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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평화재단에서 주최하는 광복 81주년 기념식과 기념포럼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하고 원고를 교정한 후 오전 11시가 되어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81주년 기념행사에 현장 참가자들만 500명이 넘도록 예약되어 있어서, 정토사회문화회관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행사에 참가하는 패널들과 내빈들, 그리고 공연자들과 함께 지하 1층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2층 카페로 이동하여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2층에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광복절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고,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새로운 광복’을 다짐하는 손도장 찍기 퍼포먼스와 1945년 8월 15일로 돌아가서 김구 선생님과 기념사진 찍기, 평양의 능라도 경기장에서 2038년 남북 공동 월드컵의 붉은 악마 되어 보기 등을 소재로 한 AI 사진 찍기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찾아오는 많은 내빈들과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행사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다 함께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행사는 방송인 김제동님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오후 1시, 광복 81주년 기념식 “1945-2045 새로운 백년을 상상하라!”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다 함께 삼귀의 반야심경과 국민의례로 경건하게 행사를 열었습니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에 앞서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의병의 짚신에서 시작해 광장의 촛불로 이어진 우리 역사의 거룩한 발자취를 돌아보며, 온전한 평화가 정착되지 못한 '돌아오지 못한 빛'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과거 선열의 헌신과 오늘의 희망을 모아, 다가올 2045년 진정한 광복의 빛을 되찾고 남북이 평화로 공존할 '새로운 백년'의 미래를 함께 다짐해봅니다.’

영상이 끝났지만 대중은 한동안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통일의 꿈이 멀어져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대한민국의 모습을 놓지 않고 보여주는 아련함 때문이었는지, 잠시동안 알 수 없는 정적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님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이 땅에 다시 광명이 찾아온 그날, 광복절 81주년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이 뜻깊은 경축식을 하게 되어 너무 반갑고 감개무량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축사를 준비하면서 ‘광복이라고 하는 1945년 그날은 어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기미년 삼일 독립운동을 하던 날은 다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약속을 하고 불렀기 때문에 당장 어떤 느낌을 가질 수 있었지만, 광복의 그날은 사실 어리둥절했습니다.

일본 천황이 항복하는 목소리가 그날 정오 라디오 방송으로 나왔는데, 그 당시 라디오 주파수도 잘 안 맞고 소리도 안 좋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몇몇 아는 사람들이 ‘일본이 망했다!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하는 소리를 외치고 다니자, 그 말을 듣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롱 속 깊숙이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어 만세를 부르기도 하고, 집에 태극기가 없는 사람들은 이불 홑청을 뜯어내서 파란 물 빨간 물을 들여 태극기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날이 광복절입니다. 하지만 진짜로 광복을 느꼈던 날은 8월 16일 아침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던 독립군들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오던 순간, ‘아, 진짜 해방이 되었구나! 광복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 그날이 지금으로부터 81년 전입니다.

이렇게 1945년에 광복이 되었는데, 저는 ‘우리가 광복의 즐거움을 실제로 얼마나 느꼈던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광복이 되면서 동시에, 위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38 경계선이 생겼습니다. 경계선이 우리를 가른 지 5년 뒤, 1950년 우리는 동료 간에, 이웃 간에, 형제 간에 총을 가누고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광복의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은 분단의 역사이자 한국전쟁의 역사입니다. 동학혁명에서부터 을사늑약, 경술국치, 그리고 광복까지 이 어려움을 뚫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우리 선열들은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요?
지금 한국은 ‘경제적인 갈등, 지역 간의 갈등, 남녀노소 간의 갈등, 남녀 간의 갈등’ 갈등이 많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기념식이 우리가 ‘새로운 광복군’임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다짐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완전한 광복은 영원히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2045년 광복 100주년을 온전히 맞이하기 위한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1945년 광복의 그날을 생생하게 전해주시는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님의 축사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졌습니다. 그 박수 소리가 한참이나 강당을 울리니 심장이 멍멍해질 정도였습니다.

이어서 남북평화재단 이사 윤수경님의 축사가이어졌습니다.
“1973년, 남편이 반공법과 긴급조치로 감옥에 갇혔을 때, 저의 세상은 까마득한 어둠뿐이었습니다. 그리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우리 가족은 당장 끼니조차 걱정해야 하는 기막힌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제가 살아남기위해 시작했던 일은 양심수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눈물겨운 순간들을 보내면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의 뿌리에 바로 남북 분단이라는 잔인한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남북 분단의 비극으로 얼룩진 세월 속에서, 아무런 죄 없이 눈물 흘려야 했던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그토록 염원하던 평화의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스님의 기념사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동북아역사기행을 마치고 어제 밤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에 압록강 건너에 있는 북한 땅을 바라보니, 북한 내부 경제가 최근에 어렵다고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집들도 깨끗하게 지어지고 밭의 농작물도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강건너 북한 모습을 바라보면 지금도 마음은 아프지만 예전처럼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둘러보고 왔습니다.
오늘 광복 81주년을 맞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광복 이후 남북으로 분단되어 두 개의 국가가 들어섰고, 지금 남쪽 주민들은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북쪽 주민들은 여전히 생존의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1945년 광복 당시 우리는 왜 하나의 나라로 독립하지 못했을까요? 우리도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연합군의 승리로 광복을 맞이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우리의 주체적 역량은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결국 승전국인 미·소는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반도를 나누어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부를 세웠습니다.
이는 결국 6·25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아예 ‘적대적 두 개의 국가’로 가자는 북한의 선언까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 수십 년간 험난한 길을 걸어온 많은 사람들이 지금 매우 어려운 시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일제강점기 40년 동안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저항력이 약했느냐?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어떤 민족보다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수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연변 조선족 사회의 인구 대비 항일운동 참여율만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몇 배, 특히 여성은 수십 배나 높았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일본 침략에 끊임없이 투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은 우리의 이런 독립운동사를 심각하게 왜곡시켰습니다. 1920년 이전의 민족주의 독립운동사는 그런대로 기록이 남아 있는 편이지만,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이후 러시아가 약소민족 해방을 지지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독립을 위해 소련·중국의 지원을 받던 조선청년들은 코민테른(Comintern)의 ‘일국 일당주의’ 지침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 공산당에 가입해서 중국 공산당과 소련 군대에 소속되어 싸워야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우리의 수많은 독립 투쟁사는 중국·러시아의 역사로 귀속되거나 반공을 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지워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이들의 활동은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이들의 독립운동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뿐만아니라 북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고 여겨서 독립운동사에서 모두 배제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독립운동사는 매우 축소되고 볼품이 없어졌습니다. 결국 ‘우리의 광복은 우리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미국등 연합군의 승리로 주어진 것’이라는 식의 교육이 강조되어, 오늘날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민족적 열등의식을 가져오게 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력이 커졌고, 국민들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독립운동에 나섰던 복잡한 시대적 배경 알고 이념을 넘어 사실을 바라봐야합니다. 그 분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는지 그 사실 자체를 있는 그대로 기록할 때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비록 우리 힘으로 온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열렬히 투쟁했다는 것을 우리 젊은 세대가 알게 될 때, 민족적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8·15 광복절을 맞으며 이 점을 우리가 다시 되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지난 80년 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늘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나 통일 문제에 매달려 안정된 국가의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에만 얽매여 ‘미국 이후’의 대한민국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데 소홀했습니다.
지금 국제 정세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연연하며 미래 설계에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통일이 이루어지고 한미 관계가 돈독해진다면 가장 좋겠지만, 설령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합니다. 이제는 통일이나 한미 동맹에만 매달리는 데서 한 발 물러서서, 그렇지 못할 때도 대비해야합니다. 더 늦기전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모습을 설계 할 때입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이번 기념 심포지엄에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논의해 보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오늘 광복 81주년을 맞아, 앞으로 맞이할 광복 100주년에 우리는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나듯 미래로 나아가는 가장 큰 걸림돌은 국론 분열입니다.
적대 관계에 있던 북한, 과거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 일본과도 변화된 국제 질서 속에서 어떻게 협력해 나갈 것인지 연구해야 합니다. 피해의식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입장에서 미래를 보고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오후 심포지엄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꺼내어놓고 대화를 나누고자 하니, 바쁘시더라도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기념사가 끝나고, 예울음악무대 테너중창단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시립대 테너 이인학님, 서울사이버대 바리톤 홍성진님, 세종대 바리톤 강기우님, 가톨릭대 테너 이승묵님이 함께 ‘광복절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부드럽고 묵직한 중저음으로 노래가 시작되더니 각자 개성이 다른 4명의 성악가들이 단단하게 화음을 맞추며 시원하게 고음으로 뻗어 올라갔습니다. 청중들의 탄성을 절로 자아내는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대중들의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어느덧 1부 행사가 끝이 났습니다. 눈시울을 붉혔다가도 다시 재미있게 웃어넘기며 1시간 동안 광복절 행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잠깐의 휴식 시간 후 2부 광복 81주년 기념 포럼 "대한민국 미래전략, 쟁점과 제안"이 이어졌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평화재단 리서팀의 강주희님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광복, 행복, 평화,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한 국민 인식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이룬 눈부신 번영 속에서도 '분단 극복과 평화'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무리한 통일 추진보다 '전쟁 방지와 현실적인 평화 공존'을 최우선으로 꼽는 국민들의 인식 대전환을 통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의 전환은 청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이 특징이었습니다.

강주희님의 발표를 마치고 현장에 참가하는 모두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님의 ‘좋은 담장을 쌓아서 남북이 먼저 공존한 후에, 따듯한 평화로 나아가자’는 내용으로 기조연설을 시작했습니다.

“미중의 전략경쟁과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정책 등 한반도가 처한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북한의 급격한 현상 변경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남과 북 사이에 경계가 분명한 불관여·불개입·불위협의 ‘좋은 담장’을 쌓고 서로 참견하지 않는 '소극적·차가운 평화'로 먼저 공존을 한 후에, 안정이 정착되면 교류·협력하는 '따뜻한 평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통일은 단기간에 추구할 목표가 아니라, 평화와 공존이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열리는 장기적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송민순님의 기조연설이 끝나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정철님의 진행으로 본격적인 포럼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북한이 헌법을 바꿔 가면서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해 수세로 볼 것인가 공세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패널로 참여한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박원곤님은 수세와 공세 둘 다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한류 침투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체제 위협을 느껴 ‘3대 악법’을 만들고 급기야 김일성 이래 역사적 사명인 '조국통일'까지 내던지며 남을 동족에서 배제한 수세적 결정입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유사시 남한을 ‘점령·평정·수복·편입’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장사정포와 전술핵’이라는 무기를 전방에 바짝 붙여 배치하는 국경 요새화는, 유사시 핵을 써서 공세적으로 영토를 통제하겠다는 명백한 의도입니다.”
경향신문 논설실장 서의동님은 대남 의존전략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러시아·중국 중심으로 연대하여 자력갱생 노선으로 전환하는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남한을 거쳐 체제 위기를 벗어나려(대남의존전략) 하였으나, ‘한국이 미국행 통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북한 내부적으로 '우리국가제일주의'를 펴다 보니 민족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졌고, 남북관계를 떼어내고 북·일 관계 개선 등 정상 국가(Normal State, 正常國家)로 가려는 논리적 수순입니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 센터장 이영종님은 외부적으론 호전적으로 보이지만 철저히 세습 정권을 지키려는 수세적 논리라고 말했습니다.

“일 없습니다. (웃음) 제 생각에는 김정은 개인이 스위스 유학 시절에 주재원들 사이에서 느낀 서방과 한국에 대한 열패감과 적대감이 뒤늦게 터진 것으로 보입니다. 정작 김정은 자신은 전주 김씨에 제주 외가를 둔 사람인데, 민족을 부정하는 반통일적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적대적 두 국가론‘이라는 거창한 학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님은 "이영종 센터장님은 '일 없다'고 하셨지만, 제 생각엔 '일 있습니다'."하며 운을 뗐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이 두려워서(공한증)라고 보지만, 저는 한국이 싫어져서(혐한론) 절연을 선언한 ‘금한령’으로 봅니다. 이는 2018년 화해 무드 이후 겪은 깊은 실망감의 영향이 커 보이며, 결국 북한은 '절연하고 각자 살자'는 입장입니다. 우리가 그럴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 우리 쪽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그 출발점으로 ‘상대를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호칭 문제)’부터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토론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이정철님이 두 번째 주제를 꺼냈습니다.
두 국가론을 받아들여 우리 헌법 3조(영토 조항)을 개정해야 하나?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쟁점을 가지고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현실적으로 당장 개헌이 어렵다면, 흡수통일을 내려놓고 '나를 먼저 이롭게 하면서 관계를 이롭게 한다(이기이관)'는 관점에서 현행 헌법 안에서 북한의 국가성을 어디까지 유연하게 인정할지 차분히 짚어봐야 합니다.”
“지금 북한은 우리를 '괴뢰 족속'이라 부르며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국가를 인정해 주는 건 북한의 적대적 프레임을 우리 손으로 완성해 주는 꼴이자 명백한 '통일 포기'입니다. 젊은 세대에게서 통일의 기회와 책임을 빼앗아선 안 됩니다.”

현장 토론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는 가운데, 청중들의 집중도 상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꺼내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 대다수가 독립을 체념하고 체제에 순응할 때도 끝까지 독립의 끈을 놓지 않은 소수가 있어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지금 통일이 안 보인다고 포기하지 말고, 2045년 광복 100주년이 되더라도 통일의 정신줄을 꽉 잡고 기운을 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이나 헌법 3조 같은 금기시된 의제들을 과감히 대화 테이블에 올리고, 실질적인 흡수통일 의도를 내려놓고 평화공존의 공간을 열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정철님이 미래 세대가 바라보는 ‘통일’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주제 1에 대한 토론 시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청년 세대의 40~50퍼센트는 북한을 경계 세력으로 보면서도, 절반은 '북핵을 현실로 인정하고 감시·관리하자'고 답합니다. 기성세대의 통일 문법과 청년들의 평화 문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 생각을 강요하기보다 ‘미래 세대가 살아가길 원하는 평화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주제 2 ‘동맹을 넘어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주제로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이 나라를 지킬 때 '자주'냐 '동맹'이냐는 식의 양자택일적 접근이 지금도 유효한지를 두고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이 발제를 맡았고, 이어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가 의견을 밝혔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미국이 한국에게 군사적 역할 확대와 부담 증가, 그리고 대북 방어의 일차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전략적 자율성·자주성 문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위에 한미동맹은 ‘창조적 연대’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숙명여대 석좌교수 남성욱님이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을 당시 한국의 1인당 소득은 57달러였으나, 2026년 현재 우리는 소득 3만 6천 달러 국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동맹에 돈 쓰는 것에 지쳐서 이제는 우리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57달러 시절 맺었던 공짜 동맹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우리도 동맹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이상현님이 발언했습니다.
"저는 '동맹이 중요하지만 동맹만으로 살 수 있나? 더 이상 못 산다'로 바꾸고 싶습니다. 과거 한국이 못 살던 시절에는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방기의 두려움'이 있었다면, 이제 국력이 커진 한국은 오히려 미국의 요구에 끌려들어갈 '연루의 위험'까지 함께 안게 된 특이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는 자주와 동맹이 모두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자강·연대·포용'이라는 세 축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이혜정님이 발언했습니다.
"자주와 동맹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동맹은 외교 전략의 '수단'이고 자주는 '주체성'이기 때문에 둘은 비교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 안에서 동맹파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구조라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에 대한 맹목적인 신화에서 벗어나 ‘자주’와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이후에도 사회자와 4명의 토론자들은 동맹 관리에서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따른 한미 연합지휘 체제의 개편 방향과 작동 방식 등 다양한 쟁점을 놓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핵무장은 한국의 현실적 옵션이 아닙니다. 한국이 독자적 핵 개발을 하는 순간 국제 제재로 외환위기급 경제 파탄이 오고, 원전용 농축우라늄 수입이 막혀 국내 전력 30%를 생산하는 원전이 멈춥니다. 핵무기 개발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을 위한 '평화적 농축 연료 확보'에 집중해야 합니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자율적 결정을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시급합니다. 주한미군이 FOC(최종 임무수행능력) 검증을 지연시키고 있는데, 이제는 부처 차원을 넘어 정치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국제정치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주의 힘의 논리로 작동합니다. 북한이 핵을 50개나 실전 배치 단계까지 늘려가고 있는데, 재래식 무기 우위만 가지고 핵 없는 한국이 단독으로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인 안보 억제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토론은 계속 흥미진진하게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2027년까지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에 대한 견해들을 나눈 후, ‘한미동맹과 남북관계의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전체 패널의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제 1, 2의 모든 토론 패널들이 함께한 종합토론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 변화와 향후 대북·대미 전략을 놓고 다양한 견해가 제시됐습니다.
패널들은 남북 간의 대화가 완전히 끊긴 상황에서, 북한이 인공지능(AI)과 드론 같은 첨단 무기로 무장하면서 예기치 못한 전쟁이 터질 위험이 커졌다고 경고했습니다. 앞으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서 북미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면, 무작정 "핵부터 완전히 없애라"고 밀어붙이기보다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롭게 지내는 약속(종전과 평화체제)’부터 먼저 풀어나가는 현실적인 협상 전략을 한국과 미국이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보나 보수 같은 편 가르기를 벗어나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봐야 하며, 우리 스스로 지키는 튼튼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북한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 핵심 결론으로 강조되었습니다.
“저도 과거에 북한은 50번, 평양은 7번 정도 다녀왔으니 많이 다녀와 본 편입니다. (웃음)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북한 사람들의 어깨너머를 보지 못하면 북한 문제는 아무리 연구하고 토론해 봤자 소용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법륜스님의 아주 초창기 모습을 기억합니다. 제가 90년대 중반에 기자로 처음 시작해서 북한 문제를 다뤘거든요. 북·중 접경에 가서 '고난의 행군' 때문에 시신들이 막 강물로 떠내려오는 상황을 취재하면서, 그때 처음 접했던 단체가 바로 '좋은벗들'의 초창기 모습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북·중 접경에 가서 직접 사람들을 인터뷰해 와가지고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국내와 세계에 알리고, 북한 사람을 동포라 부르며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했던 그 분위기, 그런 게 있었거든요. 우리가 정책적으로 이렇게 토론을 하는 것도 정말 필요한 일이지만, 북한 주민들을 향해 가졌던 따뜻한 마음과 관심을 바탕으로 북한 사회와 사람들의 현실을 들여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행사를 전체 마무리하는 스님의 맺는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오늘 4시간 동안 매우 어려운 주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먼저, 발표해 주신 전문가분들께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몇몇 사회원로 어른들과 대중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매 순간이 위기였고 늘 실패의 연속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작은 전투의 패배를 딛고 결국은 전쟁에서 승리하듯, 우리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현재는 AI 시대를 맞아 국가적으로 더 큰 도약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발전의 이면에 기후 위기가 날로 심해지고 있고, 인공지능의 발달이 미래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측하기 어려워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의 변화는 늘 예측하기 힘든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철기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제국이 출현하고 권력과 부의 집중이 일어났습니다. 산업화 시기에는 제국주의가 출현하고 재벌이 등장하였습니다. 오늘날 첨단 기술이 발달하면서는 세계적, 국내적으로 빈부 격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부의 급속한 쏠림은 결국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성공으로 보였던 것이 하루아침에 사회적 붕괴로 치닫던 역사적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 미래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이 급격한 빈부 격차에서 비롯될 문제들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많은 부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권한을 행사할 때, 지금처럼 ‘1인 1표’로 평등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 결과 민주주의의 위기가 크게 올 것입니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아직도 우리는 80년 전의 인식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앞에서 전문가분들께서 말씀하셨듯이 광복 후 8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사회는 많이 변했고, 국제관계의 역학관계도 변하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 우리 국가의 운명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동안 평화재단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통일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서 방향을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표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오늘 기념행사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함께 새로운 관점을 연구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
오늘 포럼에는 많은 대중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많은 대중이 이런 자리에 관심을 갖고 참석해서 박수 치고 응원하셔야 전문가분들도 힘을 내서 더 연구해 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평화재단은 3가지 국경일을 지키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개천절을 중심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인 고대사 부분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삼일절을 기념해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후천개벽 사상부터 동학혁명, 그리고 삼일운동과 독립운동사까지 정리하려고 합니다. 세 번째 광복절을 기념해서 대한민국이 가야 할 미래를 연구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행사를 넘어서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공론화하여 조금씩 풀어나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시작이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한번 오늘 참가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광복 81주년 기념행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꿈이 점점 멀게만 느껴지지만,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바른 길이며, 언젠가는 이뤄야 하는 일임을 다시 가슴에 새깁니다. 사회 각계의 전문가와 원로들, 그리고 미래의 주인공이 될 청년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4시간 동안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자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 정토사회문화관에는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꿈을 다시 일깨워준 기념식 행사였습니다.
오후 6시 30분경, 스님은 오늘 행사에 참가한 내빈들과 패널을 안내하여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식당에는 정토회 활동가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저녁식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저녁 시간 인데다가 긴 시간 행사에 참가하느라 배가 고픈 상태였습니다. 다 함께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스님은 공양을 조금 일찍 마치고 1층 로비로 올라갔습니다. 스님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인사했습니다.
“오늘 행사에 참가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문경 선유동 연수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내일부터 청년들과 함께 ‘청춘캠프’ 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밤 9시 40분이 되어서야 연수원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동북아역사대장정을 마치고 오늘 종일 광복행사를 하고 온 직후라 피로감이 몰려왔습니다. 스님은 숙소로 올라가 휴식을 했습니다.
내일부터 선유동 연수원에서 이틀간 청년들과 온 종일 ‘청춘캠프’ 일정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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