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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없는 새벽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 조정래, 태백산맥 -
2025년 8월 15일 새벽 5시, 미륵사에는 아직 새벽 달빛이 묻어 있습니다. 오는 길 내내 캄캄한 어둠 속, 짙은 물안개가 겹겹이 내려앉아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했습니다. 80년 전 오늘, 정오에 광복이 찾아왔지만—
그날 새벽, 눈을 뜬 우리 조상들은 과연 광복을 예감했을까요.
우리에게도 아침이 오리라 믿었을까요.
대웅전 안에서는 12명의 회원들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8.15 광복절 미륵사 특별 정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결기가 느껴지는 붓글씨가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봉사자는 법당 안에 들어온 풀벌레 한 마리를 조용히 풀밭에 놓아주었습니다. 온 세상 모든 생명의 평화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전해져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정진에 불편함이 없는지 살피며 조용히 지원하는 모습에서는, 이름 없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사뭇 비장한 마음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법륜 스님의 법문은 베를린 장벽 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80년 전 새벽, 조상들이 ‘광복’의 아침을 기다렸듯, 우리는 이제 ‘통일’이라는 아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법문이 이어지는 동안 평화 통일을 향한 마음이 점점 커집니다.
"한번 절할 때 해방 이후 쌓였던 민족의 한이 사라지기를, 한번 절할 때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 저질러졌던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기를, 한번 절할 때 과거에 우리가 저지른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미워했던 마음을 녹여, 동포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돕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내겠습니다."
300배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기도합니다.
정진을 마치자 얼굴이 붉어지고, 숨을 고르며 입정에 들어서자 옷이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정직하게 흘린 땀은 우리의 또 다른 눈물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도 목청껏 부르고, 만세 삼창을 힘껏 외쳐봅니다. 그 시절 목숨을 걸고 ‘만세’를 외쳤을 독립운동가들이 떠올라 순간 목이 메입니다.
둥글게 앉아 나누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옥빛 광채를 띤 물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한참을 머뭅니다.
마치 “대견하다”고 칭찬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800년 대운의 특별 정진을 시작했으니, 팀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꾸준하게 실천해보고 싶습니다.”
“친정엄마가 이산가족입니다. 평소 통일 정진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지역에서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작년 타임캡슐에 넣은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니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평화 통일을 내가 염원했으니 꼭 이뤄질겁니다.”
“특별 정진 때 만 배, 삼천 배를 했을 때만 해도 젊고 정정했는데, 오늘 삼백 배 정진을 하며 다리가 아픈 걸 느꼈습니다. ‘아,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회원들 덕분에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젊은 시절, 아버님께서 만주에서 돌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기억이 떠오르며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하고 나니 뿌듯합니다. 퇴근하고 오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소임이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가정의 평화도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유수 스님 법문처럼 이번 정진을 계기로 가정부터 세계까지 이어지는 평화를 실천하겠습니다.”
“내가 관심을 둔다고 해서 뭐가 바뀔까 생각했는데 꾸준히 하다 보니까 저에게도 통일의 염원이 생겼습니다. 저처럼 한 사람 한 사람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누기를 끝으로 정진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캄캄한 어둠과 짙은 안개는 자취를 감추고, 산봉우리에 조금 남아 있던 운무마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아침이 왔습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독립을 이루어냈듯, 결국 평화 통일 또한 이루어낼 미래가 눈앞에 떠오르는 듯합니다.
온라인에서도 62명의 광주전라지부 회원들이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불교 중흥과 대한 독립의 길이 둘이 아님을 몸소 실천하신 용성 스님을 따라, 나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 통일 또한 둘이 아님을 깨닫고 함께 실천합니다. 전국에서 평화 통일을 다짐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 광복 80주년입니다.
평화를 향한 새로운 출발입니다. 통일은 올 것입니다. 새벽이 지나면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옵니다. 오늘의 우리도, 80년 전의 우리도, 아침이 오기를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 전라북도 장수군은 백옥같이 하얀 운무로 가득했습니다. 안개가 산골짜기로 이어져 산봉우리만 보이는 풍경이 마치 수묵화의 한 장면입니다.
오늘은 여기 장수군에 위치한 죽림정사에서 대전충청지부 주관으로 8·15 평화 통일 정진을 했습니다.
죽림정사 용성교육관에 7시 30분에 도착했지만 이미 행사 준비는 한창이었습니다. 음향 확인부터 목탁 준비, 정렬된 방석, 정진 중에 갈증 해소를 위한 물까지. 세심한 준비가 돋보였습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긴장하는 모습의 두 명의 집전자였습니다. 온라인으로 전환 이후 연습할 공간 부족으로 걱정을 했지만 이들의 준비 과정은 남달랐습니다. 대전지회 강옥자 님과 강순민 님은 올해 처음 집전을 배웠습니다.
강옥자 님은 떨리는 마음이 욕심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립니다.
"리허설 할 때 좀 떨렸는데, 그걸 보덕 법사님이 보셨나봐요. '욕심내지 말고 더 잘하려 하지 말고 대중들이 절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입장이니까 목탁에만 집중해서 해보라'고 하셔서 그 마음으로 해보려 합니다."
강순민 님이 집에서 목탁 연습을 한 이야기를 들으며 연구하고 고민하면 못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파트에서 문을 닫고 목탁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목탁 가운데 열린 곳에 테이프를 붙이면 소리가 잘 안 나거든요. 테이프 바른 그 옆을 치면 소리가 거의 안나죠. 그렇게 연습을 하니 손에 목탁 진동은 살아있어요. 리허설은 그 감각을 되살리며 잘 했던 것 같아요."
대전충청지부 8·15 평화 통일 정진 행사를 총괄하는 심태숙 님에게 죽림정사에서 통일 정진을 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죽림정사는 백용성 조사님의 탄생지 입니다. 백용성 조사는 3·1 운동의 33인의 한 분으로 독립 운동을 하신 분이시기도 하죠. 그 분의 호국 호법의 정신을 기리고 또 독립 운동의 정신을 잇는 것이 평화 통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여기 죽림정사에서 가장 먼저 평화 통일 기도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좀 늦게 시작 했어요."
심태숙 님의 눈에는 아쉬운 마음이 보였습니다.
8시가 가까워지자 77명의 통일 전사들이 하나둘씩 대웅보전에 있는 부처님께 삼 배의 예를 올리며 통일 정진에 결의를 다졌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이 끝나고 죽림정사 원장 보덕 법사님의 여는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통일 기도 발원문 낭독 후, 목탁 소리와 함께 정진이 시작 되었습니다. 앞자리에서는 천 배 정진을, 뒤에는 절을 하기 힘든 회원들이 관음정근을 같이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목탁 소리는 힘든 회원들을 안내하듯이 커져 가고 지쳐가는 회원들도 목탁 소리에 맞춰 더욱 힘을 내는 것 같습니다.
통일 정진이 막바지에 이르고 죽비가 울리자 절을 멈추고 명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코 끝에 마음을 모으니 통일을 염원하는 회원들의 기운도 한 곳에 모이는 듯 했습니다. 다시 죽비 삼성이 울리고 조용히 눈을 뜹니다.
오늘은 대전충청지부 중 천안지회에서 가장 많은 회원이 참석했습니다. 혹시 다른 비결이 있는 건지 천안지회장 김정미 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비결은 없어요. 천안지회가 기도를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웃음) 우리 지회는 2023년 2차 만일 결사를 시작하면서 매주 일요일 마다 화면 뒷 배경에 태극무늬를 넣고 통일 기도를 했어요. 온라인이지만 매주 하다 보니 17명 이상이 기도를 한 적도 있어요. 매주 참여를 못 해도 통일 기도를 한다는 걸 아니까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런 영향이 아닌가 해요. 또 이번엔 광복 80주년이니 마음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해요."
천안지회 통일꼭지를 맡고 있는 박연아 님은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무거운 마음이 뒤따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정진을 마치면 후련하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고요. 하기 전에 매번 ‘오늘은 회원들이 많이 오면 좋겠다‘ 라던가 적게 오면 ’내가 뭔가 실수 했나‘ 이런 인원에 집착하는 마음도 있어요. 처음에는 천 배를 한다는 것이 걱정되었어요. 막상 세 시간동안 절을 하니 오히려 집중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오프라인에서 다 같이 모여서 하니 힘을 받는 게 있어서 쉽게 했던 것 같아요. 오프라인은 온라인하고 또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사용한 곳을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교육관, 해우소, 방석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합니다.
대전충청지부 지부장인 권유숙 님은 마음이 모이면 믿음이 커진다고 합니다.
"6.13 만인대법회가 끝나고 ’우리가 이런다고 뭐가 바뀔까‘ 그랬었는데, 지금은 북한에 식량이 들어갈 수 있는 조짐이 보이잖아요. 그처럼 오늘 우리가 천 배 정진을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뀔까 하는 마음보다 우리는 이제 믿음이 있어요. 함께 마음이 모이면 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이 점점 커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길을 가는 것도 좋지요. 6·13 만인 법회나 몇 년 전 광화문에서 평화 대회를 했었잖아요. 이런 활동 모두가 통일 기도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전사들은 서로에게 아쉬운 마음을 남기며 배낭을 메고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백용성 조사의 호국 정신이 깃든 죽림정사에서 열린 이번 통일 정진은 단순한 행사를 넘어 평화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하나로 모으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목탁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기도는 장수 죽림정사의 산자락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한번 한번의 몸 낮춤으로 흘린 땀방울은 평화의 씨앗이 되어 각자의 마음에 뿌려졌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한 오늘, 이 뜨거운 열정을 간직하며 내년에는 더 큰 희망으로 다시 만날 것입니다.
미륵사
글_문현선(광주전라지부 동광주지회)
사진_이승준(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죽림정사
글_김종호(대전충청지부 천안지회)
사진_김성욱(대전충청지부 청주지회), 이시안(대전충청지부 대전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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