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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 대해 전혀 감사한 마음이 들지가 않아요.”
2016.10.23 경전반 특강 수련
"스님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누구나 수행을 배울 수 있나요?"
2016.8.26 정토수련원 신도로 준공식 및 전국대의원회의 입재법문
"정토회가 만일결사를 시작한 이유는?"
2016.5.29 (오전) 정토회 제8-8차 백일기도 회향식
2016.5.14 (오전) 부처님오신날 1,2,3부 법회 (정토회 회원)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스님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종일 5부에 걸쳐 봉축법요식에 참석해 기념법문을 했습니다.nbspnbsp매년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서울 정토회관에서는 5부에 걸쳐 봉축법요식이 진행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전 7시에는 활동가들을 위한 1부 법회가, 오전 10시에는 주간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위한 2부 법회가, 오후 1시에는 저녁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위한 3부 법회가, 오후 4시에는 이웃종교인들과 사회 인사들을 위한 4부 법회가, 저녁 7시 30분에는 청년들을 위한 5부 법회가 진행됐습니다.nbspnbsp▲ 서울 정토회관nbsp새벽부터 서울 정토회관은 부처님오신날 손님 맞이 준비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아침 7시가 되자 정토회 활동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축법요식 및 1부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부 법회는 대부분 2,3,4,5부 법회에서 스텝 역할을 맡은 활동가들입니다. 하루 종일 행사 준비하고 뒷정리 하느라 법문을 듣지 못할 수가 있는데, 이런 분들을 위해 아침 일찍 1부 법회가 열렸습니다.nbsp▲ 부처님오신날 1부 법회nbsp먼저 타종이 있은 후 만중생의 해탈을 염원하며 법륜 스님이 불단 앞으로 나와 헌향을 했습니다. 이어서 봉축법요식 순서에 따라 헌등, 헌화, 거불, 정근, 헌공예불이 차례대로 진행됐습니다.nbspnbsp▲ 헌공예불nbsp대중이 청법가와 삼배로 부처님오신날 기념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탄생하실 때의 묘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아주 쉽게 설명하면서 부처님오신날의 의미 또한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님의 해설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nbspnbsp“부처님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스스로 행복하셨고, 나아가 괴로운 이에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셨고, 행복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런 부처님의 삶을 상징화 한 것이 부처님의 탄생 당시에 대한 묘사입니다.nbspnbspnbsp부처님께서는 지금의 인도대륙 북쪽에 있는 히말라야 산 기슭, 카필라바스투 성의 룸비니에서 태어나셨어요. 아버지는 정반왕이고, 어머니는 마야왕비입니다. 어머니가 애를 낳으려고 친정으로 가던 길에서 부처님을 낳으셨어요. 길거리에서 낳았다는 건 뭘 상징할까요? 그분은 진리의 길을 탐구할 분임을 상징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평생 길을 걸으셨잖아요? 길에서 나시고, 길에서 도를 이루시고, 길을 따라 전법하시고, 길을 가다가 열반에 드셨으니까요. 여기서 길은 ‘도’, ‘진리’를 의미합니다. 부처님은 전 생애를 통해서 온전하게 진리의 세계에 계셨습니다.nbspnbsp경전에는 마야왕비께서 친정으로 가는 길에 룸비니라는 지역을 지나게 되었는데, 숲에 꽃이 너무 예뻐서 가마에서 내려서 오른손을 들어 꽃가지를 잡다가 산기를 느끼고 아기를 낳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때 아기가 오른쪽 옆구리로 나왔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왕절개를 한 게 아니고요. nbspnbspnbsp옆구리로 나왔다는 것은 당시 인도 설화에 비추어 볼 때 아기가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인도에는 4개의 계급이 있는데, 브라만은 신의 입에서, 크샤트리아는 신의 옆구리에서, 바이샤는 신의 배에서, 수드라는 신의 발바닥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옆구리로 나왔다는 것은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nbspnbsp그렇게 부처님께서 태어나시니까 대범천, 즉 마하 브라만들이 황금 그물을 쳐서 부처님을 받았습니다. 브라만은 창조의 신으로써 인도에서 최고의 신이에요. 그러니 이런 묘사는 부처님은 신까지도 공경하는 분, 신보다도 더 높은 분임을 상징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신과 인간의 스승’, 즉 ‘천인사’라고 하잖아요.nbspnbsp이어서 용왕이 더운 물과 찬물로 아기의 몸을 씻기자 아기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났다고 해요. nbsp‘황금빛’은 ‘깨달음의 광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것은 ‘이분이 깨달을 분이다’, ‘부처가 되실 분이다’ 하는 걸 상징합니다.nbspnbsp또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팔과 다리를 하늘로 뻗어서 ‘앵앵’ 거리고 우는데, 이분은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었고, 그러자 발을 디딘 곳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건 뭘 상징할까요? 여섯 발자국은 육도윤회, 즉 윤회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윤회의 세계에서는 우리들의 행복이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괴로웠다 즐거웠다 괴로웠다 즐거웠다 하는 것을 반복할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건 그분이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실 분임을 의미하는 겁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지속가능한 행복’, ‘다시는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는 행복’을 말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씩 걸은 뒤에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사자처럼 외치셨다고 합니다. 이때 ‘천상’은 신들의 세계, 정신 세계, 형이상학을 의미하고, ‘천하’는 인간 세계, 욕망의 세계, 물질 세계, 형이하학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통틀어서 깨달은 자가 가장 존귀한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사람과 신들의 스승, 즉 ‘천인사’라고도 하고, ‘세존’이라고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을 아상과 교만이 가득한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어서 외친 말씀이 ‘삼계개고 아당안지’입니다. ‘삼계’란 욕계, 색계, 무색계, 즉 이 세계 전체를 의미해요. 그래서 이것은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이 다 괴로움에 빠져있구나. 내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하는 뜻입니다.nbspnbsp이것은 모두 부처님의 삶의 방향을 부처님께서 태어났을 당시에 하셨던 일성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리라는 뜻이고,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스승이 되리라, 즉 스스로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해 주는 존재가 되리라는 뜻입니다. 이런 내용은 대승불교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게 아니라 소승불교에서도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nbspnbsp이런 부처님의 삶의 방향을 닮아가는 존재가 바로 보디사트바, 즉 보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살은 부처님과 그 원이 똑같습니다. 보살의 원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자리이타’라고 표현을 하죠. 자리이타는 ‘나를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이런 뜻인데, 우리 세상의 길은 그렇지가 않지요. 나는 좋은데 저 사람은 안 좋다는 게 있고, 저 사람은 좋다는데 나는 안 좋은 게 늘 있습니다.nbspnbspnbsp오늘 여러분들은 아기 부처님을 목욕을 시키는 ‘욕불의식’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나도 부처님처럼 무명의 때를 씻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나도 무명업식을 녹여서 성불하겠다는 의미에요. 그리고 그런 원을 세운 사람들한테 ‘그래, 너도 미래세에 성불할 거야’라고 말해주는 의식이 ‘마정수기’입니다. 제가 붓으로 여러분들의 이마에 찍어주는데, 이것은 ‘당신은 깨달음을 얻어 부처를 이루리라, 즉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리라, 자유와 행복을 얻으리라’ 하고 예언하는 의식입니다.”nbspnbsp스님의 기념 법문이 끝나고 이어서 ‘욕불의식’과 ‘마정수기’가 진행됐습니다. 인도 전통의상 사리를 곱게 차려 입고 4명의 마야 부인이 어간 문을 열고 등장하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대중들은 앞줄부터 차례대로 일어나서 아기 부처님에게 청수를 붓고, 합장한 채 스님 앞에 다가가 마정수기를 받았습니다. 어린 아이들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분들이 긴 줄을 이르며 욕불의식과 마중수기를 원할히 마쳤습니다.nbspnbsp▲ 법륜 스님에게 마정수기를 받고 있는 대중들nbsp욕불의식을 마치고 나서는 탄생 선언을 스님과 대중이 함께 읽어내려 갔습니다.nbspnbsp“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네.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빠져 있구나.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nbsp▲ 탄생 선언을 다함께 낭독하는 대중들nbsp앞서 스님의 법문에서 탄생 선언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고 명쾌한 설명을 들었기에 경전 내용을 함께 읽기가 수월했습니다. 덕분에 한 구절 한 구절 그 의미도 가슴에 새겨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다함께 발원문을 낭독한 후 마지막으로 오늘 법회에 참석한 인연공덕을 돌아가신 조상 영가들께 회향하는 천도재를 약식으로 지내면서 1부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2부 법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휴식 시간을 이용해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오전 10시가 되어 다시 2부 법회를 하기 위해 법당에 들어섰습니다. 2부 법회는 주간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주간반은 회원들이 많아 1부 법회 때보다 훨씬 많은 500여 명이 법당을 찾았습니다. 법회는 1부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nbspnbsp2부 법회에서도 스님의 봉축 기념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대부분 1부 법회와 내용이 비슷했지만, 특히 부처님오신날이 문화 행사로서 갖는 의미와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한 날로서의 의미에 대해 각각 설법해 준 부분이 인상적이였습니다.nbspnbsp▲ 부처님오신날 2부 법회nbsp그리고 스님은 즉문즉설 강연 또한 이런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편임을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는 부처님만 깨달을 수 있고 우리는 다 부처님을 추종만 해야 된다고 안 하셨어요. 우리는 다 눈 감고 살고 있었는데, 부처님은 그 눈을 떠서 살펴보니 괴로워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들에게 ‘눈 떠라’ 라고 하신 겁니다. 지금은 비록 눈을 감고 있더라도 눈만 뜨면 부처가 될 수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일체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라고 한 겁니다. 요즘 말로 옮기면 ‘누구나 다 행복할 수가 있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피부 빛깔이 검든 희든, 남자든 여자든, 장애가 있든 건강하든,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키가 크든 작든, 부자든 가난하든, 어릴 때 고생을 했든 안 했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관계없이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된 것들이 우리가 자유와 행복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다 자유로울 수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는 거예요.nbspnbspnbsp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불행해야 할 온갖 핑계를 대지요. ‘아니야. 나는 괴로워. 행복할 수가 없어’ 하면서 ‘키가 작으니까’, ‘얼굴이 검으니까’, ‘결혼을 못했으니까’, ‘돈이 없으니까’, ‘학벌이 나쁘니까’, ‘건강이 안 좋으니까’, ‘자식 때문에’, ‘부모 때문에’ 라고 그 이유를 5개씩, 10개씩 붙여서 자기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제가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런 너도 행복할 수 있다’ 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여러분들은 ‘아니에요, 저는 안돼요. 저는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래? 그러면 계속 불행해라’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자기가 좋아서 불행하겠다는데 어떡하겠어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10번을 ‘저는 불행합니다’ 라고 해도 ‘아니야. 넌 행복할 수 있어’ 라고 하시겠지만, 저는 한 3번밖에 안 들어줘요. nbspnbsp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이유는 첫째, 종교로서의 불교 문화 행사를 하는 것이고, 둘째, 이 날을 기해서 우리가 그분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우리는 누구나 다 그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즉문즉설에서 여러분들이 저에게 질문을 할 때 수많은 이유를 대며 괴롭다고 아우성을 쳐도,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듣고 ‘저건 진짜 괴로울 일이겠다’ 해도 사실은 괴로울 일이 아닙니다. ‘저 정도라면 정말 괴롭다는 생각이 굳어질 만하다’, 즉 ‘사로잡힘이 심하다’ 라고 할 순 있겠지만요. 예를 들어, 꿈에 뱀을 보고 놀란 사람한테는 ‘에이, 그 정도가 뭐’ 이러지만, 강도한테 쫓기는 꿈을 꾼 사람한테는 ‘아, 그건 좀 겁났겠다’ 이러는 수준인 겁니다. 그러나 눈을 뜨면 큰 꿈을 꿨든 작은 꿈을 꿨든, 악몽을 꿨든 길몽을 꿨든, 그 눈 감은 상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꿈의 종류만 다를 뿐 다 같은 꿈일 뿐이에요.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은 스님을 보고 ‘스님은 사람들의 온갖 얘기를 듣고 어떻게 저렇게 다 답을 할 수가 있을까?’ 할지 몰라도, 저는 답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즉문즉설을 못 해요. 제가 무슨 재주로 정답을 다 말할 수 있겠어요? 저는 계속 ‘눈 떠라’ 하는 얘기만 하는 겁니다. ‘강도 만났다’ 해도 ‘눈 떠라’, ‘마누라하고 헤어졌다’ 해도 ‘눈 떠라’, ‘애가 죽었다’ 해도 ‘눈 떠라’, 계속 ‘눈 떠라’ 하는 소리밖에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눈을 뜨면 마치 스님이 해결해 준 것처럼 말하고, 눈이 안 떠지면 ‘너하고 얘기해 봐야 소용도 없네’ 하는 겁니다. nbspnbspnbsp그러니까 그 사람이 눈을 뜨는 것하고 저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사실은 자기 복이에요. 눈을 뜨면 그 공덕이 자기한테 있는 것이고, 못 뜨면 공덕이 없는 것이고요. 이 ‘기막힌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 분이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이 태어나신 오늘을 기리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연구해서 진짜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오늘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면서 그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합니다.”nbsp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분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되새기기 위함이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nbspnbsp2부 법회에서도 강생찬탄, 욕불의식, 마정수기, 탄생선언, 발원문 낭독, 천도재 순서로 행사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특히 2부 법회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를 끌어 안은 채 아이가 스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게 했는데, 스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좋아서 활짝 웃는 아이, 인상을 찌푸리는 아이, 혓바닥을 내미는 아이 등등 표정도 각양각색이였습니다.nbspnbsp▲ 욕불의식nbsp2부 법회가 끝나자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파일날 절에 오면 꼭 먹고 가야 하는 음식이 있죠. 바로 비빔밥입니다.nbspnbsp▲ 점심시간에 제공된 비빔밥nbsp공양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고 덕분에 비빔밥은 수백개가 미리 셋팅이 되었고, 법회가 끝나자마자 앞마당으로 나온 대중들은 한 그릇씩 들고 삼삼오오 모여서 마당에 펼쳐진 돗자리에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봄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가운데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과 정겨운 이야기꽃이 곳곳에서 피었습니다.nbspnbsp▲ 1000개가 넘는 그릇을 설거지 하고 있는 봉사자들nbspnbsp한편 점심 식사가 제공되고 있는 앞마당 한편에서는 정토회 산하 단체들에서 마련한 다양한 이벤트 부스가 펼쳐졌습니다. JTS는 기아질병문맹퇴치 모금활동을, 좋은벗들은 신한촌역사회복재건 기금마련 홍보를, 에코붓다에서는 환경 상품 판매를, 정토출판에서는 스님의 책 판매를, 대학생정토회에서는 인도전통차 짜이 판매와 선재수련 홍보를 하며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습니다.nbspnbsp▲ 대학생정토회 작은짜이집 부스nbsp▲ JTS의 기아질병문맹 퇴치 모금활동 부스nbsp더욱이 3부 법회 참석자들이 법회를 듣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정토회관 앞마당은 한 때 시장통을 방불케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12시가 넘어서 2부 법회가 끝났는데, 스님은 휴식 시간을 이용해 점심 식사를 한 후 곧바로 오후 1시부터 3부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3부 법회는 저녁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nbspnbsp3부 법회에서도 스님의 봉축 기념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법문 내용은 1부, 2부와 대부분 비슷했지만 3부에서는 문제해결능력을 갖추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말씀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는 6년의 용맹정진 끝에 길을 찾으셨습니다. 그 길은 욕망을 따르는 쾌락도 아니요, 그 욕망을 무조건 억제하는 고행도 아니요,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따라가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 적정의 길, ‘중도’였습니다. ‘중도’란 중간이라는 개념이 아니에요. 그 길을 통해서 일체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행복으로 들어서는 수행법이 중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것이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깨닫고 나서 세상을 보니까, 즉 눈을 뜨고 나서 보니까 사람들이 죄다 눈을 감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눈 떠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고, 그 말씀을 듣고 부처님을 따라서 눈을 뜬 사람들이 생겨 나면서 출가한 수행자가 있게 됐고, 재가한 수행자가 있게 됐습니다.nbspnbsp▲ 부처님오신날 3부 법회nbsp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출가한 수행자는 다시 사제나 종교 지도자가 되고, 재가한 수행자는 다시 복을 비는 신자로 전락해서 불교가 다시 종교화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보자’ 라고 하면서 설립한 단체가 정토회입니다. 설립할 때 세 가지를 주창했어요. 바른 법을 구현해 보자는 취지로 ‘바른 불교’를 주창했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쉬운 불교’를 주창했고, 그것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체험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생활 불교’를 주창했습니다. nbspnbsp오늘 처음 오신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이분들은 다들 종교 문화를 체험하러 오셨지요? nbspnbspnbsp이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 지 두 달 되신 분도 있을 거고, 1년 다닌 분도 있을 거고, 온갖 사람들이 여기 모였는데, 정토회에 다닌 만큼 또 배운 만큼 조금이라도 행복해지셨어요?”nbsp“예.”nbsp“대답 소리를 들어보니 신통치 않네요. 그런데 ‘스님, 제가 공부가 좀 됐습니까? 수행이 좀 됐습니까?’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남한테 물어볼 게 아니에요. 자기가 자기를 보고 ‘옛날보다 번뇌가 좀 적어졌다’, ‘화가 좀 줄었다’, ‘고민이 줄었다’, ‘사고가 나도 옛날처럼 그렇게 크게 방황하지 않는다’ 이렇게 여겨질 정도로 마음의 파도타기가 조금씩 잔잔해져 가면 공부가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수행 좀 된 것 같아요?’라고 물으면 당연히 답은 ‘안 됐다’가 되는 겁니다. 자기 점검도 자기가 못 하는데 수행이 됐을 리가 있겠어요? nbspnbspnbsp불교니 기독교니, 종교니 과학이니, 승이니 속이니, 어느 종파니 하는 건 구시대의 얘기로서 더 이상 유효하지가 않아요. 부처님 당시에 브라만이니 크샤트리아니 바이샤니 수드라니,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부처님 법 안으로 들어오면 아무 의미가 없어졌듯이, 새로운 시대에는 서로 다르다고 칸막이 치고 논쟁해 봐야 별로 평가해 주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평가해 줄 거예요. 여러분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다녀봐야, 박사학위를 따봐야, 암기 능력만 길렀지 문제해결능력은 길러지지 않았잖아요. 단적인 예를 들어 볼까요? 결혼해서 한 이불 밑에 20년을 산 사람들끼리 문제해결을 못 해서 저한테 묻거든요. 창피한 일 아니에요? 자기가 낳아서 키운 애하고 대화가 안 돼서 괴롭다고 저한테 물어요. 저는 그 남편 얼굴도 못 봤고, 그 애 얼굴도 못 봤는데요. nbspnbspnbsp그러니까 지금까지 배운 것은 지식을 쌓는 데만 그친 거예요. 불교마저도 지식으로 삼으니까요. 그런데 지식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그 어떤 사람이 알고 있는 답보다도 더 유용한 답을 얻을 수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시끄러운 것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만나면 갈등이 생기고, 어떤 일에든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법이지요. 남북 간에도 그렇고, 한일관계도 그렇고, 국내문제도 그렇고, 가정문제도 그렇고, 세대차이가 생기는 이유도 다 견해가 상충되기 때문인데, 그걸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까 사회가 시끄러운 겁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줘야 되는데, 그게 전혀 안 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nbspnbsp부처님은 지식을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팔만대장경의 내용도 수많은 지식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뇌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법을 찾고, 그 해결법을 실천할 때 바로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는 내용이거든요. 그 원리가 사성제라고 하는 고집멸도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관점을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된다는 것이 ‘중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하신 최초 설법의 핵심은 첫째, 중도예요. 수행자는 치우치면 안 된다.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중도를 견지해라는 것입니다. 둘째, 사성제예요. 셋째, 사성제의 마지막인 도성제에 해당하는 ‘팔정도’입니다. 실천 방법에는 8가지 바른 길이 있으니 그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첫 설법의 순서가 그랬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현대사회는 이 법이 정말 유용한 시대입니다. 시절인연이 도래한 겁니다. 서구 유럽에서는 불법이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직 아시아에서는 종교로서의 불교, 문화로서의 불교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문제해결능력으로서의 불교를 체험한다면, 여러분들은 한국 안에서 뿐만 아니라, 또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큰 역할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수행을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죠?”nbsp“예.”nbsp“여러분들이 오늘처럼 이렇게 문화행사를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으면 해요. 본질을 딱 꿰뚫어서 ‘내가 약간 들떠서 우왕좌왕하고 다녔구나. 그러니 오늘을 기해서 부처님 오신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자’ 이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부처님 오신 날은 부처님의 생일 아닙니까? 그지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이 법의 이치를 알고 행하게 되면 다 부처가 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부처가 되면 오늘은 여러분들의 생일도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의 생일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nbspnbsp스님의 갑작스런 생일 축하 인사에 대중들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생일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수행 정진을 해서 해탈하면 우리의 생일이기도 하다는 말씀 속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수행이라는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진 욕불의식과 마정수기에서도 많은 대중들이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고 스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고 난 후 기쁜 마음이 되어 돌아갔습니다.nbspnbspnbsp오후 4시부터는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 천도교 교령님 등 이웃종교인들과 국회의원, 시장, 시민단체 관계자, 언론인, 드라마작가, 연예인 등 사회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4부 법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부터는 청년들이 청년들에 맞는 방식으로 특별히 준비한 5부 법회가 열렸고요. 4부 법회와 5부 법회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정토회에서는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전국 각 법당에서 연등 접수를 받습니다. nbsp이 세상 모든 이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하며 연등을 밝혀 보세요.nbsp전국 각 법당 연등 접수 안내nbsphttpgoo.glE8tZsC
2016.4.4 (저녁) 방송, 연극,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문경 봉암사에서 열렸던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 추모법회에 이이서 저녁 7시부터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을 주제로nbsp방송ㆍ연극ㆍ연예ㆍ작가ㆍ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길벗 모임 주관으로 열렸습니다. 길벗은 정토회에서 마음 공부를 하고 있는nbsp방송ㆍ연극ㆍ연예ㆍ작가ㆍ문화 예술인들의 모임입니다.nbspnbsp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 1층 강당 앞에서는 몇몇 방송인들이 강연 포스터를 들고 반갑게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고하는 봉사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격려를 한 후 강연장에 들어섰습니다.nbspnbsp▲ 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 1층 강당nbsp먼저 길벗 대표 소임을 맡고 있는 노희경 작가님이 무대에 올라와 참석자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nbspnbsp▲ 길벗 대표 노희경 작가nbsp“오늘 강연장으로 오면서 무척 설레었어요.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동료들이 그동안 했던 고민들을 쪽팔려 하지 않고, 민망해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마음껏 터놓는 자리로 오늘 강연을 마련했습니다. 어떤 질문이 나와도 함께 경청해보면 좋겠습니다. 좋은 스승이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좋은 스승님에게 좋은 말씀 듣고 봄날처럼 화사한 마음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nbspTV에서 자주 보았던 인기 연예인, 배우, 방송국 PD, 작가 등 많은 분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인생의 겨울을 따뜻한 봄날로 전환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봄날씨를 언급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요즘 같이 이렇게 좋은 봄날에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시간을 좀 내서 서울 근교라도 가서 자연 속에 있어보세요. 그래서 봄에 피어오르는 식물들을 한번 보세요. 굉장히 작고 여린 새싹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지 않습니까? 그 힘이 굉장한 겁니다. 대나무를 집 가까이에 심어놓으면 죽순이 구들을 뚫고 올라온다고 하잖아요. 그런 생명력을 느껴보는 게 필요합니다. 또 그런 생명력 강한 나물을 먹으면 우리 건강에도 아주 좋대요. 영양가를 분석해 보면 다른 채소와 별 차이는 없지만 그 기운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시골에서는 봄에 맨 처음 올라오는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봄나물은 고기 부럽지 않은 음식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도 그런 나물을 먹고, 대지도 밟고, 손으로 흙도 만져보세요. 도시 사람들은 거름에서 냄새가 난다고 약간 거북할지 몰라도 시골에서 그런 냄새를 오래 맡다보면 그것도 구수하게 느껴져요. 거름 냄새가 나야 농사짓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자기가 씨앗 심고 거름 뿌린 데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기분이 굉장히 좋아집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런 것을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더 잘살 거라고,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무실에만 앉아서 태양도 못 보고 전깃불 밑에서만 삽니까. 요즘 별 본 적 있어요? 밤하늘에 달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봄이니까 여유를 가져보세요. 집에서 키운 예쁘게 다듬은 인공 꽃 말고 자연에서 제멋대로 피어있는 꽃들을 보는 그런 여유 말이에요.nbspnbspnbsp이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텐데, 이런 봄날에도 여러분들은 저한테 ‘괴롭다’는 얘기를 하겠지요? 인생의 겨울을 따뜻한 봄날로 전환하는 게 수행입니다. 여러분은 수행이란 경전을 외고, 밥 굶고, 고기 안 먹고, 결혼도 안 하는 ‘금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욕망이 지나쳐서 화근이 될 때 그것을 멈추는 게 수행이지, 뭘 하지 말라는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괴로운 마음을 행복한 마음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nbspnbsp우리가 오늘 대화하는 목적은, 우리들 각자 마음의 어려움을 나누면서 ‘이게 정말 어려워 할 일인가, 아닌가?’를 살피고, 어려워하지 않아도 될 일임을 발견해서, 같은 조건에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겁니다.”nbsp스님의 환한 웃음에 청중들도 마음이 활짝 열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2시간 남짓한 동안 5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송 쪽 관계자들이여서 그 쪽 업무와 관련된 질문이 많았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가정과 직장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드라마 담당 PD님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아마도 많은 직장인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스님은 우리가 돈을 버는데 정신이 팔려서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 일깨워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드라마 담당 프로듀서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방송 일을 시작한지는 10년이 넘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 살짜리 아이를 둔 가장이기도 하고요. 제가 출퇴근시간이 불규칙한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가정에 충실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간이 남더라도 가족과 함께 있기보다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거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마음이 더 편합니다. 그러니 가족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정과 일 사이에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을까요?”nbsp“가정과 일 사이에서 어떤 일을 더 중요시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 때가 언제입니까?”nbsp“오늘 같이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일찍 귀가해서 아이와 아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한데,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거나 ‘커리어를 더 쌓아놔야 한다’는 강박도 있고, 솔직히 ‘드라마를 연출하는 일은 생존율이 길지 않다’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래서 쉽사리 귀가하지 못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면 새로운 걸 개발할 수 있을까요?”nbspnbsp“아니오, 어려울 것 같습니다.”nbspnbsp“예, 오히려 가족과 함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일과 가정은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닙니다.nbspnbsp예를 들어, 오늘 가족하고 보낼 것이냐? 아니면 스님 강연을 들을 것이냐? 둘 중에서 가족하고 보내는 게 좋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만 번뇌가 많아서 스님 강연을 듣는 게 좋겠다 판단이 되면 아내한테 전화해서 ‘오늘 내가 일찍 귀가하려고 했는데, 요즘 내가 좀 불안해서 스님 강연을 듣고 도움을 받아야겠다. 강연 듣고 귀가 하겠다’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이 강연을 듣는 게 자신한테도 좋은 일이니까요. 아내한테는 불이익이 되고 질문자만 이익인 것도 아니잖아요. 설령 아내가 이해를 못 해 주더라도 질문자 스스로 강연을 듣는 게 내 심리안정에 도움이 되고 그건 아내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강연을 들으면 됩니다. 이렇게 질문자 혼자 결정하지 말고, 아내한테 이야기를 하세요. 아내가 이해를 못 하면 질문자가 조금 인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까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법이 있고, 아내의 불평을 듣는 방법이 있어요. 요구를 들어주면 당연히 아내는 아무 말을 하지 않겠지요. 중요한 것은 불평을 듣는 경우인데, 그 때는 질문자가 그 불평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됩니다. 질문자 스스로 떳떳하면 ‘내가 강연을 듣고 좋아지면 당신의 오해는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풀어지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스스로 떳떳하면 상대가 오해하더라도 두려움은 안 생깁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상대가 오해하면 빨리 설득해서 오해를 풀려고 조급하지요? 그건 본인의 심리가 불안하기 때문인데, 본인이 안정되면 상대의 오해를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아내가 오해하는 것을 알아도 본인의 문제를 해결할 동안에는 그 오해를 좀 받으면서 갈 길을 가는 거예요.nbspnbsp그런 관점을 가지면 가정과 일은 절대 상충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자가 지금 직장생활에 충실하려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아내가 ‘나는 당신이 돈 버는 것도 싫고, 유명해지는 것도 싫다. 가정에 충실하면 좋겠다’라고 요구한다면 질문자는 아내의 요구를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강연을 듣거나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게 가정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정작 그런 것 필요 없다는데도 계속 자기 생각만 고집한다면, 어느 날 귀가했을 때 아내가 떠나버리고 집에 아무도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nbspnbsp제가 한 20년 전에 부부 열 쌍을 모아서 상담한 일이 있었어요. 먼저 남편들만 모아서 ‘아내가 당신한테 제일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더니 다섯 명이 ‘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아내가 어떻게 할 때 당신이 제일 위축되느냐?’라고 물었더니 ‘돈을 못 벌 때’라고 대답했어요. 반대로 아내들에게 ‘당신은 남편이 어떻게 할 때 제일 위축되느냐?’라고 물었더니 ‘아이 앞에서 질책할 때’라는 겁니다. 요즘은 그렇게 간 큰 남자가 별로 없지만 옛날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애들 앞에서 아내에게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애들한테 엄마는 하늘인데, 애들 앞에서 자신을 깔아뭉개버릴 때 아내들은 자신을 굉장히 하찮은 존재로 느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엄마들은 아이들 앞에서 존중받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남편들 중에 이런 아내들 마음을 인식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또 아내들은 남편이 돈 벌어오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게 첫 번째는 아니었습니다. 돈보다는 존중을 중요시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입장이 서로 다른 거예요.nbspnbspnbsp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로 서로 다르냐 하면, 제가 아는 여자분 중에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대기업 다니는 남편과 사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나한테 상담을 신청했는데 들어보니 이혼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저는 비오는 날 커피숍 창가에 앉아서 내리는 비를 보며 커피 한 잔 마시고 음악 듣는 게 좋아요. 그래서 제가 여러 번 남편한테 얘기했지만 남편은 청승맞게 뭐하는 짓이냐고 비오는 날 왜 밖에 나가냐고 그냥 집에서 커피 마시라고 해요.’라는 겁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그 남편은 학벌 좋고, 직장 좋고, 가정적이어서 집에도 일찍 들어오는 사람인데, 여자분이 그런 남편과 못 살겠다고 하니 시댁은 물론이고 친정집에서도 ‘미쳤다. 네가 호강에 받쳐서 요강깨는 소리를 한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느냐?’며 자기를 비난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답답해서 못 살겠다는 거예요. 결국 여자분은 온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혼한 뒤에 한 남자를 사귀었는데, 그 남자는 나이가 여자분 보다 열 살 이상 많고, 직업도 불분명한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여자분은 그 남자랑 비 오는 날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는 것이 통한다는 이유로 사귄 거예요. 어떻게 이런 것을 윤리·도덕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겠어요.nbspnbsp또 제가 미국의 어느 주에 법회를 갔다가 어떤 의사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됐어요. 그 댁 남편은 외국인 의사이고 부인은 65세의 한국인이었어요. 그 댁 부인이 저한테 ‘스님 아니면 제가 어떻게 이 마음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저는 남편이 의사라 집도 크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제게 잘해 줍니다. 남이 봤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저는 가슴이 답답합니다. 저에게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에 한국 영감과 6개월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거예요.nbspnbspnbsp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아마 안 될 거예요. 외국인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서로 말은 주고받겠지만 정서적 교감이 안 되니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분이 먹고살기 어려웠으면 정서적 교감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여유가 있다 보니 그런 것도 생각하게 됐을 거예요. 우리의 행복은 정서적인 것, 감정적인 것이거든요 정서적인 교감이 안 되니까 사는 게 답답했을 거예요. 무슨 문제라고 할 만한 게 있어야 남한테 가서도 ‘남편이 이런저런 능력이 없어서 힘들다’는 하소연이라도 하고 상대로부터 위로라도 받을 텐데, 질문자의 속마음을 남한테 얘기하면 ‘미쳤다’ 소리만 들을 것 같으니 스님한테 하소연을 한 거예요.nbspnbsp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성향이 다양하기 때문에 ‘사람은 다 이럴 거다’라고 일률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아내가 ‘집에 일찍 들어오고 아이와도 좀 놀아주라’고 요구하면 질문자가 거기에 맞추는 게 좋습니다. 직장만 너무 신경 쓰지 말고요.nbspnbsp그리고 질문자가 이러다간 직장에 정말 문제가 생기겠다 싶으면 아내한테 ‘나도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데, 내가 맡은 일에 집중을 안 하면 회사에서 잘릴 위험이 있다. 그러니 당신이 조금 힘들더라도 내가 직장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달라’ 하고 의논을 하세요. 그럼 아내가 당연히 이해할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아내가 ‘아쉽지만 당신 사정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래도 주말에는 조금 시간을 내주라.’라고 하면 질문자가 받아들이면 되지요. 이렇게 서로 대화를 통해 조정해야 합니다. 대개 여자들은 남자가 의논 안 하고 일에만 집중하면 나중에 대놓고 ‘내가 좋냐, 직장이 좋냐? 양자택일하라’라고 합니다. 사실 아내와 직장은 비교할 일이 아닌데도 사람 마음이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아내와 의논을 하세요. 만약 질문자가 ‘그런 걸 왜 아내와 의논하느냐’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돈을 벌어다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삶에 대해 서로 의논하는 게 부부이고, 그게 부부의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질문자가 아내한테 가서 자기 걱정을 계속 토로해서 아내 머리를 아프게 하라는 건 아닙니다. 아내가 걱정할까봐 말을 안 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에요. 서로 소통하는 게 사랑입니다.nbspnbsp예를 들어 가장이 직장을 그만뒀다면 자녀들을 모아놓고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그러니 아빠가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너희 용돈을 조금 줄여서 절약하면 좋겠다. 어떠냐.’라고 말하는 게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뭘 모르니까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이들을 가족구성원이 되게 하는 방법이고, 아이가 어른이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니까 서울역 앞에 노숙자가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또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편안하게 아내와 대화하세요. 질문자가 직장에 충실해야겠다 싶으면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또 아내가 돈보다는 가정을 우선시 해달라면 직장에 대해서 너무 미련을 갖지 말고요. 질문자가 PD로서 성공하려는 건 질문자의 욕망일 뿐, 삶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nbspnbsp지금 국회의원 출마한 사람들은 국회의원 되는 게 엄청난 일인 양 그러지만 옆에서 우리가 볼 때는 누가 당선되든 말든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초선한 사람은 재선에 목숨을 걸고, 2선하면 3선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볼 때는 그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잖아요. 3선하면 뭐하고, 4선하면 뭐하겠어요. 그러니까 욕망을 탁 놓은 상태에서 최선을 다한 뒤에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면 그 역할을 하고, 안 되면 그만이고. 이래야 하는데 거기에 목숨을 걸고 살잖아요.nbspnbspnbsp그런데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그렇게 살면 긴장하고 괴로워하다가 인생이 끝나요. 소중한 자기 아이와 재밌게 손잡고 놀던 추억 하나 못 만들고 말이에요. 세월호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죽은 뒤에 더 슬퍼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부모들은 악착같이 돈 벌어서 애들 공부시키는 데만 신경 썼지, 애하고 밥 한 끼 따뜻하게 먹고, 손잡고 놀러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예요. 악착같이 돈 버는 게 아이를 위하는 것인 줄 알고 그랬던 건데, 지나 보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잖아요. 어릴 때 뭘 먹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엄마, 아빠와 쌓은 추억이 더 중요한 겁니다. 그렇다고 꼭 비싼 놀이시설에 데리고 간 것만 추억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엄마 아빠와 같이 고생한 건 더 좋은 추억이 됩니다. 산에 갔다가 길을 잃었는데 같이 의논해서 길을 찾아 내려왔다는 게 더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어요.”nbsp“네, 감사합니다.” nbsp“질문자는 일이 없어도 약간 초조, 불안하다고 했는데, 그건 약간 정신질환이에요. ‘정신질환’이라고 했다고 너무 나쁘게 듣지 마세요. 감기 같은 거예요. 병원에 가서 의사와 얘기해 보세요. 그게 긴장의 문제라면 질문자가 긴장을 풀어야 하고, 호르몬의 문제라면 약으로 금방 해결됩니다.nbsp술 마시면 약간 마음이 들뜨고, 없던 용기도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지요? 그게 왜 그럴까요? 물질의 영향 때문입니다. 잠이 안 올 때 수면제를 먹으면 잠이 오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의 몸에서 어떤 물질이 분비되면 불안심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건 자기가 결심하고 마음을 다진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간단하게 진료하고 그것을 중화시키는 물질, 약을 투여하면 금방 안정이 될 수 있는 겁니다.nbspnbsp그리고 그런 불안증은 봄과 가을, 즉 계절 변화기에 더 쉽게 많이 생깁니다. 그런 문제로 병원에 가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볼 때는 병원에 갈 수준이 아니더라도 가서 체크해 보고 괜찮다면 더 좋고, 초기증상이라고 진단이 나오면 처방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금방 좋아지는데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고 지내다가 병을 키웁니다. 감기가 심해지면 폐렴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감기는 초기에 잡는 게 좋은 것과 같은 원리예요.nbspnbspnbsp질문자는 아까 일이 없는데도 집에 가려면 불안하고, 직장에 있기는 뭐하다고 했는데, 그건 제가 봤을 때 이미 병증에 들어간 수준입니다. 그러니 ‘내가 일 때문에 이렇다’ 라고 꼭 생각하지 마세요. 몸에서 그런 반응이 오는 건데도 그걸 모르니까 질문자가 일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한번 체크를 해 보세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다가 정작 그 돈을 벌어서 쌓고자 했던 가족들과의 소중한 추억은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씀은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 진료에 대한 조언까지 듣고 난 질문자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나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참석자들이 인기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방송인들이라는 점을 헤아리며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강조한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어떤 상황에 처하든, 어떤 조건에 처하든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다고, 동성을 좋아한다고, 얼굴이 검다고, 다리가 하나 없다고 불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실제로 행복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자꾸 ‘나는 이래서 불행하다’고 불행할 이유를 찾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누가 저한테 불행하다고 말하면 ‘그렇게 불행하고 싶니? 그렇다면 불행해라.’라고 하는 겁니다. ‘불행하고 싶다’고 정해 놓고 그 이유를 찾는 사람한테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nbspnbsp그렇다면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행복하다’고 정해 놓고 행복할 이유를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불행해야 할 이유만큼이나 행복해야 할 이유도 똑같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작품을 써야 하니까, 연기를 해야 하니까’ 힘들다고 하지만 똑같이 ‘작품을 써야 하니까, 연기를 해야 하니까’ 행복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nbspnbsp그런데 그냥 작품을 쓰고 연기를 하면 되지, 왜 잘 썼는지, 잘 했는지까지 여러분이 신경을 씁니까. 그건 독자나 시청자가 결정할 문제잖아요. 스스로 ‘나는 연기를 잘 해야 해’ 한다고 잘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법문 잘 해야겠다’ 라고 결심한다고 잘 하게 될까요? 여러분들이 ‘스님, 오늘 법문 잘 하더라, 못 하더라’ 하고 판단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니까 제가 거기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지요. 제가 거기에 구애를 받으면, 즉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해서 자꾸 신경 쓰면 저는 여러분의 노예가 됩니다. 제가 왜 여러분의 노예로 삽니까? 저는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살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도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사세요.nbspnbsp여러분의 직업이 인기에 민감한 직업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런데 작가든 배우든 누구나 다 자기가 좋아서 그 길을 선택한 거잖아요. 다들 열심히 하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인기라는 건 원래 영원한 게 아닌 일장춘몽이에요. 1년 열두 달 하는 해수욕장이 어디 있나요. 여름에 반짝하고 마는 거지요. 그래도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도 인기가 있는 기간을 딱 3년으로만 잡으세요. 그 후에도 인기가 유지되면 재수 없어서 그런 줄 알고요.nbspnbspnbsp그 다음부터는 즐기세요. 거기에 매달리지도 말고요. 그리고 감사하세요. ‘3년이 지났는데도 여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세요.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내고,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면서 살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게 살아보세요.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축복과 같은 격려 말씀에 방송문화예술인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강연장이 혼잡스러워질 것을 우려해 인기 연예인들은 스님께 인사만 하고 곧바로 강연장을 빠져나갔고, 강연을 준비한 정토회 방송문화예술인들의 모임 ‘길벗’ 식구들만 남아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방송, 문화, 예술을 통해 행복을 널리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방송, 연극,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마음공부 모임nbsp‘길벗’ 봉사자들과 함께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길벗 대표 소임을 맡고 있는 노희경 작가님을 격려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밤 10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2.28 행자대학원 8기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후에 서원행자대회를 모두 마친 후 저녁 6시부터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행자대학원 8기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3년 동안의 수련 과정을 마치고 오늘 졸업하게 된 행자님 한 분을 위해 졸업 기념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졸업식이 열리기 전 한바탕 흰 눈이 펑펑 내려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이 하얗게 변해 절경을 보여주었습니다. 눈이 그치니 건너편에 보이는 희양산도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운치를 더했습니다.nbsp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nbsp저녁 6시가 되자 대웅전은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행자님들과 법사님들로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 특히 일주일 전에 입재한 백일출가 27기 행자님들도 함께 참석해 풍성함을 더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으로 여법하게 졸업식을 시작한 후 사회자가 행자대학원 8기 경과 보고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행자대학원 8기는 2013년 3월에 7명이 입재하였고, 그 중 한 명이 3년 과정을 마치고 오늘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신예슬님입니다.nbspnbsp▲ 오늘 졸업을 하게 된 행자대학원 8기 신예슬님nbsp1학년 1학기는 ‘생태적인 삶과 공동체 운영’을 목표로 봉화에서 생태 주택을 지으며 봉화수련원 불사를 하였고, 2학기는 문경에서 농사, 퇴비화 관련 일수행을 하며 순환적인 삶에 대해 공부하며 공동체를 체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학년 1학기는 NGO 활동을 통한 사회 실천가로서의 지도력 함양을 목표로 서울에서 평화재단과 JTS에서 근무하며 통일, 환경, 복지 등 여러 분야의 사회활동을 경험했습니다. 2학년 2학기와 3학년 1학기는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통한 국제 구호 활동을 목표로 인도JTS에 파견되어 마을개발, 회계, 총무 역할을 맡으며 JTS의 이념과 사상을 이해하는 실습을 하였습니다. 3학년 2학기는 문경에서 원력 보살의 삶과 경영 학습을 통한 미래 문명을 이끌 지도자 교양을 목표로 행자원 신입기수 간사 소임을 맡아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경과 보고를 들으니 의젓한 수행자 한 명이 탄생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중들은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친 신예슬 행자님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현재 행자대학원 상임법사를 맡고 있는 묘수 법사님의 인사 말씀이 있었습니다.nbspnbsp▲ 인사말을 하고 있는 묘수 법사님nbspnbsp“여러 대중들 덕분에 무사히 졸업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법사님들의 지도가 있었고, 서울과 인도에서도 각 부서 팀장님들도 지도를 잘 해주셨고, 중간에 그만두게 된 도반들까지도 ‘우리 몫까지 잘 해달라’는 응원을 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아서 8기 대표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행자대학원의 목표인 미래 문명을 이끌어갈 보살이 되어 홀로 설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년 동안 갈고 닦은 것이 바탕이 되어 새로운 길을 여는 데에 한 역할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서 기쁩니다.”nbspnbsp이어서 정토수련원 원장인 유수 스님이 축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정토수련원 원장 유수 스님nbspnbsp“지난 3년은 연습이었고 오늘 졸업을 하게 되면 이제 중원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눈 밝은 수행자가 되셔서 정토회의 새 지평을 열어서 오래된 저희 선배들이 오히려 후배님을 보고 배우는, 행자님으로 인해서 정토회가 더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수행자로 거듭나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지도법사님께서 정말 바쁘신데 오늘 참석하셔서 한 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nbsp선배 법사님들의 따뜻한 축하와 격려 말씀에 신예슬 행자님은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다음은 신예슬 행자님의 후배 기수가 되는 9기, 12기 행자님들의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스크린에는 신예슬 행자님의 지난 3년 동안의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 슬라이드가 흘러가는 가운데, 축하의 마음을 담아 신나는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에 “선배님 졸업을 축합니다”는 문구를 펼쳐들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선배와 후배의 돈독한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 9기, 12기 행자대학원생들의 축하 공연nbspnbsp이어서 행자님들은 청법가를 부르며 법륜 스님에게 졸업기념법문을 청했습니다. 법상에 오른 스님은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졸업 후에도 진정한 수행자로 거듭나려면 어떤 관점을 갖고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졸업하는 사람은 한 명이지만 스님은 2시간에 걸쳐 정성을 기울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행자대학원 제8기 무애승 신예슬 법우님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애초에 7명이 입학했는데 그 중 1명이 오늘 졸업하게 되었다는 경과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졸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nbspnbsp‘행자대학원’이라고 할 때 ‘행자’는 수행자의 줄임말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을 수행자라고 할까요? 해탈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붓다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 아니며, 출가수행자인 스님은 제사장이 아니고, 재가수행자는 복을 비는 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해탈과 열반으로 함께 나아가는 수행자들로서 도반의 관계입니다.nbspnbsp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수행공동체와 신앙공동체를 세상 사람들은 헷갈려하는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이 그런 건 당연하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정토회 안에서도 늘 헷갈려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힘든 사람들, 즉 배고픈 사람을 돕거나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거나 아이들을 보살피는 구호활동을 하는 입장에 서 있지 구호를 받는 대상이 아닙니다.nbsp물론 정토회로 힘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 힘듦을 극복하는 방식이 누군가의 보살핌이나 도움을 받는 방식이라면 그건 구호소 수준이 되는 겁니다. 그냥 다른 종교와 별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이 수행을 통해서 무지를 깨치고, 의지심이나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수행자라 할 만합니다. 수행자가 남을 돕고 복을 지어서 열반에 이른다고 할 순 있어도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열반에 이른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들이 관점을 그렇게 바로 잡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누가 나에게 잘 해 주면 좋아서 붙어있고, 잘 안 해 주면 싫어서 떨어지고, 좋은 일이 있으면 붙어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떨어집니다. 바깥 세상에서 살면서 그렇게 하는 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왜 나를 안 도와주나? 왜 나를 안 사랑해 주나?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나?’ 라고 번뇌를 일으킨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닙니다. 수행의 관점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좇는 것으로 행복을 삼는 것은 윤회의 씨앗을 심는 일인데, 그걸 행복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게 바로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거기에 편향되어 있습니다.nbsp수행자적 관점을 잡기가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그 관점을 딱 잡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서 수행자에 조금씩 근접해 가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은 안 되더라도 수행 관점을 똑바로 세워서 방향을 잘 잡고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관점을 놓쳐버리면 세월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져 버립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참선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염불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불교 교리를 많이 배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절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관점을 먼저 잡고 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노동을 하든 봉사를 해야 합니다.nbspnbsp이 자리에 백일출가생들도 함께 있는데, 백일출가생들도 세상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새로운 길을 한번 찾아보려고 여기 들어왔지 수행의 관점을 탁 잡아서 살아보겠다고 여기 들어온 건 아닐 거예요. 본인은 발심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착각이에요.nbspnbspnbsp그래서 지금 막 헤매고 있는 것이 용인됩니다. 사실 헤맬 수밖에 없고요. 밖에서 살기가 힘들었으니까 여기 들어와서 도움도 좀 얻고 위안도 얻어서 편안해 지려고 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렇지가 않으니까 번뇌가 생기고 더 힘들지요. 그러니 여기 수행공동체에 들어올 때는 먼저 관점을 딱 잡아야 합니다. 되고 안 되고는 부차적입니다.nbspnbsp그런데 관점이 안 잡혀 있기 때문에 우선 동의조차 안 한 사람이 많을 거예요. ‘애초에 이런 방식을 선택하지 말 걸’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여기 들어와서 살아보니 집에서 살았던 것보다 생활하기가 더 불편하지요? 먹고 자는 것도 불편하고, 일하는 시간도 더 길고,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좋은 집에서 왜 힘들었을까요? 지내기는 편했어도 각자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다는 거잖아요.nbspnbsp고타마 싣다르타의 위대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그 어떤 사람이 누리는 삶의 조건보다 고타마 싣다르타는 더 훌륭한 조건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조건을 못 누려봤기 때문에 ‘환경이 좀 좋아지면, 돈이 많이 생기면, 지위가 높아지면, 건강해지면, 인기가 있으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리라’ 하는 환상을 갖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이 물질적으로 많이 좋아졌는데도 인간의 고뇌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수행이 다시 꽃피울 가능성이 높은 거예요. 실제로 여러분들이 바라는 그곳에 도달해 봐도 인생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해도 속으로는 ‘그래도 나는 한번 그렇게 살아봤으면’ 하지요?nbspnbspnbsp스님은 안 해 보고도 어떻게 알까요? 저는 거기에 도달해 본 사람들, 즉 재벌, 정치지도자, 인기 연예인, 인기 스포츠선수 등을 만나서 상담을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볼 때는 그들이 굉장하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안 그렇습니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께서 이것에 대해 참 묘사를 잘해 놓으셨어요. 세 여인이 부처님을 유혹할 때 부처님께서는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한 것들아’ 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씀이 진정 맞습니다. 재벌, 정치지도자, 인기 연예인, 인기 스포츠선수야말로 잘 채색된 항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잘 채색되었으면 천하가 다 부러워하겠어요? 그런데 실제 그들의 마음에는 정말 똥만 가득 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딱 좋을 만큼 그들 마음 속에는 질투, 시기, 미움, 불안, 초조, 욕망 등이 여러분의 10배쯤 더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부자인 모기업 회장이 자기 형님한테 ‘한 푼도 못 준다’고 재판까지 했잖아요? 여러분은 아무리 화가 나도 형님한테 ‘너한테 한 푼도 못 준다’라고는 안 할 겁니다.nbspnbspnbsp지금은 일반인들도 옛날로 치면 왕궁 수준으로 먹고 살잖아요. 여러분들이 입는 옷, 사는 집, 먹는 음식은 거의 옛날 왕궁 수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2,600년 전에 그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고뇌가 해결 안 되는 걸 아시고 ‘이게 아니구나’ 하고 왕궁을 나오신 겁니다. 그래서 세속에 미련이 없었던 것입니다.nbspnbsp관점을 딱 잡으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7명이 입학했는데 고작 1명만 남았다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1천 명이 입학해서 1명이 남든, 1천 명이 입학해서 1천 명이 다 남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기는 수행자의 길을 갈 사람을 모으는 곳이니까 1만 명이 오더라도 수행자가 아니면 다 나가야 하고, 3명만 오더라도 그들이 수행자라면 다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꼭 정토회에 남아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수행의 관점을 딱 잡았으면 졸업하고 나서 사회로 나가서 살아도 되고, 결혼해도 되고,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좋다면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출가수행뿐 아니라 재가수행의 길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누구든 힘들면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힘들 때 누가 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좋지요. 중생이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의지해서 행복을 찾으면 영원히 고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도반이 같이 수행하다가 속퇴하더니 결혼해서 잘 살더라 하는 게 나한테 영향을 준다면 그건 수행이 아닙니다. 문경에 있을 때는 수행적 원칙이 잘 지켜지는데 집에 가니까 잘 안 지켜지더라 하는 얘기가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그게 수행자의 길은 아닙니다. 수행자라면 명상 시간엔 명상을 해서 그 원칙을 지켜나가고, 일과 시간엔 일을 하면서 지켜나가고, 농사를 지으라고 하면 농사 지으면서 지켜나가고, 혼자 있으면 혼자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늙어서 어렵고, 아파서 힘들고, 혼자 있어서 외롭고, 둘이 있으니 귀찮다고 하는 건 관점을 놓친 채 중생놀음을 하고 있는 겁니다. 또 여러분은 ‘돈만 있으면, 사람만 더 있으면, 내가 대통령이면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라고 하지만, 돈이 없고, 사람이 없고, 내가 대통령이 아닌 게 현실이잖아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수행은 아니라는 겁니다.” nbspnbsp스님은 함께 참석한 백일출가생들을 헤아리며 수행의 관점을 잡아주기 위해 더욱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1만 명이 들어오더라도 수행자가 아니면 다 나가야 한다는 말씀에는 정신이 번쩍 차려졌습니다. 확고부동한 수행의 원칙을 가슴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졸업하는 행자님 한 명을 축하하기 위해 정토회 법사단이 대거 참석한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습니다.nbspnbspnbsp“그동안 법사 수계자도 5명 내지 10명이 안 되면 수계를 안 했거든요. 그런데 행자대학원이 얼마나 소중하기에 졸업자가 1명 밖에 안 남았는데도 이렇게 법사란 법사는 다 와서 축하하는 걸까요?nbspnbsp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한 명이 바로 수행자가 되기 위한 길을 지금 걸으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졸업하는 행자님은 부디 이 수행의 관점을 놓치지 마세요. 수행자의 길은 꾸준히 가야 하는 길입니다.”nbspnbsp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정토회와 스님이 얼마나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졸업하는 행자님이 앞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면 좋을지 격려 말씀을 주었습니다.nbspnbsp“운전에 비유하자면 행자대학원 과정은 운전교습소 안에서 운전 연습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졸업은 본격적으로 도로 주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안에서 흔들릴 때는 그래도 담당 법사님이나 도반과 같은 울타리가 있어 지켜 주지만, 졸업을 해서 현장에 배치가 되면 도로 주행하는 것과 같아서 본인만 잘 한다고 일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끼어드는 차도 있고, 앞에 가던 차가 급정거도 하고, 돌이 날아오는 등 온갖 일이 벌어지는데, 그걸 다 ‘나는 잘 했는데 저 사람 때문이다’라고 하면 그게 핑계는 되겠지만 본인이 사고 당하는 걸 면하게 해 줄 비법은 아니에요.nbspnbspnbsp그러니 주행할 때는 선행 차량이 급정거 할 것을 대비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가야 하고,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약간 양보도 해 주면서 운전을 해야 되는 것처럼, 울타리가 없어졌으니 이제는 수행자로서 자립을 해야 합니다. 자기 인생에 대해서 수행자로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일종의 만행이지요. ‘이거 하고 싶고 저거 하고 싶다’가 아니라 이것 하라면 이것 하고, 저것 하라면 저것 하고,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 해 보고 싶은 것도 해 보고, 하기 싫은 것도 해 보고, 그러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사람, 경계에 따라 흔들리긴 하지만 중심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만약 정토회에 큰 사고가 나서 다 죽어버리고 나 혼자 남았다고 해도 nbspDNA 복원하듯이 정토회를 그대로 복원해 낼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nbspnbsp미국에 혼자 파견되었다고 해도 ‘미국에 나 혼자 있으니 외로워서 안 되겠다’ 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나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다 고뇌 속에서 삽니다. 그러니 1년이든 2년이든 파출부를 하든지, 비서나 하인이 되든지 해서, 그가 힘들 때 위로도 해 주고 도와주면서 교화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에서부터 교화를 해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위로 교화를 해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씨앗을 심고 일궈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영어를 몰라도 되고, 돈이 없어도 됩니다. 아프리카에 떨어지면 아프리카에서 하고, 미국에 떨어지면 미국에서 하고, 동남아에 떨어지면 동남아에서 하고, 만약 안산다문화센터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노동자들을 살살 돕다가 그들에게 전법을 하면, 그들이 본국인 스리랑카로 돌아가거나 태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도 불법의 씨가 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씨앗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세력을 얼마나 만드느냐 하는 건 부차적인 것입니다.nbspnbsp그런 관점을 딱 갖고 입지를 세우면 뭘 하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농사를 지으라면 농사를 살살 지으면서 이런 저런 실험해 보고, 동네 노인들이 농사짓는 것도 도와주면서 ‘미래에는 인류의 먹거리가 중요한 문제가 되니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어떻게 하면 안전한 먹거리를 보급할 수 있을까?’ 를 연구해야지요. 그런데 욕심은 내면 안 됩니다. 욕심을 내면 판로를 빨리 모색해 주지 않는다는 등 불만을 갖게 되니까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 해 나가야 합니다.nbspnbsp수행의 씨앗을 뿌리는 게 진정한 전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씨앗을 하나 심게 되었으니까 어디를 가든지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nbspnbsp선불교에서는 달마 대사가 중국 땅에 와서 뿌린 씨앗이 몇 대를 내려가도록 확산이 되지 않다가 5대를 내려간 뒤 6조에 와서야 확산되었다고 하잖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씨앗을 뿌린다 해서 금방 어떻게 되는 건 아니고 다 시절인연이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행자님은 아직 젊으니까 마음이 남자한테도 갔다가 돈한테도 갔다가 왔다갔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오뚝이처럼 엉덩이는 딱 붙여놓고 왔다갔다 해야지 뿌리가 뽑히면 안 됩니다. 그렇게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그러면 행자님이 이제 졸업 못한 나머지 7명 역할을 다 하면 되겠네요. 7명치 짐을 다 짊어지고 가려면 앞으로 수고가 많으시겠습니다.nbspnbspnbsp스님도 같이 하겠다고 해 놓고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금 이렇게 일을 많이 하게 된 겁니다. 먼저 죽은 사람들 일도 해야 되고, 중간에 그만 둔 사람들 일도 해야 되고, 아픈 사람들 일도 해야 되니까요. 같이 하겠다고 했다가 먼저 죽거나 떠났다고 해서 나도 따라서 죽고 떠나면 안 되잖아요. 죽고 떠나는 건 그들의 일이니까요.nbspnbspnbsp수행자는 원을 한번 세웠으면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꾸준히 해 나가려면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가 없는데 어떻게 꾸준히 하겠어요? 재미가 있으려면 항상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러면 되나? 이러니까 안 되네? 그럼 이렇게 할까?’ 이렇게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재미가 생기고, 그래야 집중력이 생기고,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되고 안 되는 것에 너무 흔들리지 마세요. 그렇게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에 참석한 대중들도 박수갈채로 격려의 마음을 보태었습니다. 신예슬 행자님이 앞으로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게 될지 아직 발표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디를 가든 수행자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법문을 마친 후 스님이 직접 신예슬 행자님에게 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졸업장을 받는 행자님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 졸업장 수여nbspnbsp이어서 신예슬 행자님은 그동안 많은 대중들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무사히 졸업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대중들에게 삼배하고 있는 신예슬 행자님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졸업식을 모두 마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지난 3년 동안 가르침을 잘 설해준 법륜 스님과 함께, 다음은 유수 스님과 묘수 법사님과 함께, 다음은 법사단 전체와 함께, 다음은 행자대학원 후배들과 함께, 마지막으로는 졸업식에 참석한 모든 대중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nbsp한 명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문구가 떠올랐습니다.nbspnbsp대웅전을 나와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가 일부 막히기는 했지만 밤 12시를 넘기지 않고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부터 프레스센터 19층에서 3.1운동의 정신을 이어 민족의 화해와 평화, 신뢰 회복을 위한 종교인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입니다. 스님도 5개 종단의 지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각성을 호소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2.11 정초순회법회 2일째 부산울산 지부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정초순회법회 두 번째 날로 부산울산지부 정회원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오후 2시에는 주간반을 위해,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을 위해 법회가 열렸습니다. 부산울산지부는 무대에서는 무뚝뚝한 듯 하지만 무엇이든 실천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의리있는 활동가들이 많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부산과 울산 활동가들이 오늘은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법당에 하나 둘 모여들더니 무뚝뚝함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여기저기 반가운 수다꽃이 피었습니다.nbsp▲ 주간반 정초법회nbsp오후 2시가 되자 해운대정토회 대법당은 210여 명의 정회원들로 법당이 가득 찼습니다. 해운대법당은 2004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높은 건물이 앞을 가렸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 해운대법당을 방문한 도반들은 창문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를 보고선 감탄사를 연발했다지요.nbspnbsp잠시 죽비소리에 깨어 주변을 환기시키고, 하경화 부산울산지부 사무국장님의 따뜻한 인사말을 들었습니다.nbspnbsp▲ 하경화 부산울산지부 사무국장nbsp“오늘 새해를 맞이해서 지도법사님과 상임법사님을 모셨습니다. 정회원들이 함께하는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스승님을 모시고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우리들은 참 행복하고 복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와 같이 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nbspnbsp먼저 지난 1년간 부산울산지부의 발자취를 담은 영상을 보며 한 해를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법당 별로 무대 앞으로 나와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울산법당에서 보여준 ‘통일코리아’ 구호를 시작으로 쉴 새 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nbspnbsp▲ 통일코리아 구호를 외친 울산정토회nbsp부산울산지부에는 5개 정토회와 13개 법당이 있습니다. 동래정토회, 해운대정토회, 울산정토회, 사하정토회, 서면정토회 순서로 나와서 작은 퍼포먼스들을 보여주었습니다. nbspnbsp특히 대연법당에서는 춤실력이 뛰어난 최정예 인원으로 팀을 꾸려 나왔는데, ‘저 푸른 초원 위에’ 라는 노래와 율동을 멋지게 보여주어 생기발랄한 분위기에 정점을 찍어주었습니다.nbspnbsp▲ 대연법당의 노래와 율동nbsp각 법당 소개와 장기자랑이 끝난 뒤 2016년 신규 정회원이 된 분들을 큰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새롭게 발심행자가 된 해운대법당 임수진님의 소감문을 들었습니다. 임수진님은 “남편이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했는데, 부처님의 법을 공부하고 나니 상처받고 싶은 내 업식이 남편을 핑계로 불행을 자초했다는 것이었다”라고 하면서 “지금도 여전히 상처를 받고 있지만, 다만 그것이 내 업식이 상대를 핑계로 불행해지고자 하는 것임을 부지런히 알아차린다”며 불법을 만난 것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대중들은 박수로 도반의 성장을 축하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한바탕 재미있게 웃은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스님은 정토회의 정회원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마음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많은 사람들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우리들 마음대로 안 됩니다. 내가 원한다고 그것이 다 이루어지고 원하지 않는다고 다 안 일어나고 그런 게 아니에요. 마치 오늘 맑았으면 하지만 비가 올 수도 있고, 오늘 비가 왔으면 하지만 맑을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nbsp‘내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해 달라’ 이게 신자입니다. 내 능력으로는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 그런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떤 힘 있는 자, 즉 ‘신’께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분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준다고 믿는 자, 그래서 신이 있다고 믿고, 신의 능력을 믿는 자, 신의 은총을 받고자 하는 자가 바로 ‘신자’입니다.nbspnbsp그런데 그 중간에서 신의 능력을 대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을 ‘제사장’ 또는 ‘사제’라고 합니다. 그 신의 이름이 ‘알라’라면 무슬림이라고 하고, ‘하나님’이라면 기독교라고 하고, ‘부처님’이라면 불교라고 하지요. 그 외에도 칠성신, 산신, 해신, 수신도 있습니다. 이런 걸 종교라고 합니다. 종교에는 3대 요소가 있는데, 능력을 가진 ‘신’, 그 신의 힘을 대행하는 ‘사제’, 거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신자’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난 후 그런 능력을 가진 자는 없기 때문에 그 능력을 대행하는 자도 필요 없고, 비는 행위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그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안 될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 일들을 내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돼야 합니다. 날씨로 비유한다면, 때로는 춥고, 때로는 더울 수가 있는데, 춥다고 ‘덥게 해 달라’, 덥다고 ‘시원하게 해 달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 주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추우면 추위를 대비를 해서 옷을 더 입든지 난방을 하든지 하고, 더우면 더위에 대비해서 나무 그늘을 쉼터로 하든지 냉방을 하든지 동굴 속으로 들어가든지 하면 되는 겁니다. 산이 높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높은 산을 오를 수 있는 등반준비를 하든지, 길이 멀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먼 길 갈 수 있는 준비를 하든지, 날이 어둡다고 한탄하지 말고 어두운 길을 밝힐 등불을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nbspnbspnbsp이런 사람을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떤 속박에서도 벗어난 상태인 ‘해탈’과 어떤 괴로움도 없는 상태인 ‘열반’의 길로 나아가는 자들을 수행자라고 하고, 그 해탈과 열반을 성취한 자를 ‘붓다’라고 부릅니다. 이게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길을 가는 수행자에는 출가해서 가는 ‘출가수행자’가 있고, 재가하면서 수행하는 ‘재가수행자’가 있고, 또 남자가 수행하면 남자수행자, 여자가 수행하면 여자수행자라고 해서, 출가한 남자수행자를 ‘비구’, 출가한 여자수행자를 ‘비구니’, 재가 남자수행자를 ‘우바새’, 재가 여자수행자를 ‘우바이’, 이렇게 크게 4종류로 나눕니다. 이것을 ‘사부대중’이라고 합니다.nbspnbsp그런데 이렇게 수행자의 길을 가는 불교의 가르침이 세상에 물들어 종교화되면서, 부처님은 마치 신 같은 존재가 되고, 출가 스님들은 제사장이 되고, 재가수행자는 신자가 되어서, 불교도 세상에 있는 여느 종교와 똑같이 그냥 하나의 종교가 됐습니다. 정토회가 창립된 것은, 이것을 다시 본래 부처님 가르침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를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스승이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뭘 해 주는 신적 존재가 아닙니다. 스님들은 우리의 복을 대신 빌어주는 사제나 제사장이 아니고 출가수행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은 복이나 비는 신자들이 아니고 재가해 있으면서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재가수행자들입니다. 그래서 오직 정토회에는 수행자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토행자입니다.nbspnbsp제가 미국이나 남미, 아프리카에 가서 법을 설한다면 오직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만 설하고, 수행자 그룹만 있게 되겠지만, 이미 한국이나 중국, 동남아시아에는 종교화된 불교가 있다 보니까 이 둘이 구분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정토회 안에도 종교로서의 불교를 따르는 신자가 있고,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수행자가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것은 수행자의 길뿐이지만 이 세상에는 불교 신자들도 많기 때문에 ‘신자들은 다 다른 절에 가고 여기는 수행자만 오라’고 해도 다 섞여서 같이 옵니다. 그래서 이게 문제입니다. nbspnbspnbsp그런데 이걸 내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독교 신자든 무슬림 신자든 불교 신자든 무교든 관계없이 다 수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 신자도 여기 와서 수행을 할 수가 있고, 기독교 신자도 여기 와서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nbspnbsp정토회는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불리울 때는 그냥 ‘절’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일반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정토사’라고 안 하고 ‘정토회’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는 수행자들만 모이겠다’는 의미로 ‘사’라고 안 하고 ‘회’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인 수행자들을 ‘신자’라고 안 부르고 불교용어로는 ‘정토행자’라고 부르고, 세속적인 용어로는 ‘정토회원’ 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정토회원 속에는 신자도 있고 수행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원 중에서 수행자는 조금 분리를 시켜야 되겠다 싶어서 자기가 ‘수행자가 되겠다’ 하는 사람은 따로 원서를 쓰도록 하여 정토회원 중에 ‘정회원’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nbspnbsp정초기도 할 때 상임법사님이 법당마다 가서 만날 때는 정토회원들이 모이는 자리이고, 오늘은 정토회원 중에 정회원만 모이는 자리, 즉 수행자들만 모이는 자리입니다. 정토회에서는 궁극의 목표가 수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회 앞에 ‘수행공동체’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수행공동체 정토회’라고 하는 겁니다.nbspnbspnbsp정토회는 불교신자도 수용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와서 복을 빌든 뭘 하든 상관을 안 합니다. 개인 신앙은 간섭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토회원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복을 빌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정토회의 창립 취지에 어긋나는 겁니다. 개인의 신앙은 존중하기 때문에 개인은 이 종파에 다니든 저 종파에 다니든, 이 절에 다니든 저 절에 다니든, 절에 다니든 교회에 다니든, 복을 빌든 안 빌든, 그것은 간섭하지 않습니다. 여기 와서 개인 복을 빌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토회가 공식적으로는 개인 복을 빌지 않습니다.nbspnbsp그런데 정토회가 ‘복을 빌지 않는다’고 해놓고도 가끔 복을 빌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 복을 빕니까? 통일이나 평화에 대한 기도를 할 때입니다. 들어주는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니까 우리도 한 번 빌어보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준비해서, 우리가 원을 세워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행자이지 복을 비는 신자가 아니라는 것은 명심해야 합니다.nbspnbspnbsp정회원 여러분들은 각자 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신이 이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첫째, 수행을 해야 됩니다. 수행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이잖습니까. 해탈과 열반이 뭡니까? 열반이라는 것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완전히 괴로움이 없는 경지까지는 못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정토회에 오기 전보다는 행복해야 됩니다. 결혼해서 부모 모시고, 자식 키우면서 살아도 혼자 사는 사람보다도 더 자유로워야 됩니다. 그래야 재가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혼자 사는 출가수행자보다도 재가수행자로서 세속에 살면서도 더 자유로웠기 때문에 대승보살이라는 개념이 가능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럴 자신이 있어요?”nbsp“....” nbspnbsp“왜 대답을 안 하고 웃기만 해요? 그래서 정토회에는 회원이 있고, 회원 안에는 신자와 수행자가 섞여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만 따로 모아서 정회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회원에게는 책임과 의무가 따릅니다.nbspnbspnbsp또 정토회가 하는 일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일반 후원회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당신 어디 다닙니까? 소속이 어딥니까?’ 했을 때 ‘저 정토회입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정토회원입니다. 정토회원에는 정회원과 일반회원이 있습니다. 정회원은 수행, 보시, 봉사의 의무가 있습니다. 정회원 여러분들의 수행, 보시, 봉사에 의해서 정토회가 유지되고 발전되고 있는 것입니다.”nbspnbsp스님의 명쾌한 설명에 정회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수행자가 되기 위해 선택한 길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정토회의 주인이 될 것을 모두 함께 다짐했습니다.nbspnbsp다음은 정회원을 위한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자유롭게 질문하도록 안내해주었습니다. 총 4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아이들이 있지만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고민인 것에 대해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건물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같은 집에서 살기를 바라는 반면 남편이 같이 살기를 반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불안감, 걱정, 두려움이 끊임없이 올라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법회를 마쳐야 하는 5시가 넘었는데도 눈총받을 각오를 하며 꼭 질문을 해야겠다며 한 분이 기어코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 중 마지막에 눈총 받을 각오로 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이 너무나 재치있게 답변해 주어 대중들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정토불교대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3년 정도 불교대학 졸업식 일을 맡아왔는데, 이번 해부터는 경전반과 불교대학이 졸업식을 같이 하지 않고, 따로 날을 잡아서 하기로 했기 때문에 저희가 여태 졸업식을 위해서 1박 2일 봉사를 하던 게 2박 3일 봉사로 늘었습니다. 머리로는 ‘아, 그래 졸업생이 많아졌으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지’라고 이해가 되는데, 가슴에는 아직도 불만이 가득합니다. 이런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억지로 참고 봉사를 하는 게 과연 수행에 도움이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nbspnbsp또 법당 일을 하다보면 불교대학 일은 내가 할 일이니까 열심히 하게 되는데 불교대학 밖의 일이라고 생각이 들면 ‘아, 하기 싫다’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nbsp“질문 참 잘했습니다. 제가 받아본 보고서에는 질문자가 3명이라고 써 있었고, 강연 시간도 5시까지라고 써 있었는데, 정해진 시간이 남았다면 하겠고, 3명의 질문이 안 끝났다면 시간이 넘어도 하겠는데, 지금 이건 시간도 넘었고, 미리 신청한 질문자 3명도 다 끝났는데, 불청객이 하나 찾아와서 질문을 꼭 하겠다고 하기에 제가 ‘눈총 받는다’고 주의를 주었지요? 그랬는데도 질문을 하겠다고 하니 이 상황을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nbspnbspnbsp화나도 참고 할까요? 웃으면서 할까요?nbspnbsp자, 이럴 때 세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시간 끝났어’라고 말하고 확 치워버리는 방법이 있고, 싫지만 억지로 참고 하는 방법이 있고, 그냥 웃으면서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질문자한테 제가 어떻게 해 주면 좋겠어요?”nbspnbsp“그냥 웃으면서 해 주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제 문제가 해결 됐습니다.”nbspnbsp질문자는 스님의 짧은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껏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덕분에 대중들도 속이 다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nbspnbsp그리고 법회 전에 일찍 도착한 대중들이 스님에게 새해 인사를 담은 편지를 써서 모았습니다. 옥교법당 남성일님이 대표로 편지함를 전달했습니다. “스님, 이제 우리가 하겠습니다.”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는데, 단어 하나하나가 법당에 우렁차게 울렸습니다.nbspnbsp▲ 편지함을 전달하고 나서 스님께 하트 모양을 그리는 대중들nbsp끝으로 용성 조사님이 작사한 ‘온 겨레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간절한 마음으로 통일을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각 정토회 별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한 해 동안 고생했다는 스님의 악수를 받으며 부산울산지부 주간반 정초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nbsp마치고 돌아가는 분들 중 울산법당 김정숙님은 “예방접종 크게 한 대 맞고 간다”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정회원들 모두 처음 만날 때보다 더 투명해진 얼굴과 환한 웃음으로 서로 인사를 건내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주간반 정초법회에 이어 저녁 7시 30분부터는 부산울산지부 저녁부 정회원을 위한 정초법회가 열렸습니다.nbspnbsp일기예보에서는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고 하여 울산에서 먼 길 오시는 분들이 혹여 불편하진 않을까 염려했지만, 비도 오지 않았고 봄이 온 것처럼 따뜻한 날씨가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마치 스님이 대중을 위하여 따뜻한 법문을 해주듯 봄의 온기가 법당에 스며든 것 같았습니다.nbsp▲ 저녁반 정초법회nbsp7시 15분에는 스님의 신간 ‘행복’ 출판기념 싸인회가 잠시 있었습니다. 싸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정회원들의 표정은 연예인의 싸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렘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 신간 ‘행복’ 사인회nbsp이어 7시 30분이 되자, 총 160여 명의 정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건강과 앞날의 행복을 기원하는 부산울산지부 하경화 대표님의 인사말로 정초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지난 1년 동안 저녁부가 활동했던 내용들을 사진 슬라이드로 함께 보았습니다. 즐거운 음악을 배경으로 1년간 함께했던 사진을 보니, 저마다 얼굴에 웃음꽃이 절로 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참가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각 법당 별로 각자 준비해 온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며 재치있게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그 중 동래법당은 이왕 놀 꺼, 제대로 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각자 무슨 일을 하고 놀 지, 그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반짝이며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재치있는 퍼포먼스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들떠있는 대중을 향해 “정초에 우리가 만남을 갖는 이유는 정토회의 취지와 의미를 다시 새기고 출발하자는 것” 이라고 차분한 목소리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정회원들의 지향점은 수행자이며 수행자라면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다른 것은 다 부족할지 몰라도 행복만큼은 내가 제일이다라는 자신감을 갖고 누구보다 행복하라는 말씀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정토행자로서 깊은 자신감과 행복한 기운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질문자는 총 5명이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팔정도의 바르게 본다, 바르게 생각한다 에서 바르다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무엇을 시작할 때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라 생각만 많아지고 실천이 부족한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죽은 사람은 영혼이 허공에 떠다니는 것이 진짜인지 궁금하다고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남편이 본인을 매우 사랑하지만 정토회 활동을 반대하고 있어 별거 중이라며 어떡해야 할 지 물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저녁부는 다들 직장에 다니고 가정도 있어 수행법회 참가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활동가로서 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물었습니다. nbspnbsp이 중에서도 정회원이 모인 자리였기에 모두에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해 준 마지막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재가수행자는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녁반 활동가 분들은 대부분 직장을 다니고, 게다가 여성 직장인들은 살림까지 해야 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 봉사활동은 하지만 수행법회까지 참여하기는 어려운지 참여율이 저조합니다. 그래서 정회원 자격유지 조건에 미달되는 분이 많은데, 제 입장에서는 수행법회 참석을 권하고 싶고, 또 그것을 위해서 노력도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서 어떻게 해야 될 지 질문 드립니다.”nbspnbsp“사람들한테 수행법회 참석하라고 말을 못 한다는 거예요?”nbsp“예.”nbspnbsp“솔직히 말해 보세요.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 권유를 하면 되느냐고 묻는 거예요? 정토회에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수행법회 출석을 좀 면하게 해 주자는 거예요?”nbspnbsp“두 가지 다입니다.”nbsp“처음부터 솔직하게 얘기해야지요. 개인 사정을 들어보면 납득이 되니까 ‘꼭 나오세요’라고 말하기가 곤란할 겁니다. 그러면 ‘나오세요’라고 권유만 하세요. 나오고 안 나오고는 그 사람들이 결정할 거니까 강요는 하지 마세요. 법회 안 나온다고 시비하거나 질타하거나 비판하면 안 됩니다.nbspnbsp그러니까 첫째, ‘조금 어렵더라도 수행법회를 들으세요. 그래서 발심행자가 되면 좋잖아요’ 이렇게 권유하는 게 좋습니다. 둘째, 우리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천일결사 입재를 하도록 권유하는 게 좋습니다. 천일결사 입재를 안 하면 정회원이 될 수 없잖아요. 그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수행을 하든지 말든지 그건 놔두면 되지만 정토회에서는 의무적으로 수행을 해야 되잖습니까. 깨달음의 장엘 가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적어도 정회원이 되려면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은 한 번씩 다녀와야 하잖아요. 예를 들어 정토회가 없는 해외에 거주하면서도 특별한 신심이 있어서 법회를 못 오는 대신에 집에서 한다면, 그런 경우는 누가 봐도 조건이 안 돼서 그렇지 열의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인정되니까 예외적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는 회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면 예외는 없습니다.nbspnbsp그렇기 때문에 정회원은 재가수행자이기 때문에 법회에 최소한 70 이상 출석을 해야 됩니다. 회비도 매달 내야 되는데, 자격정지 요건은 70 이하입니다. ‘70 정도면 된다’가 아니라 항상 출석하거나 보시를 해야 되지만 미니멈으로 그런 조건을 붙여놨다는 겁니다. 또 예를 들어서 봉사를 못하면 보시를 더 하든지, 보시를 많이 못 하면 봉사를 더 하든지 하는 건 괜찮은데, 자기가 재벌이라고 봉사는 안 한다고 하면 그건 정토회원이 될 자격이 안 됩니다. 자기가 대통령이라도 장관이라도 봉사 시간은 미니멈으로 채워야 합니다. 어느 대통령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주차장 관리하는 봉사를 했다는 얘기 들어보셨잖아요. 그렇게 해야 권사가 된다는 규칙이 거기에도 있습니다.nbspnbsp예를 들어 너무 가난해서 보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보시를 안 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보시를 최저 선에서 미니멈으로 허용을 해 주되 봉사를 많이 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런 것이 현재 회칙에 정해져 있는데, 질문자처럼 ‘사정이 있는 사람은 수행법회 출석을 좀 면하게 해 주자’고 한다면 회칙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사정에 따라 자꾸 회칙을 바꾸면 우리는 결국 ‘신자 그룹’이 됩니다. 정토회 설립취지가 뭐라고 했나요?”nbspnbsp“수행자들의 모임이요.”nbspnbsp“재가수행자라는 건 그냥 절에 다닌다고 재가수행자가 아니에요. 재가수행자와 출가수행자 중에 어느 쪽이 더 가치관이나 관점이 올바라야 할까요? 재가수행자입니다. 수행자가 돈을 자꾸 만지면 욕심이 생기니까 출가수행자는 돈을 못 만지게 했는데, 재가수행자는 돈을 아무리 많이 만져도 ‘이건 은행 돈이지 내 돈 아니다’ 하는 은행 직원과 같은 마음이어야 됩니다. 출가수행자에게 돈을 못 만지게 하고, 옷을 한정하고, 거지처럼 얻어먹으라고 하는 건 스스로 자기극복을 못 하니까 강제로라도 극복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넘어서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놨다고 하더라도 자기 먹을 만큼만 딱 먹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 필요한 옷만 사 입고, 집도 작게 사용해야 합니다. 궁상떠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수행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바쁘니까 수행법회에 참석 못한다’ 이런 말은 여기서 안 통할 수밖에 없어요.nbspnbsp지금 당장 수행자가 되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런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말입니다. 재가수행자가 정토회원이 되어서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면 그건 보통의 대통령이나 장관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 정토회원 중에 변호사님도 계시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이혼하러 찾아온 사람들에게 ‘깨달음 장에 다녀오십시오’ 한 뒤에 ‘그래도 이혼하겠다’고 하면 ‘변호사 수임료를 낮춰드리겠습니다’고 한다는 분이 있습니다. ‘이혼 안 하겠다’고 하면 그만이고요.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가 막 주사 놔달라고 해도 ‘그 주사 안 놔도 괜찮습니다’, 검사해 달라고 해도 ‘안 해도 괜찮습니다’ 하고, 또 돈이 없어서 안 하겠다고 해도 ‘제가 돈 낼 테니까 이건 꼭 하십시오’라고 하는 식으로, 돈을 벌더라도 그렇게 벌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재가수행자이지요. 세상에 몸을 두고 살아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게 재가수행자예요. 수닷타장자 같은 경우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바로 출가를 안 하고 집에 있으면서 결국은 그 재산을 다 전법에 썼잖아요. 그래서 출가한 것보다 10배, 100배의 효과가 더 났습니다. 그러니까 재산에 집착해서 벌벌 떨 일이 아닙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지금 수행자입니다. 그러면 관점이 딱 잡히잖아요. 보살행 하러 세상에 있는 거니까, 아이들 밥 해 주고, 직장 가서 웃으면서 일하고, 저녁엔 절에 와서 봉사를 좀 해야 합니다. 애들이 자꾸 힘들어 하면 ‘엄마가 딱 버리고 절에 가버리는 게 낫겠나, 그래도 옆에 있는 게 낫겠나?’ 해서 ‘그래도 있는 게 낫겠다’ 그러면 ‘그럼 저녁은 너희가 해 먹어라’ 이렇게 역할분담을 해야 됩니다. 남편이 자꾸 뭐라 그러면 ‘내가 그냥 딱 버리고 비구니 되는 게 낫겠어요, 그냥 옆에 있는 게 낫겠어요?’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그런데 남편이 ‘너 없으면 나는 다른 여자 만나서 잘 살 거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오는 게 좋습니다. 거기에 붙어 있으면 재가수행자가 못 됩니다. 그런데 ‘그래도 옆에 있으세요’ 그러면 ‘여보, 내가 전적으로는 안 하더라도 시간을 내서 수행을 해야 되니까, 아침은 좀 당신이 챙겨주세요’ 라고 이렇게 역할분담을 해야지요. 왜 매어서 삽니까?nbspnbspnbsp대신에 질투하고 짜증내는 건 안 해야 됩니다. 성질내거나 짜증내지 않으면 역할분담이 다 이뤄집니다. 성질은 다 부리고 욕심은 다 내면서 일을 제대로 안 하니까 문제가 되지요. 다른 건 다 잘해 주면서 수행에 대해서만 분명히 하면, 수행도 하고 일도 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커피 한 잔 뽑아주고는 ‘내가 당신 여비서야?’ 이렇게 뾰족하게 굴지 말고, 커피도 뽑아주면서 ‘과장님, 저 수요일 저녁에는 절에 가야 됩니다. 아셨죠?’ 하든지 ‘여름에 한 철은 제가 명상수련을 가야 되니까 휴가 주셔야 돼요? 대신 제가 커피는 뽑아드릴게요’ 이렇게 원칙을 정해 놓고 협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보같이 매어서 살 필요도 없고, 늘 큰소리 치고 살 필요도 없이, 숙일 건 숙이고, 원칙을 지킬 건 지키고 살면 됩니다. 수행자는 인생을 늘 ‘갑’으로 사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늘 ‘을’로 살잖아요. 그러지 말고 중심을 딱 잡고 사세요. 그런데 갑으로 살려면 다른 걸 좀 양보해야 됩니다. 성질 같은 건 조금 줄이고, 이익 같은 건 조금 포기해야 갑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nbspnbspnbsp그런 관점에서 권유를 해 주세요. 이것은 좋은 일이잖아요. 정회원 되면 좋잖아요. 좋은 일인데 왜 권유를 안 해요? 자기는 정회원이 되고 보니 별로 안 좋은가 봐요? 스님은 좋으니까 권유를 하잖아요. 정토회 정회원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권유를 하세요. 자격유지 조건을 더 낮추라고 하지 말고요.”nbspnbsp“예,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는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활짝 웃었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질문자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활동을 하다보면 분별심이 많이 나서 스스로 힘들었는데, 다시 방향성을 확실하게 잡고 가는 계기가 되었고, 수행법회를 꾸준하게 참석하지 않던 정회원들에게 참석할 것을 다짐하게 하는 말씀이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하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이제 3시간 동안의 법회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웃으면서 즐겁게 일하자고 하면서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얼어붙을수록 더욱 중심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후 법회를 마쳤습니다.nbspnbsp“여러분들 1년간 또 수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웃으면서 해야 돼요. 수행자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합시다. 항상 스님하고 견주어서 ‘내가 스님보다는 더 행복해야지. 스님은 결혼을 했나, 아이가 있나, 재산이 있나? 그런데 내가 스님보다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 내가 스님보다 나이도 적은데’ 하고 생각해 보세요. 기준을 다른 사람으로 잡지 말고 스님으로 잡아야 돼요.nbspnbspnbsp기준을 자꾸 다른 사람으로 잡으니까 문제예요. 그래서 가능하면 웃으면서 사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지금 미사일 쏘고 그러니까 통일은 물 건너 간 것 같지요? 그렇지 않아요. 모르는 거예요. 지난 12월에 진달래도 피고, 시골집에 장미도 피고 하는 것 봤지요? 그래서 겨울이 없어진 줄 알았더니 1월에는 몇 십 년 만에 한파가 왔지요. 봄이 안 올 줄 알았더니 요즘 날씨가 꼭 봄 날씨 같잖아요. 그러니까 때가 되면 봄이 옵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게 더 빨리 오는 계기가 될 지도 모릅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막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통일을 더 앞당기는 계기가 될지,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계기가 될지, 우리가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거예요.nbspnbspnbsp다만 우리는 봄이 오면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릴 준비를 잘 하고 있으면 됩니다. ‘봄이 올까, 안 올까?’ 이런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렇게 흔들리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지요. 안 흔들리고 꾸준히 해 나가기 위해서, 그리고 이런 혼란이 오기 때문에 지금 통일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혼란기에 한국이 딱 정신을 차리면 기회도 잡을 수 있는 겁니다. ‘한국이 정신을 차린다’는 건 ‘한국의 국가지도자가 정신을 차려야 된다’는 거예요. 지도자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됩니다. 지금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거든요. 야당에 대해서도 그렇고, 모든 걸 부부싸움 하듯이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음에는 조금 더 멀리 보는 눈을 가진 국가지도자를 선출해야 되는데, 지금 아무리 눈 씻고 봐도 없지요.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 마음도 왔다갔다 하고, 정치도 그렇습니다. 아직 열 번도 더 뒤집어집니다. 그러니 섣불리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기다려보면 또 기회가 옵니다. 그러니 꾸준히 기도합시다.”nbspnbsp어제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되고 사드 배치가 논의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한 마음이 컸는데, 스님의 격려 말씀을 들으니 그래도 다시 기운이 났습니다.nbspnbsp법회가 끝나고 몇몇 분들에게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정토회의 규칙을 불편하게만 느꼈던 것을 참회한다. 규정을 바꿀 수 없다는 확고한 말씀이 더욱 힘이 되었다, 얼마 전에 사주를 보고 왔는데, 사주나 관상, 손금 등이 수행자들이 수행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기에 계율에서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음을 알게 되어 기쁘다, 바르다의 또 다른 의미는 가장 정확하다는 것임을 알게 되어 팔정도의 개념이 명확해졌다 등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스님은 각 법당별로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오랜만에 스님을 뵈며 수행자로서의 마음을 잡는 대중들의 모습은 밝고 희망차 보였습니다.nbspnbsp또 스님은 2016년도 신규 정회원이 된 분들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네며 수행자의 관점을 놓지 않고 정진해 나가라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깨달아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행복한 개인이 모여 나에게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이로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니 함께 있는 도반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정토회의 올바른 방향을 따라 수행 보시 봉사를 하다보면 희망찬 세상이 한 걸음 더 빨리 다가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올해에도 쉬임없이 정진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nbspnbsp내일은 경남지부 정회원들을 대상으로 마산정토회에서 정초법회가 있을 예정입니다.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5.12.8 (오후)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후 3시 30분에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에서 의사와 환자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진주교대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어제밤 관악구청에서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을 마친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룻밤 주무신 후 새벽 4시에 법당에 내려와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을 마친 후 4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새벽녘 고속도로 위에는 그믐달이 선명하게 떠서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미소짓는 표정의 그믐달의 향기를 은은하게 받으면서 부지런히 고속도로 위를 달려서 아침 8시 30분에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새벽녘 고속도로 위에 보이는 그뭄달nbsp스님은 아침 식사를 하고 9시부터 곧바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담벼락 주위에 있는 나무들을 겨울이 오기 전에 정비하는 일을 했습니다.nbspnbsp엄나무 하나가 썩어가고 있었는데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일을 했습니다. 혹시나 잘라진 가지가 지붕 기와를 쳐서 떨어뜨릴까봐 나무에 밧줄을 묶어 안전 장치를 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윗가지부터 하나씩 잘라서 가볍게 한 후 마지막으로 밑둥을 잘랐습니다.nbspnbspnbsp베어낸 나무는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시 더 잘게 잘랐습니다. 또 잘라진 나무토막은 장작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끼질을 해서 더 가늘게 쪼개었습니다.nbspnbspnbsp옹이가 있는 나무는 너무 단단해서 도끼질을 여러 번 해도 쪼개지지 가 않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스님은 “으라찻” 하고 힘을 모아서 갈라진 틈을 여러번 반복해서 찍었고, 마침내 반으로 갈라지자 “아이고, 힘들다” 하며 땀을 닦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오전 내내 장작을 팬 후 갈라진 장작들은 한켠에 가지런히 쌓아두었습니다. 오늘 스님은 전기톱도 사용하고, 도끼질을 하느라 힘을 많이 썼는데 “그러시다가 앓아 누우시면 어쩌시려고요?” 라고 물으니 “아니야, 옛날에 늘 하던 일인데 뭐.” 하며 웃으셨습니다. 스님은 아직도 혈기왕성한 청춘인 것 같았습니다.nbspnbsp▲ 겨울에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지런히 쌓아둔 장작nbsp마당에 소나무도 잔가지가 많아져서 가지를 쳐주었고, 대문 앞에 감나무도 잔가지가 많아서 가지를 쳐주었습니다. 톱질을 할 때도 스님은 다람쥐처럼 나무 위에 성큼 올라갔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나무에서 자른 잔가지들과 톱질을 하고 남은 토막들은 모두 한데 쓸어모아 아궁에 넣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곳곳을 가지런하게 정비를 하다가 강연을 위해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울산 두북을 출발해 오후 3시에 영남대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니 스님을 초청한 영남대 의과대학 김성규 교수님이 나와 반갑게 환영해주었습니다.nbspnbsp▲ 영남대병원nbsp김교수님과 함께 의료원장실로 이동해 잠시 의료원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최병연 의료원장님은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초청 강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고, 스님도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nbspnbsp▲ 최병연 의료원장님과 김성규 교수님nbspnbsp의료원장님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이 열리는 본관 1층 이산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대강당에는 100여 명의 환자들과 의사들이 자리해 있었는데, 스님이 얼굴을 비치자 모두들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의료원장님이 나와 스님을 간단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환자와 의료인에게 편안을’ 이라고 소개해 주면서, 환자들도 심적 어려움이 많고, 의사들도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데 오늘 스님을 모시고 뜻깊은 시간을 갖게 되어 무척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스님을 무대로 모셨습니다.nbspnbsp스님은 먼저 오늘은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함께 모였다고 하면서 눈치 보지 말고 서슴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살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고, 내가 간호할 수도 있고, 간호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함께 모였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어요. 환자가 와야 의사 선생님들도 먹고 살 수 있고, 의사 선생님이 계셔야 환자가 병을 치료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 서로 돕는 상생, 공생 관계인데 또 어떤 때는 서로 상대방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도 있는 것 같아요.nbspnbsp오늘은 여러분들의 속마음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여기 의료원장님도 계시고 의사 선생님도 계시지만, 즉문즉설이란 그런 데에 구애받지 않아요. 상대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가 괴롭다는 문제니까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nbsp그리고 스님은 병원 측에서 초청 강연에 대한 요청이 여러번 있었지만 강연 일정이 이미 다 잡혀 있어 약속을 하지 못했는데, 마침 오후 시간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일정이 잡히게 되었다며, 낮시간이라 근무 중인 의사와 간호사들은 많이 참석하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석에는 많은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가 함께 자리했습니다. 어떤 환자 한 분은 닝겔을 꽂은채 휠체어를 타고 강연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다소 아픈 표정의 환자들도 많이 보였지만 모두들 스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습니다. 환자들은 환자복을 입고, 간호사들은 간호사 복장을 입고, 의사 선생님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자리했습니다. 그야말로 의사, 간호사, 환자가 함께한 야단법석인 셈입니다.nbspnbspnbsp이어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흰색 의사 가운을 입고 앞자리에 앉은 교수님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업무보다 인간관계가 더 힘들다며 소통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직장인 모두가 힘들어하는 것이 업무가 아닌 인간관계, 소통의 문제라고들 합니다. 저도 업무보다는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고민도 많이 해봤지만 쉽게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와 소통을 어떻게 하면 잘 풀어지게 할 수 있는지 질문 드립니다.”nbsp“교수님이라 그런지 너무 막연한 질문을 하십니다. 인간관계라는 게 구체적으로는 스승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제자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동료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모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부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자식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상사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하와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인간관계가 어떻다’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예컨대 배우자가 용건만 말하는 걸 좋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귀찮아한다면 딱 용건만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간섭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내버려두면 되고요. 반대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할 말이 없어도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거예요.nbspnbsp질문에 굳이 답을 한다면 상대에게 맞추면 됩니다. 사람마다 각각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에 따라 하면 돼요. 그런데 내가 맞추기가 좀 어렵죠. 사람은 다 자기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고집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성향, 자기 성질, 자기 취향을 자꾸 주장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맞추기가 어려운 거예요.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내가 잘 맞춰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맞추려면 상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다 자기 식대로만 생각하니까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죠.nbspnbsp사랑하는 부부도 같이 살면 갈등이 생기거든요. 상대가 어떤 성질인지, 뭘 원하는지를 살펴서 거기에 맞춰주면 특별히 문제가 없어요. 처음부터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살아보면서 맞추는 것이지요.nbspnbspnbsp같이 길을 갈 때 내가 조금 빨리 가면 상대가 ‘뭘 그리 급하다고 빨리 가느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면 ‘그렇게 천천히 가면 언제 가느냐?’ 또 이렇게 아이기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사람, 성질이 뭐 이래? 조금 빨리 가면 빨리 간다고 그러고, 느리게 가면 느리게 간다고 그러고, 나한테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러기가 쉽습니다. 조금 느리게 간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고, 또 느리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적절하게 맞아집니다. 그렇게 적절히 맞아지는 것을 불교용어로 중도라고 해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딱 정확하게 맞는 거예요. 현실 속에서는 아주 정확하게는 안 되지만, 약간 넘쳤다가 모자랐다가를 반복하며 몇 번 조율하다 보면 비교적 과녁에 맞게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렇게 잘 안 맞추지요?”nbsp“예, 그러기가 상당히 힘듭니다.”nbspnbsp“그게 왜 힘들어요? ‘조금 느리게 간다’ 그러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 그러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는데요. 질문자는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라는 마음이니까 안 맞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하고 안 맞는지, 뭐가 안 맞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봐요.”nbspnbspnbsp“조직사회에서 제일 안 맞는다고 느끼는 게 대화의 단절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를 전혀 수용하지도 않고 표현도 하지 않는 그런 대화의 단절이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사람 중에는 자기의 속을 드러내놓고 대화하는 사람도 있고, ‘내 이야기를 해 봤자 세상 사람 누구도 나에게 도움이 안 되더라’ 해서 용건만 이야기하고 마음의 문을 안 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네가 마음의 문을 안 연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내’가 마음의 문을 안 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안 여는 사람은 안 여는 대로, 여는 사람은 여는 대로, 그냥 거기에 맞추면 됩니다.nbspnbspnbsp예를 들어 ‘강연은 어떻게 해주실 거예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강연하는 사람이 복잡해지지요. 그런데 저는 강연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묻는 대로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보통 강연을 하는 사람들은 준비를 하잖습니까. 저는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뭘 물을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둘째,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즉문즉설을 하면서 해본 가장 짧은 답은 ‘모른다’입니다. nbspnbspnbsp모를 때 모른다는 말을 안 하려고 하니까 긴장이 되고 노력이 많이 드는 거예요. 모르면 그냥 ‘제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고, 다음에 설명해 줘도 되는 사람이면 ‘제가 다른 데 가서 물어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틀리면 ‘틀렸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고치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상대의 필요에 따라서 응하면 됩니다.nbspnbsp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면 이런 겁니다. 인천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강릉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묻는데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그 사람은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강릉 사람에게는 서쪽으로 가라고 해야죠. 이렇게 인연에 따라서 대응해야 합니다.nbspnbsp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원칙은 없고, 인연에 따라서 대응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며 ‘1원칙, 2원칙, 3원칙, 4원칙’을 정하려 들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 보고 ‘어른한테 인사 안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사는 먼저 본 사람이 하는 겁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인사를 하면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인사하는 법을 배우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는 안 하면서 아이한테 ‘임마, 왜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해?’라고 야단치잖아요. 그렇게 억지로 하는 인사는 생활화가 안 돼요. 아이한테 먼저 인사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고, 누구든지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면 됩니다. 내가 인사를 했는데 상대가 인사를 안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인사라는 것은 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내가 반가우면 ‘반갑습니다’하면 됩니다. 상대가 말하기 싫으면 그냥 지나갈 것이고, 받을 사람은 받을 거예요.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라며 계산적으로 생각하니까 자꾸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도 그냥 자기 편할 대로 하면 됩니다. ‘안녕?’ 이러고 그냥 들어가면 되고, 학생이 물으면 대답해 주면 되고, 말 안 하면 놔두면 돼요. 그걸 내가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소통이 안 된다’, ‘너는 말이 없다’, ‘너는 왜 인사를 안 하니?’, ‘너는 왜 말을 안 듣니?’ 자꾸 이렇게 하니까 오히려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그냥 학생들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고, 꼭 필요한 것만 이야기하고, 학생들이 질문자의 업무 중에 와서 묻더라도 시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고, 시간이 없으면 ‘지금은 업무시간이니까 이따 휴식시간에 보자’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인연에 따라서 대응을 하시면 좋겠습니다.”nbsp“예, 제 마음과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고맙습니다.”nbspnbsp교수님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함께 강연을 들은 의사, 간호사, 환자들 모두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인간 관계의 갈등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nbsp이어서 교수님이 한가지 질문을 더 했고, 환자 가족분의 질문도 추가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3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벌서 1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nbspnbsp스님은 세 번째 질문자가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힘이 든다고 질문한 것에 대해 답해 주면서 마지막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 시간 동안에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할애해 답하지만 딱 그 시간 끝나고 밖에 나갔을 때 누군가 제 소맷자락을 붙잡고 ‘한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고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버립니다.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nbspnbsp이처럼 남이 하는 이야기에 너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습니다. 귀담을 이야기인지 살펴봐서 들을 만한 이야기라면 내가 바꾸면 되고, 그냥 그 사람의 기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면 흘려야지요. 누군가가 ‘스님, 훌륭하십니다’, ‘스님 좋아요’ 라고 하는 건 그냥 그들의 생각이나 기분이 그렇다는 뜻일 뿐, 저와는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진짜 자기가 잘난 줄 착각하면 연예인이나 인기 탤런트처럼 정신질환이 생겨요. 영화를 한 편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사람을 보고 기분 안 좋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것은 그들의 기분이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다’라고 해야 칭찬에 들뜨지 않고 비난에 괴로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이 그렇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거예요? ‘아, 상대는 그렇게 느끼나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nbspnbsp“예, 고맙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너무 그런 데에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왜 신경을 썼을까요? 잘 보이려고 신경을 썼던 겁니다. 뭐 잘났다고 잘 보이려고 그럽니까? 생긴 대로 살면 되지요.”nbspnbsp“예, 고맙습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닝겔을 꽂고 있던 환자 분도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더 질문하실 분이 있어요?” 라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더 이상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스님은 방금 마지막 질문자에게 대답해준 대로 더 이상 질문이 없자 곧바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강연이 끝나서 당황해하는 분도 몇몇 보였지만 스님은 다음 일정이 바빠 웃으면서 양해를 구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 스님을 초청해준 김성규 교수님과 최병연 의료원장님nbsp그리고 스님은 강연을 주관한 김성규 교수님에게 “근무 시간인 오후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이렇게 되었는데, 내년에는 저녁 시간에 꼭 시간을 내어주겠다”고 하면서 다음 초청강연 일정을 의논한 후 오후 5시에 병원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저녁 7시에 진주에서 예정되어 있는데, 시내에서 교통 체증을 감안하면 대구에서 진주까지 부지런히 달려야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강연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다행히 무사히 제 시간에 진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진주교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1.29 (오전)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열린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낮 12시부터 3시까지는 대전 정토법당에서 청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새벽에 있었던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강원경기동부, 인천경기서부, 대구경북 3개 지부에서 정토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있는 480여 명의 학생들은 어제부터 1박2일 동안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특강수련을 진행 중입니다. 오늘은 새벽 4시에 기상해 예불과 108배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새벽 정진을 마치고 6시에 강연이 열리는 대수련장으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nbsp불교대학생들은 각 법당에서 그동안 영상으로 스님의 강좌를 들어왔는데, 평소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영상 강좌 도중에 그 자리에서 바로 묻고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무려 3시간 동안 스님과 집중적으로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nbsp가지게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이 법상에 오르자 전국에서 모인 480여 명의 불교대학생들은 무척 기다렸다는 듯 환한 미소와 함께 스님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법상 위에 오른 스님은 불교대학생들의 얼굴을 한눈에 주욱 살펴본 후 먼저 안부를 물었습니다.nbspnbspnbsp“불교대학 다닌 지 3개월 다 되어 가죠? 즉문즉설보다는 공부가 어렵지요?”nbsp“네.”nbsp“원래 공부란 것은 강의를 듣고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질문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동시에 여러 군데 몸을 나툴 줄은 알지만 아직 도력이 부족해서 여러분들을 제 앞으로 동시에 오게 하는 능력은 없어요. nbspnbsp아직은 쌍방 통화가 아닌 일방 통화만 되고 있습니다. 제가 동시에 여러분들에게 나퉈서 여러 곳에서 강의하는 건 되는데, 여러분들이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묻는 건 아직 안 돼요. 그래서 오늘, 3개월 만에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그 동안 공부하면서 의문이 생겼지만 못 물어보던 것들을 물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nbsp이렇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사전에 질문지로 궁금했던 점들을 모두 써내었습니다. 스님은 올라온 질문지를 하나씩 읽어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총 15명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추가 질문이 더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다 답변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갑작스런 사고를 어떻게 인연과보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흔히 ‘인연과보’의 원리와 ‘인과응보’의 원리를 혼돈하기 쉽다며 그 차이점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인연과보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가까운 친인척의 갑작스러운 사망이나 중병은 저의 과보입니까? 아니면 그 분의 과보입니까? 과보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과보로 보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무엇을 과보가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합니까? 과보가 아닌 것은 왜 일어나는지요?”nbsp“‘인연과보’와 ‘인과응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인연과보와 인과응보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nbspnbspnbsp잘 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준다는 게 인과응보예요. 모든 자연신앙에는 인과응보 사상이 있습니다. 유럽도 그렇고, 인도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래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천벌 받을 거다’라는 말이죠. 하늘이 가만 두지 않으리라는 뜻입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구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을 안 들으니까 소돔과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기둥으로 만들어서 응징하는 거예요. 남의 눈을 멀게 했다면 다음 생에 애꾸눈이 된다거나 남의 돈을 훔쳤다면 다음 생에 갚아야 한다는 게 인과응보입니다. 징벌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거예요.nbsp불교의 인연과보는 그런 징벌적 사고가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관계입니다. 쉽게 말하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거예요. 가치관이 개입된 게 아니에요. 콩을 심어야 콩이 나지, 애초에 콩을 안 심었는데 콩이 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nbsp이것을 가치관적으로 접근해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 이렇게 적용하면 인과응보와 비슷해집니다. 그래서 혼돈이 생겨요. 그러나 원래 인연과보는 가치관적 접근이 아닙니다. 과학적 접근이죠.nbspnbspnbsp‘내가 어떤 사람에게 기대를 가지면 실망한다.’ 이건 가치관적 접근이 아니라 실제예요. 기대를 많이 가지면 실망이 크고, 기대를 별로 안 가지면 만족이 큽니다. 그러니 내가 어떤 기대를 갖느냐, 내가 어떤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 그게 괴로울 일이 되기도 하고 괴로울 일이 아니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실망 안 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내가 어떠냐, 내 마음이 어떠냐를 중시하는 거예요.nbsp어떤 물체가 있는데 ‘착한 사람이 밀면 움직이고 나쁜 사람이 밀면 안 움직인다’고 말한다면 가치관적인 접근, 윤리적인 접근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물체가 움직였다는 것은 힘이 가해졌다는 이야기잖아요. ‘힘을 가하면 이 물체는 움직인다’ 이렇게 접근하면 원인과 결과를 보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현상이 일어나면 반드시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그것에 다시 윤리 도덕관을 접목하면 인과응보와 비슷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연과보는 윤리 도덕관을 접목하기 이전의 문제입니다.nbspnbsp그럼 그것을 왜 ‘인연과보’라고 할까요? 흔히 ‘인과’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인연과보’예요. 왜 ‘인’이 아니라 ‘인연’일까요?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건 인과예요. 그런데 콩을 심었지만 콩이 안 날 수도 있어요. 땅이 건조하거나 흙의 온도가 낮으면 싹이 안 납니다. 그런 밭의 조건을 ‘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인연이 만나야 과보가 생기는 거예요.nbspnbspnbsp인을 직접적 원인, 연을 간접적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 원리는 환경을 중요시합니다. ‘인과’라고 하면 환경을 무시해요. ‘인연과보’라고 하면 인연이 만나야, 즉 인연이 맞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씨앗과 환경 조건이 같이 결합해야 하기 때문에 ‘인연’이라고 말하는 거예요.nbsp예컨대 사람이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나쁜 짓은 나쁜 짓인데, 산속에서 자기 혼자 한다면 별로 과보가 없어요. 인은 있지만 연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을 주먹으로 한 대 때렸다고 생각해봐요. 길 가다가 남을 한 대 때렸다면 그 조건에서는 나쁜 짓이 돼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덤비는 걸 말리다가 내가 한 대 때려서 그걸 해결했다고 하면 때린 건 똑같지만 과보가 달라요. 때린 행위라는 원인은 똑같지만 그 원인이 발생할 때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과가 아니라 인연과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과학적인 이치예요.nbsp그런데 이걸 가치관적으로 접근해서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좋은 일을 해도 환경에 따라 좋은 결과가 날 수도 있고 나쁜 결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반드시 나쁜 결과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조건에서 나쁜 짓을 했느냐에 따라서 우연찮게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은 둘이 싸우다가 밀쳤는데 상대가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는데 뇌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종양을 발견했으니 넘어져서 다친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 되었습니다. 그냥 놔뒀으면 죽을 뻔했는데 조기발견해서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사람이 밀친 게 처음부터 잘 한 건 아니잖아요. 밀친 건 잘못이지만 결과는 좋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nbsp5.16 쿠데타를 일으킨 건 헌정질서를 문란시킨 것이니 처음부터 법률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그런데 이걸 잘 됐다고 말하면 앞으로 누구든지 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원인을 미화하면 안 돼요. 그런데 그 결과로 산업화에 성공한 건 사실이에요. 원인이 잘못됐다고 결과가 다 잘못됐다고 말해도 안 되고, 결과가 좋다고 원인이 다 좋다고 말해도 안 됩니다.nbspnbspnbsp의도와 결과는 이처럼 조건이 어떠냐, 어떤 환경에서 작용했느냐에 따라 네 가지 종류로 나타납니다. 의도가 좋았는데 결과도 좋을 수 있고, 의도가 좋았는데 결과는 나쁠 수도 있고, 의도는 별로 안 좋았는데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의도가 별로 안 좋았는데 결과 역시 나쁠 수도 있습니다. 인과응보와는 달라요. 인과응보는 의도가 좋으면 결과가 좋고 의도가 나쁘면 결과가 나쁘다는 이야기예요.nbspnbsp그런데 이 인연과보에서 볼 때는 의도가 좋으면 결과가 좋을 확률이 의도가 나쁠 때에 비해 높아요. 의도가 나쁘면 의도가 좋을 때보다 결과가 나쁠 확률이 높고요. 그래서 우리가 선택을 할 때는 100 결과가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의도를 좋게 갖는 편이 낫습니다.nbsp‘콩을 심으면 싹이 난다’ 이 말은 100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콩을 심어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싹이 안 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콩 싹이 났다면 100 콩을 심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런 게 수학에서 말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에요.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어떤 원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떤 원인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어떤 결과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환경 문제가 작용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반드시 그렇다’고 하지 않고 ‘그럴 확률이 높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윤회와 인과응보로 따진다면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을 때 대부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아이를 낳았을까?’라고 합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어떤 죄의 과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장애는 어떤 죄의 과보도 아니에요. 그냥 다를 뿐이죠.nbspnbsp여기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장애인이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은 어떤 죄의 잘못이 아니며, 여자라도 남자와 다름없이 인간다운 존엄과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존엄과 권리가 있어요. 피부가 검은 사람도 흰 사람도 똑같은 존엄과 권리가 있습니다.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nbspnbsp인과응보의 가장 대표적인 게 인도의 윤회사상인데, 우리가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지금의 불교가 얼마나 세계의 인권 존중 추세에 어긋나는지 몰라요. 설령 불교가 원래 그리 가르쳤다 해도 ‘이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고쳐야 할 판인데 부처님이 가르치지도 않은 걸 고집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절에 안 오고 시대에 뒤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불교를 잘못 믿었기 때문입니다.nbspnbsp왜 잘못 믿게 되었을까요? 불교가 인도화하면서 힌두적인 걸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다시 우리에게 전래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통과 정통을 구분해야 해요. 과거로부터 전수받은 것은 다 전통이에요. 전통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안 좋은 것도 있습니다. 남녀를 차별하는 전통, 신체 장애를 죄악시 하는 전통은 나쁜 거예요. 그러면 이런 거는 개선해야 해요. 정통은 ‘바른 것’이라는 개념이에요. 우리 정토회는 정통 불교를 계승한다고 하지, 전통 불교를 계승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을 다 부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통은 특별하게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가능한 계승하는 게 좋습니다. 제가 입고 있는 승복은 전통이니 바꿔도 됩니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즉 이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굳이 바꾸지 않고 전통으로 존중하는 게 좋습니다.nbsp후쿠시마에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은 걸 보고 ‘일제 강점기 때 못된 짓 한 벌이다’라고 하면 불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인과응보 사상에서 본 거예요. 그러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일본 사람들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위안부 사과도 하지 않고 일제 침략 사과도 안 하는 건 나빠요. 그래도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고 재앙을 입으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자비 사상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잘못 생각해서 ‘천벌을 받았다’, ‘전생에 죄가 많아 쥐로 태어났나 보다’, ‘성질이 독해서 뱀으로 태어났다’ 이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은 다 제 나름대로 진화해온 거예요. 모든 것은 인연과보로 움직일 뿐입니다. 인연과보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nbspnbspnbsp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nbsp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지은 인연의 공덕은 없어지지 않는다,nbsp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nbsp‘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라는 말에는 이어지는 뒷 문장의 말뜻도 이미 들어 있습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라는 것은 좋은 인연, 나쁜 인연을 다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복을 지었으면 복이 따라오고 죄를 지었으면 죄가 따라온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이 말은 ‘나쁜 짓을 했으면 과보가 따른다’라는 의미로 주로 쓰일 때가 많기 때문에 제가 ‘지은 공덕은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뒤 문장을 만들어 추가 설명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다 저축되어 있어요. 쉽게 이야기해서 지금 돈을 빌려서 썼다면 나중에 갚아야 하고, 지금 저축을 해두면 나중에 목돈을 타게 되는 이치입니다. 그게 달리 되지는 않아요.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죄를 지어놓고도 벌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빚을 내서 실컷 써놓고 ‘부처님, 이 돈 안 갚아도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자꾸 도망가지 말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세요. 예쁜 여자 종아리가 만지고 싶어서 만졌으면 감옥 가도 후회하지 말고 ‘그래도 한번 만져봤으니 이런 대가를 치러도 괜찮다’ 이러면 됩니다. 그러나 감옥 가기 싫다면 만지고 싶더라도 만지지 말아야지요. ‘만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만져요?’ 이런 소리 하지 말란 말이에요.” nbspnbsp스님의 재미있는 비유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답변을 다 듣고나니 정말 우리는 인연과보와 인과응보를 혼돈해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불교는 과학적으로 사물을 파악하고 이해하도록 해주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새벽 6시부터 시작된 강연이라 아무리 좋은 스님의 말씀이지만 눈을 비비며 졸려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조금이라도 잠을 깨어보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서 강연을 계속 듣는 열의를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15개의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3시간 2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스님은 3시간 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중간에 목이 좀 아프신 듯 기침을 여러 차례 하셨지만, 스님과의 만남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중들을 위해 더 힘을 내어 강연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마칠 시간인 9시를 넘기고도 20여 분이 흐르자 스님은 “답변해주지 못한 질문이 더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깨달음은 아상과 권위를 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평범한 여러분들이 가장 공부하기 좋은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저희 정토회에는 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아주 높은 사람, 인기 연예인들이 잘 안 옵니다. 이런 사람들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히려 더 필요하지만 대중과 같이 앉아서 하는 걸 못 견뎌 해요. 그래서 늘 소수만 대상으로 특별 과외 하듯 비공개 법문을 해줄 수 없냐고 졸라요. 깨달음의 장도 이런 데 와서 같이 자면서 하는 거 말고, 돈을 얼마든지 내도 좋으니까 고급 호텔에서 편안하게 할 수 없냐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천만 원쯤 받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확 교화시켜야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 권유도 여러 번 들었어요.nbspnbspnbsp그러나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자기의 아상과 권위를 버려야 깨치는데 그걸 안 버리는 걸 조건으로 걸어놓으니, 버리라고 한들 버려지겠어요? 불교대학을 다닌다고 하더라도 조금 잘난 사람들은 오늘과 같은 이런 자리에 안 옵니다. nbspnbspnbsp한 방에 같이 자고 화장실에 가면 바람이 들어와서 엉덩이가 시원한 걸 자기 체면에 안 받아들이려고 하거든요. ‘나’라는 것을 내려놔야 깨달음의 길로 가는데 그걸 못 내려놔요.nbspnbsp정토회가 부자나 높은 사람들을 싫다고 내치고 막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이런 환경에 오기가 어려운 거예요. 일반 절에는 갈 수 있습니다. 특별대우를 해주니까요. 여기는 특별대우를 안 해주잖아요. 밖에서 뭘 했든 여기 오면 다 똑같이 해야 하니까 못 와요.nbspnbsp또 너무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여기 오기 힘들어요. 오지 말라는 건 아닌데, 시간을 내어 저녁마다 공부하고 봉사에 참여하거나 지금처럼 1박 2일 프로그램에 오기가 현실적으로 좀 어렵죠. 그래서 이 문제는 좀 특별 대책이 필요해요. 이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현재와 같은 정토회 프로그램에 참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까요.nbspnbspnbsp그래서 생활이 너무 어려워도 진리를 추구하기가 어렵고, 생활이 너무 좋아도 진리를 추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생활이 적당할 때 공부하기가 좋아요. 그러니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딱 공부하기 좋습니다.” nbsp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에 모두들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3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불교대학 특강수련을 마치고, 대수련장을 나와 곧바로 대전으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11시 30분에 대전 시내에 도착해 국수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12시부터는 대전 정토법당에서 청년 정토불교대학 수강생들을 위한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청년들과의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