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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백중 입재 법문을 하고 통도사에서 진행선지공화상 존상 봉안식에 참가한 후 병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오전 9시. 울산 지역 오래된 정토회 활동가들이 두북수련원에 스님을 뵙기 위해 왔습니다. 활동가 분 중 한분이 상담을 요청하여 잠시 앉아 상담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상담을 마친 후 바로 방송실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백중을 49일 앞두고 백중 기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전국 으뜸절에서는 백중기도 입재일을 맞아 곳곳에 영가 등을 설치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을 한 후 주간 정토행자의 소식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이어서 대중은 스님께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잠시 입정을 한 후 죽비 소리와 함께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토행자여러분. 2차 100일 정진 입재식이 시작 되고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매일 정진을 잘 하고 계시는지요.”
스님은 여는 인사를 한 후 지난주에 종교인 모임과 스리랑카를 방문한 영상을 정토행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지난 7일 동안 스님과 종교인 모임이 스리랑카 종교인들을 만나 화해와 평화의 길을 함께 모색했던 여정이 잘 담겨있었습니다.
“영상 잘 보셨습니까? 저희는 스리랑카에서 종교 간 협력이 지속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한국과 스리랑카 종교인들의 교류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JTS는 그동안 스리랑카 현지 주민들을 위해 지원 활동을 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 지역을 개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은 백중(百中) 입재일입니다. 음력으로 7월 15일을 백중절(百中節) 또는 우란분재(盂蘭盆齋)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란분재의 ‘우란분’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울람바나(Ullambana)에서 온 말인데,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바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거꾸로 매달린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높아지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 나름대로 생각해서 평생 노력하고 애를 쓰며 삽니다. 그런데 인생을 결산해 보면 결과는 생각한 것과 다르지요.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내가 배부르기 위해 남을 배고프게 하고, 내가 부자가 되기 위해 남을 가난하게 만들고, 내 지위를 높이기 위해 남을 짓밟고, 내 주장을 세우기 위해 남을 무시하며 삽니다. 자신도 모르게 이런 행위를 함으로써 내 인생의 총 결산이 내 생각과는 반대로 결국 지옥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지만, 누구도 이런 결말에 이르기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그저 내 생각으로, 내 욕망대로, 내 이익을 위해, 그리고 내 가족만을 위해 죽기 살기로 살았을 뿐이에요. 하지만 온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결국 타인을 해치고, 자연을 파괴한 것입니다. 잘 살려고 자기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거꾸로 살았고, 천상에 가려고 했지만 결국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여 고통 없는 세상으로 데려온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천도(薦度)’라고 합니다.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 버린 중생을 어떻게 다시 구제해 낼 수 있을까요? 바로 ‘베풂’을 통해 구제할 수 있습니다. 나 살자고 이익을 챙겨서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고통스럽게 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남에게 베풂으로써 그 원한을 풀고 지은 업을 소멸시켜 다시 좋은 세상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는 ‘제사 제(祭)’ 자를 쓰지 않고, ‘베풀 재(齋)’ 로 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꾸로 된 것을 바로 세우고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백중(百中) 또는 천도재(薦度齋)라고 부릅니다.

백중이 음력 7월 15일인 데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도 전통 사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달력으로 7월 보름은 인도에서 조상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날 인도인들은 음식을 만들어 강에서 물에 풀면서 조상의 명복을 빕니다.
다른 하나는 불교 전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음력 7월 15일 무렵은 인도에서 우기(雨期)가 끝나는 날입니다. 평소 수행자들은 매일 이동을 하며 수행하는데, 이를 ‘유행(遊行)’이라고 합니다. 한곳에 머무르면 집착이 생기기 때문에 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기가 찾아오면 비가 계속 오기 때문에 이동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음력 4월 15일부터 석 달간 한곳에 머물며 수행하는데, 이 기간을 안거(安居)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 장소에 머물며 수행하면 음식을 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유행할 때는 매일 다른 마을에서 걸식을 하지만, 한곳에 머물면 늘 같은 마을에서 음식을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시주하는 입장에서는 석 달 내내 수행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어야 하니 부담이 되겠죠. 시주하는 음식의 양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석 달 동안의 안거가 끝날 때쯤이면 수행자들은 극도로 굶주린 상태가 되곤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안거가 끝나는 날 굶주린 수행자 100명에게 갖가지 음식을 차려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이 가장 크다는 믿음이 생겨났고, 이런 풍속이 백중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한국에서 손님에게 음식을 접대하려면 음식값으로 대략 5만 원 정도는 쓴다고 하면 그런데 인도와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아이들에게 한 끼 급식을 제공하는 데 우리 돈으로 500원도 채 들지 않습니다. 단순히 계산하면 한 사람을 대접할 비용으로 100명을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공덕이 100배로 커지는 셈이지요. 배부른 사람에게 음식을 주면 별로 고마움을 느끼지 않겠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면 그에 대한 고마움이 훨씬 큽니다. 정신적인 공덕은 100배가 아니라 1000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즉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을 베풀 때 공덕이 크다는 말의 근거는, 그들에게 주는 기쁨이 커지고,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여러분의 보시금으로 한 사람을 돕는데 많은 돈을 쓰기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는 사람을 더 많이 살릴 수 있는 곳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여러분이 보시한 공덕이 더 커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 JTS가 하는 일입니다.
안거란 스님들이 석 달 동안 한곳에 머물며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추위 때문에 이동하기 어려워서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 이렇게 두 차례 안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여름과 겨울을 구분하지 않고 우기 동안 한 철을 한곳에 머물며 수행하는 우안거(雨安居)를 합니다.
우기가 끝나는 날, 곧 우안거가 끝나는 날에 안거 기간 동안 정진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렸습니다.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 최대 500명에 이르는 수행자들이 함께 모여 정진했으니, 100(百) 명의 대중(大衆)에게 공양을 올린다 해서 백중(百中) 즉, ‘무리 중(衆)’ 자를 써서 백중(百衆)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혹은 100가지 음식을 마련해 공양을 올린다고 하여 백종(百種)이라고도 했다는데, 일반적으로 백중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즉, 100명의 배고픈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날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이 가장 크며, 그 공덕으로 알게 모르게 많은 죄업을 지어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 백중의 오랜 풍속입니다.
제례는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관습이자 풍속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달래고, 그런 정성과 공덕이 조상님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상을 기리는 것입니다.

인도 불교 전통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윤회한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간절히 원하면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지만, 그가 생전에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다시 태어나는 시기가 달라진다고 하지요. 즉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반나절 만에 태어나는 사람, 하루 만에 태어나는 사람, 사흘 만에 태어나는 사람, 일주일 만에 태어나는 사람, 삼칠일(21일) 만에 태어나는 사람, 칠칠일(49일) 만에 태어나는 사람 등 이런 식으로 모두 9등급으로 나누었습니다. 이 중에서 7등급까지 사람들은 적어도 49일 안에 다시 태어나지만, 생전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은 극락세계에 태어나기 전에 먼저 지옥에서 고통을 조금 받아야 합니다. 8등급의 사람은 잠시 지옥의 고통을 겪은 뒤 태어나고, 9등급은 좀 더 오랜 기간 고통을 겪고 와야 한다고 합니다.
7등급까지의 사람들은 49일 안에 윤회한다고 하니, 부모님이나 친척들은 적어도 그 정도 등급은 될 것이라 생각하겠지요. 그래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49일 동안 그가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베풀고, 선한 마음을 내고, 기도하는 풍습이 바로 49재의 유래입니다. 그러나 49재를 지냈더라도 혹시 돌아가신 분이 8등급이나 9등급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날을 백중절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가 천도를 할 때는 첫째, 베풂으로써 공덕을 쌓고, 둘째, 법문을 통해 본인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49재 법문이나 천도법문을 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백중절의 유래로 전해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날 우리가 백중절을 지키는 의미는 단순히 이렇게 해서 천도가 된다는 종교적인 의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려면 부모가 있어야 하고, 부모가 있으려면 조상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수많은 조상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족과 조상의 노고와 은혜 속에서, 사회적으로는 민족의 선조들의 희생과 고통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니 그 은혜를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 속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참히 죽임을 당하고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갖가지 차별로 고통받은 수많은 이들의 한이 있습니다. 그런 한을 푸는 것을 ‘해원(解冤)’이라고 합니다. 그 한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알면 감사하는 마음을 내게 됩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세 살 때까지는 특별한 정신 질환이 있는 부모가 아닌 이상 갓난아이를 학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 언론 보도를 보면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가 있죠. 그것은 대부분 정신 질환과 관련된 매우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동물도 가끔 고양이나 개가 새끼를 물어 죽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 역시 일종의 정신 이상 상태에서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에요. 대부분의 동물들은 아무리 먹을 것이 부족해도 자기 새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키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나 처음 정신 작용이 형성되는 시기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모든 과정에서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습니다. 그 경험이 인간성의 가장 깊은 바탕을 이루는데, 이것을 양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도 그 역시 태어나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누구나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러한 양심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부모에 대해서는 자기도 모르게 그리움과 고마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부모가 내 뜻대로 해 주지 않거나 심지어 학대를 하기라도 하면 부모를 미워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부모를 미워하고 원망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 바탕하고 있는 양심, 즉 무의식의 세계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원망 사이에서 늘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것이죠. 이성적으로는 부모를 안 보고 살고 싶은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그리움이 있는 거예요.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려면 부모에 대한 원망은 부차적인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보다 나를 낳아 주고 키워 준 그 은혜, 본래의 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설령 부모가 나를 때리고 야단쳤더라도 ‘그래도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억나는 것이 상처받은 일이고 원망스러운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그리운 부모를 만나게 되면 미운 부모가 조금씩 옅어지면서 여러분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여러분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야단맞고, 매를 맞기도 하고, 억압받으며 생긴 욕구불만이 카르마를 형성합니다. 이것이 성격의 일부가 되어 사회에 나가 부딪히고, 결혼해서도 부딪히는 겁니다. 대부분 어렸을 때 상처받은 마음이 중심이 되어 카르마가 형성되기 때문에 통제가 잘 되지 않습니다. 법문을 듣고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도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래서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양심, 즉 태어나서 세 살까지 형성된 그 마음으로 돌아가 이러한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감사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라는 것은 부모의 은혜를 갚으라는 뜻이 아니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부모가 나를 때렸거나 상처 준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에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재워 준 사람은 부모입니다. 상처를 준 일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베푼 공덕이 더 크다는 거예요.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부모한테 좋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원망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스스로 해방된다는 말이에요.
백중에 우리가 천도재를 지내는 것도 풍속적으로는 조상을 위한 천도이지만, 수행적으로는 내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마음속 깊은 상처가 하나씩 치유되어 갑니다.
이번 백중기도는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것을 중심으로 하기 바랍니다. 은혜를 갚는 마음을 내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분이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좀 치유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요. 또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이 역사 속에서 받은 상처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민중은 수많은 압제와 침략 속에서 고통을 겪었습니다. 몽고의 침략,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었고,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강점기를 거쳤어요. 또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옛날 역사 영화를 보면 종이라고 얼마나 학대받고, 여자라고 얼마나 차별받았는지 알 수 있죠. 그러한 상처들이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어려움을 딛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독립 국가를 세웠고, 가난한 나라에서 오늘날처럼 먹고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이 자부심은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쳤던 선조들과 저항하고 희생하며 정의와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의 노고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조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잘나서 이렇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남녀 차별도 크게 줄었고 교육의 기회도 훨씬 넓어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경제적 격차 때문에 부모를 잘 만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문제가 젊은이들 사이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개선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부모에게 감사하고, 사회적으로는 선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그 은혜를 바탕으로 우리가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그분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또한 이번 백중기도에는 역사 속에서 한을 품고 희생된 수많은 분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희생된 분들, 독립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 6·25전쟁에서 희생된 분들,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 모두에게 ‘편안히 잠드소서’ 하는 천도의 마음을 냈으면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번 백중기도를 함께 하기 바랍니다.”

스님은 법문을 마치고는 통도사로 이동하였습니다.
오늘 통도사에서는 지공화상 존상 봉안식이 있었습니다. 지공화상은 고려 말 인도에서 한국을 찾아와 나옹스님과 무학스님 등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남긴 고승입니다. 특히 통도사 금강계단에 참배하고 법문을 했다고 전해질 만큼 통도사와도 깊은 인연다고 합니다.
지공화장 존상 봉안식을 인도의 국제문화연구센터(ICCS)의 아시시바베님이 통도사와 함께 준비한 행사라서 스님도 행사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스님은 백중입재 법문으로 일정을 조정할 수가 없어 전체 행사에 참여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11시 40분경 스님은 통도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미 설법전에서의 법회는 마친 상태였고, 참가자들이 삼성각에서 삼화상 진영과 새로 모신 존상에 헌향하며 참배를 하고 있어 스님도 참배를 하였습니다.


이어서 참가자들과 함께 진신사리를 모셔둔 탑을 한바퀴 돌고,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공양시간이 되어 스님은 내빈들과 함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주지스님실로 이동하여 아시시바베님과 인도 보드가야 분황사의 붓다팔라스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시시바베님은 요즘 유기농 농업과 토종 종자은행에 관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의 유기농 농업과 종자은행에 대해서 궁금해했습니다. 아시시 바베님은 인도의 여러 지역에서도 다양한 유기농 농업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며, 스님에게 인도 현장을 안내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스님도 한국 충남 홍성 홍동마을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향후 스님의 인도 방문 시 유기농 농업이 잘 되고 있는 현장을 함께 가보기로 하며 대화를 마쳤습니다. 아시시바베님은 스님에게 준비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데 통도사에서 많은 분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반가워했습니다. 스님의 유튜브와 <법륜로드 스님과 손님>을 보았다며 인사했습니다. 스님과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스님과 함께 했던 행자님이 말했습니다.
“스님 오늘 통도사의 아이돌이시네요.(웃음)”
붓다팔라 스님이 주차장까지 스님을 배웅하였습니다. 스님과 붓다팔라스님은 오랜만에 만난 터라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1시 30분 스님은 통도사에서 출발하여 부산에 있는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진료를 받고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상추와 농작물에 물을 준 후, 부탄 JTS 활동가들이 스님을 뵈러 와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 스님은 휴식을 하였습니다.

내일 스님은 부탄 활동가들과 함께 들깨를 심고, 업무를 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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