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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결사행자·법사단 자자수련 법문을 하고 두부를 만들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한 후 고인돌 주변 예초작업을 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어제 거사님들이 예초 작업을 한번 하고 갔는데, 고인돌 주변은 풀을 더 깔끔하게 깎는게 좋을 것 같아요.”
묘당법사님이 예초기를 들고 고인돌이 세워진 논둑 부터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 했습니다. 스님은 낫을 들고 예초기로 작업하기 어려운 곳들을 손으로 정리했습니다.


예초 작업을 모두 마치니, 논 둑위에 있는 고인돌이 한층 돋보였습니다.


“자, 오늘도 일찍 마무리합시다. 8시부터 법문이 있어요”
스님은 간단하게 아침공양을 하고, 결사행자·법사단 자자수련 입재법문을 하기 위해 두북스튜디오로 이동했습니다.
전국에 있는 120여명의 결사행자, 법사단과 함께 예불과 반야심경을 한 후 스님은 입재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포살은 스스로 허물을 돌이켜보고 대중에게 드러내어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허물을 털어내고 수행자로서 다시 청정함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놓치거나 잘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잘못은 참회할 수 있지만 내가 모르는 잘못은 참회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과 귀, 안목을 빌려서 나의 허물을 알아내는 것, ‘당신이 보기에 내가 어떤 허물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고 물어서 나의 허물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잘못을 범했구나’ 하고 자각하고 참회 하는 것, 이것을 ‘자자(自恣)’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도반이 내가 모르는 나의 허물을 밝혀주고, 나도 그가 모르는 그의 허물을 밝혀주는 것을 서로 돕는다고하여 ‘탁마(琢磨)’라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도반은 수행의 전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수행자로서 해탈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원이 분명하고, 계율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동의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하다면 스스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곧바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또한 나도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알려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기꺼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즉, 수행자로서의 원이 분명해야 감사한 마음으로 자자를 청하고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로서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고 계율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동의가 없으면, 타인이 내게 길을 잘못 들었다고 알려주었을 때 ‘왜 당신이 내 인생에 간섭하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로서 자기 목표의식이 분명하지 않으면 포살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고, 자자는 갈등과 부작용을 낳아 오히려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됩니다.
부처님 법은 들어오는 문에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문(普門), 넓은 문이라고 합니다. 남여 차별도 없고, 늙은이와 젊은이 차별도 없고, 지위가 높고 낮음에 의한 차별도 없고, 인종적인 차별도 없고, 그 어떠한 차별도 없습니다. 그러나 포살과 자자는 ‘수행자들만 할 수 있다’ 하는 제한이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내가 수행자라는 분명한 자각이 없으면 포살과 자자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자자를 하면서 도반에게 말할 때는 도반을 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내 감정으로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지는 않는지 깨어있어야 합니다. 도반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되더라도 우선 충분히 들어봅니다. ‘네가 뭘 안다고 나한테 그렇게 말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도반이 말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이야기를 다 들은 뒤에 ‘그렇게 보였을 수는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고 가볍게 설명하며 서로의 오해를 풀면 됩니다.
오늘은 결사행자 및 법사단의 자자수련이 있는 날입니다. 자자수련을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입재법문을 마친 후 이동하면서 스님이 행자에게 말 했습니다.
“행자님 저녁에는 두부를 만드려고해요. 솥을 두 개 준비해서 솥 하나에는 물을 절반 채우고, 콩 물을 끓일 큰 솥에는 삼분의 일 정도 물을 채워서 끓여주세요. 이번에는 두부에 간을 할 수 있도록 소금도 조금 준비해 주세요. 간수만 사용해서는 응고가 잘 안되는 것 같으니 식초도 같이 준비해 주고요. 오후 법문 마치고 바로 시작합시다.”
스님은 원고를 교정하고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오후 4시경부터 자자수련을 마친 결사행자와 법사단이 줌에 입장하기 시작했습니다. 4시 20분이 되어 스님은 결사행자, 법사단과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매우 부지런한 분이셨습니다. 집 안은 물론 집 앞 화단까지 늘 깨끗하게 청소하셨고, 몸이 편찮으실 때에도 청소와 정리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고, 정리정돈 자체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저항심을 품게 되었어요. 이처럼 정리정돈에 대한 저항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정리정돈에 대한 계율을 꾸준히 실천하려면 어떤 마음가짐과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정리정돈은 문화적인 측면이 큽니다. 예를 들어 질문자가 만약 일본에 가서 살면 정리정돈이 안 되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고, 중국이나 인도에 가면 오히려 깔끔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정돈을 잘한다, 못한다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수행자가 생활하는 처소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조용하고, 둘째는 깨끗하며, 셋째는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고, 넷째는 검소하다는 거예요. 절은 수행공간이기 때문에 화려해서도 안되고, 지저분하거나 어질러져 있어서도 안 되며, 시끄러워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깨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활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어 있으면 신발을 벗을 때도 가지런히 놓게 됩니다. 반대로 마음이 먼저 방 안으로 달려 가면 신발은 흐트러지게 마련이에요. 마음이 편안하고 알아차림이 유지될 때는 물건도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게 됩니다. 수행의 목적은 언제나 깨어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리정돈도 수행의 원칙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정리를 잘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자각하고, 가능한 실천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부모가 정리정돈을 하지 않으면 자녀도 습관적으로 정리정돈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부모가 지나치게 정리정돈을 강요하면 반감 때문에 오히려 정리정돈을 하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리정돈은 청결한 생활과 공동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걸레는 걸레 있던 자리에, 빗자루는 빗자루 있던 자리에 두고, 옷도 벗은 뒤 정리해 두는 것이 함께 사는 사람에게 편안합니다. 반대로 젖은 수건이나 냄새나는 수건을 세면장에 그대로 걸어 두거나, 옷을 아무 데나 벗어놓으면 함께 사는 사람이 큰 불편을 겪게 됩니다.
공동 생활을 해보면 지나치게 깔끔해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정리정돈을 하지 않아 불편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도 함께 살아가기 어려워요. 너무 깔끔한 사람과 함께 살면 잔소리를 들을까 봐 늘 긴장하게 되고, 반대로 물건을 아무 데나 두는 사람과 함께 살면 계속 치워야해서 짜증이 납니다.
수행자가 대중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깔끔한 것은 집착이라 할 수 있고, 자기 편한 대로 아무 데나 물건을 두는 것은 깨어 있음이 부족한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습관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알아차림이 부족하다는 뜻이니까요."
9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주고받다보니 어느덧 수련을 마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져 바로 회향식을 진행했습니다. 스님의 회향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역별로 모여 함께 하니 온라인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와닿는 게 큰 것 같습니다. 국제지부나 해외지부, 해외파견자나 몸이 불편한 분들은 예전 같으면 함께할 방법이 없었는데, 지금은 온라인으로라도 함께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정토회도 어느덧 4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제가 30대에 정토회를 시작해서 이제 70대 중반이 되었고, 20대 초반이던 대학생들도 어느새 60대가 되어 정토회의 중심에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토회도 노령화가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좋은 점은 그동안 우리가 활동한 것들이 성과가 있었고, 정토회 규모도 커졌고 어느 정도 체계도 잡혔다는 것이고, 아쉬운 점은 진취성이나 개척성, 창조성 같은 부분이 예전보다 조금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정토회 창립 초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뚫고 나가려는 의지가 있었고, 우리 활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러 비난을 받을 때에도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려는 방향으로 개척하는 일들을 많이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활동가들의 연령이 높아지고 사업도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도전을 향한 진취성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발전이 정체되는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활동에 더 많이 참여 하도록 기회를 열고, 새로운 활동에도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뒷 받침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것들이 후배 활동가들에게 기반이 된다는 것은 분명 큰 장점입니다. 그러나 그 기반은 새롭게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자유롭게 시도해 볼 수 있는데, 지금은 '혹시 정토회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실패의 부담이 생기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어렵고 논의 과정도 길어집니다. 의견을 맞추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고, 여기저기서 말도 많아집니다. 후배들이 마음껏 시도해보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죠.
지금은 1세대가 거의 모든 일을 맡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음 세대에게 역할을 조금씩 이관시키고, 1세대는 뒤에서 후배들이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뒷 받침하는 역할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나이 들어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방식과 노후 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법사단과 결사행자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보면 예순을 훌쩍 넘어가고 있어요. 머지않아 일흔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활동가들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제는 각자가 건강에 유의하면서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몸이 마음을 못 따라가니까 우리가 건강 상태에 맞춰서 일을 해야하는 것이죠. 요양원에 대해서도 계속 논의하고 있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다 보니 좀처럼 진척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에요. 저 부터도 곧 그 대상이 되잖습니까.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모니터로 여러분의 얼굴이 다 보이는데, 머리카락이 까만 사람이 몇 사람 안 돼요. 대부분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하거든요. 제가 성당이나 교회에 강의를 가도 요즘은 머리카락 까만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성당도, 교회도 노령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요. 그렇다고 연령대가 높아져서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고, 이제는 한 세대를 잘 마무리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갈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웃음)

우리는 그동안 늘 세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왔지, 정작 세상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의 노후나 안전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맡겨두었습니다. 이제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정토회가 관심을 갖고 구상해서 하나씩 실행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개인이 책임진다는 관점을 견지해야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몸이 병들거나 나이가 들었을 때 '내가 왜 이 일을 했을까' 하고 후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것은 정토회가 어떻게 해 준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스스로 '내가 몇십 년 동안 정토회를 만나고 부처님 법을 만나 참 잘 살았다'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립이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면 더없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못 되더라도 적어도 자기 삶에 대해서 또 자기가 살아온 길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원망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자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세입니다. 아직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그 점을 조금 더 다듬으며 정진하셨으면 합니다.”

회향법문을 마치고 다 같이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각 지역별로 카메라 앞에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30여년을 함께 해 온 결사행자와 법사단의 아름다운 미소가 스크린을 가득 메웠습니다.



스님은 회향수련 일정을 모두 마무리 하고 울력복으로 갈아입은 후 곧바로 공양간으로 이동했습니다.
“행자님 두부 만들 준비가 다 되었나요?”
“네 스님”
벌써 세 번째 두부 만드는 날이라 그러한지 오늘은 공양간도 번다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두부만들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이 먼저 불려놓은 콩을 모두 갈면, 행자님들이 생 콩물이 담긴 큰 대야를 불 위에 있는 큰 솥 앞에 옮겨놓습니다.

콩 갈기를 끝낸 스님이 와서 물이 끓고 있는 큰 솥 안에 생 콩물을 부으면, 그 때부터 끊임없이 콩 물을 잘 저어줍니다. 콩물이 몇 번의 끓어 넘침을 반복하고 솥 끝까지 올라오면 그때부터 콩 물을 거름망에 넣어서 건더기 없는 콩물을 쫙 짜줍니다.


콩물을 끝까지 짜 낸 후에는 뜨거운 상태에서 간수와 식초를 넣어 응고를 시킵니다. 잘 응고된 두부는 순두부 상태가 되는데, 물과 두부가 잘 분리되는 상태가 됩니다.

콩물이 응고되면서 분리된 물을 잘 떠 내고, 순두부만 네모 틀에 넣어서 약 20분에 정도 굳히기를 합니다.



그러면, 두부가 완성이 됩니다.

첫날은 세시간, 두 번째 날은 두시간 반, 오늘은 두시간 만에 두부만들기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동안 두부 만드는 과정중에 오늘이 가장 빠르고 정갈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두부를 정성스럽게 썰어서 행자들을 불렀습니다.
“행자님들 두부 먹고 하세요. 지금 뜨끈뜨끈할 때 실컷 드세요(웃음)”

참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작년 11월에 김장했던 김장 김치를 꺼내어 같이 먹으니 더욱 꿀 맛 이었습니다. 남은 두부는 다시 통에 잘 넣어서 내일 서울로 이동해서 손님들에게 선물 할 예정입니다.




“자 이제 뒷정리를 합시다.”
두부를 만들면서 한 쪽에서는 행자들이 천천히 뒷정리를 해 뒀기 때문에 뒷정리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뒷정리를 모두 마친 후에 스님은 내일 일정에 대해서 행자들과 상의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내일은 전법법회와 JTS 이사회를 하고, 손님들에게 김장 김치와 손두부를 선물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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