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3년 1월 16일 법륜스님의 하루(아그라)

새벽 4시, 상카시아에서 아그라로 출발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동을 해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한국으로 가더라도 시차적응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일찍 일어나 차를 타고 가면서 자는 아침 잠도 참 맛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스님께서 오늘 관광할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인도 역사와 중국 역사를 비교해서 정확한 연도까지 말씀하시며 설명해 주셔서,
오늘도 저희가 감탄을 했습니다. 정확한 연도까지 어떻게 저렇게 다 알 수가 있을까?
스님은 외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톱니바퀴가 딱 딱 맞아서 돌아가듯이, 서양 역사, 동양역사가
환히 그림 보듯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이 곳은 인도 무굴제국의 수도였습니다. 마우리아 왕조 이후 가장 큰 나라였습니다.
무굴 제국은 중국의 원나라나 청나라처럼 외부에서 인도를 침입해서 세운 나라로 몽골의 후예입니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아내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해
22년에 걸쳐 지은 무덤입니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더 이상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고자 공사에 참여했던 2만명의 공인의 손목을 다 잘랐다고합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스님께서는 밖에 계시고 성지순례객들만 들어가 관람을 했습니다.
타지마할에 들어가 가이드를 한 명 교섭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7대 불가사의라 할 정도로 대단한 건축이었습니다. 붉은 대리석에 불을 비추면 붉게 빛이 나고,
나무를 깎은 듯이 자연스럽게 대리석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타지마할은 4면 어디에서 보나
같은 모양으로 보이고, 기둥의 한 부분은 착시현상을 이용해 4면의 기둥이 8면으로 보이도록 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건축물이라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착취를 당했을까 살펴졌습니다.

타지마할에서 다시 아그라포트로 갔습니다.

“아그라포트는 타지마할과 야무나강을 사이에 두고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마주보고 있는 성입니다.
16세기말 무굴제국의 악바르황제가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기면서 천연 해자를 이용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너무 많은 재정을 낭비한 샤 자한이
말년에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된 곳으로도 유명한데, 샤 자한은 야무나 강 너머의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탑에 갇혀 있다가 결국 그 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샤 자한이 숨진 탑에서 멀리 안개 사이로 타지마할이 고요히 서 있었습니다.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를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잠시 쇼핑을 하고, 숙소인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스님께서 처음 말씀하셨듯이, 첫 날과 마지막날은 숙소가 호텔이라 따뜻한 물도 나오고, 럭셔리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성지순례 전체 정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성지 순례 했던 곳 하나 하나를 짚어 가면서
다시 전체를 자세히 정리해 주셨습니다. 15일 동안의 생활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스님 강연 후, 조별로 소감문을 쓰고, 조별 발표를 한 후, 전체가 다시 모여서 소감 발표를 했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십여년전 성지순례 왔을 때 유영굴 앞에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이제 학생이 되어 구걸하는 아이들이 없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고 스님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불교 대학 다니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열반당에서 ‘부처님.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 안온히 계십시오.’하시던 스님 말씀이 지금도 가슴에 남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지독한 가난 속에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의 모습이 눈에 제일 많이 들어왔습니다.
성지순례를 통해 부처님이 한 분의 인간으로 다가오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시어머니의 며느리를 교화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어머니께 지혜롭게 대하지 못한 저의 모습이 참회됩니다.”

“법륜스님을 다시 알게 되었고,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이야말로 제대로 된 부처님의
제자인 것 같습니다. 이 인연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통일의병이 되어야겠단 다짐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더 정진해서 성실한 불자로 이타적인 삶을 살겠습니다. 올바른 삶을 살겠습니다.”

“인도성지순례는 불교대학 결석처리 하지 말아 주세요.”

“켈커타의 인상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안개가 개인 기분으로 인간 붓다를 만났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로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가사를 받고 수계를 받는 것에 눈물이 났습니다.”

“변함없는 열정으로 가르쳐 주시는 스님께 눈물나도록 감사합니다.”

“군대시절 이후 이렇게 바쁘게 지내기는 처음입니다.”

울먹울먹하면서 소감문을 발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5일동안 같은 조원들끼리도 정이 많이 들어서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마음도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자기 현실이 감사하고 고맙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 소감문을 듣고 간단하게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내가 부족한 줄 알고, 상처투성이인 것을 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틀렸을 때 틀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희망이 있습니다.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고물상의 딸이라서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릴 때의 상처가 평생의 나를 좌우합니다. 이것이 몸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내가 어떤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제법이 공한 줄을 알아서
떨쳐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탄센에 가서 인터넷만 되면 살고 싶다는 그런 마음, 가난하면서도 여유를 즐기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한국에서 가지면, 한국에서 욕심을 내려놓으면 한국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소감 발표 후, 만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에 왔지만 밥솥을 들고 다니면서 밥을 해 먹어서
인도 음식 먹을 기회가 적은데, 오늘 저녁은 간만에 인도음식을 맛볼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음식이 정말 푸짐하게 나왔습니다. 인도 음식은 올 때마다 더 입에 맞아지는 것 같습니다.
성지순례객들도 접시에 가득 가득 음식을 담아 갔습니다. 이제 집에 갈 날도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분위기도 들떴습니다.

성지순례 기간동안 생일이었던 사람들의 생일파티도 있었습니다.
케익에 촛불을 켜고 축하행사를 했더니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조별로 나와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만찬 후, 내일 새벽 델리로 가면서 차에서 먹을 주먹밥을 각 조별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용했던 자리, 가방, 밥솥, 반찬통, 그리고 인도에 보시할 옷이나 반찬 등을
모두 내어놓았습니다. 스텝들이 늦은 밤까지 짐정리를 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로 갈 짐과
서울로 보낼 짐을 분류하고, 단단히 테이핑을 해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내일은 델리로 이동해서 박물관 관람을 하고, 출국 수속을 할 예정입니다. 내일 소식도 간단하게 전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전체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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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역사 동양역사를 그림보듯 환히 꾀고계신 스님..참 대단하세요^^<br />근데 두번째사진위,&lt;악바르황제가 숨진 탑에서 멀리 안개 사이로 타지마할이 고요히 서 있었습니다. &gt;부분에서,악바르황제가 아니라,샤 자한 아닌가요?제가 잘못 읽은거면,악바르황제도 거기서 죽었다는 건지..제가 좀 둔해서요 ㅋ

2013-01-23 15:54:38

혜향

아! 사진과 글 모든 것이 감동 감동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보살이십니다.<br />저도 인연되어 꼭 함께 스님과 함께 인도성지순례하는 그날을 꿈꿔봅니다. 감사합니다._()_

2013-01-21 14:47:23

대자행

들국화님의 순례기행소식과 스님의 모습,순례자님들의모습을 보면서 저도 순례자가되어 정말 &amp;#44104;동과 환희와 신심으로 눈시울을 적셔가며 잘읽었습니다 스님/ 수고&amp;#47622;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들국화님 고&amp;#47633;습니다 건걍은 괜찮으세요?

2013-01-20 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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