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대연
경전반 김현희 보살님의 수행과 새터민 사랑, 성동
새터민과 가족이 된다는 것, 대전둔산
평안도 아줌마의 남한 정착 이야기

[해운대정토회 대연법당]

경전반 김현희 보살님의 수행과 새터민 사랑 

대연법당에서도 드디어 처음으로 경전반 졸업생 18명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은 김현희 보살님의 수행담을 들어보았습니다. 

“저는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정토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지만, 워낙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데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터라 처음엔 용어도 어렵고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냥 왔다갔다 하는 정도였는데, 앉아있는 것도 힘들고 때론 스님이 우상화되는 것 같은 분위기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때 가정에서는 남편과의 불화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정서불안 장애를 일으켜 심리상담을 받았답니다. 
 
겨우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을 시작할 즈음 다리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힘드니까 마음까지 약해져서 다시 남편과의 심한 불협화음이 시작되자 아이들도 슬럼프가 깊어졌고, 저는 회의감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법당 도반들의 격려를 받아서 무슨 일이든 다 마치지 못하는 저의 업식을 깨기 위해 ‘깨달음의 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점점 의문이 풀리고 스르르 눈 녹듯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스님의 법문이 따뜻하게 들리고, 요즘은 소임이 맡겨지면 무조건 하겠다는 마음까지 생겨난답니다. 
 
이제는 똑같은 상황이라도 남편에게 받은 화를 아이들에게 풀지 않고 제 자신을 잘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힘이 커졌다고나 할까요? 제가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가니까  갈등이 줄어들면서 앞으로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잘 헤쳐나가리라는 믿음도 생깁니다.
 
맡은 소임은 환경, 복지, 통일 활동을 하는 사회활동부 소속으로 새터민 돕기입니다. 후원금 집행과 출산 지원, 그리고 백일, 돌 챙기기 등을 하고 있습니다. 또 감정소통을 추구하는 새터민 어린이학교 사이숲과 미술심리치료인 마그말힐링을 지원하고 있으며 바른 말하기 돕기, 검정고시 도우미 등도 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새터민들과 교감하면서 점차 기쁨을 느끼게 되었고, 엄마의 이런 활동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살아있는 공부가 되는 것을 느껴요.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새터민들입니다. 우리의 조그만 움직임들이 모여서 통일을 위한 마중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잘살아 보려고 내려왔지만 현실적으로 너무나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는 새터민들의 상황이 안타까워요. 좀 더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부터 먼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 저는 정토회에서 지향하는 평화통일의 목표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9월에 있을 통일축전에 가족들과 함께 가서 힘찬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보살님의 말속에 새터민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왔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아쉬운 점은 좀 더 일찍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더라면 스님의 법문을 좀 더 잘 알아듣고 더 많이 깨우쳤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보살님은 그 동안의 공부가 잘 스며서 조용하지만 꾸준히 실천하는 힘을 지니고 누구보다도 큰 샘물이 되어 통일세상, 희망세상을 향해 흐르리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Posted by 추손숙 희망리포터
                    

▲ 내 아이 옷 새터민과 함께 나누기~^^  
[성동정토회 성동법당]
새터민과 가족이 된다는 것
 
부처님 오신 날 하루 전날인 5월 24일(일) 오후 성동법당 임숙 보살님의 마음은 소풍가는 아이마냥 들뜨기만 합니다. 새터민 가정인 지민이(가명)네 집을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어린이날 방문하려다 미루어져 오랜만에 지민이와 지민이 엄마를 보게 되는 마음은 시집간 딸을 찾아가는 친정엄마의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도반들과 함께 지민이네 집에 도착하니 지민이 엄마는 지민이가 그린 당근로켓 그림을 보여주며 창의력 상을 받았다고 흐뭇해합니다. 미술학원에도 보내고 싶답니다. 지민이 그림 속의 가족은 활짝 웃고 있으며 명랑해 보입니다. 
다른 도반들에게 초등학교 1학년인 지민이가 몇 달 사이에 키도 훌쩍 크고 의젓해졌으며, 다방면에 재주가 많고, 친구도 잘 사귀고, 학교에서 인정받고 있다며 자랑을 하는 임숙 보살님의 모습은 외할머니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임숙 보살님에게 어떻게 방문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작년부터 성동법당의 통일팀에서 새터민 가정 방문봉사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불편한 마음이 일어난 적도 있었고, 한 달에 한번 방문하는 이런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새터민과 대화를 하다보면 통일이 먼 훗날의 추상적인 이야기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그들의 아픔과 분단의 비극이 전해옵니다. 아마도 법륜스님은 북한의 참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극한 아픔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결단이 나오신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 길에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보살님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지민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다른 보살님과 육아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던 지민이 엄마는 자신도 대학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민이를 키우면서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방법을 도반들이 함께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임숙 보살님은 지민이 엄마가 지닌 긍정성과 집념이라면 어떤 불모지에서도 꽃을 피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합니다. 이번 주에도 또 다른 새터민 가정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보살님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성동법당에서는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새터민 아이들과 함께하는 클레이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성동법당 도반들의 새터민 사랑과 통일의지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Posted by 박찬웅 희망리포터
 
[대전정토회 대전둔산법당]
평안도 아줌마의 남한 정착 이야기
 
지난 6월 5일(금), 대전둔산법당에서는 “대박(가명)이네 만두” 김명자(가명) 님을 모시고 ‘평안도 아줌마의 남한 정착 이야기’ 새터민 초청강좌와 만두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김명자 님과 대전둔산법당 통일팀과의 처음 인연은 2011년. 남남북녀 사이에 태어난 귀염둥이 대박이에게 ‘좋은벗들’이 후원하는 분유를 지원하게 되면서입니다. 씩씩하고 화통한 북한 여성답게 바지런하고 생활력도 좋아 눈에 띄던 분이었는데, 올해 작은 만두가게를 냈다 하여 반가운 마음에 봉사자들이 우르르 축하해주러 갔습니다. 벽면에 붙은 ‘만두이야기’가 궁금해서 이야기를 청하였는데, 음식솜씨뿐 아니라 입담도 참 좋은 김명자 님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남남북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500원을 드리지 않아도 궁금증을 풀어주셨습니다~ㅎㅎ 
 
그런데 성실하고 마음 착한 남한 남편을 만나 늘 고마워하며 이렇게 편히 지내면서도 김명자 님은 늘 북에 남겨진 동생들 생각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답니다. 게다가 10여 년 가까이 동생들을 남한으로 데려오기 위해 앞뒤 재지 않고 돈을 보내며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해 온 일이 사기를 맞아 마음잡기도 참 어려웠다는군요.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감동적인 김명자 님의 사연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대전둔산법당에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1995년 대홍수의 결정적인 영향으로 1996년 즈음 북한의 상황은 정말 처참하게 변했습니다. 배급체계가 없어지면서 사회 곳곳이 무너져 가고 더 이상 나라가 인민을 보살필 수도 사회가 유지될 수도 없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났으며, 각개각투로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이야기에는 모두들 눈물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명자 님도 중국으로 건너가 몇 번의 인신매매를 거치면서 너무나 많이 맞고 사람취급을 받지 못해 차라리 죽을 각오로 단식을 하니 오히려 살 길이 열린 적도 있었고, 다시 북송되었다가 또 한 번의 탈북으로 중국을 거쳐 2009년에 남한에 오게 되었답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막막함에 그저 중국에서 딱 한 달만 열심히 벌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 마음먹고 막내가 9살 되던 해에 헤어진 게 그 아이를 본 마지막이 되었답니다. 얼마 전 20년 만에 동생들과 전화가 연결되어 기쁨을 나눈 것도 잠시, 그 통화가 문제가 되어 동생들이 보위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요즘 염려가 크다는 말을 들으며 모두 같이 염려하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돌아가신 오라버니 소식에 가슴이 찢어지고, 생사를 알 수 없던 언니로부터 연락이 가게 된 동생들의 안전도 염려되고, 중국에서 살 때 의도치 않게 낳아 남겨두고 온 아이까지 김명자 님에게는 온통 마음 아픈 일뿐입니다. 
 
이산가족은 6.25전쟁으로 인한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그날 모인 우리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은 더 간절해졌습니다. 
김명자 님네 부부는 얼마 전 평화재단 대전 통일의병학교에 아기까지 세 식구가 함께 참여해서 모두 ‘통일의병’이 되었습니다. 26살 처녀의 몸으로, 자주 표현하듯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겪어서도 안 되고 겪을 수도 없는 숱한 일들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이렇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있어 주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부디 지금처럼, 개인의 아픔을 상처로만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 김명자 님의 진지하게 듣고 있는 도반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점심 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김명자 님은 일일이 손으로 만두를 빚어서 팔기 때문에 하루 종일 재료 준비며, 만두 빚기, 김치 담그기, 명태・가자미 식해 담그기 등으로 쉴 새 없이 바쁠 텐데도, 초청강좌 날 배추겉절이를 맛보게 해주고 싶다며 누룽지를 끓여 만든 북한식 김치와 만두를 준비해 와서 만둣국을 끓여 주었습니다. 전날 밤늦게까지 만두를 빚었다고 하네요.
 
큰 눈에 툭하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늘 진심을 다해 봉사하는 장원희 보살님의 소감나누기입니다. “평양이 고향이신 친정아버지가 남쪽에 전쟁포로로 남게 되셨어요. 북에 계신 가족들 생각에 평생 죄책감으로 마음 아파하셨지요. 그래서 법당에서 통일 담당을 하라고 했을 때 인연이구나 받아들였는데, 5월에 정신없이 바쁘더라고요. 부여 새터민 나들이 행사 때 만난 분들과 정서적으로 안 맞는 것 같아 어렵게 느껴졌고, 제 생활도 바쁘고 힘들다보니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보다는 다른 여유로운 사람이 하는 게 이분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찌 저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김명자 님과 만나게 되었네요. 그렇게 힘들게 살아남은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래도 그 아픔을 아는 내가 해야겠구나 싶네요.” 
“군대 간 아들이 오늘 휴가 못나온다니까 이렇게 서운하고 보고 싶은데, 얘기 들으면서 부모님, 동생들 얼마나 그리울까 마음이 아프고요, 우리가 ‘통일, 통일’ 말은 하고 있는데 정작 북한 주민들은 통일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생존에, 한 끼 먹는 것도 힘들구나, 우리 사는 게 참 사치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작년 동북아역사기행 갔을 때 압록강이 도랑인 거예요, 그리고 북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가깝구나, 왔다 갔다 해도 되겠구나, 같은 동족인데 삶이 이렇게 다르구나, 우리가 책임의식을 진짜 크게 가져야 되겠구나 싶습니다.” 
 
아들 군대 첫 휴가와 초청강좌가 겹쳐 참석이 어렵겠다던 보살님이 함께하게 되어 참 다행이었다며 나눠준 소감이 잔잔하고 단단한 여운으로 남는 날이었습니다.  Posted by 박현이 희망리포터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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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덕

이산가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대목에서 눈물이 핑 도네요.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2015-06-22 18:09:30

김지은

통일이 어서 빨리 오기를, 보다 평화롭게 오기를 기원합니다. 도반님들, 감사합니다_()_

2015-06-22 07:03:10

보리안

구체적인 활동소식 감사합니다. 봉사자들의 마음과 새터민들의 아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5-06-20 03: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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