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법당
어린 나를 버리고 간 엄마도 이제는 고마워요
정토불교대학에서 깨닫게 된 용서의 의미
개원 3년째를 맞은 춘천법당에서는 불교대학생들의 초발심으로 수행 분위기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남양주에서 2014년 가을불교대학에 다니다가 춘천으로 전학 온 강선경 님이 열심히, 기쁘게 불교대학에 다닌다고 해서 만나보았습니다. 두어 번 스치듯 만났을 때 밝은 표정과 경쾌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그녀를 만나러 찾아간 곳은 선경 님이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었습니다.
중국 음식점 ‘원앙반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일 먼저 성모상이 눈에 띕니다. 강선경 님은 성당에 오래 다닌 천주교 신자입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법륜스님 법문에서 예수님의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저런 이야기를 하는 스님이 누구인지, 부처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불교대학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음식점이 월요일에만 문을 닫기 때문에 월요일에 불교대학이 열리는 남양주까지 찾아가서 부부가 함께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올해 봄부터는 춘천에서도 월요일에 불교대학이 열리게 된 덕에 전학생이 되어 춘천 도반들과 함께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답니다.
▲ 강선경 님 부부가 원앙처럼 다정하게 운영하는 중국음식점. 성모상이 눈에 띕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선경 님은 '예전에는 피해의식이 무척 강했다'는 얘기로 말문을 연 다음 살아온 얘기를 편안하게 술술 풀어놓았습니다.
“나 너무 아프다고 힘들다고, 상처받았다고 얘기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누가 좀 안아주고 토닥토닥해주면 좋겠고…. 그런 걸 많이 바랐었어요. 또 옛날에는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알고 싶고 그걸 듣고 내가 납득해서 그 사람이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가 가야 내가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불교대학 다니면서는 그 사람한테 해명을 듣지 않아도 그냥 인정해주게 되었어요. 아직도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많지만 이젠 다 이해하지 않아도 편해요.”
강선경 님의 상처는 어릴 때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열세 살 때 집을 나간 어머니를 스물여덟이 되어서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살 때도 가난하게 살았지만 아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것은 '배고픔, 추위, 고통'이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막아주던 아버지의 폭력까지 직접 겪어야 했던 거지요.
데리러 오겠다던 엄마의 약속과 간절한 기다림을 이야기할 때, 어쩔 수 없이 눈에 어리는 물기는 마주 앉은 저에게도 찌릿한 고통을 전해주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에야 다시 만난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는커녕 변명과 한탄만 되풀이해서 늘어놓아 짜증과 화가 더하기만 했답니다.
강선경 님은 불교대학에서 나누기를 하면서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많이 배우고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은 아무 상처도 고통도 없을 거라 짐작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내가 특별한 상처를 갖고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불대 다니면서 내 상처가 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많이 가벼워지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상처에 위안 받는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요.”
나날이 날아갈 듯 행복한 마음으로 부처님 법을 공부하던 중에 작년 가을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깨달음의 장까지 마치면 완전 행복한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기대와 궁금증을 가지고 갔지만 오히려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것 같은 느낌과 우울감만 가지고 돌아왔다 합니다. ‘스스로 위축되는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밖으로는 자신감 있는 척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는데 자존감이 엄청 낮은 본모습이 만천하에 다 들통 나니’ 아무 의욕도 없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져 허우적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시작된 불교대학의 ‘수행맛보기’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는데 남양주 총무님이 그럴 때일수록 수행을 더 해야 한다고 하도 강력하게 권해서, 곧 전학도 가는 처지라 ‘인간적인 의리로, 어른 말씀 한 번 듣는다는 생각으로 그냥’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도반들과 매일 아침 정진을 하고 나누기를 하다 보니 서서히 회복되어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되었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부터 나아지면 돼. 내가 자존감이 낮지만 여기서부터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쪽으로 지금부터 그냥 하면 돼.’ 예전에는 나는 왜 이럴까, 부모님은 왜 이런 환경에 나를 낳아서 이런 사람으로 자라게 했을까 이런 것에 매달려 있었는데 저를 인정하고 나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이게 내 모습인데 뭐. 지금부터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면 되지.”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겠구나 생각했던 상황에서 일어나 보니까 희망이 생기더라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고 강선경 님은 말합니다.

▲ 불교대학 특강수련에서 수행소감문을 발표하는 강선경 님
사실 그전에는 ‘부모님께는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는 스님 말씀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답니다. ‘어떻게 낳았든, 갖다 버렸든,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말씀이 억지스럽게만 들렸다는군요. 그런데 이제는 부모님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져서 어머니와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옛날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저렇게 자꾸 반복하시는 것은 아직도 상처가 낫지 않아서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답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듣기 싫었던, 외울 정도가 된 이야기를 이제는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듣게 되었을 정도입니다. 그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를 다시 만나서 알게 된 이야기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와 만나서 처음 가진 자식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뱃속에서 잃어버리셨습니다. 그 후 첫 아들을 낳고 곧 또 들어선 아이는 터울이 너무 짧아서 인공유산을 했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아이가 들어섰는데 이 아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사히 태어나서 강선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강선경 님은 자신이 태어나게 된 것이 큰 행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낳기로 결정해준 어머니가 진심으로 고맙게 느껴진답니다.
그리고 온화한 부모님 밑에서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으면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 부러움과 회한을 가지고 살았었는데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그런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온전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성장했다면 결혼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을 때 어쩌면 나도 아이들을 버리고 갔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되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엄마처럼 자식을 버리고 가지는 말아야지, 자식 옆에 있어 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하는 각오를 엄청 많이 하면서 자랐거든요. 그런데 결혼생활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고 힘들고 서러웠는데 아기 때문에 버티고 살았어요. 그렇게 우리 엄마가 집을 나갔기 때문에 난 아이 옆에 있는 엄마가 되려고 버티고 살았던 거잖아요. 힘든 상황에서도 자식 옆에서 살아야 된다는 각오와 힘, 이게 우리 부모님이 나한테 주신 유산이구나, 위대한 유산이구나. 그걸 상처, 원망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런 속에서도 내가 그런 힘을 키울 수 있었구나, 그래서 결국에 아이들 옆에 내가 있을 수 있게 된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원망만 했던 어릴 적 환경이 고맙더라고요. 저희 엄마가 미안하다는 사과는 안 하시지만 자식 버리고 간 엄마로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크겠어요. 근데 엄마가 안 그랬으면 내가 나이 들어서 자식 버린 엄마로서 그런 죄책감을 갖고 살았을 수도 있겠구나. 불대 다니다가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불교대학 다니면서 너무너무 진짜진짜 좋은 것’이 바로 그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라며 유쾌한 목소리로 강조하는데 저는 괜히 눈물이 핑 돌고 고개가 끄덕거려졌습니다. ‘기적처럼 정말로 행복해졌다’는 강선경 님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저도 참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맛있어서 깜짝 놀랄’ (것이라며 담아준) 콩국물과 짜장 소스를 선물로 받아들고 나오면서 괴로움을 원으로 바꾼 관세음보살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글_이현정 희망리포터 (춘천정토회 춘천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