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영지회
정토회를 만난 것은 내 삶의 가장 큰 행운입니다

2월의 마지막 연차를 내고 부산행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로 1시간 20분쯤 걸리는 부산을 찾은 지도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평일인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 부산역이 이렇게 컸나?’ 지하철 출구에서 흰머리가 소복하고 누비조끼를 입은 윤수연 님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윤수연 님은 든든한 안내자였습니다. 새 학기를 준비하는 어린이집의 작은 방에서 ‘내어놓기’로 삶이 가벼워진 윤수연 님의 묵직한 수행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워해서 죄송합니다.

제 고향은 거제도입니다. 아버지가 배를 타러 나간 사이에 어머니는 6남매를 공부시키고 키우셨는데, 어느 해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있었습니다. 밥을 굶지는 않았지만 가난했습니다. 학교에 내야 할 회비를 못 내서 "회비를 안 낸 학생 일어서!"라고 할 때마다 매번 일어서야 했고, 언니가 입던 교복을 물려입으며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차갑고 화가 많으셨는데, 화가 나면 어머니를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3일 만에 가셨는데, 마음이 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 돌아가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71세였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결심했을 때, 아버지는 아이 둘을 데리고 오는 경우라면 허락하고 혼자 나올 생각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송을 걸었고, 양육비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오자 아버지는 잘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지만 그 마음은 참 고마웠습니다. 한참 뒤 정토회 천도재 법회에서 법문을 듣다가 문득 ‘우리 아버지도 철없는 막내 외동아들이라 몰라서 그랬구나. 힘들어서 그랬구나. 내가 어리석어서 아버지를 그렇게 바라봤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미안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미워했던 마음이 탁 내려갔습니다.

2019년 불교대학 소임을 처음 맡았을 때(오른쪽 윤수연 님)
▲ 2019년 불교대학 소임을 처음 맡았을 때(오른쪽 윤수연 님)

시아버지가 3급 공무원이었던 부잣집에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은 일곱 번의 유산 끝에 여덟 번째로 태어난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자라면서 땅을 한 번도 밟지 않았다 할 정도였고, 유모도 있을 만큼 귀하게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특별히 더 잘난 것도 아니며, 둘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전문대학을 나온 며느리를 얻었다고 엄청 무시했습니다. 친정 아버지가 배를 탄다는 이유로 하대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건설회사에 다녔는데, 현장을 돌아다니며 외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둘을 온전한 가정에서 키우고 싶어서 처음과 두 번째까지는 참고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가 되자 마음의 문이 닫히고 모든 신뢰가 깨졌습니다. 이혼을 요구했고, 남편도 동의했지만, 양육권 문제를 두고 1년 반 동안 다툰 끝에 양육비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두 아이의 양육권과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인 두 아이를 혼자 키웠습니다. 시련은 한꺼번에 온다고, 이혼 전에 그리 잘되던 공부방이 어려워진 와중에 갑상선암이 발견되었습니다. 편도 상태가 일반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2차 수술을 앞두고 가족 동의서가 필요했는데 연락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동의서에는 보증인이나 담보가 필요했습니다. 이미 이혼한 후였고 아이들은 미성년자라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 보호자가 필요하구나!’ 그 무렵 만난 사람이 있었는데, 장애우 목욕 봉사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이혼했고 아이 둘이 있는데, 수술을 하려면 보호자 동의서가 필요하다”라고 했더니 본인이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역시 이혼한 상태로 혼자였고, 수입도 제 수입의 절반 정도였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남편과 살림을 합치게 되었습니다.

2024년 해운대 법당, 불교대학 홍보 발대식에서 도반들과(오른쪽에서 네 번째 윤수연 님)
▲ 2024년 해운대 법당, 불교대학 홍보 발대식에서 도반들과(오른쪽에서 네 번째 윤수연 님)

절망 속에서 받은 희망편지

갑상선암 수술을 했지만 원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까이에서 알고 지내던 어린이집 원장이 행정 업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 오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공부방을 운영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나도 어린이집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어린이집을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돈이 많이 들어 공부방 수익으로 어린이집 운영비를 메워가며 살았습니다. 아이 둘을 잘 키워보겠다고 시작했는데, 너무 바쁘고 돈에 쫓겨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어린이집을 시작하고 1년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자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첫 어린이집을 넘기고, 봄이면 뒤쪽에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어린이집을 새로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10개월 만에 주인이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방법이 없어 어린이집 문을 닫으려 하니 구청에서 50명이 넘는 원아들이 갈 곳이 없다며 문을 닫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기저기 땅을 보러 다니다가 다 허물어져 가는 집을 겨우 구했습니다. 건축사였던 오빠가 무료로 설계를 해주었고, 돈이 없어 벽돌 대신 패널로 시공했습니다.

새 어린이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자리를 주었던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근무할 당시 원장은 선원과 절 등 여러 곳을 다녔는데, 다시 만났을 때 정토회 이야기를 하며 불교대학 입학을 권했습니다. ‘저분이 사이비 종교에 빠졌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겠다’ 하고 정토회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2020년 불교대학에 입학한 언니와 함께(오른쪽 윤수연 님)
▲ 2020년 불교대학에 입학한 언니와 함께(오른쪽 윤수연 님)

시련이 한꺼번에 닥쳤을 때 희망편지를 받아보며 힘든 고비를 넘겼는데, 정토회를 검색하다가 그것이 법륜 스님의 희망편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불교대학에 등록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법륜 스님도 몰랐고, 희망편지가 법륜 스님이 전하는 메시지인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불법을 공부하면서 어린이집도 점점 안정되고, 일에 중심이 잡혀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강한 제 모습도 돌아보았습니다. 배운 대로 일상에서 실천했습니다.

부산 남구에는 어린이집이 60개 정도 있었는데, 그 연합회 총무를 맡았습니다. 이어 회장을 4년 맡았고, 국·공립·민간·가정 어린이집을 아우르는 통합 회장을 2년간 맡았습니다. 정토회에서 배운 대로 어떤 자리에 있든 그 자리가 주는 권위를 내려놓고 역할에 충실하니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점점 자존감은 높아지고 자존심은 낮아졌습니다.

‘교사를 안정적으로 지원해 아이들이 행복하고, 그 행복이 부모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자’는 소망으로 일했습니다. 교사를 뽑을 때 종교를 가리지 않았지만 최소한 행복학교1는 다니기를 권했습니다. 행복학교를 마친 교사들과는 “오늘도!”라고 외치면 “행복하자!”라고 화답하며 밝은 기운 속에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어린이집은 점점 안정되었습니다.

법사님, 기도하는데 왜 눈물이 나지요?

화가 많은 언니를 불교대학에 등록시켰습니다. 언니를 〈깨달음의 장2〉에 보내고, 저는 〈바라지장3〉을 신청해 마지막 날 언니 앞에 나타났습니다. 언니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뒤 언니의 화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저와의 관계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바라지장〉에서 4박 5일 동안 법사님과 간담회를 하면서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법사님은 밑바닥에 쌓여 있는 무거운 것을 내놓지 않으면 계속 남아 있어 눈물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9년〈 깨달음의 장 〉 바라지 중에 (오른쪽에서 두 번째 윤수연 님)
▲ 2019년〈 깨달음의 장 〉 바라지 중에 (오른쪽에서 두 번째 윤수연 님)

어떻게 내놓을까 고민하던 중에 불교대학을 졸업할 때 수행 사례담을 발표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결혼해서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혼자 아이 둘을 키우다가 몸이 아팠고…’라며 제 이야기를 내어놓았습니다. 다음 해 3월 불교대학이 시작되자 선배 사례담을 발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가을 불교대학에서도 발표를 하게 되었고, 지회 100일 기도 중간점검에서도 수행 사례담을 발표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쓴 사례담을 읽다가 눈물이 났지만, 점점 마음이 가벼워지고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반들이 제 이야기를 물어주고 들어주었기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부산·울산 지부장이 정토행자의 하루 수행 사례담을 해보겠느냐고 했지만, 이제는 더 내놓을 것도 없고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편안하게 지내던 어느 날, 부산 남부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수첩에 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했다며, 고독사로 돌아가신 분과 어떤 관계인지 물었습니다. 전 남편이었습니다. 전 남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고, 수첩 안에는 제 전화번호만 있었다고 합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200m만 더 가면 우리 집 주차장인데 전화를 받고 꼼짝도 못한 채 30분이나 얼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갈 거면서...’

그때가 <정일사4> 회향 기간이었습니다. 다음 날은 법사님을 만나는 날이었는데, 법당에 있던 18명이 제 이야기를 듣고 숙연해졌습니다. 다행히 제가 마지막 순서였는데, 제 사연을 듣고는 앞선 도반들의 문제는 다 해결된 것 같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2018년 경전대학 졸업식에서 수행담 나누기
▲ 2018년 경전대학 졸업식에서 수행담 나누기

전 남편 친구가 전화로 "시신을 화장해 무연고로 처리할 건데, 그냥 그렇게 둘 거냐? 아이들이 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성인이 된 딸과 아들에게 소식을 전했지만,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얼마인데 그 엄마도, 동생도 너무하다"라고 한탄을 하니 남편은 “우리가 가져올까?”라고 했습니다.

"왜 그래야 하냐?"고 했더니 지금은 아이들이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지만 40대, 50대가 되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돈을 잘 벌지는 못했지만,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결국,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법사님에게 전 남편의 상황에 대해 질문했더니, 영혼도 없는 뼛조각 잡으려 하지 말고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성인이 됐더라도 엄마가 중심을 잡고 아이들에게 평온함을 주어야 하는데, 그 뼛조각 하나 잡겠다고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사건사고가 일어날 때 마다 늘 정토회 행사가 있어 법사님과 도반들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전법회원으로

모둠장을 할 때였습니다. 도반들의 선출로 모둠장이 되었지만, 모둠장을 할 역량이 부족해 무척 힘들었습니다. 이것도 모르겠고 저것도 모르겠고, 회의록도 일반 문서와 달라서 나름 작성한다고 했는데 실수투성이였습니다. 처음 모둠장이 된 어리버리한 저에게 지회장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인데도 저는 그 말에 걸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법사님께 3년만 밖에서 잘 쓰이고 오겠다 하고 일반회원으로 전환했습니다.

탁구를 십 년 넘게 치면서 시합에 나갈 만큼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정토회 일반회원이 된 어느 날, 지인들과 탁구를 치던 중 바닥이 유난히 미끄러워 세 번이나 넘어졌습니다. 다음 날에는 집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크게 넘어지면서 내측 인대가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응급 수술을 하고 6개월 정도 깁스를 해야 했습니다. 바깥에서 잘 쓰이겠다며 전법행자도 내려놨는데, 정작 바깥에서조차 제대로 쓰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왼쪽 다리를 다쳐 운전은 하고 다녔습니다. 절도 못하고, 바깥 일도 간단한 회의에 참석하는 정도였습니다. 유순한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결국 2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2025년 두북 살리고센터에서 봉사활동 중에
▲ 2025년 두북 살리고센터에서 봉사활동 중에

돌아왔을 때 지회장은 “수연씨, 내일부터 전법 교육이야”라며 곧바로 참여를 권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교육에 참여해 6주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교육이 끝나자마자 스님 생방송 불교대학 진행을 맡았습니다. 진행을 맡은 지 2년이 지났고, 노안인 데다 컴퓨터를 다룬 지도 오래되었지만 지회장은 “수연 씨, 잘 한다!”라고 했습니다. 믿음 덕분인지 하면서 재미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와 보니 ‘모든 괴로움은 내가 만든다’는 수행문이 제대로 와닿으며 제 꼬라지가 보였습니다. 다시 전법회원으로 돌아온 것은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전법의 여왕

친하게 지내는 원장에게는 괴로움이 많았습니다. 원장이 저에게 대학원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는데, 당시 저는 불교대학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원장이 대학원 과정을 마쳤을 즈음, 저는 경전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가 15만 원을 건네며 정토불교대학 입학을 권했는데, 선뜻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다녀보고 좋으면 15만원을 다음 사람한테 전하라고 했습니다. 원장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한 뒤 삶이 한결 편안해졌고, 앞서 배웠던 것도 잘 활용할 수 있었다며 다음 사람에게 15만원을 전했습니다. 그 돈은 지금도 다른 사람에게 계속 전해지고 있답니다. 이후에도 저는 관계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하고, 상대의 상황과 시기에 맞게 전법을 했습니다.

어린이집 연합회에서 오사카로 가는 배를 타고 연수를 갔습니다. 방을 같이 쓴 분이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염주와 《금강경》5 책을 많이 남겼는데, 정작 자신은 잘 알지도 못한다며 흘리듯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금강경 공부 해 보고 싶으세요?“라고 자연스럽게 묻자 관심을 보이길래 바로 정토회 홈페이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마침 입학 시즌이었지만 배 안에서는 인터넷이 되지 않아 접수를 하지 못했습니다. 돌아와서 전화를 했더니 이미 입학 접수와 등록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학부모가 아이 문제로 상담을 하다 힘들어 하면 이야기를 나누고 행복학교 안내지를 전해 줍니다. 주위에 힘들어 하는 분이 있으면 기억했다가 입학 시즌이 되면 안내문을 보냅니다. 새로 온 교사들에게는 만 원씩 봉투에 담아 건네며, 행복학교를 들어보라고 권합니다.

2026년 캘리그라피로 적은 명심문을 들고
▲ 2026년 캘리그라피로 적은 명심문을 들고

정토회는 저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합니다.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전법 교육을 통해 자신을 다시 성찰하고, 진행자 회의를 하면서도 제 위치를 되짚어 봅니다. 스님의 법문은 매우 폭넓어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열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이처럼 가치 있는 배움은 어디에서도 쉽게 얻기 어렵습니다. 적은 나눔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정토회입니다.

이제 저는 행복운동본부로 갑니다. 흰머리가 소복하고 살림살이와 차림새가 가벼운 저를 보며 왜 그렇게 사느냐고 입을 대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당당합니다.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어려움은 늘 있지만, 이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일어났구나’ 하고 받아들입니다. ‘이것 때문에 너무 힘들다. 왜 나한테 이런 어려움이 왔는가?’라며 원망하지 않습니다.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겪어야 할 것은 겪으면 됩니다. 정토회를 만난 것은 제 삶에서 가장 큰 행운입니다.


어린이집 들어설 때는 보지 못했는데 나올 때 보니 작은 칠판에 쓰여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웃자!’ 윤수연 님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원훈입니다. 정토행자 윤수연 님의 가장 큰 공덕은 아이들을 잘 놀게, 잘 먹게, 잘 웃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운동본부에서도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함께 할 윤수연 님 모습에 덩달아 힘이 납니다. 윤수연 님, 응원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글_김정림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편집_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1.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3. 일과 수행의 조화를 통해 나 자신을 찾아가는 바라지장은 정토수련원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 마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수련으로 진행됩니다. 

  4. 정일사 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5. 금강경 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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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광

고맙습니다 🙏

2026-04-08 08:50:51

혜명

수연님, 당신은 소중한 도반입니다

2026-04-08 08:50:34

이수정

고맙습니다.

2026-04-08 08: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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