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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순례단은 일찍 일어나서 각자 개인짐과 공용짐을 챙겨서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니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짐을 버스에 먼저 싣고 숙소에서 예불과 아침기도를 하였습니다.
유수스님의 집전에 맞추어서 숙소 바닥에 깔판을 깔고 아니면 딱딱한 침대 위에서 108배를 하고 나니 찌뿌듯한 몸도 풀리고 마음도 한결 가볍게 순례지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오늘 첫 번째 갈 곳은 어제 늦게 도착하여 순례하지 못했던 ‘춘다의 공양터’입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열반 전 마지막으로 공양을 드신 곳입니다. 오늘 순례하는 곳은 ‘춘다의 공양터’ 처럼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가게 됩니다.
춘다의 공양터 근처에 아침 7시에 도착하여 1호차가 공양물을 준비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앞에 서고 나머지 순례단이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순례기간 동안에는 차량별로 각 성지마다 공양물을 준비해서 정해진 순번에 따라서 올리고 있습니다.
춘다의 공양터에 도착하여 가사를 수하고 자리를 정열한 후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에 비가 와서 여기서 예불를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시원하게 날씨가 좋아서 천지신명께 감사드립니다”고 하시며 춘다의 공양에 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여기는 춘다가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께서 최후의 공양을 드신 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 3개월 후에 열반에 들겠다 선언을 하신 후 바이샬리를 출발해서 북서쪽으로 이동하시다가 칸타카 강을 건너 저희들이 지금 있는 파바마을에 이르셨습니다.
신분이 천민이었던 대장장이 아들 춘다는 자신의 망고나무 아래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예배를 드린 후 법을 청해 듣고 너무나 감동하여 ‘내일 아침 제가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하였고 부처님께서는 침묵으로 수락을 하셨습니다.”
아난존자는 걱정스런 얼굴로 “지금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하여 부자도 공양을 준비하기 어려운데 춘다는 가난하여 공양을 준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부처님께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여 걱정하지 말아라. 춘다는 공양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춘다는 기쁜 마음으로 공양을 준비한 후 이튿날 아침 부처님께 찾아와 “공양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때를 아소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보통 ‘스님 식사 드세요’ 하는데 이건 명령입니다. ‘안 드시면 치울 겁니다’라는 식이지요. 스님의 말씀에 듣고 있던 순례단은 한바탕 웃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우리가 할 일은 다 되었으니 부처님께서 아무 때나 하시면 되옵니다’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춘다의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 춘다의 집으로 가니 갖가지 음식으로 공양 준비가 되었는데 그 중에 ‘스카라 맛다바’라는 음식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이 음식을 받으신 후 이 음식은 대중에게는 주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후 이 음식은 그 누구도 소화할 수 없으니 땅에 묻어라 하시고 공양을 마치셨습니다. 공양을 마치신 후 법을 설하신 후 부처님은 약간 고통스러운 얼굴로 아난다에게 어서 떠나자 하시며 대중과 함께 북쪽으로 길을 떠나셨습니다.
한참을 가신 후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아난다야, 몸이 좋지 않구나” 하시며 쉬었다 가자 하신 후 피가 섞인 설사를 하셨습니다. ‘스카라 맛다바’라는 음식을 드신 후 급성 식중독에 걸리셨습니다. 또다시 길을 가다 힘든 몸을 쉬시며 아난다에게 목이 몹시 마르구나 하셨지만 아난다는 ‘방금 수레 오백 대가 강을 지나가 물이 맑지 않습니다’라며 물을 뜨러 가지 않자 부처님께서 두 번 더 말씀을 하셨고 세 번 들은 아난다가 물을 뜨러 가니 맑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난다는 여래의 위신력에 감탄하며 물을 떠왔습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 “물을 다오” 할 때 “네에 알겠습니다” 하며 물을 떠다가 ‘물이 흐려서 안 되겠습니다’ 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자기 눈으로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부처님을 25년간 시봉한 아난다도 자기 생각이 옳다 하면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도 수행을 할 때 유의해야 할 점입니다.
물을 드시고 기운을 차리신 부처님은 카쿳타 강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신 후 자리를 깔고 누우신 후 아난다에게 춘다는 어찌하고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아난다는 “춘다는 자신이 올린 공양으로 부처님께서 병환을 얻어 괴로워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양의 공덕이 전혀 없다고 수근거립니다”’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춘다를 오라 하시고 아난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여래에게 올린 공양 중에 공덕이 가장 큰 것이 두 개가 있느니라. 여래가 깨닫기 전에 올린 공양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여래가 열반에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드신 공양이니라.”
최고의 공양이라 정평이 나 있는 수자타의 공양에 비해 춘다의 공양은 대비가 되는데 이것은 한 사물을 놓고 부처님을 돌아가시게 한 공양이라 볼 수도 있고 다른 쪽에서 보면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 공양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춘다의 공양을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올린 공덕이 큰 공양으로 보셔서 대중들 마음속에 있던 춘다를 향한 원망이 없어지고 춘다 또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춘다의 공덕을 기려 후세 사람들이 세운 탑 앞에 있습니다. 춘다가 올린 스카라 맛다바는 독성이 있는 야생토란으로 추측할 수가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첫째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기쁜 마음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도 밤새도록 야생을 채취해서라도 공양을 준비한 춘다의 갸륵한 마음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주면 주는 대로 받는 걸식의 원칙에 따라서 자신은 받으셨지만 그 해로움을 아시고 대중에게는 주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받은 후에는 드시지 않던지 아니면 신통력으로 치료를 하는 경우는 세상에 많지만 그 음식을 드시고 돌아가시면서 그 음식을 주신 이를 칭송한 사람은 어쩌면 부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몸뚱이를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 씀씀이를 어떻게 쓰는지가 위대한 것입니다. 수자타의 공양이 수자타를 위대하게 했다면 춘다의 공양은 여래의 마음이, 그 위신력이 어떠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괴로워하는 춘다를 위로하였습니다.
이것을 성경과 비교해 보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도 자신을 못 박은 자를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하신 것과 비교하면 부처님께서는 춘다가 잘못했으니 용서해준다가 아니라 춘다는 훌륭한 일을 했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두 성인이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같은 모습이지만 그 마음 씀씀이는 문화적 언어적 차이겠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설명을 하신 후 비가 와서 깔판을 깔지 못해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춘다가 부처님께 올리셨던 정성을 생각하면서 공양예불을 올리도록 하자 하셨고 순례단은 정성스럽게 공양예불을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다른 성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셨습니다.
순례단은 예불이 끝난 후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셨던 카쿳타 강으로 출발하였습니다. 8시쯤에 도착하여 강가에 내려가니 물이 참 맑았습니다. 순례단 몇몇이 물에 손을 담그고 있는데 스님께서도 강가로 내려오셔서 먼저 손으로 물을 떠서 드신 후 마시면 감기가 다 낫는다 하시며 우리에게도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셔보라고 하니 순례자 한 분이 물을 받아 드셨습니다.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다음 순례지인 열반당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열반당에 도착하여 순례단은 향을 피워 두 손에 합장하여 들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열반당 주위를 돌며 참배한 후 열반당 왼편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스님께서 열반의 모습에 관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낡은 수레가 삐거덕리며 움직이듯 병들고 늙은 몸을 이끌고, 그러나 대중 앞에 서서 사자처럼 당당하게 걸어 히라냐바티 강을 건너 여기 사라나무 숲으로 오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라쌍수 밑에서 북으로 머리를 두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습니다. 얼굴방향은 태어날 때는 동쪽이셨지만 열반에 드실 때는 서쪽으로 두셨습니다.
이렇게 누우신 후 아난다에게 내가 오늘 밤에 열반에 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꽃이 필 시기가 아닌데 사라나무가 꽃을 피우고 하늘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며 꽃비가 내리자 이게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는 아난다에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아난다여 이것은 하늘의 신들이 여래의 열반에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여 이것은 제일의 공양이 아니다. 여래에게 올리는 제일의 공양은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신기한 기적적인 현상도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 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숲속에서 열반에 들어야만 짐승과 새를 비롯한 모든 중생 누구든지 본인만 원하면 여래를 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래가 오늘 밤 열반에 든다는 말을 듣고 슬픔에 빠진 아난다에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슬퍼마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롯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 있으리라’
또한 부처님께서는 여래가 열반에 든 후에는 4대 성지를 생각하고 사념처에 의지하고 계를 스승으로 삼으라 하시며, 이는 여래께 올리는 공양과 똑같은 공덕의 공양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배부르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픈 이에게 약을 주어서 치료하는 것이고 셋째는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것이고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외호하는 것이다.”
이것을 현대화한 것이 JTS의 3대 이념이라고 스님께서는 설명을 해주시며 성경구절 중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에게 하지 않는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것과도 유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여래가 열반에 들기 전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으라 하셨는데 아무 대답이 없고 아난존자가 ‘우리는 아무런 의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나는 29살에 출가하여 51년을 부지런히 근면히 수행정진 했다. 그러니 너희들도 게으르지 말고 수행정진 하라. 낙숫물이 바윗돌을 뚫듯이.’ 이렇게 최후의 말씀을 하시고 열반에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설명을 마치시고 순례단과 함께 공양예불을 올리신 후 발원을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여!
이곳에 안온히 머무소서.
이제 세상에 남은 일들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저희를 깨우쳐주신 것만으로도 부처님의 하실 일은 다 마치셨습니다. 이제 다시는 부처님께 이 일을 해달라 저 일을 해달라 하지 않고 세상에 모든 일들을 저희가 앞장 서 하겠습니다.’
이 부분을 말씀 하실때 순례단은 가슴 깊이 감동하며 마음에 새기었습니다.
이렇게 감동된 마음으로 순례단은 열반당으로 들어가 부처님의 열반상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담아 예불을 올린 후 밖으로 나왔습니다.
1,2호차는 스님과 함께 조별 사진촬영을 하고 약간의 자유시간을 가진 후 다음 순례지인 라마바르총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라마바르총은 부처님을 다비하신 곳입니다.
라마바르총에 도착하여 스님의 설명을 듣고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여 참배한 후 순례단은 어제 숙소에서 지어온 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비가 올듯하여 서둘러 점심을 먹고 네팔 국경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네팔국경으로 가는 길에 가끔씩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네팔 국경을 통과하여 오늘의 숙소인 대성석가사에 도착하니 저녁 8시 30분이었습니다. 순례단은 짐을 풀고 법당 참배 후 대성석가사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저녁 공양을 먹고 조별로 나누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탄생하신 룸비니를 걸어서 순례한 후 카필라바스투 등을 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