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6.26. 미팅, 행복한 대화 안산 강연
“암 투병 중인 아버지께 자꾸 잔소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평화재단에서의 미팅과 안산 행복한 대화 강연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수행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9시 사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전 9시 30분에 은행 카드 발급 업무를 보고, 10시 30분에는 정토회 서제지부 노원지회장님과 이번에 당선된 강북구청장님이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스님은 점심 공양 후 JTS 및 국제협력팀의 실무자들과의 미팅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부탄 1차년도 사업성과 영상 활용 및 배포에 대해서 실무자들과 의논하고, 부탄 지속가능한 개발 사업 방식을 모델 삼아 동남아 지역에 확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기존 INEB 정토회 방문자 및 인연이 있는 나라의 활동가들에게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알리고, 이런 지속가능한 개발에 동의하는 분들이 있으면 사업 신청을 받는 안에 대해서도 의논했습니다.

4시에는 사회 주요 인사와의 방문과 미팅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미팅을 마치자마자 숨돌릴 겨를도 없이 안산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7시가 다 되어 스님은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의 행복한 대화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기실에서 손님에게 드릴 책에 사인을 했습니다.

7시 15분부터 무대에서는 티키타카 밴드의 리드보컬인 김미라 님이 패티김의 <그대 내 친구여>와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열창해 주어 청중들이 큰 박수와 호응을 얻었습니다. 김미라 님은 스님의 강연에 초대받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남편분과 강연을 끝까지 듣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스님의 소개 영상을 다 함께 본 후, 사회자는 스님을 무대로 모셨습니다. 청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현장에서는 500여 명의 대중이 온라인에서는 5,600여 명의 시청자가 오늘 강연에 함께 했습니다.

즉문즉설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즉문즉설은 어떤 질문에 답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친구와 차 한잔할 때를 생각해 보세요. 친구가 부모님 얘기를 하든,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 얘기를 하든, 회사 얘기를 하든 그것은 친구의 자유입니다. 그 얘기를 소재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죠. 형식은 친구가 묻고 내가 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질문하는 사람이 꼭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혹시 답을 듣고 싶다고 해도 제가 꼭 답해야 하는 책임이나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할 일은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문자가 한쪽만 보고 있다면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하고 안내해 주는 거예요. 이렇게 대화하다 보면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네. 별일 아니네’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게 됩니다.

사실을 알려줄 뿐,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정답은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됩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에요. 독이 든 음식이 있는데 모르고 먹으려고 할 때, 부처님께서는 ‘거기에 독이 들었다’라고 알려줄 뿐입니다. ‘독이 들었으니 먹지 마라’가 아니라 독이 들었다는 사실만 알려주는 거예요. 내가 독이 들었는지 모르고 있을 때는 먹으려고 했는데,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안 먹겠죠. 그런데 가끔은 알고도 먹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에요. 먹고 안 먹고는 개인의 자유이며 선택입니다.

우리가 도와 줄 수 있는 것은 독이 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독이 들었다’라고 알려주는 것뿐입니다. 그것을 먹을지 안 먹을지는 본인의 선택이라는 겁니다. 모르고 먹어서 죽게 되면 후회가 되고 괴로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알고 먹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 됩니다. 살려면 안 먹을 것이고, 죽으려면 먹겠지요. 그 선택에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굳이 말하면 대부분은 살고 싶으니까 안 먹는 선택을 하겠지요. 하지만 다수가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옳은 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렇게 선택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선택하다 보니 그것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죠.

‘이건 하지 마라, 저건 하지 마라’ 하는 것은 선악을 기준으로 하는 윤리나 도덕에 해당합니다. 대부분의 종교도 선악을 기준으로 둡니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에는 본래 선악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진실을 알려줄 뿐,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수의 선택이 정형화되다 보니 마치 부처님께서 ‘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알려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불교도 윤리나 도덕처럼 ‘좋은 소리 하는 꼰대 같은 이야기’로 들리는 거예요. 하지만 불교는 꼰대같이 ‘하라, 하지 마라’ 하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요. 다만 나중에 후회할 것을 대비해서 진실에 대해 알려줄 뿐입니다. 산에 사는 짐승은 누구의 가르침을 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살아갑니다. 자연계에 있는 모든 생명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살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면 더욱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리석음을 깨우치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을 하고도 결과가 예상과 빗나가면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선택을 할 때 ‘너는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그 선택을 하느냐?’ 고 한번 환기시켜 주는 겁니다. 결혼할 때 여러분은 제일 먼저 무엇을 봅니까? 사진을 보고, 얼굴을 먼저 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결혼해서 아침마다 남편이나 아내 얼굴 보는 게 힘들어서 이혼했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성격이 안 맞아서 이혼했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결혼할 때는 얼굴이나 능력 정도를 보고 선택하지, 성격이나 생활 태도는 거의 안 봅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살아 보면 제일 많이 부딪히는 것이 성격과 생활 습관이에요. 결혼하려면 상대의 능력은 조금 보더라도 얼굴은 굳이 안 봐도 됩니다. 주로 성격과 취향, 생활 태도가 결혼 생활에는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전생에 죄를 지어서 부부가 안 맞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벌을 줘서 안 맞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선택의 기준과 결과가 맞지 않았던 겁니다.

단단한 것을 좋아해서 쇠붙이를 선택해 놓고는 부드럽지 않다고 불평합니다. 또 부드러운 솜을 선택해 놓고는 단단하지 않다고 불평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어리석다’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좋다, 나쁘다’, ‘선과 악’ 이런 개념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모든 괴로움은 죄에 대한 벌이 아니고 어리석음 때문에 스스로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독이 든 줄 모르고, 살려고 먹었는데 죽게 된 거예요. 그럴 때 그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렇게 어리석음을 깨우쳐 지혜를 얻으면 괴로울 일이 없어져요.

우리의 목표는 죽어서 천당 가는 것도 아니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하루만 사는 곤충이 하루살이인데, 하루살이를 관찰해 보면 대부분 아침에 태어나서 오후 5시에서 6시쯤에 죽는다고 합시다. 그중에는 낮 12시에 죽는 하루살이도 있을 것이고, 밤 10시까지 사는 하루살이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대다수는 해 질 무렵에 죽겠지요. 사람이 볼 때는 하루살이 한 마리가 낮 12시에 죽든, 저녁 6시에 죽든, 밤 10시에 죽든 그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하루살이가 죄를 많이 지어서 낮 12시에 죽었을까요? 복을 많이 지어서 밤 10시까지 살았을까요? 그것처럼 어차피 죽는데 조금 먼저 죽고 조금 뒤에 죽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되었다, 복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혹시 ‘나는 기독교인인데 불교 법문을 들어도 될까?’라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입니다. 내가 무엇을 믿든 자유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더 고상한 것도 아니고, 부처님을 믿는다고 더 나쁜 것도 아니에요. 개미를 믿든, 뱀을 믿든 모두 자유의 영역에 속합니다. 사상이나 이념이 달라도 괜찮습니다. 헌법에 사상과 이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믿느냐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은 ‘내가 지금 괴로운데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선진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매우 낮다고 해요. 오늘 이 즉문즉설을 통해 여러분이 자각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이 결국 국민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국민 행복 운동입니다. ‘어떻게 하면 종교,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괴로움에서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행복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행복학교를 졸업한 사람들, 즉 행복시민이 주체가 되어 마련한 자리입니다. 자, 이제 행복한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전에 신청한 4명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 여자 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는데 서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다들 이렇게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일까요?
  • 키우는 강아지가 나이가 많습니다. 강아지 없는 삶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어렸을 때부터 구구단도 늦게 외우고 학습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현재는 괜찮아졌지만, 불안감이 높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선산에 모셔야 했는데 납골당에 모셨습니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가 됩니다. 그리고 명절에 아버지 제사와 이혼하셨던 어머니를 챙겨야 하는데 부담스럽습니다.

스님은 현장에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 스님은 사람들의 질문에 법문해 주시면서 보람과 자부심을 갖게 될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드시나요?
  • 직장을 7번 바꿨습니다. 새로 직장을 구하기가 힘듭니다.
  • 가장 나답게 사는 법은 무엇일까요?
  • 억울할 때는 대응하는 게 나을지 대응 안 하는 게 나을지 궁금합니다.
  • 아버지가 폐암인데 운동도 안 하시고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자꾸 드십니다. 그래서 잔소리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중 아프신 아버지에게 자꾸 잔소리를 해서 고민이라는 질문에 대한 스님의 법문을 소개합니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께 자꾸 잔소리를 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3년 전에 폐암 선고를 받으셨고, 얼마 전에는 뼈로 전이가 되어 4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지금은 3주마다 항암치료를 받고 계세요. 운동도 하시고 몸에 좋은 음식도 드셨으면 좋겠는데, 많이 지치시다 보니 좋아하는 음식만 드십니다.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잔소리하게 되는데, 그러고 나면 또 후회가 됩니다. 제가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잔소리를 안 하는 게 좋다는 건 질문자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럼 안 하면 되죠.” (웃음)

“아버지께서 건강하셨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자꾸 잔소리하게 됩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정말 아버지 건강에 도움이 될까요? 질문자는 좋은 의도로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암 환자가 스트레스받으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질문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은 질문자의 바람입니다. 그런데 그 바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랄 수는 있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어도 상대가 싫다고 하면 강제로 결혼할 수는 없잖아요. 이처럼 질문자도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은 좋지만, 결국은 자기 생각을 따르라고 강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바람을 갖는 것은 내 마음이지만, 상대방이 내 말을 꼭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선입니다. ‘당신을 위해 하는 말인데 어떻게 안 들을 수 있는가’라고 고집하는 것이죠. 부모도 아이를 잘 키우려고 잔소리를 한다지만, 아이들은 그런 부모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하잖아요. 질문자는 아버지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여기 오셨다면 딸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 않겠어요? (웃음)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더 마시게 될까요, 덜 마시게 마실까요?”

“더 마시게 되겠죠.”

“아버지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또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권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두 번 말했는데도 안 들으신다면, 그건 본인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겁니다. 많은 분이 저에게도 과로하지 말라고 하지만, 저도 그 말을 잘 안 들어요. 그런데 과로하지 말라고 하면서 또 본인들을 위한 즉문즉설은 계속 해 달라고 합니다. (웃음) 이렇게 본인의 요청은 들어달라고 하면서 다른 것은 하지 말라고 해요. 부탄에 가면 그곳 사람들은 또 부탄 프로젝트만 해 달라고 하고, 다른 것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스님 몸이 힘드니 과로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또 책을 가져와서 사인을 해 달라고 합니다. (웃음)

질문자도 아버지를 위해 간병을 해드리고 이것저것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할지 말지는 아버지가 결정하는 겁니다. 한두 번 아버지에게 말해도 안 된다면, 아버지가 속으로는 동의하지만 자신의 카르마 때문에 뜻대로 안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애초에 동의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몇 년 더 사는 것이 좋을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1년을 사는 것이 좋을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제가 대중이 원하는 즉문즉설을 하다가 내년에 죽는 게 나을까요, 즉문즉설을 하지 않고 10년 더 사는 게 나을까요? (웃음) 그것도 결국 제 선택이에요. 그래서 이 문제는 잔소리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질문자는 자신의 의견을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상대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항암 주사를 맞으면서 병세가 오히려 악화됐습니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중단했더니 상태가 좋아졌어요. 이렇듯 경우에 따라서는 생의 마지막을 굳이 고통스럽게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편안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상황은 사람마다 다 다르므로 어떤 것이 맞다고 결론 내릴 수가 없습니다.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제안하되, 선택은 본인에게 맡겨야 합니다. 남의 인생에 너무 간섭하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할 도리만 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강연은 강연장이 그리 크지 않고 청중들과의 거리도 가까워 스님과 청중들이 마주 앉아 대화하듯이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로비에서 스님의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스님의 책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사인을 받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이어서 이번 강연 준비에 애를 써준 행복시민 봉사자들과의 단체 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손 하트를 만들며 다 함께 외쳤습니다

“스님, 사랑합니다.”

강연 장소에서 출발해 서초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10시 15분이었습니다. 스님은 업무마무리를 하고 휴식하였습니다.

내일은 영어 불교대학 즉문즉설과 평화재단 통일의병대회 일정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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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식

“사람이 볼 때는 하루살이 한 마리가 낮 12시에 죽든, 저녁 6시에 죽든, 밤 10시에 죽든 그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하루살이가 죄를 많이 지어서 낮 12시에 죽었을까요?
복을 많이 지어서 밤 10시까지 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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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고 길게 보면 다 별일 아닙니다.

2026-06-29 06:46:14

이수정

고맙습니다.

2026-06-29 06:44:27

최상훈

고맙습니다.

2026-06-29 06: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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