매를 들 것은 들어야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수행하면 되지만 남을 행복하게 하려면 일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 법을 들려주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 그러면 법문을 할 장소가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법회를 알리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고 현수막도 달아야 해요(봉사). 그러려면 인쇄할 비용이 있어야 합니다(보시). 때로 수모를 겪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수모를 겪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와서 이 법문을 들으면 얼마나 좋은가를 생각하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인욕). 즉문즉설 할 때 정작 질문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그 질문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 또는 유투브 동영상으로 본 누군가가 행복해 질 수 있어요.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돕자고 하면, 빨갱이들이라고 소리치고 행패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이를 통해 북한에 한명이라도 더 어린 아이가 밥을 먹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이를 오히려 수행으로 돌이킬 수도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고리원자력발전소를 잠깐 언급하시며 우리들이 안전을 중시할 것인지 경제적 효율을 더 앞세울 것인지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구환경을 보존하고 파괴적인 개발행위를 멈추고 보존 가능한 개발을 하며 지구 저편의 굶는 아이들을 돌아보고 전쟁의 위험을 종식시키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부처님과 스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참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잘하려고 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갈등이 생기면 일은 더 안됩니다. 갈등이 생길 때 자기를 돌이켜서 수행을 하면 일이 더 잘됩니다. 수행자는 늘 갈등을 극복해 나가면서 일을 잘하게 되는 쪽으로 갑니다. 산 속에서 가만히 혼자 있으면서 일도 안하고 갈등이 안 생긴다고 수행자가 아니예요. 길을 갈 때도 약간 멀고, 오르막이라야 운동이 되듯이 일을 할 때 약간 어려워야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모르고 틀리는 것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는 말입니다. 일 안하고 갈등이 안생기고 조용히 있다고 수행이 아닙니다. 일을 해야만 수행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다 서툴지만 수행적 관점만 놓치지 않는다면 점점 나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를 해야 하는데 보시와 봉사가 일입니다. 정토회는 거의 봉사로 유지됩니다.

     

부처님이 그런 힘든 길을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살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을 미안해하고 고마운 줄 알아야 합니다. 수행을 할 때 꾹꾹 참아 분노로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미움이 아닌 연민을 가지고 상황을 개선시키고, 세상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꾸준히 정토행자들이 수행을 하셔서 보디사트바의 길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구에서의 특별법회를 끝 맺었습니다. 여섯 번의 스님 강의를 편하게 앉아서 듣는 동안 아침 저녁으로 봉사하신 분들의 수고로움이 곱절로 크게 다가왔습니다. 일하시며 수행하셨을 그분들이 계셨기에 강의를 들은 많은 분들이 행복과 자유라는 단어와 더 가까워졌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그 가운데에 언제나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이끄시는 스님이 계십니다.

     

음력 58, 양력으로 65.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운동을 하셨고 이제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할 우리의 뿌리 용성조사 150주년 탄생기념식. 스님을 다시 뵐 그 날을 기다립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법회를 마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있는 날입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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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세상은 차별이 적은 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개선해 나가는 것이 수행의 한 부분이고 그 일을 수행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회 즉 정토를 만드는 일이 수행입니다.<br />스님 감사합니다.

2014-06-16 14:17:02

봄선

신분이 왕자였으니까요. 그런데도 이 인생의 고뇌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괴로운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말씀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그런 답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정법, 바른 가르침만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고뇌를 고칠 수 있는 양약이 됩니다. 지금의 시대야말로 부처님의 정법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입니다...공경의 합장 올립니다..._()_...나무석가모니불!

2014-05-30 12:51:26

주디

스님, 감사합니다.

2014-05-30 12: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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