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부평법당
돈으로 살 수 없는 부적을 얻은 정초순회법회, 여수법당
진취적 기상을 지닌 열혈남아 송홍신 거사님

부평법당 '돈으로 살 수 없는 부적'의 의미가 참으로 쉬우면서도 깊이 새기고 싶습니다. 여수법당 삶의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송홍신 거사님의 잔잔한 감동 스토리 들어보셔요~~


[인천정토회 부평법당]

돈으로 살 수 없는 부적을 얻은 정초순회법회
2월 26일(목) 부평법당 도반들은 개원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정초순회법회를 잔뜩 기대하며 묘수법사님을 기다렸습니다. 평일 10시에 법회를 하다 보니 가을 불교대학 주간반 도반들의 주체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집전과 차량 봉사를 해주신 김용순 보살님은 서초법당에서 묘수법사님을 모셔오느라 새벽부터 나섰는데, 서울에선 한 번도 운전해본 적이 없다고 일주일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모시고 올 때는 여유 있게 운전했으며, 오히려 이것저것 많이 여쭈느라 감기에 걸린 법사님을 귀찮게 한 것 같다고 합니다. 게다가 목탁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법사님 앞에서 하려니 떨린다고 걱정이었는데 우리가 보기엔 실수 없이 아주 잘 했답니다. 영상담당 김미숙 보살님도 일주일 전에야 부랴부랴 영상을 배워 많이 떨렸을 텐데도 차분히 실수 없이 했고요. 역시 닥치면 다 하게 된다는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 법문 전에 예불을 올립니다. 앞줄 가운데가 묘수 법사님. 왼쪽 끝에 목탁 치는 김용순 보살님~

묘수법사님은 정초 기도의 중요성을 알려주셨습니다.
‘대개는 정초에 절에 가서 한 해 동안 모든 일 잘되게 해 달라고 부적을 써 오는데, 정초에 부모님과 조상님께 감사의 절을 올리고 한해를 새롭게 준비하면 누구의 덕 보려고 하는 마음도 없어지고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하며 그것으로 복을 받았다고 여기게 된다. 부모 복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은 내가 그것에 얼마나 감사해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이 복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면 부모 복이 있는 사람이 되고, 자신이 받은 게 없다고 느낀다면 그는 부모 복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복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니 정초에 감사기도를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복 받고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되면 한해가 순탄해진다. 그게 바로 돈 안 들이고 받을 수 있는 부적이다.’
  
그 말씀에 모두가 정초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질문은 세 명이 했는데 질문 하나 하나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나누기 시간에 저를 포함해서 여러 명이 이구동성 ‘공짜로 부적을 얻어 가는 것 같다.’ 고 기뻐했더니 법사님은 ‘저는 부적 준 적 없다.’고 하셔서 와그르 웃음이 터졌답니다. 정초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는 분도 많았고 내년부턴 꼭 하겠다고 다짐하는 분,  ‘싫다, 좋다는 분별만 하지 않아도 구경의 경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는 분 등등, 마지막으로 가을불대 주간반 담당인 김희진 보살님이 ‘작년에 묘수법사님께서 부모님께 100일 동안 300배 절로 참회기도를 하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못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서 하기로 다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도반들 앞에서 말했으니 이번엔 실천할 거라고 믿습니다.

공양 시간, 예쁘게 준비해준 윤혜령 보살님의 요리솜씨에 모두들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소박하지만 정성이 듬뿍 들어간 맛있는 공양이었습니다.
 

▲ 즐겁고 유익했던 정초순회법회~^^

정초순회법회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부적에 맛있는 공양까지 많은 걸 얻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복 받는 쉬운 길을 알려주신 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정초 기도의 중요성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Posted by 신은진 희망리포터

[순천정토회 여수법당]

진취적 기상을 지닌 열혈남아 송홍신 거사님
쉰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남다른 열정과 개척정신을 가진 여수법당 송홍신 거사님은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배를 타고도 두 시간 반 정도를 가야하는 ‘하의도’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하고 기업컨설팅 연구소에서 근무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서른 즈음에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서 광주에서 건축자재사업을 하고 있던 거사님이 여수로 거처를 옮긴 것은 다름 아닌 IMF 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수에서는 사업이 순탄하게 되어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나갔고, 거사님이 기획해서 여수시청 문화관광과에 제의한 ‘여수 10경’은 지금도 여수시 관광 자료로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5남 1녀 중 넷째로 섬에서 뭍으로 나와 목포에서 세 형들과 자취를 했던 거사님은 도시락을 싸가는 날보다 못 싸간 날들이 많았고 때로는 이틀 동안이나 밥을 굶기도 했던 그 시절의 힘겨웠던 경험들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집중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고, 이 신념은 ‘때가 되면 밥을 주는 군대생활이 오히려 편했다’고 느껴질 만큼 어려운 고비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을 붙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 수업을 마치고 법당에 선 송홍신 거사님

그러나 슬하의 두 아들 중 수재 소리를 듣고 자라던 거사님의 큰아들이 몸이 아프게 되고 2013년에는 삼수를 해서도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를 하자, 거사님은 점점 더 술과 담배에 의지하게 되었답니다. 모든 것이 싫어지더니, 나중에는 손수 건물을 짓고 인테리어를 해서 경영하던 식당마저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의 건강과 장래에 대한 걱정,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하는 억울한 마음 등으로 방황을 거듭하고 있을 때, 지인을 통해 불교를 알게 되었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전국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반야심경을 사경하다가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듣게 된 법륜스님의 법문. 그러다 길거리에 걸린 정토불교대학 현수막을 보게 되었고, 작년 9월 1일, 여수법당의 가을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런데 거사님에게 여수법당의 첫 이미지는 ‘잘못 왔구나!’였다고 합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법당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스님의 법문을 영상으로 접해야 한다는 것 등이 다 실망스러웠습니다. 입학을 하고도 한동안은 ‘이상한 곳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어 정토회 홈페이지를 검색해보기도 했었답니다. 

반년이 지난 지금은 관념적으로 접근했던 불교가 아닌 실천적 불교 사상에 매료되어 하루에 세 갑씩이나 피우던 담배도 끊고, 8-3차 천일결사 입재를 시작으로 수행을 하며 여러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 봄 학기 불교대학 홍보 때 자신의 입학 통로가 되어주었던 현수막이 잘 걸려있는지 여수 거리 곳곳을 직접 살펴보고 다녔다는 거사님은, 지난 3월 4일부터 4박5일간 1280차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에는 이 좋은 것들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고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2015년 새해맞이 3000배 정진 후 도반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송홍신 거사님. 왼쪽에서 두 번째~~ 

여전히 걸림은 있지만 걸림만큼 알아차림도 있고, 주위사람들로부터 밝아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는 송홍신 거사님에게 진취적인 기상을 배우며,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옷을 입고 있다.’는 뜻인 ‘하의’도, 거사님의 고향 이름처럼 비록 흙탕물에 뿌리를 담그고 있어도 청정하게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향기 가득한 일상을 기대해 봅니다. Posted by 정수미 희망리포터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0

0/200

보리

송홍신거사님, 파이팅입니다.

2015-03-31 01:15:54

최영미

신은진 리포터님 부평법당 정초기도 소식 잘 읽었습니다. 열혈남아 송홍신 거사님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03-27 22:57:06

금강지

저도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늘 도반님들 소식들으며 많이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2015-03-27 18: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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