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실천

통일
무비판적 순응에 희생된 수많은 이웃,
‘순이 삼촌’을 기억하며
2026년 6월 제주 4·3 평화역사 기행

2024년, 제주 4·3의 역사 속으로 평화 기행을 다녀온 후, '이 역사를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 후 현충일을 기해 3일간의 여정으로 다시 ‘제주’로 향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부터 준비팀에 합류하여 사회자의 진행 글을 작성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역사 기행 날이 다가와도 막상 사전 학습 도서, 현기영 작가의『순이 삼촌』을 읽는 것은 자꾸만 미뤘습니다. 잔인한 역사를 마주하며 그 슬픔을 느끼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회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 마음은 한결 밝아졌습니다.

첫 번째 장소 관덕정으로 이동하며 비로소 역사 기행이 시작되었음이 실감 났습니다. 안내를 맡은 법음 법사님은 "역사 이해를 위해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알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고 당부하듯 말했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그 주변 일대입니다. 북촌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 하루에 400~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당한 단일 마을 가운데 가장 큰 희생이 발생한 곳입니다. 기념관에는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진 여러 그림과 강요배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진 자료가 거의 남지 않아 이러한 기록들은 더욱 귀중했습니다.

천명, 하늘의 울음 (강요배 화백의 작품)
▲ 천명, 하늘의 울음 (강요배 화백의 작품)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 제주 4·3 사건의 유족인 이상언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희생의 규모와 그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면서 그들은 단순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처절했던 한 시대의 삶을 살아 내었던 사람들이었음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기념관을 나온 뒤 마을 길을 걸으며 소설『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장소와 북촌 초등학교 등 희생자들의 터까지 둘러보았습니다. (제주에서는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부르며, 가까이 지내는 풍습이 있다. 여기서 순이(順伊) 삼촌은 '여인'이다.- 소설 중에서)

순이 삼촌 기념비
▲ 순이 삼촌 기념비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된 제주 도민이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해당합니다. 해설사가 일일이 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3시간이 넘도록 호명(呼名)과 해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제주 동쪽의 ’광치기 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름다운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이곳 역시 무고한 주민 400여 명이 군경 토벌대와 서북 청년단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장소입니다.

광치기 해변과 성산 일출봉
▲ 광치기 해변과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은 여러 차례 여행 왔던 곳이지만, 재작년 역사 기행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러한 아픔이 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기행의 사회자 역할에 집중하니 현장의 느낌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 발원문을 두 사람이 낭독하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떨리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생명과 오랜 세월 슬픔을 안고 살아온 유가족들의 아픔을 깊이 새깁니다. 두려움과 혐오, 침묵과 폭력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제주'라는 이 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늘 제주의 아픔 앞에서 개개인의 삶을 돌아봅니다.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대화와 이해로 갈등을 풀어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국가 폭력과 전쟁, 증오와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그 순간, 제주 동쪽의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는 3만 명이지만, 그들의 유족은 몇 명이며, 또 그 유족들의 가족은 '얼마나 많을까요……' 다시 '왜?'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살육의 피해를, 입어야 했던 이유는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이 있습니다. 4·3 평화 공원에 안치된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명상할 때입니다.

행방불명인 묘역
▲ 행방불명인 묘역

흐린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데, 묘지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 그 까마귀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명상을 제안했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자리를 찾아 묘지를 등지고 산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눈을 감고 몸으로 들어오는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새소리가 들리고 숲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몸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듯했습니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명상하는 모습
▲ 명상하는 모습

어느새 이곳이 특별한 장소라는 생각마저 사라지고 고요한 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명상이 언제 끝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눈을 뜨자 구름이 걷히고 햇살은 따뜻이 묘역에 내렸습니다. 그 밝음에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누군가는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아픈 역사와 고통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경험했던 순간의 기억이 신비로웠습니다. 함께 걸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묘지를 바라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마음은 먹먹했습니다.

이번 역사 기행을 통해 도반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함께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슬픔에 압도되지 않았고, 그 마음을 함께 잔잔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3조, 우리는 도반
▲ 3조, 우리는 도반

일정이 끝난 뒤, 조원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며 하루의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특히 제주를 주제로 시를 쓰고 낭독했던 시간은 그날의 경험을 정리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같은 숙소를 사용했던 프로그램 팀과 산책하고 체조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습니다.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행 내내 따라다녔던 '왜?'라는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팀원들과 산책길에서
▲ 프로그램 팀원들과 산책길에서

문득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마음 나누기 시간에 다른 회원이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서 아이히만은 약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실행한 실무 책임자였지만, 특별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평범한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 관성적이고 습관적인 사고방식이 어떤 맥락에서는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느꼈습니다. 이것을 ‘사유(思維)의 무능(결여)과 무비판적인 순응’의 결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살을 지시한 사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묻게 됩니다. 극단적인 공격성은 때때로 내면의 두려움과 상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마지막엔 ‘무감각과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남았고, 여기에 대한 해독제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 질문에 ‘수행’이라는 단어가 해답처럼 바로 떠올랐습니다. 먼저 바른 법 만난 자신이 행복할 수 있어 기쁘고, 수행자의 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잘 전하는 것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는 길임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전쟁과 분쟁, 사람들의 갈등과 증오를 마주할 때면 여전히 무력해지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평화를 위해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자 합니다.

먼저 꾸준히 수행하면서 내 안의 두려움과 화를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에서 평화를 만들며 제주 4·3 사건을 잊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제주에는 ‘속솜허라’라는 말이 있는데, ‘숨을 죽이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당시 동굴로 피신했던 부모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사건 후에는 피해자였지만,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았던 제주도민들이 들었던 말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고, 지독한 그 시절이 지났어도 살면서 애써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위한 발걸음, 제주에서 단체 사진
▲ 평화를 위한 발걸음, 제주에서 단체 사진

작은 실천으로, 역사 기행 참가자들이 쓴 시를 시집으로 엮어 제주를 안내하는 해설사들에게 전하는 싶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알아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넘어 세계 평화까지 큰 꿈을 품어봅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 p.536』 - 제주 4·3 평화 재단 홈페이지 게시글]

글_김수영(청년지부)
사진_김민성(청년지부)
편집_황재윤(대구경북지부 포항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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