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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콜롬보로 이동하여 천주교 및 성공회,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대표를 접견했습니다.
스님은 새벽명상을 마치고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아침산책에 나섰습니다.

이틀 전에 산책을 했던 곳이 경치가 아름다웠던 터라 다시 한번 산책을 갔습니다.

마을을 지나며 스님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우리도 여기에 살 집을 하나 구할까요?”
한 행자님이 심심하고 무료할거 같다고 하니, 스님은 말했습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다 바빠 죽겠다고 할거에요.(웃음)”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싣고 스님 일행은 6시에 콜롬보로 출발했습니다.

버스 이동을 하며 잠시 종교인분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스리랑카 종교인 교류 프로그램의 확대 방안, 다르마샥티(Dharmashakthi)와 연계한 주민 참여형 개발 사업, 내전 피해 지역과 고산지대 차 농장 지역 등 스리랑카의 취약 지역의 빈곤층 지원과 자립 기반 마련 등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이동을 시작한지 한 시간 반이 흐른 후, 잠시 차를 세워 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지금 스리랑카는 우기인데 다행히도 이번 일정 동안은 한 번도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좋았습니다. 스리랑카 일정 중에 처음 만나는 비 였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와! 드디어 스리랑카에서 비를 만나네요!”
스님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 공동체 방문이니 신발 벗을 일도 없고 잘되었네요.”

스님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콜롬보를 향해 2시간가량을 더 이동하였습니다. 콜롬보에 도착하니 이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지 해가 쨍 했습니다.


10시에 콜롬보 대주교관의 아크 비숍 하우스에 도착하여 말콤 란지트 추기경 및 성공회,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대표와 접견을 하였습니다.

추기경님이 먼저 스리랑카 측의 인사를 소개하고, 스님이 한국인 종교인들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추기경님의 인사말씀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한국에서 오신 모든 종교 지도자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스리랑카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종교가 함께 살아온 나라입니다. 특히 불교는 우리 사회와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태국과 미얀마 등 아시아 불교 전통과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 역시 여러 세대에 걸쳐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스리랑카는 불교만의 나라가 아닙니다.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함께 살아가는 다종교 사회이며, 우리는 이러한 종교 간 화합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에서는 종종 종교를 이용해 권력을 얻거나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은 이러한 정치적 이용을 막고, 종교가 갈등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보호해야 합니다. 2019년 부활절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일부에서는 종교 간 갈등을 조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불교 지도자들과 무슬림 지도자들이 함께 협력하며 사회가 더 큰 폭력으로 번지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가 스리랑카 문화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조화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스님도 먼저 환대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주교님을 비롯한 크리스천 공동체에서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짧은 일정이지만 무슬림, 불교, 힌두교, 크리스천 공동체를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이번 방문을 마치면 다르마샥티와 함께 평가회의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교류하고 협력해 나갈지 논의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주교님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저희는 자푸나의 타밀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분노와 슬픔, 원망이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종교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자치권을 보장받고, 스리랑카 사회에서 차별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전쟁으로 크게 파괴된 지역이 하루빨리 경제적으로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스리랑카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특히 그 지역에는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 전쟁 중 군이 점유했던 사원과 토지를 아직 돌려받지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싸지 스님께서는 정부가 반환을 추진할 계획이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주민들은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의 땅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주교님과 아싸지 스님, 그리고 여러 종교 지도자들께서 그분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종교 간 대화만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자푸나까지 갈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콜롬보에서도 힌두교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저희가 먼 길을 찾아간 이유는 그분들에게 우리가 직접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지 느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외국 종교지도자들이 자푸나에 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은 처음이고 큰 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분들은 가장 힘들고 고립되어 있던 시기에 아싸지 스님이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일을 지금도 깊이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주교님께서도 이 나라의 큰 지도자로서 그분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에 한 참석자는 스리랑카의 현실을 설명했습니다. 오랫동안 정치권이 종교와 민족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사회를 분열시켜 왔고, 종교인들이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해도 오히려 반군을 돕는다는 오해와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북부 타밀 주민들을 위한 지원과 화해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갈등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는 한 진정한 평화는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끝으로 스리랑카가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우리도 남북 갈등 속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굶주릴 때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일부에서는 '우리가 지원한 쌀이 총알이 되어 돌아온다', '북한 정권을 돕는 일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북한 편을 들려면 북한에 가서 살아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조차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점에서는 한국이나 스리랑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움은 있지만 함께 협력하며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
대화를 마치니 12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준비해 온 선물을 전달하고, 까리따스 센터에서 점심을 준비해주어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후 잠시 쉬었다가 오후 2시부터 이번 일정에 대한 평가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평가회의에는 불교계 세 개 종단의 대표를 비롯해 추기경 등 기독교 지도자, 무슬림 지도자, 힌두교 지도자가 함께 참석했습니다. 스리랑카의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만남은 종교 간 신뢰와 협력의 의미를 보여주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먼저 다르마샥티 측에서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일정을 브리핑하며 평가를 했습니다.

한국 종교인 방문단이 이슬람, 불교, 힌두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과 폭넓게 만날 수 있도록 일정을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항 영접부터 각 지역 방문, 종교 지도자 면담, 성지 순례까지 전반적인 일정이 성공적이었고, 한국의 원로 종교지도자들과 스리랑카의 원로 종교지도자들이 직접 만난 점을 이번 방문의 중요한 성과로 꼽았습니다.

박남수 교령님이 이번 일정을 함께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번 스리랑카 방문을 통해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만나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각 종교의 사원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종교가 어떻게 화해와 평화를 위해 함께 실천하고 있는지를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가 함께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모습이 이번 방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한국뿐 아니라 스리랑카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스리랑카가 종교 간 화합을 계속 이어간다면 세계 평화를 이끄는 나라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박종화 목사님도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번에 전쟁 피해 가족들을 만나면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눈에서 '왜 우리 가족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까?'라는 절규와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희망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힘은 결국 신뢰와 희망, 사랑입니다. 한국과 스리랑카가 이를 바탕으로 함께 평화와 화해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 스님도 이번 방문을 통해 느낀 점과 앞으로의 협력 방향을 이야기했습니다.
“공항에서부터 지금까지 환대해주신 다르마샥티 회원님들과 각 종교 지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교가 함께 모여 활동하는 것은 종교마다 믿음과 사상,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희도 한국에서 그런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르마샥티는 지난 30년 동안 그런 어려운 일을 계속 해왔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위해 대화의 장을 만들면 양쪽 모두에게서 비판을 받기 쉽습니다. 저희도 남북 화해 활동을 하면서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종교 간 대화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기 교단이나 공동체 안에서 비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특히 주류 종교인 불교에서 대화를 이끌어 가면서 더 많은 비판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싸지 스님의 용기를 높이 평가합니다. 우리가 화해를 하려면 주류 쪽에서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포용할 때 화해와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오늘 이렇게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도 이 소중한 일을 계속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작년 스리랑카 4개 종교 지도자께서 한국에 오셔서 국제화해학회에서 스리랑카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발표해 주셨습니다. 그때 저희는 많은 감동을 받았고, 현장에 가서 더 배우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다르마샥티에서 이렇게 애써 주신 덕분에 각 교단의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선 한국의 종교인들이 더 많이 스리랑카를 방문해 배우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또 다르마샥티를 비롯한 스리랑카의 종교인들도 한국에 와서 함께 배우고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르마샥티가 스리랑카에서 종교를 초월해 고통받는 주민들을 돕는 일에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이미 각 종단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많이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종교가 협력해서 함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다면 그 의미는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앞으로도 대화를 이어가며 스리랑카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 세계 평화,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의논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만남이 종교 간 교류로만 끝나지 않고 한국과 스리랑카 국민들이 더욱 활발하게 교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지극한 환대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불교계를 대표해서 위말라그나나 스님이 발언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종교지도자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불교의 역사를 보면 불교는 인도에서 스리랑카를 거쳐 한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 역사적 인연을 생각하면 오늘의 만남은 더욱 뜻깊습니다. 오늘날 세계를 돌아보면 어느 나라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재난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를 더욱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각 종교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슬림 대표인 피로도스 아우라비님도 발언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책임이 있으며, 알라께서는 그 책임을 어떻게 다했는지 물으신다고 가르칩니다. 다르마샥티는 스리랑카 내전이라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계신 종교지도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갈등 지역을 찾아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러한 용기와 책임감이 있었기에 오늘의 다르마샥티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에서 오신 종교지도자 여러분과 함께 이런 경험을 나누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힌두교 대표로 스와미 다르샤카님이 발언했습니다.
"북부 자푸나를 방문해 주신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곳은 오랫동안 전쟁과 정치적 갈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지역입니다. 그런 곳을 찾아와 주민들과 함께해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다시 스리랑카를 방문하신다면 힌두교의 중요한 사원에도 머물면서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더 깊이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만남이 한국과 스리랑카를 잇는 영적인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화와 사랑, 행복을 함께 만들어 가기를 기원합니다."

선한목자회의 크리샨티 수녀님도 발언하였습니다.
"이번에 한국의 종교지도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스리랑카의 현실을 직접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서로의 현실을 함께 이해하고, 지역사회에서 어떤 일을 함께할 수 있을지 계속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사업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합니다. 또 앞으로는 한국의 여성 종교인들과도 교류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가 회의를 마치며 다르마샥티 측은 한국 방문단에게 감사패와 기념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스님 일행도 한국에서 준비해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잠시 차를 마시며 교류하는 시간을 가지며 다르마샥티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전체 일정을 함께해 준 아싸지 스님에게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렇게 잘 준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한국에서 만납시다.”
오후 5시에 스님 일행은 숙소로 복귀하여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스님은 오후 6시 40분에 JTS 해외사업팀 김윤미 팀장과 스리랑카 지부 활동가 나말, 파씬두님과 함께 잠시 회의를 하였습니다. 감폴라 학교 건축에 대한 공사 예산, 바사라 지역의 케이블 다리 설치, 진입로 정비, 농수로 보수사업에 관련한 행정업무, 다르마샥티와의 프로젝트 협력 등에 대해서 의논하였습니다.

하르샤님이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스님 일행은 7시 10분에 식당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7시 30분에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한 후 숙소로 복귀하여 9시 30분에 스리랑카 참여불교연대의 수칫님과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수칫 님과 청년운동의 방향,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의 네트워크, 비구니 스님들의 사회적 역할과 협력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스리랑카의 향후 교류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스님은 이번 방문은 다르마샥티와의 첫 교류로 탐방 성격인 만큼 현장을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었으며, 앞으로는 실제 대화와 공동 실천 중심으로 교류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종교 간 대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였습니다.
회의를 마치니 어느덧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원고를 수정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스리랑카 일정의 마지막 날로 사르보다야 본부와 평화박물관을 방문하고 한국으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어 지난 5월에 있었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저는 두 자녀를 둔 엄마입니다. 둘째 아이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 관계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두통을 호소하며 등교를 거부해 왔습니다. 겨우 학교에 가더라도 조퇴하거나 아예 결석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런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고, 상담 치료를 받은 지도 거의 2년이 되어 갑니다. 평소 휴일에는 집에서 비교적 잘 지내는데, 유독 학교 가는 날만 되면 다시 두통을 호소하면서 결석이나 조퇴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에 가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기술을 배우는 길도 있다.’ 같은 여러 대안을 제시해 봤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친구들과 수학여행도 가고 싶고, 정상적으로 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에도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결석과 조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지금 제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아이가 심리검사를 했을 때, 기질적으로 매우 예민해서 불안이 높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예민함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아이가 평생 이런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지금의 이 시기에 엄마로서 아이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거나 도와줄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자가 의사입니까?”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잠들기 전에 법륜 스님 강의를 듣고, 아침에도 듣고, 답답할 때는 걸으면서도 들었습니다.”
“법륜 스님의 법문은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답답한 ‘내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어떻게 하느냐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안 돼요. 아이의 병은 의사의 소관입니다. 질문자의 역할은 밥을 해주고 옷을 빨아주는 이런 기본적인 돌봄을 하는 것이죠. 자기 소관이 아닌 일까지 자꾸 개입하려 하니까 상황이 더 복잡해지는 거예요. 자기 할 일만 하면 됩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어떻게 살지는 아이의 인생입니다. 그 이후에 아이가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기보다 사회적인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나는 내 역할만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면 그런 아이가 있더라도 질문자는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자식이라서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그런 자식을 둔 것 자체가 불행한 게 아니라, 자식에 대한 집착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자식이 부모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 이유는 없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부모 인생이 불행해지는 게 아니에요. 장애가 있으면 그 상태에 맞게 도와주면 되잖아요. 그리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그 이후는 사회의 역할로 넘어가게 됩니다. 과거에는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으면 온 가족이 함께 무너지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장애가 있는 아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그 부모 역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사회의 방향입니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스스로 불행을 선택한 것과 같습니다. 물론 불행하게 살겠다고 하면 그것도 개인의 자유에요. 다만 ‘자식인데 어쩌겠습니까?’라고 하면, 그 선택 자체가 괴로움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그런 증상이 나타났을 때, 아이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보인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징후가 보이면, 가장 먼저 건강 상태를 체크해야 합니다.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가는데 혼자만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야단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일종의 이상 신호입니다. 그럴 때는 병원에 가서 점검을 해봐야 하는 거예요. 모두 밥을 먹는데 혼자 안 먹겠다고 하거나, 다른 음식을 줘도 거부한다면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것과 같아요. 다만 특정 음식만 먹는 특성이 있을 수는 있어요. 의사가 괜찮다고 한다면 그 특성에 맞춰주면 됩니다. 억지로 바꾸려 하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소신껏 스스로 ‘학교에 가지 않겠다.’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의지인지, 아니면 건강 문제인지 먼저 구분해야 합니다. 정신과 진료에서 이상이 없다면 아이의 특성일 수 있고, 그에 맞게 지원해 주면 됩니다. 반대로 질환이라면 치료가 필요하겠죠. 치료는 부모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인 거예요. 약을 먹고도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면, 그 또한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약의 용량을 조절하거나 치료 방향을 바꾸는 일은 의사의 몫입니다. 그런데 의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부모의 역할이 시작됩니다. ‘이제 학교를 갈지 말지는 보호자가 판단하세요.’라고 하면 그때는 부모가 그 책임을 맡아야 합니다.
전문 영역은 아니지만, 더 이상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그때는 내가 책임을 맡아야 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해야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면 ‘오늘은 쉬어봐라. 그런데 계속 결석하면 제적될 수 있는데 괜찮겠니? 자퇴할 생각이니?’ 이렇게 선택지를 제시해 주는 겁니다. 조퇴를 반복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선택의 결과를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는 뜻이 아니라,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는 거예요. 아이가 얼마나 불안하면 학교를 안 가려고 하겠어요. 엄마 입장에서는 학교에 가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학교가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미칠 것 같은 거예요. 학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다면 집에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억지로 참게 하면 나중에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가는 게 무조건 옳다.’, ‘안 가는 게 문제다.’ 이렇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내가 편한가’가 아니라 ‘아이 상태가 어떤가’를 중심에 두고 살펴야 합니다.
정리하면, 첫째는 의사의 판단을 따르고 계속 상의하면서 치료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사가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면 아이 상태에 맞게 부모가 판단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가기 싫으면 가지 말고, 가서도 너무 힘들면 돌아오너라.’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많이 힘드니? 그런데 계속 학교에 안 가면 제적될 수도 있어.’ 이렇게 현실도 함께 알려줘야 합니다. 대안학교에 갔다가 그만두고, 또 다른 학교로 가겠다고 하면 보내줘야 해요. 지금은 환자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애써서 보냈는데 왜 못 가느냐’라고 다그치면 안 돼요. 간다고 하면 보내주고, 오겠다고 하면 데려오고, 자퇴했다가 다시 복학하겠다면 도와주고, 그만두겠다면 그 선택도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것은 아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준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의 심리를 이해하자는 뜻입니다.
아이의 무의식에는 두 가지 마음이 함께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다 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막상 하려니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은 마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어요. 이 점을 이해하면 상황을 훨씬 단순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 가겠다고 하면 ‘견딜 수 있으면 한번 가보지?’라고 권할 수 있고, 가겠다고 하면 ‘하다가 못 참겠으면 그만둬도 된다.’라고 말해 줄 수도 있습니다. 항상 아이의 상태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스무 살이 넘으면 직장을 구해야 한다.’라거나 ‘늙어서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시기가 되면, 그때 가서 필요한 제도를 알아보고 지원을 받으면 됩니다. 정부에 신청해서 장애등급을 받고,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면 됩니다. 그렇게 사회적 지원을 이어주고, 질문자는 질문자의 삶을 살아가면 돼요. 이런 아이를 둔 부모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어려움이 있는 아이 역시 그 상태에 맞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부모의 기대와 욕구 때문에 아이가 더 힘들어집니다. 졸업을 해야 한다거나, 대학에 가야 한다, 혹은 가지 말아야 한다거나, 이런 걸 왜 부모가 결정하나요? 그것은 아이가 결정하는 거예요. 그러나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조언은 해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있고, 저렇게 하면 저런 결과가 있다는 정도를 알려 주면 충분합니다. 그 정도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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