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3.8.14. 압록강 줄기따라 백두산까지, 발해의 유일한 탑 영광탑

오늘은 새벽 4시에 백두산이 있는 장백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일정을 빠듯하게 한 덕분으로 오늘은 여유가 좀 있었습니다. 집안에서 장백으로 버스를 타고 압록강을 따라 북한을 바라보면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압록강이 흐르는 신의주에서 백두산까지가 400km인데, 압록강 줄기따라 가는 실제 길이는 800km정도라고 합니다. 그만큼 압록강이 굽이굽이졌다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압록강을 따라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북한 지역에 대한 설명이나 북한의 현재 상황등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무창을 지나면서는 조선시대 최윤덕 장군이 4군을 설치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압록강 건너 자강도가 보입니다. 자강도는 북한의 군수산업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지원을 하면서 모니터링을 할 때 다른 지역은 어느 정도 방문해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 가능한데 자강도는 일체 허락이 되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압록강을 따라 장백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북한의 산은 온통 뙈기밭으로만 되어 있고, 보이는 집들은 허름한 회색빛 너와집인 것 같습니다. 남한의 첩첩산골이라는 곳, 어디를 가도 이런 집들은 찾아볼 수가 없는데, 국경너머에 보이는 집들이 이런 정도이니 북한의 내부는 더 심할 것이라는 것이 짐작됩니다.

압록강 너머 보이는 북한의 뙈기밭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인데, 우리 눈에 보이는 뙈기밭은 북한 전역에 비하면 인구가 적고 산이 많아서 뙈기밭 면적이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산꼭대기까지 거의 빈틈없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도 적은 편이라고 하니 북한 전역은 아마 나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듯 합니다.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은 노동자들에게 식량배급이 거의 안되기 때문에 도시근교 3-40리 산에는 빈틈없이 뙈기밭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도시 노동자들은 새벽3-4시에 일어나 뙈기밭에서 일하고 와서 회사 출근하고 다시 퇴근해서 밭으로 갔다가 캄캄한 밤이 되어야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힘은 많이 들고 수확량은 떨어져 개인은 그나마 수확을 할 수 있으니 좋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노동력은 많이 투여하면서 실제적인 수확량은 적기 때문에 매우 큰 손실이라고 합니다.

요즘 북한은 예년에 비해 상황이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보기에는 뙈기밭의 농사가 제대로 될까 싶을 정도로 옥수수가 듬성듬성한데도 예년보다는 나은 편이고 또 지나가며 보이는 집들의 굴뚝과 공장 굴뚝에는 연기가 보이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 같습니다. 

북한은 요즘 수확량의 분배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농지를 분조단위, 가족단위로 나눠주고 생산량의 70%는 개인이 자유처분하고 나머지 30%는 비료등 농자재를 감가하고 난 후 국가시세로 현금으로 배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 변화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압록강을 따라 건너 보이는 북한의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장백에 도착했습니다. 장백 건너 보이는 북한 땅은 혜산입니다. 인구 30만명이 사는 큰 도시로 양강도의 도청소재지입니다.

 

혜산을 지나 압록강을 따라 백두산까지 갔었습니다. 큰 물줄기는 어느새 작아져서 중국과 북한이 개울같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압록강이 시작되는 백두산 끝까지 갔지만 아직도 천지로 가는 길은 지난번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막혀 있어서 압록강을 따라 북한을 바라보며 백두산을 갔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다시 백두산을 내려와 장백으로 돌아 왔습니다. 

발해의 유일한 탑이 있는 탑산으로 올랐습니다. 여기에 있는 영광탑의 아래는 무덤이고 그 위를 탑으로 쌓았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건너 혜산이 앞동네처럼 보입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었으며 뙈기밭도 함께 있었습니다. 

영광탑앞에서 우리는 예불을 드렸고 스님께서는 굶주리는 북한의 동포들이 하루바삐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그리고 이땅에 전쟁으로 죽어간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이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고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간단히 정비를 한 후에 다시 강의를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오늘 일정의 주 목적은 압록강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었음을 알려주시면서 “북한산야를 보면서 가슴아픈 사람도 있고,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면서 안타까워 하시는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을 돕는 일을 1996년부터 시작했는데,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북한의 식량 위기를 세계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중국에 북한의 난민들이 많이 와 있다고 알리고, 북한의 식량난등 경제가 열악하다고 알리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어린아이들이나 여성들이 굶주리면 살려야하고, 군인들이라도 다치면 치료해줘야 합니다. 이것이 인도주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나라라도 보편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중국에 넘어온 북한난민을 보호해야 합니다. 굶어 죽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넘어온 것이기에 보호해야 합니다.

  한국안에서 정치적 입장에서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면서 상대를 비판합니다. 북한을 볼 때도 부정정적인 것은 부정적이라 하고, 긍정적인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20대는 열렬한 독립운동가였는데, 50대 이후에는 일본에 친일을 했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젊을 때 독립운동한 공과가 모두 없어져버립니다. 젊을때 나쁜 짓 한 사람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면 훌륭한 것만 기록합니다. 젊은 시절을 미화해 버립니다. 젊을 때는 가진 것은 없지만, 용기, 정의감이 있다면, 나이가 들면 지켜야 될게 많다 보니 타협하게 됩니다. 젊을때 정의감 있는 사람도 나이가 들면 현실에 타협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삶입니다. 자꾸 명분론으로 접근하다보니, 끝까지 독립운동한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접근할 때도 북한의 좋은 점은 좋다고 말하고, 부정적인 것은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초기에는 남한보다 긍정적인 요소가 많았지만, 지금은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습니다. 친북, 반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대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남북한을 이야기 하려면 독립운동사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남북한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주의가 젊은 층에 점점 확산이 되면서 대다수 사람들이 사회주의 시각에서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북이 분단이 된 뒤에 북한은 소련이, 남한은 미국이 나눠서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미 군정하의 3년 동안 학교, 경찰, 행정관리, 군대를 운영하기 위해 일제시대때 경험이 있는 사람을 그대로 시켰습니다. 새로 체제를 잡기 위해서는 경험이 있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되니 그렇게 했지만, 민중이 보기에는 일제시대때 해먹던 사람이다 보니,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해방이 되면 죽었구나 했는데, 미국이 이들의 지위를 복귀시켜 주니 미국에 붙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독립운동가이고 그들은 대부분이 사회주의자였기에 빨갱이라고 탄압하게 된 것입니다.

 

소련에서는 김일성을 내세우기가 쉬웠습니다. 독립운동도 했고, 나이도 젊고 해서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남한보다는 훨씬 자주적 사람, 독립운동한 사람으로 구성하고 친일 세력을 척결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북한이 주민의 지지가 더 많았습니다. 더구나 남쪽은 부정선거를 하면서 억지로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북쪽에서 밀어 붙이면 통일이 되겠다 싶어서 밀어 붙였는데, 결국 국제 정세를 전혀 읽을 줄 몰랐던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50-60년대 북한에는 천리마 운동하면서 잘사는 국가로 바뀌었고, 남쪽은 데모나 부정부패로 거지가 많아지면서 월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70년대 들어오면 북한은 60년대 말에 미소분쟁이 일어나면서 북한은 자기 배후가 분열이 되다보니, 좁아지면서 주체가 나오면서 독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고, 남한은 군사독재로 경제적 개발이 되어가면서 70년대는 남북한이 비슷해지면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의 모든 경제가 30년간 후퇴한 반면 남한은 고도성장을 하면서 오히려 남한이 절대 우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통일 운동은 남한은 원래 통일에 대한 소극적인 전통에서 말이 없고 북한은 적극적이었는데, 자기 체제유지에 급급해지니 남북한 통일운동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념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이제 통일은 남한이 주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한은 북한을 포함해서 우리민족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은 과거 긍정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부정적 요소가 더 많습니다. 권력이 아들에게 승계되는등 정통성이 없고, 경제력도 붕괴되었습니다. 군사력도 남한이 앞섭니다.  

남한은 북한과 싸움해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평화를 관리해야합니다. 통일을 주도해서 통일국가를 만들고 앞으로 전개될 동아시아 시대의 문명을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

 

통일의 첫 번째 이익은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돌아가야합니다. 북한주민이 다 굶어 죽더라도 통일만 하면 된다는 것은 안됩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통일이 우선입니다.  

통일비용이 부담된다고 하는데, 북한이 갖는 지하자원이 1조 달러 이상 입니다. 북한을 소비로 볼것인지, 투자로 볼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북한의 개발을 자꾸 소비적 개발에서 보면 안되고 투자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북한의 안타까움을 이해하고 북한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보고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야합니다” 

앞으로 북한을 우리가 어떻게 관리하고 함께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내일은 백두산 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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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이념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이제 통일은 남한이 주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한은 북한을 포함해서 우리민족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gt;<br />&lt;통일을 주도해서 통일국가를 만들고 앞으로 전개될 동아시아 시대의 문명을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gt;<br />&lt;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통일이 우선입니다. &gt; --시대를 앞서가시는 스님의 말씀..스님은 이미 대한민국의 스님이 아니십니다~전 세계민족을 통달해 내다보시며 사랑으로 하시는 스님의 희생어린 충고를 이제는 이제는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br />

2013-08-21 18:26:07

유애경진실행

고맙습니다. 역사기행을 다시 하는 것 같네요. 뙈기밭을 보고 많이 울었고,돌아와서는 잠이 오지 않아서 모금함을 들고 길거리로 나갔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스님과 도반님들과 시민들의 작은정성으로 얼어 붙었던 남북관계가 조금씩 녹여 지는 것 같습니다.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일체중생. 천지만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2013-08-16 13:28:34

최영자

지난주에 갔다왔는데 금방 1주일이 지났군요..<br />스님과 스텝분들의 노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br />더운 날씨에 우리 청년팀 무사이 여행하시길 기원합니다.

2013-08-16 11: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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