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17. 북미순회강연(10), 콜럼버스(Columbus)
“아무런 준비 없이 미래를 맞이해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북미순회강연 열 번째 날입니다. 스님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로 이동하여, 오하이오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영어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숙소에서 가볍게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오전 8시에는 벤 님의 차량 지원을 받아 애틀랜타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벤 님이 말했습니다.

“스님. 언제든지 다시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네. 잘 지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애틀랜타 일정을 지원해준 벤, 손희숙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탑승 수속을 밟기위해 공항 카운터로 이동했습니다. 애틀랜타 공항은 그동안 지나왔던 미국 공항 중에서 가장 사람이 많고 복잡했습니다.


스님도 많은 인파 속에서 체크인과 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시간까지 잠시 대기했습니다.

10시 30분, 애틀랜타를 출발하여 1시간 30분 동안 하늘을 날아 오하이오주의 콜럼버스(Columbus, Ohio)에 도착했습니다. 착륙하는 비행기 창문 밖으로 큰 공단들이 보였습니다.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오하이오주는 농업과 제조업이 고루 발달해 있고,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도 밀집해 있는 곳입니다. 특히 주도이자 최대 도시인 콜럼버스는 미국 유수의 명문 공립대인 오하이오주립대학교가 있는 대표적인 대학도시입니다.
수하물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나오니 정토행자 김학우, 박지선 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12시 30분에 콜럼버스 법당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약 30분간 이동하여 콜럼버스 법당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부처님 전에 삼배를 드렸습니다. 콜럼버스 법당의 회원들도 오랜만에 뵙는 스님께 삼배를 드렸습니다.

“그 동안 잘 지냈어요?”

스님은 회원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으로 점심 공양을 마치고, 오후 2시 무렵 인근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콜럼버스 법당에 들를 때마다 늘 산책하는 장소입니다. 한 시간 반 뒤에 강연장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코스는 짧게 잡았습니다.

아침에 내린 비로 땅이 다소 질척였지만 걷기에는 무리가 없었고, 숲은 짙은 녹음이 우거져 제법 시원했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샛노란 야생화 군락이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예전에 왔을 때에도 야생화가 피어 있던 것을 떠올린 스님은 오늘도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오후 3시,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정비를 한 후 오늘 강연장소인 오하이오주립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 도착하니 오늘 강연을 주최하신 변우용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진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 어서오세요. 먼 길 오시는데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네 초대해줘서 고맙습니다. 하루에 한 군데씩 다니니까 오전에는 거의 이동하는데 쓰게 되는 것 같네요.(웃음) 매년 교민 중심으로 강연을 하고 중간에 대학에서 요청이 있으면 대학강연을 했었는데, 올해는 대학 강연을 중심에 두고 주말에만 교민 강연을 하고 있어요. 샌디에이고를 시작으로 해서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밴쿠버, LA, 휴스턴, 오스틴, 애틀랜타, 그리고 오늘 여기 콜럼버스로 왔습니다. (웃음)”

“그런데 스님 TV에서 뵀을 때랑 너무 똑같으세요...”

“똑같아야지, 다르면 어떡해요?” (웃음)

다 같이 한바탕 웃은 뒤,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부터 깨달음의 본질,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무소유의 참뜻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스님, 질문이 있습니다. 제가 성당을 다니는데, 성당 공동체가 서로 별로 관심이 없어요. 몇 달에 한 번 오든 신경도 안 쓰고 친한 사람들끼리만 대화하고…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제가 남성구역 회장을 맡으면서는 사람들의 이름을 외워서 오랜만에 오면 인사도 하고 변화시켜 보려고 노력하는데, 사람들이 오히려 되게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맞는 건지, 제 노력이 나중에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건지 고민이 됩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봐도 우리의 심리가 '이중 심리'라고 할 수 있죠. 누가 나를 가까이에서 보살펴주면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고, 너무 가까이 오면 속박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거부하고 싶잖아요. 두 가지 성질이 다 있는 거예요. 집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집은 보호해 주는 곳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속박하는 곳이에요. 바닥과 벽과 천장이 외부의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이 방은 감옥이잖아요. 가족도 보호처인 동시에 굴레입니다. 사물은 다 그렇다는 거예요. 고향도 나를 보호해 줌과 동시에 많은 속박이 있죠.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가출을 해도, 나가면 굴레는 없어지지만 보호처도 같이 없어지니까 나그네가 되어 외롭잖아요. 그러면 다시 돌아오든지 하게 되죠. 자유도 있고 보호도 받는 곳을 우리는 늘 찾아가는데,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것이 좋으냐가 아니라 ‘아, 사람마다 달리 반응하는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사람마다 달리 대응해야 해요. 아니면 칭찬과 비난, 효과와 부작용을 다 받아들여야합니다.”

대화를 하던 중 오하이오주립대학에 한국어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님이 물었습니다.

“학교에 한국어과가 언제 생겼습니까?”

“동아시아학과는 오래전에 생겼고, 중국어·일본어·한국어가 있는데 1985년부터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어가 전공 과목으로 인가된 것은 2005년이나 2006년도 쯤입니다”

“요즘은 한국어과에서 배우는 사람이 많지요?”

“네, 정말 많아졌어요. 제가 20~30년 전에 시작했을 때는 한국어 프로그램이 문 닫을까 봐 항상 걱정했는데,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웃음)”

“학생들은 주로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의 어떤 점에 관심이 많습니까?”

“굉장히 다양합니다. K-pop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요, 역사, 예술 등 다양하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넷플릭스가 있어서 미국에서도 한국 드라마나 웹툰을 엄청나게 봅니다.(웃음)”

어느덧 5시, 강연이 시작되어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에는 80여명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하는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하고 묻는다면, '네 좋을 대로 살아라' 이렇게 말합니다.(웃음) 다람쥐가 저한테 묻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면 될까요?''네 좋을 대로 살아라' 토끼가 묻습니다.'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토끼 좋을 대로 살아야 되겠죠. 자연에 있는 동물들에게는 '다람쥐야 네 좋을 대로 살아라, 토끼야 네 좋을 대로 살아라' 이렇게 말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왜 사람에게는 '네 좋을 대로 살아라' 하는 게 어색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 좋을 대로 사는데 내가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럼 이건 누구 책임입니까? 내 책임이죠. 그러니까 '내가 좋을 대로 사는데 괴롭다면 왜 괴로울까' 이렇게 탐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서 스스로 제거하고, 내가 괴로움 없이 살아야 합니다. '내가 왜 괴롭지?' 하고 자기 자신을 살펴서 '아, 이것 때문에 괴롭구나' 발견하고 거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자각', ‘스스로 깨닫는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 대화는 '어, 이렇게 내가 괴로워할 필요가 없네'라든지, '아, 이래서 내가 괴로웠구나' 하고 자각을 하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의문이 풀어지거나 괴로움이 사라지는 대화를 '담마 토크'(Dharma Talk)라고 합니다. 자, 그러면 오늘의 대화도 시작해봅시다."

미래만 생각하면 늘 불안정합니다

"Whenever I think about my future financial stability and relationships, I lose all joy in my daily life. How can I overcome this constant dread and live happily in the present?"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에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제 문제는 최근 들어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직장에 갔다 와서 친구들과 집에서 놀 때는 가끔 즐겁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재정은 안정적일지,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불안해집니다. 이런 불안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미래의 제 모습이 더 행복할 거라고 상상하기는 하지만, 지금 현재 어떻게 살아야 미래에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어떻게 재정이 안정이 될까?’라고 말씀하셨는데, 돈이 얼마나 있으면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I don't have a specific number, but I want the financial freedom to travel or leave a job whenever I want without stressing over money. Currently, though, I'm working part-time and struggling just to cover daily living expenses.“
(정확한 액수는 잘 모르겠지만, 여행을 가거나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정도의 안정을 원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파트타임 일을 하며 매일 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조차 빠듯한 상황입니다.)

“질문자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숙소를 정한다고 해도 10달러, 100달러, 300달러짜리도 있습니다. 서로 다르고 차이가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할 때도 어디를 얼마만큼 갈 건지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많이 납니다. 50달러로 갈 수 있는 저렴한 비행기 표도 있고, 100달러, 1000달러짜리 표도 있습니다.

만약에 질문자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밥 먹기도 힘들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럴 때는 밥 한 끼 먹는 것만 해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행복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질문자는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10만 달러 정도 있으면 아주 만족할 것 같은가요? 만약 질문자가 10만 달러를 가지고 가난한 나라에 가서 산다면 아주 부자로 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다 100만 달러, 1000만 달러 가지고 있는 부자 나라에 가서 산다면 질문자는 굉장히 궁핍할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 정도 있어야 재정적으로 안정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Like a ballpark? I think I'll be very happy if I can make like six figures.”
(정확한 숫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억대 연봉을 받으면 행복할 거 같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

“내가 1000달러를 갖고 있을 때는 ‘아, 10만 달러만 있다면 좋을 텐데’ 이럴 겁니다. 그게 채워지면 아마 100만 달러쯤 있어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럼 100만 달러를 가지면 행복할까요? 아닐 겁니다. 이것은 끝이 없습니다.”

"I know money doesn't buy happiness, but real-world expenses like rent, mortgages, and supporting a future family feel overwhelming. How can I overcome the anxiety of surviving on my own once I move out of my parents' home?“
(부자가 된다고 제가 더 특별하게 행복할 것 같진 않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제가 주택담보대출도 있고 애완동물 보험도 들어야 하고 나중에는 내 아이나 가족을 위한 비용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면 재정적으로 부담이 커지게 될 것 같아요. 지금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매일 먹고 사는 건 걱정하지 않지만 앞으로 제가 독립하면 돈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먹었어요?”

“No. I usually skip breakfast.”
(평소에 아침은 안 먹습니다.)

“점심은 먹었어요?”

“Yeah.”
(네.)

“일 마치고 잠잘 집이 있어요?”

“Mhm.”
(네.)

“먹을 음식이 있고, 잠잘 데가 있으면 됐지, 뭐가 문제인가요?”

“If I get seriously ill like cancer in a couple of years and my job doesn't cover the medical bills, I'll be overwhelmed by stress, especially comparing myself to people at big companies with great insurance.”
(제가 2년 뒤에 암이 생겨서 지금 제 가족이나 직장에서 저의 병원비가 지원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을 것 같습니다. 비교하자면 어떤 사람들은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좋은 보험이 있어서 아파도 치료를 잘 받을 텐데 말이에요. 이런 작은 생각들이 계속 쌓이는 것 같습니다.)

“암이 만약에 생긴다면 아마 그렇겠지요. 그런데 2년 후에 질문자가 암이 생길 확률은 1퍼센트도 안 됩니다. 질문자는 생기지도 않은 일을 계속 생각해서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어떻게 탑니까? 사고 나면 어떻게 하려고요. 남자 친구와 데이트는 어떻게 합니까? 성폭행당할지도 모르는데요. 음식은 어떻게 먹습니까? 독약이 들었을지도 모르는데요.

심리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우리의 뇌는 착각을 한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1년 전에 누구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해봅시다. 이것은 분명히 지나간 일입니다. 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에요. 단지 기억만 하고 있어도 뇌에서는 지금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방송국에서는 녹화방송을 내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생방송을 보는 것처럼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죽는 걸 보면 울게 됩니다. 영화를 끄면 아무 일도 없습니다. 내가 거기에 집중되어 있어서 내 뇌는 지금 사람이 죽는 것처럼 착각해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내가 암에 걸리면 어떡할까?’ 이렇게 미래의 상상을 하게 되면 뇌는 마치 암이 발생했을 때와 같은 심리 현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착각이고, 전통적으로 말하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환상’과 같은 것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여기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늘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을 때 과거의 기억이 주로 많이 나는 사람은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이런 괴로움이 많습니다. 반면, 눈을 감고 가만히 있을 때 주로 미래의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 사람은 불안, 초조,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깨어있으라고 말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 나의 상태에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합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밥 먹었니? 잠은 잤니?’ 이렇게 묻는 이유는 아무 문제 없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 지나간 영상, 미래에 대한 영상을 재생하는 것을 꺼야 합니다.”

“Wouldn't it be too late to worry if it happens without anything prepared?”
(제가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버리면, 그때 걱정하는 것은 너무 늦은 게 아닐까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때, 심리 불안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준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 불안이 일어나면 그건 준비가 아니라 환각 상태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어요.

‘기온상승으로 기후변화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대응할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두려움이 생긴다면, 이것은 질문자의 심리적인 질병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 생각은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는 지점이 문제입니다.

제가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아침에 다섯 시에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알람이 울렸는데도 항상 못 일어나요. 그때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정말 그럴까요? 이렇게 한번 반복해 봅시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이렇게 계속 각오하고 결심을 합니다. 일어나려고 노력합니다. 일어나고 싶다는 건가요? 아니면 일어나기 싫다는 건가요? 지금 일어나기 싫다는 겁니다. 일어나고 싶은데 못 일어나는 게 아니고, 지금 일어나기 싫어서 안 일어나는 거예요.

즉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일어나기 싫으면 안 일어나면 돼요. 그럼 잠이라도 더 자잖아요.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한다는 건 일어났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직 누워있는 거예요. 그러면 잠도 못 자요. 그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본질을 꿰뚫었을 때는 선택하면 됩니다. 즉 내가 ‘일어나기 싫어하는구나’를 알게 되면 자든지 아니면 일어나든지 선택하면 됩니다. 그럼 잠이라도 자잖아요. 그럼 지각하겠죠? 야단맞겠죠? 과보를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즉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합니다. 그 손해를 받아들이기 싫으면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어떻게? 그냥. 아까 뜨거운 것을 그냥 놓듯이, 그냥 일어나는 겁니다.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계속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본질을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애만 쓰고 결과는 좋지 않죠.

이처럼 지금 질문자는 감정 낭비를 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되는대로 살아라’라는 얘기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니 심리가 불안하다면 이것은 질환이라는 겁니다. 그럴 때는 생각을 그만해야 합니다. 내가 음식을 먹는데 괜찮으면 먹으면 되고, 두드러기가 나거나 설사가 난다면 식사를 멈춰야 합니다. 어떻게 먹고 싶은 걸 멈춥니까? 이렇게 말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몸에 좋지 않으니, 아무리 먹고 싶어도 멈춰야 하는 거예요. 어떻게 멈추느냐? 그냥 멈춥니다.”

그 외에도 여러 질문이 있었습니다.

  • 불교학 개론 수업에서 집착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저는 되게 좋은 느낌에 대해 집착하게 되는데 왜 그런 것도 내려놓아야 합니까?

  • 제가 보는 세계 뉴스나 SNS가 너무 사이클이 빠른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굉장히 끔찍한 뉴스를 하나 읽으면 그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분노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생각하고 느끼기도 전에 또 새로운 스토리가 나오다 보니,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뉴스에 무감각해져 버렸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살짝 죄책감이 듭니다. 저의 관심사는 더 이상 국가와 세계 뉴스가 아닙니다. 제 주변에 대해서만 신경 쓰고 삽니다. 이 무관심이 나쁜 건가요, 아니면 그냥 무지한 채로 사는 게 좋은 건가요?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강연을 함께 준비한 봉사자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스님은 콜럼버스 법당으로 이동하고, 법해 법사님은 봉사자들과 마음 나누기를 진행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아주 성공적으로 잘 마쳤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했고, 준비하는 동안에도 즐겁게 준비했습니다. 오늘 조금 더 많은 분이 오셨으면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스럽습니다. 무사히 잘 끝나고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도 긴장감이 몸에 남아있네요.(웃음)”

“오늘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오셔서 ‘잘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강의내용도 깊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다해 주셔서 행사가 원만하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강연 준비 과정도 많이 단순화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법당에 도착하여 비빔밤으로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콜럼버스 법당의 오래된 회원들이 스님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다들 건강하게 잘 계시니 보기 좋습니다.”

스님은 일행들과 함께 내일 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의논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북미순회강연 열한 번째 날입니다. 일리노이주의 어바나-샴페인지역에 위치한 UIUC 대학에서 영어강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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