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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 코리아 순례단의 23일째 순례길, 오늘 화쟁 순례는 ‘원효의 땅에서 화쟁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경주일대를 순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순례에 앞서 한겨레신문의 요청에 의해 법륜스님과 도법스님께서 화쟁에 대한 차담이 불국사에서 있었습니다. 두분 스님께서는 경주 일대에 대한 이야기, 불국사, 석가탑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경주 황룡사가 국찰이고 불국사가 귀족사찰이라면 경주 남산은 서민들의 신앙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번 순례가 화쟁 순례인 만큼 원효스님에 대한 일화나 사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젊은 시절에 불국사에서도 1년 정도 거하시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오늘 순례길은 불국사 역에서 출발해 오전에는 통일전까지 순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안내자가 되셔서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으로 순례단을 이끌었습니다.
어제 비 예보와 달리 마침 날씨도 걷기에 알맞은 햇빛, 바람, 적당한 구름으로 하루종일 순례객을 맞이 했습니다. 오늘의 순례객들은 순천사랑 어린학교(대안학교)를 이끄시는 김민해 목사님과 학생들, 도법스님이 이끄시는 인드라망 대학의 학생들과 우리 정토회 참여자 40여명, 불국사 스님 8분과 함께 여러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어울려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불국사 역 앞에서 출발해서 통일전까지 오전 일정이 시작 되었습니다. 걷는 동안은 묵언으로 자기와의 시간을 가지고 걸음이 느린 분께 맞춰 시작 되었습니다.
아기새의 부리마냥 아직 작은 벚꽃 꽃망울들이 가득한 벚나무 아랫길을 스님께서 앞서 걸으시고 뒤로길게 순례객들의 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의 앞선 걸음이 뒤사람에게 길이 되고 있었습니다. 오래전 부처님 일행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선사람의 걸음에 나의 걸음을 맞추고 앞선 사람의 빠르기에 나의 빠르기를 맞춰 늦지도 않게 빠르지도 않게 조화를 이루며 걸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화쟁’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시간 30분쯤 걸어서 통일전에 도착하였습니다. 통일전은 3국 통일의 성웅 문무대왕, 무열왕, 김유신 장군 3분을 모신 곳입니다. 넓은 주차장에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생명평화를 기원하며 도법스님의 음성에 맞춰 100배의 절을 했습니다. 절 명상 후 간단한 점심과 휴식을 가지고 오후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후에는 통일전에서 출발해 사천왕사지를 거쳐 선덕여왕릉, 능지탑, 황룡사지터, 분황사까지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남산 기슭에 있는 통일 전 앞에서 스님의 남산에 대한 자세한 안내로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경주 남산은 크고 작은 골짜기가 44개가 있는데, 민중불교의 대표적인 장소로 일반민중들의 신앙지였기 때문에 온 산, 온 골짜기 마다 그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불상, 탑, 절이 있습니다. 크게 칠불암 코스, 옥룡암 코스, 포석정 코스, 삼릉골 코스, 용장골 코스 , 천룡사 코스, 국사골 코스로 나눌 수 있는데 어느 코스든 자연상태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합의통일을 통해 신라는 국력이 급격히 신장될 수 있었습니다.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는 개방정책, 율령을 선포하는 개혁정책을 통해 가야와의 합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영토만 넓힌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재를 받아들였습니다. 김유신도 그 중 한사람이었습니다. 강한자가 약한자를 포용의 자세로 안을 때 화합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역사안에 이렇게 훌륭한 통일사례가 있음을 말씀해 주시고 다음 장소로 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산 둘레길을 따라 걷는 길섶에 아름드리 소나무와 그아래로 어린 진달래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풍경을 이루듯 순례단도 어린 학생부터 노보살님들까지 화합을 이루며 걸었습니다.
낭산 기슭에 있는 사천왕사는 호국사찰로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 해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자 당나라에서 백제와 고구려 땅에 도독부를 설치했습니다. 그래서 신라에서 반발이 일어나 신라군과 당나라 군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화가 난 당나라 황제는 신라공격명령을 내렸습니다. 당나라 군대가 침공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신라에서 가장 성스러운 낭산에 사천왕사를 세워 명랑법사를 중심으로 12명의 법사들이 문두루비법을 행해서 당나라 군대를 막고자 했습니다. 스님께서 신라역사에 대해 아주 재밌게 말씀해주시니 순례객들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집중해 들었습니다.
어린학생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 듯 했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난 숲길을 바람을 맞으며 올라 선덕여왕릉에 도착해 당시의 정치상황과 여성의 지위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원래 우리 전통 문화는 남녀차별이 조금 있었지만 여성의 권리가 많은 문화였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선덕여왕릉에서 고개를 조금 내려가니 낭산 서편에 능지탑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의 시신을 화장 한 화장터입니다. 그리고 그 유골은 동해 용이 되어 적을 막겠다고 하신 문무대왕의 뜻을 기려 감포 앞바다에 뿌리고 감은사도 세웠다고 합니다.
지도자로써 나라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굳은 의지였으며, 김구 선생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수위라도 하겠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최고의 지도자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헌신성이 있어야 국력신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새겨주셨습니다.
“강한자가 약한자를 받아들이는 게 포용입니다. 포용을 해야 화해가 됩니다. 우리가 남북한 통일을 할 때도 포용하지 않고 힘으로 하게 되면 북한주민들이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이후 국민 화합을 위해서는 통합할 때 힘이 있는 쪽에서 먼저 양보하면서 포용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순례길은 이어져 황룡사지로 향했습니다. 빈 들과 논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데, 매화, 진달래, 개나리가 한창이였습니다. 겨우내 묵었던 빈 논을 뒤집어 갈아 부드럽게 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의 굳은 마음도 저렇게 부드럽게 하는 작업이 정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습니다.
신라의 최고 사찰이였던 황룡사 터에 도착해서 다시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신라에는 5악이 있는데 동쪽은 명월산, 서쪽은 선도산, 북쪽은 소금강산, 남쪽은 남산, 중악으로 낭산 이렇게 5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서라벌인데 황룡사는 왕궁사찰로써 처음에는 왕궁을 지으려고 터를 닦는데 아주 굵은 누런 용이 나와서 사람이 살 집이 못된다고 해서 절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황룡사입니다. 아홉 나라의 적을 막기 위해 구층탑을 세웠지만, 몽고란때 소실되었습니다. 황룡사는 남문을 거쳐 중문 구층 목탑을 지나 금당, 뒤로 강당이 이렇게 일직선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이런 형태가 절의 정형입니다.
옛날에는 부처님이 계시는 금당에서는 참배만 하고 법회는 강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솔거의 노송도가 바로 황룡사 금당벽화입니다. 절터만 가로 800미터 세로 800미터로 약16만평입니다. 진흥왕때 짓기 시작해 선덕여왕에 와서 완성되었습니다. 백제 아비지가 200여명의 기술자를 데려와 지은 절이기 때문에 백제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순례객들은 설명을 들으며 그 자리에 서보기도 하고 한발한발 몸으로 느끼며 분황사를 향해 걸었습니다. 분황사에서는 자장 율사께서 당나라에서 계율을 가지고 들어오셔서 주석 하신곳이기도 하고, 원효스님께서 오랬동안 주석하시며 저술활동을 하셨던 절입니다. 분황사는 여러번 큰 어려움의 고비가 있었음에도 법등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절입니다. 몽고란, 임란때 소실되었지만 오늘날까지 그 법등이 이어져 온 사찰입니다.
원효스님께서 입적하신 후에는 설총이 원효스님의 초상을 모시고 평생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분황사는 남쪽으로 세 개의 금당이 있는 큰절이었고 모전석탑도 9층탑이었지만, 지금은 3층만 남아있었습니다.
우리가 화쟁 코리아의 뜻 깊은 행사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부처님의 자비가 충만하고 항상 평화로운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는 마무리 말씀을 하시면서 오늘의 순례일정은 끝이 났습니다. 오늘 하루 걸음걸음 속에서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받아들이며 함께 어울려 가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말없음 가운데 법을 전하시는 부처님처럼 스님께서도 묵언의 순례길에서 묵묵히 앞서 걸으시며 대중들에게 길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오늘의 화쟁순례를 모두 마치고 분황사에서 준비해주신 저녁공양을 먹고 난 후 저녁 7시부터는 신라문화원 교육관에서 화쟁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원효의 땅에서 화쟁의 길을 묻다’는 주제로 스님과 도법스님께서 간단히 화쟁에 대해 언급해 주시면서 즉문즉설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화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주셨습니다. “3.1정신이라고 하면 첫째 핵심이 민족의 자주독립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의 민족적 과제, 우리 모두의 최고의 과제는 마땅히 독립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독립한 국가가 어떤 국가가 될 것인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이 일순위지만, 단순히 과거의 복위가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왕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자. 그래서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상해의 임시정부 이름도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지금 우리가 분단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분단시대의 화두는 통일입니다. 통일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나라에서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되고, 지방분권이 심화되고, 경제적으로는 사회정의 다시 말해서 분배의 공정성이 보장이 되는, 취약계층에게는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는 복지사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단순히 영역의 확장을 통해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일 한국은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순들이 극복된 새로운 나라이어야 합니다. 3.1정신에서의 독립이 새로운 나라, 민국을 건설하는 거라면 지금 우리의 과제는 통일인데, 그 통일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기 때문에 개인의 목표와 공동체의 목표가 같은 방향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일이 자신이 하는 일과 같은 방향에 있거나 또는 다르지 않아야 개인의 성공과 공동체의 성공이 일치하면서 개인의 성공ㅇ이 어느날 실패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진정한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아주 작더라도 공동체를 위해 기여를 하는 것이 미래의 자신의 행복을 위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농부든, 주부든, 학생이든. 나야 농사꾼인데 나라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말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개인이 착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작은 기여라도 할 때 세상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화쟁이라는 것이 단순히 두 개를 적당하게 섞어서 타협하자는 게 아니라, 이 주장이 정말 바른길인지 하는 진실을 기초로 하면서도 다른이의 주장에 대해 그럴수도 있겠다는 이해가 있는 화해여야 합니다.
순례에 참가했던 분들은 다시 법륜스님과 도법스님께 여러 가지 궁금했던 점들을 질문하고 답을 구했습니다.
9시가 넘어 끝난 화쟁콘서트를 끝으로 오늘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순례단에게 경주의 특산물인 황남빵을 선물로 드리면서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 30분 조찬모임을 비롯하여 원불교 평양교구 20주년 기념식과 포스코 청암상 시상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