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4.1.14. 인도성지순례 열이틀째 - 쉬라바스티 기원정사

오늘은 천불화현탑과 기원정사, 사위성의 앙굴리말라 탑터, 수닷타 탑터 참배 일정이 있습니다. 430분 기상하여 숙소인 천축선원 법당에서 가사를 수하고 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마쳤습니다.  

어젯밤 스님께서 오늘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순례하는 일정이라고 안내를 하셔서 날마다 반복되는 옷차림이 또 고민되었습니다. 작년 순례객들이 추워서 힘들었다는 정보 덕분에 속옷도 겉옷도 따뜻한 옷들을 준비했는데 올해는 스님께서 성지순례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따뜻하다고 할 만큼 내내 더운 날씨여서, 행여 오늘은 추울까 싶어 따뜻한 옷을 입고 나섰다가 한겹씩 벗느라 진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오늘은 먼 길을 걷는다고 하니 두꺼운 옷 대신 가벼운 차림으로 나서 보았는데 하루종일 햇볕을 만날 수 없는 안개 낀 흐린 날씨가 계속되어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춥다라는 표현을 써본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순례지를 찾아가는 행선 순례일정입니다.

스님께서 천천히 걸으면서 수행하는 자세로 자기 동작에 깨어 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왼발이 나갈 땐 왼발에, 오른발이 나갈 땐 오른발에 깨어있고, 정근 소리도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집중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짐은 스탭 차량편에 보내고, 대중은 가사를 수한 채 바랑만 메고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천축선원 입구에 씌어진 Who am I? 라는 문구에 눈길이 멈춰집니다. 몸도 마음도 서두르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여 손끝 코끝 발끝에 집중하여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처음 느껴보는 듯한 평온한 여유가 찾아옵니다. 이렇게 천천히 가는 길도 있는데 쫓기듯 정신없이 살아왔구나. 무엇을 찾아서 어디로 향해 가느라 늘상 바쁘게 쫓기며 살아가는 나는 누구인가 문득 스님을 출가하도록 만들었던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느냐?”고 물으신 도문스님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스님을 선두로 황금색 가사를 여법하게 수한 대중들이 기러기떼처럼 줄을 지어 천불화현탑으로 향해 갑니다.

    

무변심 법사님의 목탁과 유수스님의 염불소리와 대중들의 석가모니불 정근소리가 안개 자욱한 사위성의 새벽을 깨웁니다  

쉬라바스티(사위성)는 강가 강 서북쪽에 위치한 코살라국의 수도였고, 코살라국은 당시 300여 개 인도의 나라 중 호전적이고 다혈질의 기질을 가진 국가로 강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였다고 합니다. 마가다국은 오랜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는 온화하고 역사 깊은 나라라고 한다면, 코살라국은 신흥국가로 경제, 정치, 군사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했지만 문화, 종교, 사상적인 면으로는 뒤쳐지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를 존경한다거나 그 중요성을 잘 몰라서 부처님이 교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에게 기적은 불법의 진의가 아니라고 가르치셨지만 이곳 사위성에서는 천불화현의 기적을 몸소 보인 후에야 왕족과 이교도들을 교화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은 여러 가지 사건으로 부처님을 비방하고 위해하는 많은 경전의 일화들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사위성을 상징하는 천불화현탑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부처님께서 망고씨를 심어 순식간에 거목으로 자라게 한 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였고, 그 열매가 전부 부처님 모습으로 변하게 했는데 이때 천 분의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하여 천불화현이라 하며, 군중들을 교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후에 아쇼카 왕이 이것을 기리기 위해 탑을 세웠는데 지금은 많이 허물어져 큰 동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탑 주변을 에워싼 늪들은 탑을 쌓느라 흙을 파내서 만들어진 늪이라고 하며, 날씨가 맑은 날엔 주변을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천불화현탑을 둘러싸고 앉아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예불을 모시고 아침 명상을 가졌습니다.  

기원정사를 향해서 다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먼동이 트고 안개 속에 아스라하던 320명 행렬의 모습이 선명해지니 2,600년 전 부처님 뒤를 따르던 분소의를 입은 수행자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깊은 감동으로 코끝이 찡해옵니다.    

가는 길에는 민가보다는 각 나라의 사찰들이 줄지어 있어서 불교인들이 8대 성지중의 하나인 기원정사를 얼마나 특별하게 여기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길가에는 인도를 상징하는 보리수, 반얀트리, 야쇼카나무, 망고나무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자귀나무와 아왜나무가 고목을 이루고 있어 정겨웠습니다. 길섶엔 우리나라 쑥을 닮은 들풀을 비롯해 며칠간의 인도생활에서 친해진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부처님 발자취 따라 내딛는 한발 한발을 가볍게 도와주었습니다.  

8시 무렵에 기원정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손에 손에 향불을 피워든 채 넓은 기원정사의 유적지 구석구석을 돌며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행선하였습니다. 아난다 보리수나무, 부처님 당시의 우물, 부처님이 행선하던 곳 등 부처님의 행적을 기리는 많은 기념물들이 있었고 그동안 다녀온 성지 중 가장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습니다. 옅은 안개가 깔린 파란 잔디와 붉은 벽돌탑들 사이를 노란 가사를 입은 긴 행렬이 꼬불꼬불 포행하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장관이었습니다. 참배 중이던 남방 스님들과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사진도 찍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함께 하기도 합니다  

삼귀의를 모신 후 스님의 발원이 이어집니다. 성지순례기간 동안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감동만큼이나 스님의 발원문 또한 매일 가슴을 찡하게 하는 감동입니다.

오늘도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무셨다는 사위성 기원정사에서 예불공양 올리며 참회발원을 하였습니다.

대중들의 소원 원만성취와 남북통일, 굶주리고 춥고 병든 북한 주민들을 위한 발원, 국민화합과 안정, 하나뿐인 지구의 환경보전과 기아 질병 문맹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발원하셨습니다.  

기원정사는 당시 사위성의 큰 기업가이고 자선사업가였던 수닷타 장자가 세웠다고 합니다.

    

외로운 이를 돕는 사람이라 하여 한자로는 급고독장자라고 하며. 제따(기수)왕자 소유의 땅에 급고독장자가 세웠다 하여 기원정사를 기수급고독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수닷타가 사업차 왕사성에 갔다가 절친한 친구에게서 부처님의 설법을 전해 듣고는 크게 감동하여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쉽고 명쾌한 법륜스님의 법문을 처음 듣던 날이 떠올라 수닷타의 감동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수닷타가 숲속을 산책하다 비범한 자태의 부처님을 알아뵙고 인사를 올렸을 때, “내 당신을 기다린 지 이미 오래요라고 반기셨고, 그 자리에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깨달아 수다원과를 얻었다고 하며, 이때 부처님을 사위성으로 초대하였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무를 처소로 기원정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재가신자 중 제일제자인 수닷타 장자의 부처님에 대한 신심에 대한 많은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후 45년 동안 교화활동을 하면서 45안거 중 24안거를 사위성에서 보내시고 그중 19안거를 기원정사에서 보내셨으며, 경전의 약 40%가 이곳 기원정사에서 설하신 것으로 전해옵니다. 아함경의 수많은 교화사례와 주요 대승경전의 배경도 기원정사가 많다고 합니다  

금강경을 설해서 더욱 유명한 기원정사에서 금강경과 수닷타 장자의 귀의와 기원정사를 기록한 불설 중본기경 중 수닷타의품 등 경전을 한 시간 가량 독송하고 점심공양을 먹었습니다.  

집을 떠나온 지 12일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각종 밑반찬이 풍성한 반찬에 조별로 밥솥채 싸온 밥을 나눠먹는 도반들의 정겹고 밝은 웃음소리가 기원정사에 가득합니다. 오늘은 점심 식사 후에 스님과 함께 개인사진을 찍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감기로 힘들어 하시면서도 대중들을 위해서 일일이 사진 모델을 자처해주신 스님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점심 후에는 대중이 함께 108배를 하고 명상과 경전을 독송한 후 스님의 법문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여러 교화사례와 귀의하는 수행자가 많아지면서 다른 교도들이 시기하여 모함했던 사례들을 쉽고도 재미있게 전해주셨고 귀한 법문도 설해 주셨습니다
.

    

부처님의 중생에 대한 자비스러운 마음과 사랑의 마음이 얼마나 큰가 알 수 있는, 아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여인을 깨우쳐주는 얘기와 똥꾼 니다이와 주리반특을 비롯한 몇 가지 교화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부처님 교화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교만한 자를 지혜의 칼날로 교만을 깨트린 가르침과 고통받는 중생들을 자비의 손길로 보듬어서 깨우쳐주는 말씀이셨다고 합니다. 천민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똥꾼 니다이가 똥물이 옷에 튀겨서 어쩔 줄을 몰라 하자 물에 씻어보라고 하시며 어떻게 됐느냐 물으시고 깨끗해졌다고 하자 옷이라고 하는 천에 똥물이 묻으면 더러워지고, 씻으면 깨끗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는 본래 천하고 귀한 것이 없고, 천한 의식을 갖게 되면 천해지고 천한 까르마를 소멸시켜버리면 청정해진다고 하는 생활상에서 일어나는 비유를 통해서 쉽게 깨우쳐 주셨고, 바보 주리반특이 아무리 해도 깨우치지 못할 때 청소를 하면서 티끌을 털고 떼를 닦아라를 계속 반복하며 청소를 하게 하다가, 더러운 것이 청소를 하면 깨끗해지듯이 어리석은 우리의 마음도 닦으면 청정해진다고 가르치신 것은 자비의 말씀입니다.

붓다는 배우지 못하고 천하다고 내팽개치고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붓다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을 겪었고,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찾아 왕위를 버리셨고 끝간 데 없는 고행을 거쳐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세상 속에 계셨고 세상 속에 계셨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이 더럽다고 내팽개치고, 세상을 외면하고 멀리하지 않고 늘 세상 속에 계셨습니다.

어리석은 중생도 깨우치기만 하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음을
... 현재 인간이 한계를 겪고 있는 것을 인정하되, 그 한계 속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내면 새롭고 자유로운 세상 행복한 세상이 열린다는 것. 그렇게 되기 위해서 굶거나 고행을 하거나 잠을 안 잘 필요는 없으며 누구나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지만, 그 욕망을 부정해도 안 되고 욕망에 끄달려서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욕망이 있는 것을 인정하되 다만 욕망이 욕망인 것을 알아차리고 욕망에 끄달리지 않을 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붓다가 제시한 길은 검소한 길이고 청정한 길이고 바른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고행의 극단주의는 배격하셨습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마저도 지나치게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정진할 때도 욕망에 끄달려서 마음이 흥분되는 것은 고통의 씨앗이 될 수 있고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긴장하는 스트레스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차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러나 거기에 매이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아무도 배격하지 않고 자기에게도 행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그런 길을 가셨지만, 세상으로부터 칭찬만 받았던 것은 아니고 때로는 비난과 질시가 있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떤 이기심을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른 길을 따라 귀의하는 것도 다른 쪽 사람들에겐 붓다가 시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장애에 구애받지 않으셨습니다.

붓다마저도 때로는 비난받고 때로는 모함을 당하는데 우리같은 수준의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함을 받지 않고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좋은 일만 생기리라 생각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유로운 기원정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줄을 지어 사위성에 있는 앙굴리말라 탑터로 갔습니다.
새벽정진을 마치고 마을 사람들이 밥 먹는 시간이 되면 부처님과 제자들이 줄지어 탁발을 가셨던 그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라면 재가신자들도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 배가 고팠을 텐데 1,250명이나 되는 수행자들을 공양할 정도라면, 당시의 수행자들이 얼마나 존경받는 분들이셨는지, 재가신자들의 수행자에 대한 경외심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해 보았습니다.

   

앙굴리말라 탑터는 쇠창살로 경계가 되어 있어 탑에 올라가 볼 수는 없었습니다. 올해 처음 만나는 모습이라니 관리가 되고 있다는 반가움과 직접 올라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교차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손가락으로 천 개 염주를 만들어 천상에 나고자 했던 앙굴리말라가 교화되어 받은 법명이 비폭력무저항의 뜻을 지닌 아힘사라고 하셨습니다. 잡아함경의 앙굴마경을 독송하여 참배의 뜻을 기렸습니다.  

인간적 붓다와 인간적 법륜스님을 동시에 만나는 성지순례였습니다.

감기약에 취해서 잠깐 졸았다고도 하시고, 산을 오를 때는 숨이 차는 소리가 송신기를 타고 흐르기도 했습니다. 정토행자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우리를 혼도 내시고, 때때로 재밌는 농으로 웃음을 선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앙굴라마라 탑터에서 던진 스님의 조크 중, 인도에서 가장 폭력적인 사람은 앙굴리말라이고, 독일에서는 칼휘둘러라고 하셔서 한바탕 웃었고, 기원정사에서 대중 속으로 뛰어든 개들을 죽비를 쳐서 손수 쫓아내시면서, 소리만 크지 아프지는 않다고 말씀하셔서 대중들을 웃게 해 주셨습니다.

     

앙굴리말라 탑터 건너에 위치한 수닷타 탑터에서는 삼귀의로 참배하고 대중들이 흩어져서 탑 주변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이나 기원정사 같은 몇 군데를 제외한 대부분 성지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들로 안타까웠는데 다음 일정에 쫓겨서 지나치다가 청소기가 지나간 듯 깨끗해진 탑터를 나오는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어제는 새벽 2시부터 하루 종일 운전을 하고, 내일은 12시간에 걸쳐 상카시아로 이동하는 강행군이라 오늘 하루는 편히 쉬시라고 했던 버스 기사님들이 일찌감치 오셔서 기다리다가 일행을 천축선원으로 이동시켜주셨습니다. 잠자리도 먹거리도 불편한데 비포장에 가까운 도로를 매일 안전운행 해주시는 드라이브지와 조수님들의 프로정신이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숙소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천축선원 주지스님과 신축부지를 살펴보시고, 인근에 있는 인도 절을 방문하셨습니다. 15년 전엔가 기원정사에 오셨을 때 보시를 한 인연을 맺고, 그 후론 이곳에 올 때마다 들러서 격려차 방문하여 보시하곤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생에는 인도에 나셔서 중생구제에 힘쓰시겠다는 원을 말씀하시곤 하시던 스님다우십니다하고 또 감동하였습니다. 극진히 맞아서 예를 갖추시는 그곳 스님들을 한 분한 분 손잡아주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저녁공양은 끼니 중 가장 맛있게 기억된다는 라면이었습니다.

수년 동안 연습된 결과겠지만 320명분의 라면을 끓이는데 흡사 자동화공장처럼 착착 끓여대는 모습에 도와주려고 들어왔던 천축선원 비구니 스님께서는 끼어들지도 못하고 한참을 구경만 하셨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도 대전식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라면을 맛있게 드시고 인도 절에서 선물 받으신 과자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저녁예불은 천축선원의 주지스님이신 대인스님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걸망 메고 유행하시는 걸 좋아하셔서 인도에 왔다가 금강경이 설해진 대승불교의 요람인 기원정사에 우리나라 절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다가 인연이 닿아 불사를 하게 되었고, 인연닿는 순례객들을 시봉하며 인근 인도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펼치며, 학교를 짓는 중이시라는 대인스님께서는 봉사도 성지순례도 수행처럼 행하는 법륜스님과 정토행자님들이 한국불교의 희망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머나먼 인도 땅에서 쾌적한 방과 맛있는 우리 음식으로 대접해주신 대인스님께 감사드리며, 천축선원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원만성취되도록 힘찬 큰 박수를 보내드렸습니다.  

내일은 새벽 3시에 기상하여 12시간을 달려서 석가족의 후예들이 불교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카시아를 참배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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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옥자

오늘은눈물이왈칵왈칵가슴이먹먹해지네요.우리스님퉁퉁부은얼굴에.그래도뭔가더주시려는스님의마음이고스란히전해집니다.우리스승님대단하십니다.2500년전에부처님모습이지금우리스님모습과오버렙되어서마치살아계시는부처님을뵈는듯합니다.

2014-01-18 16:01:50

보리화

마치 순례단과 함께 한듯 합니다. 정성스러운 소식 전해주셔 참으로 감사합니다♬

2014-01-18 00:33:47

손정애

작년에 성지순례 다녀온 로체스트사는 손정애입니다, 기원정사 있었을때의 감동이 지금도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숲전체의 모습이 그려지며 참으로 친근하게느껴지던 "여기에 부처님께서!" 생각만으로 눈물이 흘러 엉엉 울었던 그곳,다시 가고싶읍니다, 스님을 비롯 모든 순레단님들 건강히 잘 다녀오시길 기원하며.(들국화님 안녕하시죠? 고마웟읍니다 그리고 보고싶어요 ㅎㅎ)

2014-01-17 23: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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