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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 할아버지 손... 내 마음에 봄을 주다
우리 수련원 아랫마을에 남씨 할아버지가 계시다. 20년 전 더벅머리 총각이었던 우리 스님과 함께 정토수련원의 시작이 된 백화암을 흙으로 지으셨다. 그때 할아버지 부인은 변변한 그릇조차 없어서 박을 잘라 만든 바가지에 된장과 나물을 무쳐 밥을 지어 올리셨다.
작년 겨울명상 때 스님이 말씀하셨다. “건물에도 역사가 있어요. 지금 현재 여기에 머무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역사가 건물 안에는 스며있어요. 그 역사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수련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래서 지금 우리 수련원이 있기까지, 처음 어려울 때 마음을 내서 함께 일했던 역사 속의 사람들을 여러분들이 잊지 말고 챙겨드렸으면 고맙겠어요." 이렇게 부탁하셨다.
법문을 듣는데 남씨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부인은 다리를 다쳐 수술하신 뒤로, 집안일을 아무 것도 못하신다. 남씨 할아버지도 경운기 사고 이후로 밥 대신 술만 드신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사고 이후 머리를 다친 뒤로 성격까지 이상해져 소리 지르고 함부로 욕을 하시니 어른을 가까이 하기 어려워했다.
얼마 전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셔서 관을 땅에 묻는 날이었다. 산 너머 장지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남씨 할아버지를 만났다. 언제나처럼 혼자 걷고 계셨다. 할아버지 손을 잡았다. 영하 7도의 강추위에 면장갑 하나 낀 손, 장갑이 작아서 드러난 손목은 어찌나 차가운지 꽁꽁 얼어 있었다.
나는 장갑을 벗었다. 따뜻한 내 손으로 할아버지 손을 잡아드렸다. 처음엔 싫다고 자꾸만 뿌리치셨다. 날이 매우 추워 손이 차면 감기 걸린다고 뿌리치는 손을 다시 잡아드렸다. 장지에서 몇 시간 동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수련원이 시작될 때의 역사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스님께서 초창기 어려울 때 마음 내주신 남씨 할아버지를 잘 모시라고 우리에게 신신당부하셨다는 말씀도 드렸다.
엊그제 길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버스를 기다리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가은까지 모셔다 드렸다. 천원을 주신다. 맛있는 거 사먹으란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이젠 싫다고 안하신다. 그리고 장례식 때 내가 소주를 조금밖에 안 따라줬다고 팀장님에게 내 흉을 보신다. 여전히 소리는 버럭버럭 지르시는데 눈은 가만히 웃으신다. 내 마음도 웃는다.
오늘 어르신들께 설날 선물을 전해드리러 마을에 내려갔다. 전에는 집에 찾아가면 “왜 왔냐?”고 소리부터 지르셨는데…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 버리셨는데…. 할아버지가 집안에서 나오셨다. 할아버지 손을 얼른 잡았다. 눈이 웃고 계셨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 외롭고 힘들어 서러웠던 할아버지 마음이 웃으신다. 내 마음도 웃는다. 오늘은 하늘도 땅도 사람도 봄 봄 봄이다. 온누리 봄볕 같은 사랑이 가득하다.
글_박연화(문경수련원 원주, 행자대학원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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